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숏—폼(Short—Form)

전형산 〈다크필드(Darkfield)〉 스마트폰, 모터, 컨트롤러, 간판 프레임, LED 라이트, 스피커, PA 오디오 시스템, 기타 이펙터, 오디오 믹서
가변크기 2022 왼쪽 사진 제공: 조준용 CJY ART STUDIO

숏—폼(Short—Form)
김예지 | 독립기획자

‘숏-폼(Short-Form)’을 소리 내어 읽어보자. 시옷 받침으로 첫음절을 닫은 후 뒤이어 늘어져 있는 하이픈(-)을 표현할 도리를 고민하다가 잠시 숨을 참아 보지만 늘여진 음조의 효과는 전혀 내지 못한다. 한 글자씩으로 변환된 영단어들의 소리와 형태를 거스르고 인위적인 끈으로 이어둔 구성의 전시 제목은 보는 눈뿐만 아니라, 말하고 듣는 입과 귀에도 거슬리는 모양이다. 단편적인 것들이 줄줄이 이어져 만드는 형식을 다루기 위함인가? 또는 분절된 짧은 것들이 건너가고 매개하는 형식을 드러내고자 함인가?
전형산 작가의 개인전 《숏-폼》(2023)은 단 두 가지 작품만을 소개한다. 벽 한 면에 나란히 걸려 인스타그램의 릴스(Reels)를 끊임없이 재생하는 아이폰 여섯 대는 작품 가동을 위한 동력원일 뿐이다. 맞은편에서 불연속적으로 방언하는 소리를 내며 불규칙한 섬광의 점멸을 반복하는 수직·수평의 거대한 백색 간판 두 대와 그 빛이 비추는 옆면 벽에 부착된 QR코드 다섯 점이 주역으로 자리한다. 각각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적 메커니즘의 출력값들이자, 작가와 기획자의 ‘믹싱’을 거쳐 선보인다는 접점을 갖는다.
흥미로운 점은 두 작품이 상반된 특성의 ‘영역(field)’을 자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래의 다크 필드(dark field)와 브라이트 필드(bright field)가 카메라 렌즈의 화각에 따라 구분되는 가시와 비가시 영역인 것과 달리, 이곳의 〈다크 필드〉(2022)와 〈브라이트 필드〉(2022)는 전시장에 실시간 송출되는 ‘숏 폼’ 영상의 부산물로서 탈각된 잡음의 결집도에 따라 규정된다. 그러니까 원래의 어둡고 밝은 영역은 카메라의 성능을 크게 웃돌지 않는 선에서 일정 정도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면, 이곳의 두 영역은 정해진 순서에 맞춰 회전하게끔 설계된 작가의 기계장치에 의해 거듭 넘겨지는 영상 속 조각난 소리들의 엉킴에 온전히 귀속된다. 한시적으로 온갖 소음이 엉겨 붙어 두 대의 간판에서 충분한 광선이 뿜어져 나옴으로써 ‘어두운 영역’이 마냥 어둡지 않게 되는 때에 비로소 ‘밝은 영역’이 도래한다. 다시 말해, 간판마다 둘씩 달려 한 쌍의 눈처럼 보이기도 하는 도합 네 대의 스피커가 일제히 번쩍하며 굉음을 방출하는 순간 전시 속 모든 대상이 또렷이 드러나고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의 〈브라이트 필드〉에는 이미지가 아니라 QR코드라는 기호체계만이 스마트폰 카메라가 해독 가능한 형상으로 떠오를 뿐이다. 또 관람객은 두 간판 앞에 놓인 이펙터를 조작해 잘게 쪼개져 있는 소리 파편들을 믹싱할 것을 독려받지만, 장치별 기능과 효과를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더듬어낸 변화를 스스로 감지하기에 실상 그 차이란 미미해 보인다.
사실 이미지 중심의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에서 사운드가 필수적으로 연동되는 릴스는 과도하게 요란하거나 유행하는 배경음이 반복되는 등 종종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며 음소거 처리를 유도한다. 시각 중심적 SNS의 사용 중 이미지가 선택의 여지 없이 화면에 노출되는 것과 달리 사운드는 선택적으로 소거할 수 있다(무빙 이미지의 대표 플랫폼인 유튜브의 경우에도 유료 서비스를 결제하지 않는 이상, 화면을 숨긴 채로 소리를 즐길 수 없다). 하지만 연이어 짤막한 형식의 영상을 송출하는 음향 장치 안에서 서로 부딪치며 바스러진 소리 찌꺼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분출되어 뒤섞이는 《숏-폼》의 ‘영역’들에서는 다르다. 휘황하게 발광하는 소음의 부산물들이 갱신을 거듭하는 영상 군집의 불빛을 압도하는 한편, 공간 전반에 발산하는 극적인 효과가 이목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시각과 청각의 비일상적인 위계 전복을 시도하는 이곳은 곧 작가와 인공지능이 상호작용해 써 내려간 텍스트의 해독 가능성과 함께 릴스의 알고리즘을 따르는 조명 겸 음향 작품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거나 거둠으로써 격렬하고 무한한 영역 간의 전이를 담보하는 시공이 된다.
SNS상에서 노출되는 수많은 객체 및 행위, 장소들에 수반하여 끝없이 순환하는 밝음과 어두움의 교차점 그 자체로서의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람객은 사운드 부스러기들이 충돌해 일으키는 광파와 그로부터 식별 가능성을 획득하는 전자 코드의 인계대로 텍스트 구문들의 매시업 (mashup) 한가운데 위치하면서 기민해진 청각과 시각으로 비물질적 요소들의 과장된 송·수신 방향 전환을 간파하고, 순식간에 휘발되는 현재의 감각 속에서 곧이어 들이닥칠 누군가의 과거가 중첩해 만들어낼 한 치 앞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태세를 갖출 수 있다. 그렇게 단축된 형식만큼 잘게 토막 난 동시대 미디어의 시간성을 뒤엉킨 공간의 감각으로나마 그러잡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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