살아있으며, 동시에 죽은 것들에 관하여
: 미디어-고고학적 방법론과
동시대 예술의 상관관계
유원준 미술비평, 영남대 교수
Art Critique

김현석 〈완벽함에 대한 무의미적 행위(달)〉(사진 왼쪽) 디지털 프린트 152×152cm 2015, 김현석 〈완벽의 기원〉(사진 오른쪽) 디지털 프린트 152×152cm 2023 사진: 임장활 제공: 울산시립미술관, 작가
예술이 이러한 장면에서
미디어-고고학의 관점과 공명하는 까닭은
이에 관한 하나의 해답을 지정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에 관한 질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변증법적 유물론과 하프카메라
최근 사진계에서는 과거 ‘하프카메라’의 판형을 복원한 카메라가 연일 화제이다. 과거 석유 파동으로 인하여 필름 값이 치솟으면서 35mm 카메라 필름의 절반을 한 컷으로 사용하게 만든 것이 하프카메라인데,1 당시 물자를 절약하자는 사회적 분위기에 잘 조응하는 상품으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카메라가 단순히 필름을 절약하는 결과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컷의 사진에 두 개의 장면을 담을 수 있었기에,2 사진가들은 이와 어울리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경향은 하프카메라가 가져온 하나의 사진 스타일로 귀결되었다. 이 사례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역전된 도식을 보여준다. 보편적으로 양적 변화에서 질적 변화로의 이행을 통해 발전하는 것에 반하여, 이 경우에는 질적 변화가 양적 변화를 양산해내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질적 변화의 면면에서도 그것의 상향식 변화가 아닌 하향식 변화로 볼 수 있는 질적 열화의 상태가 독특한 이미지 생산의 양적 변화를 촉발시켰으니 말이다.3 물론 결과적으로 위의 하프카메라는 이후 필름 가격이 하락하고 현상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지만, 당시 기술 매체에 관한 재매개의 예외적 사례로 현재까지도 회자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하프 카메라가 현재의 디지털카메라 시장에도 등장했다는 사실이다.4 이와 같은 사례는 미디어-고고학적 관점에서 몇 가지 분석해 볼 만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디어-고고학은 역사를 단순한 진보나 필연적 결과로 치부하지 않으며 그것을 예상치 못한 사건과 변화로 가득 찬 복잡한 과정으로 간주한다.5 이에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사유하는, 정해진 원칙을 전제하는 방식으로 작동되지는 않으며 고전적 역사학에서는 제거되고, 배제되며 지워져야 하는 것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6 만약 카메라의 기술적 궤도 안에서만 살펴보자면, 디지털카메라에서는 애초에 ‘하프’라는 판형의 절반만을 사용한다는 개념 자체가 통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당 카메라의 특성은 지금까지 가로가 긴 포맷을 주요하게 사용해 온 것과는 달리 세로형 포맷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는 지점에 있는데, 이는 현재 카메라를 사용하는 이들이 카메라로 포착한 자신들의 이미지를 등록하고 배포하는 매체 자체의 포맷과 연동된다는 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의 시점에서는 대중에게도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영상 촬영 기능과의 연결점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두 개의 장면을 연결하여 제시하는 하프카메라의 방식은 사진기의 본질적인 시간성과 공간성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영상 촬영에 익숙한 세대들에게는 이러한 특성 역시 레트로한 감성으로 인식되고 있을 따름이다.
#2. 사후의, 그러나 경직되지 않은 것들
독일의 문예이론가이자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은 과거 비애극의 형식을 분석하며 그것들이 배경으로 삼는 역사의 성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무대 위에 비애극이 연출하는 자연 사의 알레고리적 모습은 현실에서 폐허의 형태로 주어져 있다. 폐허와 함께 역사는 감각화되어 무대 속으로 이동해간다. 게다가 역사는 이러한 모습을 띠면서 어떤 영원한 생명의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저지할 수 없는 몰락의 과정으로 부각된다. 이로써 알레고리는 아름다움을 넘어서 자신을 드러낸다.”7 이처럼 폐허의 역사에서 알레고리를 추출하는 것이 벤야민식 방법론의 차별점인데, 혹자는 이러한 그의 비평적 태도를 일컬어 ‘구제 비평’이라 평가하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발언을 살펴보면 특이하게 ‘폐허’라는 키워드에 그의 초점이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폐허는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가지의 시제를 포괄하는 키워드이며, 따라서 역사성을 전제한 대상이자 현재의 흐름에서 탈구돼버린 이른바 버려지고 소외된 장소이다. 다만 그렇게 버려졌음에도 모든 의미가 종료된 채 박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현재의 체로 걸러낼 수 없는, 그러나 과거의 특정 시점에서도 발견되지 아니한, 잔존하는 의미의 덩어리, 즉 잔해로서의 파편들이 남아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앞서의 (시대/기술적) 변증법을 비켜간 하프카메라의 사례와 벤야민의 폐허-이미지/장소가 지닌 유사성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특정 시기에서의 용도와 쓰임이 종료된 채, (죽지 않고) 좀비와 같은 대상으로 전락하였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재발견되어 의미의 층이 두터워진 사례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 방식으로부터 벤야민의 논의는 푸코의 논증과 함께 미디어-고고학에서 빈번하게 원용되는 이론이 된다.8 최근의 예술 작품 혹은 전시들이 미디어-고고학적 방법론을 통해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지점에서 연유한다. 예술은 그 자체로 역사적 사실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매체라기보다는 일종의 번역 작업에 가깝다. 따라서 모든 번역에 뒤따라오는 문제들, 가령, 번역하는 이가 서 있는 시간과 장소에 관한 것들이나 지식의 현재성에 맞추어 조절되는 그런 문제들과 마주하기 마련이다.9 예술이 이러한 장면에서 미디어-고고학의 관점과 공명하는 까닭은 이에 관한 하나의 해답을 지정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에 관한 질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매체에 관한 고고학적 접근이 다양한 층위들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재의 역사에서 배제된 과거의 매체에 주목하거나 간과되었던 매체의 물질적(비물질적) 특성을 재발견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필연적으로 사회와 문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방대한 영토를 경유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매체는 새로운 매체에 그 역할과 기능을 넘겨주며 스스로의 의미를 확보하는 동시에 종결짓는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과 변환의 과정에서 항상 소멸되지 않는 의미들이 존재한다. 혹자는 이것을 새로운 매체들이 기존 매체를 ‘재(再)매개’하며 발생하는 과정에서의 찌꺼기쯤으로 치부하곤 했지만, 이것은 그리 간단하게 삭제되지 않으며 이후 과정에도 잔존하여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10
#3. 동시대 예술과 미디어-고고학적 방법론
디지털 환경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기술적 대상들에 존재론적으로 접근하는 작가로 최근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김현석의 시도를 살펴보자. 그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환 과정에 주목하며 온라인에 거주하는 이미지들의 생태계를 분석하고 그것이 지닌 어원론적-기술적 기원을 추적한다. 또한, 최근의 인공지능에 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그것을 활용하여 그간의 기술 매체 발전사를 다시 읽으려는 매체-반성적 기법을 수행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열화(deterioration), ‘환영(illusion)’, ‘보간(interpolation)’, ‘물질(substance)’, 이와 같은 4가지 키워드는 작업을 수행할 때 고려하는 작가 스스로의 기준들인데 그는 이러한 요소들이 물질과 가상의 속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자신의 작업들이 지닌 좌푯값이 된다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요소들이 지닌 의미가 앞서 설명한 미디어 고고학이 중시하는 요소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질에 기반한 환영으로의 변화에서 발생하는 열화(劣化), 그것을 다시 복원하려는 보간(補間)의 행위에 이르기까지, 김현석의 방법론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에 이르는, 조금 더 확장해서 이야기해 보자면 자연적 대상에서 인공적 대체물로의 변화를 관통하는 역사적 수순에서 야기되는 선형적 절차들이다.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단편 소설가인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한 문단의 짧은 소설 「과학의 정밀성에 대하여(On Exactitude in Science)」는 출간된 이후 다양한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인용되며 현실과 가상, 원본과 시뮬라크르가 지닌 모순적 구도를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했다. 간단하게 이야기의 구조를 살펴보면 정밀한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본래의 영토만큼 큰 지도를 제작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해당 지도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지물로 만들게 된다. 이와 같은 이야기의 결론은 실제 영토와 지도, 원본과 시뮬라크르 양자 간의 차이로부터 요구되는 보간의 개념을 역설적으로 실체화한다. ‘보간(interpolation)’이란 그 단어의 의미에서 유추할 수 있듯, ‘사이(inter, 間)’를 ‘채우는 것(polation, 補)’이다. 최근의 기술 환경에서는 디지털 신호를 변환하는 과정에서 누락된 정보를 원래의 것으로 복원하는 방법을 지칭하는데, 물질적 대상이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될 때 발생하는 가상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열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모든 물질은 이미지(환영)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원래의 정보 값을 잃어버리는데 이러한 손실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환 과정에서도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김현석의 〈완벽함에 대한 무의미적 행위〉(2015)와 〈완벽의 기원〉(2023)은 이러한 열화 보간에 이르는 일련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표상한다. 작가는 구글에서 2015년 당시 가장 큰 크기(해상도)의 온라인 사진 이미지(촬영된 달 이미지)를 찾아내고 크기를 축소하고 확대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러한 반복적 행위는 디지털 기술이 지닌 오류를 발생시켰는데, 논리적으로 (혹은 기술적으로) 데이터의 손실이 발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디지털 이미지는 알고리즘적 오류를 드러내며 그 자체로 열화되었다. 작가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기술이 공약하는 ‘완벽함’이 일종의 허구임을 폭로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2023년의 후속 작업 〈완벽의 기원〉을 통해 최근의 인공지능이 시도하는 ‘완벽함’에 관한 또 다른 접근 방식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이전 작업이 디지털로의 변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열화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이 작품은 ‘인공지능 모델(stable diffusion)’의 보간법을 이용하여 (열화된 상태에서) 완벽하게 복원된 이미지를 선보인다. 다만, 앞서 소개한 보르헤스의 지도 우화가 시사하는 것처럼, 그러한 대상에 대한 완벽한 이미지는 그것이 이미지로 존재할 수 있는 당위를 스스로 지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예술에서 대상(객체)은 비활성 상태가 결코 아니며 결합과 해체가 가능한 다양한 시간성, 관계, 잠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11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현재의 시점에서 인공지능 기술로부터 파생되는 새로운 관계성과 시간성은 예술이 반성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하는 핵심적 문제가 된다. 특히 위의 보간 행위가 인공지능을 통해 수행된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일상적 풍경으로 인식되어 가는 상황이라는 부분에서 더욱 그러한데, 대중이 즐겨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사진 앱에는 자체적인 ‘보정(補正)’ 기능이 필수적으로 탑재되어 있으며 자주 사용하는 포털이나 SNS, OTT와 같은 디지털 프로그램들은 사용자의 취향을 알고리즘으로 예측하여 검색의 결과들을 미리 제시하는 상황이다. 인공지능은 과거의 데이터들을 토대로 사용자의 행동을 예측하여 보편타당한 결론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들로부터 사용자의 편향을 확증하기도 한다. 자신의 선택은 그 자체로 스스로의 취향의 갈래를 미리 결정지으며 이러한 결과로의 과정을 올바른 것(보정)으로 규정해버리는 프레임을 생산하는 것이다. 최근의 예술이, 특히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매체를 활용한 동시대의 예술적 시도들이 미디어-고고학적 방법론을 참조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12
*본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25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 기고이다.
1 하프카메라는 35mm 필름의 크기인 36×24mm의 절반, 즉 17×24mm의 판형을 사용한다
2 정확히 말하자면, 하프카메라는 35mm 필름의 절반만을 사용했음에도 사진 촬영 이후, 기존 35mm 필름과 동일한 판형으로 현상됨으로써 한 컷에 두 개의 장면이 안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3 최초의 하프 프레임 카메라(half-frame camera)는 1913년에 독일의 카메라 제조사 에르만(Ernemann)에 의해 출시되었지만, 석유 파동 이후인 1970년대에 대중적 인기를 끌었으며, 올림푸스 펜(Olympus Pen)과 같은 대표적 모델을 비롯하여 다양한 카메라 제조사에서 발매되었다
4 2024년 발표된 ‘펜탁스 17’은 펜탁스(Pentax)에서 제작한 아날로그 필름 기반의 하프카메라이며, 올해 6월 후지(Fuji)사는 하프카메라의 형식을 차용한 디지털카메라인 ‘X Half’를 발표하였다
5 Jussi Parikka What Is Media Archaeology? Polity Press 2012 p.13
6 미셸 푸코는 전통적인 역사관이 ‘기념비’를 ‘문서’로 바꾸는 것이라면, 고고학의 경우 ‘문서’를 ‘기념비’로 변환시키는 작업이라고 소개하며, 고전적 역사학에서는 분산되어 사건들의 범주 아래에 주어졌기 때문에 배제되었던 ‘불연속 개념’의 중요함을 역설한다 미셸 푸코 지음 이정우 옮김 『지식의 고고학』 민음사 2000 pp.28~29 참조
7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김유동 옮김 『독일 비애극의 원천』 한길사 2009 p.264
8 ‘미디어 자연’이란 개념을 주창하며 세계적 미디어 생태학자로 알려진 유시 파리카는 2012년 발간된 『미디어-고고학이란 무엇인가?(What Is Media Archaeology?)』의 서론에서 미디어 고고학의 기원에 관해 언급한다. 그는 미셸 푸코의 권력과 지식의 고고학 연구, 발터 벤야민의 근대성의 폐허에 대한 초기 발굴 등의 논의가 현재의 미디어-고고학의 기원으로 사유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Jussi Parikka 앞의 책 p.6 참조
9 미셸 푸코는 조르주 캉길렘(Georges Canguilhem)을 따라 특정 개념의 역사가 복수적인 이론의 역사일 수 있다고 설명하며, 역사적인 기술들은 필연적으로 지식의 현실성(현재)에 맞춰 조절되며 또 그 변환들에 의해 복수화되고 이 변환의 결과를 다시 계속 절연한다고 지적한다 미셸 푸코 앞의 책 pp.21~22
10 미디어의 시간을 연구하는 볼프강 에른스트(Wolfgang Ernst)는 미디어 고고학에 관하여 “죽은 미디어가 아니라 (…) 죽지 않은 미디어(media undead)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형성되는 미디어의 ‘때 아님(untimeliness)’이 있다”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미디어의 존속을 이야기하며 이를 ‘좀비 미디어(zombie media)’라는 개념으로 조명하는 유시 파리카(Jussi Parikka)의 접근과 연결된다. 그는 브루스 스털링(Bruce Sterling)의 ‘죽은 미디어(The Dead Media Project)’와 미디어 고생물학 개념의 연결을 시도하며, 다만 미디어는 죽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좀비 미디어의 개념이 잔여물의 물질성과의, 그리고 일부
실천적-이론적 발전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최근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미디어의 지질학』에는 예술가이자 저술가인 가닛 허츠(Garnet Hertz)와 공동으로 집필한, 위 개념을 설명하는 「좀비 미디어 : 미디어고고학을 예술 방법론으로 서킷 밴딩하기」가 부록으로 실려있다. Wolfgang Ernst 「Personal Correspondence with Garnet Hertz」 20 October 2009 유시 파리카 지음 심효원 옮김 『미디어의 지질학』 현실문화 2025 pp.283~305 참조
11 유시 파리카 위의 책 p.299
12 인공지능-알고리즘에 의한 기술적 환경은 우리의 미래를 과거에 정박시키고 있는 셈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저명한 미디어 이론가이자 비평가인 맥루한(Mcluhan)의 명제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우리는 백미러를 보는 관점으로 현재에 접근한다’는 언급을 자주 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과거를 미래에 대한 아카이브로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의는 볼터(Bolter)와 그루신(Grusin)이 저술한 『재매개(Remediation)』(1999)의 기본적 논의를 구성한다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