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예술이다

이동연 한예종 교수

Special Feature

스포츠, 예술의 순간

영국 프리미어 리그 2019~2020시즌 16라운드 번리FC와의 경기에서 토트넘의 손흥민이 80m를 드리블해 골을 넣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았을 때, “아 예술이네”라고 감탄했다. 스포츠와 예술은 서로 다른 유형의 기관차이지만, “희망, 좌절, 환희”라는 이름의 같은 플랫폼을 공유한다. 근대 올림픽의 기원인 올림푸스 제전은 신에게 드리는 체육과 예술의 제사였다. 스포츠의 기원이 제의에 있듯이, 예술의 기원 역시 신을 경배하는 예식의 하나였다.

스포츠의 순간이 예술의 순간과 닮아있듯이 예술도 스포츠의 순간을 투사하고 재현한다. 최초의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들소와 같은 동물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이 벽화에 그려진 동물은 인간의 사냥감이다. 스포츠의 어원은 ‘먹이를 사냥’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스포츠 게임에서 ‘게임’의 의미는 사냥감을 말한다. 이렇듯 최초의 예술은 인간의 사냥감을 표현하고, 스포츠 역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중의 하나인 ‘사냥’ 행위를 대리한다. 한 명의 예술가가 탄생하기까지 고통스러운 습작의 시간이 있듯이, 스포츠 스타들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훈련의 시간을 거친다. 예술인과 체육인은 무대와 경기장에 서기 위해 수많은 경쟁을 해야 하고, 수많은 연습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렇게 고생을 해도 둘 다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1% 미만이다.

20세기 이후 예술은 스포츠를 다양한 미적 양식으로 재현한다. 예술의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라는 감각의 요소들은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면서 느끼는 문자, 소리, 움직임을 감동적으로 재현한다. 스포츠의 감동적인 순간은 예술의 감동적인 재현을 통해 그 정서가 배가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같은 감동의 스포츠 영화들, 도르트문트 독일축구박물관에 전시된 독일 축구 역사를 기념하는 문화유산들, 마치 실물과도 같은 그래픽 가상세계에서 스포츠를 현실화하는 온라인 게임들은 모두 예술과 스포츠가 함께 만들어 낸 것들이다.

영국의 창던지기 올림픽 선수 출신 로알드 브래드스톡(Roald Bradstock )은 1984년 LA 올림픽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두 번 출전한 선수이다. 그는 2000년 미국올림픽위원회 스포츠 미술경연대회에〈완벽을 위한 사투(Struggle for Perfection)〉를 출품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스포츠와 관련된 미술작품들을 제작해 다양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2017년 5월 평화와 스포츠 재단의 홈페이지에 실린 「스포츠와 예술 : 연결과 유사성. 그리고 평화를 증진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창조하는 기회」 제하 기고문에서 스포츠와 예술은 우리가 보유한 가장 보편적인 두 개의 언어라고 말한다. 스포츠와 예술은 우리에게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심지어 지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고, 국경과 문화와 언어와 세대를 가로질러 전 세계를 연결하고 소통하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스포츠와 예술은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감각을 느끼게 해줄까? 오늘 이 주제를 축구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자.

스포츠, 감각의 구별 짓기

스포츠는 감각의 구별 짓기이다. 특정한 스포츠를 좋아하고, 특정한 클럽을 좋아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계급적, 지역적, 종교적, 문화적 구별 짓기를 내면화한다. 영국이 아무리 축구에 미친 나라라 해도, 귀족계급은 축구 대신 승마, 경정, 크리켓을 좋아한다. 1963년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독일 축구는 바이에른 뮌헨과 반(反)바이에른 뮌헨으로 나뉜다. 반바이에른 뮌헨의 선봉장이 바로 루르 공업지역에 속한 도르트문트이다. 스페인 라리가는 카스티아 지역의 레알마드리드와 카탈루냐 지역의 FC 바르셀로나로 양분된다. 두 팀의 맞대결, ‘엘 클라시코’는 스페인 왕정과 공화정, 카스티야와 카탈루냐 지역의 전쟁이다. 이탈리아 축구의 심장 중의 하나인 밀라노에는 인테르밀란과 AC밀란이 라이벌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무뎌졌지만, 두 팀의 경기는 상류층의 지지를 받은 인테르와 하류층의 지지를 받은 AC밀란의 계급적 구별 짓기 성격이 강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는 셀틱과 레인저스라는 전통의 라이벌 구단이 있는데 이 두 팀을 지지하는 종교 세력은 각각 가톨릭과 영국 국교회였다. 1983년에 출범한 K리그의 가장 유명한 라이벌 매치는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슈퍼매치이다.

그런데 이러한 스포츠의 구별 짓기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은 시각적인 행동을 통해서다. 리버풀에 가면 폭 1km의 머지사이드 강을 사이에 두고 붉은색의 리버풀과 푸른색의 에버튼 구장이 마주한다. 머지사이드 더비가 열리면 거리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시각 전쟁이 벌어진다. 전통의 오렌지색 네덜란드 서포터즈들은 ‘유로 2024’가 열린 독일의 도시들을 오렌지색으로 물들인다. 스코틀랜드 올드펌 더비가 있는 날, 초록색의 셀틱 유니폼을 입고 레인저스 팬들이 밀집한 웨스트엔드 공원 주변 돌아다니면 유혈사태가 날지 모른다. 밀라노 더비가 있는 산시로 구장은 정확히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갈라져 화려하고 장엄한 시각 전쟁을 벌인다.

같은 색의 유니폼을 입은 수천 명이 울트라스 콜리더의 구령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깃발을 흔들고, 점핑을 하면서 응원하는 장면은 미적 감각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거대한 융합 퍼포먼스이다. 골대 뒤의 모든 홈 응원석을 노랗게 물들이는 도르트문트의 응원석을 통상 ‘옐로 월(yellow wall)’이라 부르는데, 이들의 응원 퍼포먼스는 거대한 이동형 설치미술 같아 보인다. 리버풀 FC 서포터즈가 앤필드 홈에서 머플러를 들고 ‘그대 홀로 걷지 않으리(You will never walk alone)’를 떼창으로 부르는 순간은 마치 리버풀 출신 비틀스 후예들의 거대한 록 콘서트 같다. 스포츠 스타의 플레이와 팬들의 응원은 유니폼으로, 엠블럼으로, 응원가로 감각의 구별 짓기를 통해 미적 욕망을 드러낸다. 이러한 감각의 구별 짓기는 역사적 유산으로 축적되면서 한 도시의 문화 정체성을 형성한다.

K리그 FC서울 서포터즈
사진 : 이동연

스포츠, 예술로 승화하다

동시대 문화와 예술의 장에서 스포츠를 소재로 만든 예술 텍스트는 무수히 많다. 스포츠는 문학, 미술, 연극, 무용,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과 같은 순수 및 대중예술의 다양한 양식으로 재현된다. 아스널의 오랜 팬이기도 한 소설가 닉 혼비(Nick Hornby)의 자전적 소설 『피버 피치』는 1988~1989시즌 아스널의 극적인 우승의 순간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가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에 등장하는 인아와 덕훈은 스페인 라리가 FC바르셀로나를 함께 좋아하는 사이로 축구 경기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전술과 에피소드가 두 사람의 연애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내셔널 풋볼 박물관은 1953년에 영국축구협회가 출범 90주년을 기념하여 ‘영국예술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축구와 예술’을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다. ‘축구는 예술이다’라는 주제의 전시회는 당시에 100점이 넘은 작품들이 갤러리에 전시되었고, 이후에 내셔널 복권기금위원회가 축구경기와 관련한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지원하여 대표적인 축구 미술 전시관을 만들었다.

제42회 서울연극제 출품작인 〈다른 여름〉은 대한공고라는 가상의 핸드볼팀을 소재로 방화범을 찾는 독특한 스토리의 스포츠심리극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현대무용 안무가인 김모든, 박명훈, 안지형은 각각 펜싱, 수영, 야구 종목을 소재로 창작무용을 만들었다. 김모든의 〈PISTE〉는 펜싱의 다양한 동작을 모티브로 삼아 사건 안에 대처하는 몸의 반응들을 형상화했다. 박명훈의〈wavewavewave〉는 ‘차세대 열전 2019’에서 발표한 작품으로 수영장을 무대로 삼아 낯선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방인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안치형의 〈Hit & Run〉도 야구의 공격과 수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동작들을 무대에서 재현했다.

스포츠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예술작품은 아마도 영화일 것이다. 스포츠 영화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고, 이탈리아 팔레르모, 중국 베이징, 한국 대구 등 전 세계 많은 도시에서 스포츠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스포츠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종목이 축구이다. 〈베른의 기적〉, 〈그들만의 월드컵〉, 〈슈팅 라이크 베컴〉, 〈피버 피치〉 등 수백 편의 축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었다.〈메이저리그〉, 〈그들만의 리그〉, 〈꿈의 구장〉, 〈슈퍼스타 감사용〉, 〈YMCA 야구단〉 등 야구 게임 역시 많이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밖에 〈코치 카터〉, 〈스팅 스타스〉, 〈리바운드〉와 같은 농구영화,〈청춘보고서〉, 〈할머니 배구단〉,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불의 전차〉, 〈1947 보스턴〉 등 다양한 종목의 감동적인 스포츠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갔다. 스포츠를 재현한 예술작품들은 스포츠를 단지 소재주의로 삼은 경우도 있지만, 스포츠의 본질, 욕망, 감각의 특이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스포츠의 감동의 서사는 예술의 미적 서사와 많이 닮았다.

〈다른 여름〉 포스터

스포츠와 패션, ‘스트리트 아트’의 콜라보

스포츠와 관련된 상품들은 이제 선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싶은 스포츠 팬과 일반인을 위한 것이 되었다. 축구, 야구, 농구 등 인기 스포츠 구단의 유니폼은 과거에는 몇몇 소수의 팬만 입고 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고, 이러한 패션 현상을 ‘스포츠 저지룩( sports jersey look)’이라 부른다. 한국에서도 축구와 야구 경기가 있는 날뿐 아니라 평소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과 번호가 찍힌 유니폼을 입고 다닌다.

이러한 스포츠용품 브랜드를 대중적으로 키운 두 경쟁 회사가 바로 나이키와 아디다스이다. 이 두 기업은 전 세계 유명 축구 구단과 스포츠 스타를 양분해서 후원하고 있다. 2022년 기준 나이키의 총매출액은 64.7조 원, 아디다스는 31.6조 원이다. 이 두 스포츠 브랜드 기업은 전 세계 패션 브랜드 기업 중에서도 상위권에 있을 정도로 패션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엄브로, 언더 아머, 퓨마, 리복, 아식스 등 스포츠 브랜드 기업은 청년 세대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하면서 거리예술, 이른바 ‘스트리트 아트’의 문화적 아이콘을 생산했다. 아디다스 3선 운동복 세트는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길거리 패션을 주도했고, 1984년에 처음 나와 지금까지 34개의 브랜드로 출시된 나이키 에어조던 신발은 청년 세대의 가장 힙한 패션 브랜드가 되었다. 요즘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선수 유니폼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단의 트레이닝 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포츠용품들은 고가의 상품형식으로 전환하여 이제 동시대 팝아트 거리예술의 전위에 서 있다.

스포츠와 예술, 같지만 다른

스포츠와 예술은 대중의 감각을 일깨워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같지만, 문화와 자본 논리의 관점에서는 다른 차원에 있다. 동시대 스포츠는 예술과 다르게 고도로 산업화하고,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올림픽을 포함해 메가 스포츠 이벤트 역시 거대한 자본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2022년 카타르 올림픽에서 FIFA가 벌어들인 수익은 총 10조 원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2025~2026시즌부터 4시즌 동안 중계권료로 스카이스포츠 등으로부터 총 67억 파운드, 한화로 약 11조1322억 원을 받는다. 호날두, 메시, 오타니, 손흥민 등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은 매년 거액의 연봉뿐 아니라 엄청난 지적재산권(IP) 수익을 올리며 걸어 다니는 1인 기업이 되었다. 스포츠는 자본의 논리에 있어 예술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생산한다.

그에 반해 예술은 자본과 시장의 지배 논리로부터 스포츠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최근 돈이 지배하는 프리미어리그를 보면서 축구계의 원로들은 낭만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열정이 돈을 이길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VAR 판독처럼 경기결과를 인간이 아닌 기계가 결정하는 것을 두고도 낭만의 시대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예술도 물론 자본의 영향을 받지만 그래도 인간의 낭만을 지키려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예술이 아닐까 한다. 우리 시대 스포츠와 예술이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도 ‘낭만의 감정’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는 예술의 마음과 감정을 더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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