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정 Mijung Shin

애도와 복원의 미술:
망각의 이미지와 은폐된 이름으로부터

Artist

신미정/ 1983년 포항 출생. 추계예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프랑스 디종 보자르(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형예술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졸업했다. 한국방송통신위원회 영상 공모전 대상 수상(2018), 부산 국제 비디오아트 페스티벌 경쟁작 선정 및 SeMA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젝트(2020)에 선정됐으며, 제19회 포항시립미술관 장두건미술상(2023)을 수상한 바 있다. 2014년 문래동 폐공장을 시작으로 문래예술공장, 스페이스나인, SeMA벙커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2024년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연 《세 개의 목소리, 드러나는 세계》가 있다. 이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아트선재센터, 온수공간, 토탈미술관, Wess, 인사미술공간 및 대만 크로스갤러리, 파리 이도향갤러리 등 국내외 미술기관에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사진:박홍순


애도와 복원의 미술: 망각의 이미지와 은폐된 이름으로부터
오정은
 미술비평

〈율도(栗島)〉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9분 41초 2020
제19회 장두건 미술상 수상작가전 《세 개의 목소리, 드러나는 세계》 포항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사진: 송광찬

1. 이름

민중들은 항상 사라질 위험에 노출된다. 이 끝없는 위협의 상태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민중들이 사라질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노출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중들이 나타나 형상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는?1

신미정은 역사의 기울어진 틈을 헤집고 들어가, 무명의 잔여로 묻혀있던 존재를 새로 꺼내는 작업을 한다. 〈식민지/추억〉(2015)에서부터 〈타이완, 타향 그리고 타자〉(2023) 까지 일곱 편의 영상작업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국가가 유기한 개인의 기록이자, 제도가 배제한 삶의 처연함이었다. 신미정의 아카이브는 인터뷰 대상의 자전적 진술 및 일기와 같은 사적 자료를 통해 침묵을 외현화함으로써 구성된다. 이렇게 해서 발화되는 것은 긴 세월 배제되었던 음성으로, ‘실향민’과 ‘이주민’처럼 집단적 범주로 눌러졌던 것과는 달리 개개의 이름을 갖는다. 타무라 요시코, 권문국, 이춘희, 양순택, 하기모토 미치유키, 이일용, 김성정.2 일곱 편 작업의 각 주인공인 이들은 그간 어디에도 편입되지 않은 서사를 주체의 실명을 갖고 발언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에는 이미지가 있다. 빛바랜 사진과 잉크가 번진 글자의 수첩뿐 아니라 새로 놓인 도로와 파도치는 연안의 물살까지. 프레임 안에 때로는 멈추고(사진으로), 때로는 움직이며(영상으로), 내레이션과 함께 상영된다. 화자의 증언을 따라 서사의 보조가 되는 한편, 도판으로 대응하는 역할을 넘어 언어 바깥으로 수시로 미끄러진다. 이는 필름의 순서에 따라 흐르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다 불규칙하게 몽타주되며, 경계 지을 수 없는 정동의 파토스를 동반한 채 페이드 아웃되는 것이다. 관객은 신미정이 소환한 장면과 시간의 단층을 따라 고통의 응축된 밑면을 감지한다.

〈타이완, 타향 그리고 타자〉(스틸)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6분 15초 2023

〈자신의 경로〉(스틸)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1분 20초 2016

역사는 편파적이고 풍경은 비정하다. 식민과 분단, 산업화의 전개 속에 개인의 비애로 눌러 담아야 했던 바들은 선명한 정처를 갖기 어렵다. 카메라는 지나간 사건을 촬영할 수 없고, 문제가 있었을 법한 장소를 따라 최대한의 탐색을 할 뿐이다. 이에 의지하는 것은 기억이 머무르는 자리인 토포스다. 인민군과 한국군, 두 체제를 거친 권문국의 시간을 좇아가는 〈자신의 경로〉(2016)에서 화면은 오늘날 군사시설과 접경지 자연을 담아 의식의 원형을 되짚는다. 민족종교 교의를 따라 남으로 이주한 이춘희의 생을 담은〈신도(信道)〉(2017)에서는, 그녀가 도착한 기차역과 생계를 위해 꾸려갔던 공장 부지의 현재 모습을 배치함으로써 지난 정서적 공간을 붙든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기념비적인 장소가 아니며 반복적으로 보아온 광경이나 평범한 경관에 가깝다. 그러나 이 이미지야말로 농축된 상처이자 가라앉은 폐허다. 이를 통해 관객은 사라진 어제와 살아남은 오늘 사이에서 좌초되고 떠도는 이를 바라보게 된다.

2. 망령
히토 슈타이얼은 증언이 세계를 단순히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정치적 차원에서 세계를 복구하는 행위라고 본다. 또한 증언을 인식하는 행위를 타자의 경험에 자신을 여는 시도로 이해하며, 이를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타인 몸속의 고통을 느끼는 과제’를 향해 나아가는 걸음으로 여긴다. 한나 아렌트 역시 증언이 다루는 실체적 진실을 사회의 조건으로 규정한다.3 신미정이 작업 전반에 사용해 온 증언의 방식도 같은 맥락에 있다. 작가는 실존하는 개인의 언어를 청취·수집하고, 1인칭 화자의 독백으로 구성해 약자의 현존을 강화해 왔다. 지워지고 밀려났던 이들에게 말을 돌려줌으로써, 그들의 영역을 복원한 것이다.

4·3사건과 연안 개발로 고향집과 일터를 잃은 해녀 양순택이 읊는 〈출향(出鄕)〉(2018), 한강개발계획으로 밤섬이 폭파되며 고향에서 밀려난 조선공 이일용이 읽는〈율도(栗島)〉(2020)는 그들의 근원을 애타게 만지는 소리다. 그러나 그런 디아스포라의 음성은 당사자의 육성이든 제3자의 녹음이든 무관하게, 나이 들었으며 슬퍼 보인다. 심지어 어떤 목소리는 이미 고인이 된 이의 것이다. 〈타이완, 타향 그리고 타자〉에 등장하는 1세대 화교 김성정은 자신이 사망했음을 고지하며 음성을 낸다. 그의 아들이 대리한 낭독은 ‘나’의 주어를 갖는 혼령의 것이기에 기묘하고, 투사된 유전적 기억 속에서 아득하게 젖어든다. 영상은 김성정의 삶을 복원하면서도, 뚜렷한 고향의 형상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대신 무덤가를 맴도는 시선으로 그의 자취를 보여준다. 인물의 죽음을 암시하는 화면과 병치되는 그 감각적 충돌은 신미정의 작업이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에 제한되지 않고, 그 한계를 이야기의 균열과 미학적 긴장으로 전환해냈음을 방증한다. 해당 작업을 비평한 이익주는 ‘역사라는 기억의 질서 속에 진입하지 못하고, 그 질서의 주변부를 배회하는 유령 같은 존재가 디아스포라’라며,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비존재의 존재로서 디아스포라의 삶이 이 영상 작업에서 유령으로서 숨겨져 있다’고 해석한 바 있다.4 점차 그 ‘유령’은 재현의 난제이자 애도의 무게감과 함께 작가의 작업에 깊숙하게 침투한다.

〈율도(栗島)〉(스틸)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9분 41초 2020

신미정은 〈타이완, 타향 그리고 타자〉를 발표한 뒤, 신작 〈펑후섬〉(2024) 제작에 착수한다. 〈펑후섬〉은 앞선 일곱 편의 1인칭 서사와 달리, 개별 인물의 이름이나 대사가 호출되지 않는다. 망자의 서사를 다루는 관찰자로서 작가가 감내한 윤리적 고민과 새로운 언어적 탐색이 짐작되는 지점이다.5 펑후섬은 1949년 중국 내전을 피해 피난 온 교사와 학생 다수가 대만 군부에 의해 목숨을 잃은 비극의 장소지만, 지금은 문화청소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카메라는 섬의 빈 땅과 낡은 건조물을 비추며 말소된 흔적을 더듬는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는 악상(樂想)의 사운드와 네거티브 필름이 기술적으로 채워진다. 여기서 ‘증언’은 바래고 흩어진 잔영으로 부유한다. 관객은 이 말 없는 이미지 속에서 망자의 유언을 독해해야 한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맑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6

3. 도둑

아카이브는 담론에 가려져 있던 것들을 엿볼 수 있는 곳, 규범적인 행동이나 정형화된 행동이 파기되면서 다양한 행동들, 의외의 행동들, 그야말로 틀을 벗어나는 행동들이 출현하는 곳인 만큼, 아카이브 작업자는 지배와 억압이라는 너무나 익숙한 개념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7 용서할 수 없는 일과 용서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아카이브의 언어를 읽어나가면서 낮은 사람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작업자는, 그때껏 들을 수 없었던-경우에 따라서는 차마 듣고 싶지 않았던-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기도 하고, 행복을 추구하고 존엄을 쟁취하는 집요한 선율과 문득 마주치기도 한다.8

신미정은 인물의 서사를 1인칭으로 복원하지만, 작가 자신은 작업에 등장하지 않으며 관찰자적 거리두기를 유지해 왔다. 작업이 취하는 문법의 독자성은 작가가 마주치는 존재의 특성, 수집한 자료의 배치, 카메라 무빙과 같은 시선의 전략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대상화의 우려를 피해 복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공백에 세심하게 틈입해야 한다. 구멍난 망에 현미경처럼 들어간 렌즈는 해석의 다른 경로를 열어둔다.

〈식민지/추억〉의 화자인 타무라 요시코와 〈대전역〉(2020)의 1인칭 서사 주체인 하기모토 미치유키는,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이다. 이들이 느끼는 고향에의 향수는 신미정이 반복적으로 다뤄온 약자의 증언과 같으면서도 다른 위치에 있다. 그들의 기억은 구조적으로 식민지배의 특권적 위치에서 가능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전국의 신민으로, 돌연 고향을 떠나야 했던 설움은 역사와 개인사 사이의 비낀 틈을 건드린다. 두 사람의 회고는 가해와 상실 사이의 중층적 감정에 걸쳐 있으며, 복잡한 윤리적 자리에 놓인다. 신미정은 그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문제의 미묘함을 그대로 노출했다. 특정인의 증언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그들의 삶이 스며든 장소를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신미정은 주목한 화자들의 이야기 속 지역을 영상 안에 담아왔다. 〈식민지/추억〉은 옛 지명 이리였던, 지금의 익산시를 배경으로 한다. 이 작업은 동양척식회사 간부의 딸 타무라 요시코가 기억을 토대로 그린 고향 지도와 오래된 골목 사진 등을 엮어낸다.

〈펑후섬〉(스틸)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1분 2024

〈대전역〉에서는 기관사의 아들로 대전역 인근 철도 관사촌에 살았던 하기모토 미치유키가 만든 관사 모형, 구도심 전경과 기차 사진 등을 배열하며 하나의 서사를 직조해낸다. 이들 장면에선 식민의 참상이 제거되어 있지만, 감정적 진실이 얽힌 다층의 장소로 생동한다. 시간의 아카이브로 변환된 공간은 더 이상 단순한 물리적 배경에 머무르지 않는다. 개인의 기억이 축적될 때, 그 무형의 장소는 실체적 힘을 발휘한다. 신미정이 리서치 영상으로 공개한 〈익산 지역 현장 답사/리서치 과정〉(2015)은 타무라 요시코의 지도를 따라 길을 걷는 익산 주민 오석고의 모습을 비춘다. 타무라와 오석고의 기억이 중첩되는 순간, 지역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공동체의 실증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작가는 여의도 SeMA 벙커에서 열린 개인전 《도시×섬×아카이브》(2021)에서〈율도(栗島)〉를 상영하면서, 밤섬 주민 이일용의 사적 자료뿐 아니라 신문과 뉴스, 위성사진과 공문서를 함께 아카이브로 전시하며 ‘지역’의 실증을 묻는 자신의 방법론을 계속 강화하였다.

이쯤에서 신미정의 초기작을 살펴보려 한다. 그중 2014년에 열린 두 번째 개인전 《폐공장 도난사건》을 주목할 것이다. 이 아카이브 전시는 이보다 석 달 앞서 작가가 겪은 사건을 골자로 한다. 신미정은 유학 생활을 마치고 문래동 소재 폐공장에서 첫 개인전을 준비하던 중, 영상 장비 등 물품을 도난당하고 작품을 훼손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작가는 도둑을 추적하기 위해 그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 더미를 수집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전의 폐공장 노동자가 살림살이를 놓고 떠난 흔적도 발견하게 된다. 노동자는 당시 문래동에 드리웠던 젠트리피케이션의 정황 속에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이 사건은 신미정이 개인사로 시작해 사회적 현안으로 작업의 관심을 옮기는 계기가 된다. 작가는 구조적 ‘도둑’에 의해 박탈된 약자의 기억과 장소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폐공장 도난사건》 문래동 폐공장 전시 전경 2014

제19회 장두건 미술상 수상작가 신미정 《세 개의 목소리, 드러나는 세계》 포항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사진: 송광찬

작가가 체화한 피탈의 개념은,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표지한다. 드러나는 증언에는 물론, 여전한 결손이 따르지만, 이점을 수용할 때 의미는 문을 열고 다가온다. 신미정의 작업은 끝내 말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말하는 자의 자리를 묻고, 기록할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을 기록하려는 불가능한 시도로 성립된다. 그것은 축적된 아카이브이자 허물어가는 아카이브다. 단지 과거를 저장하는 보관소가 아니라, 응시하는 현재가 계속해서 그 울림을 반추하는 유동의 토포스다. 사라진 이들의 목소리가 되살아나는 공간이며, 동시에 그 되살림 자체가 완결되지 않은 채로 우리에게 남겨지는 과제다. 아카이브는 불완전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성 속에서, 우리는 역사가 포착하지 못한 삶, 국가가 남기지 않은 기록, 망각이 삼켜버린 얼굴들을 응시하게 된다. 신미정은 그 모든 사라짐에 대한 애도와 복원의 시도를, 예술이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진실되게 수행하고 있다.

* 본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25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 기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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