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브랜드에
프리미엄을 더하다.
한여훈 | 아트 컨설팅사 (주)라이커스 이사
Art Premium Effect
21세기에 들어서며 경제의 주력이 정보에서 이미지로 넘어가고 국가 경쟁력은 상상력과 창조성에 의해 결정되기 시작했다. 정보 사회의 소멸에 기업은 이미지와 스토리가 주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주했다. 제품 속성을 넘어 이미지가, 실제보다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미지의 생산, 결합, 유통이 경제의 중심이 되고 여기에 감성적 스토리가 더해질 때마다 부가가치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소비자가 먼저 그것을 원했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고 미학적 소비가 증가하면서 다양한 감각 추구가 중요한 구매 동기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고급문화 수요가 폭발하며 이와 관련한 콘텐츠가 산업으로 흡수되고 문화예술시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여기에 비쌀수록 잘 팔리는 하이엔드 마켓(High-End Market)과 초저가 가성비 제품을 찾는 로엔드 마켓(Low-End Market)의 양극화는 프리미엄 시장의 가파른 상승세를 가져왔다. 기업은 더이상 기능이나 실용적 속성만으로는 경쟁할 수 없음을 빠르게 깨닫고, 자사의 제품과 브랜드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아트가 지닌 고유한 속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원하는 것은 확실히 비싼 가격과 충성 고객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새롭고 적극적이며 더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해졌다.
Paris+ par Art Basel 2022에서 선보인 루이 비통의 《LV Dream》 전시 공간
예술가들에 의해 재해석된 아트 인퓨전 제품 제공 : 루이비통 코리아
루이 비통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예술가와 협업해 왔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고객층을 벗어나 아시아를 중심으로 신규 고객 발굴이 필요했던 루이 비통은 현대미술의 화려한 색을 입고 리브랜딩에 성공했다.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 쿠사마 야요이 (Kusama Yayoi) 등은 갈색 모노그램 문양의 고전적 디자인에 감각적인 패턴을 입혔고, 보수적인 브랜드 이미지는 동시대 아이콘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이들 아이코닉한 컬렉션은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 전 세계의 루이 비통 팝업 스토어에서 출시·판매되며, 이른바 ‘오픈런’의 시작을 알렸다. 2001년 스테판 스프라우스(Stephen Sprouse)의 ‘모노그램 그라피티(Monogram Grafiti)’ 라인은 루이 비통을 대표하는 협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30% 이상 높은 가격과 VIP만을 대상으로 판매를 제한하는 배타성 전략에도 불구하고 출시와 동시에 모든 제품이 품절되었다. 이와 같은 인기에 힘입어, 루이 비통은 2009년에도 스테판 스프라우스 콜렉션을 선보였고 다시 한번 아트를 통한 프리미엄 효과를 확실히 입증했다. 제1회 아트바젤 파리 플러스(Paris+ par Art Basel)에서 루이 비통은 제프 쿤스(Jeff Koons)의 ‘마스터스 컬렉션(Masters Collection)2’을 비롯해, 스테판 스프라우스의 스케이트 보드,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여행용 트렁크 등 예술가에 의해 재해석된 아트 인퓨전 제품 43점을 소개했다. 전시된 제품은 VVIP에게만 구매권이 주어졌고, ‘아티카퓌신(Artcapucines)3’ 라인은 첫날 모두 판매됐다.
1 롤프 옌센 『미래 경영의 지배자들』 리드리드출판 2017
2 제프 쿤스는 ‘게이징 볼(Gazing Ball )’ 시리즈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마르스, 비너스와 큐피드〉, 프랑소아 부셰의〈옆드려 있는 소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호랑이 사냥〉, 빈센트 반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 등 고전 걸작들을 오마주했다. 그리고 이들 명화는 루이 비통과의 협업을 통해 시그너처 라인인 ‘스피디’, ‘키폴’ 그리고 ‘네버풀’ 백으로 재등장하였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진행한 ‘세리프 TV’의 미국시장 공식 런칭쇼
제공 : 삼성전자
2006년 LG의 ‘아트 디오스(Art Dios)’는 동일 제품군에서 10~15% 이상, 최대 30%까지 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높은 판매율을 보이며 비싼 가격에도 생활가전 시장의 60%를 점유했다. 20여 년 지속된 LG의 아트 마케팅은 점차 자사의 기술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갔다. 올레드 기술력을 예술 분야에 접목하는 올레드 아트 프로젝트 (OLED ART Project)가 대표적 예이다. 올레드 TV는 디지털 아트 캔버스가 되어 데미안 허스 (Demian Hirst),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배리 엑스 볼(Barry X Ball)과 같은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담았고 이는 가전 박람회가 아닌 글로벌 아트페어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한편 (주)LG,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LG의 3개 회사가 함께하는 ‘LG구겐하임 글로벌 파트너십’은 글로벌 마켓에서 LG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특히 뉴욕 젊은예술후원자협회(YCC: Young Collector’s Council)가 매년 구겐하임에서 여는 YCC 파티를 후원하며 파티장 곳곳에 투명 OLED 등 최신 디스플레이 기술을 선보였다. 구겐하임을 찾은 사람들은 미디어아트가 구현한 올레드 TV의 섬세한 화질 표현, 압도적 명암비(比)와 블랙이 주는 몰입감을 다채롭게 즐겼다. 그리고 이를 통해 LG는 단순히 디스플레이의 기능이 아닌 스스로 예술의 일부가 된 올레드 TV만의 혁신적 가치를 전 세계에 알렸다.
2015년 삼성전자는 가구와 인테리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차원의 세리프(The Serif) TV를 출시하였다.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 로낭 & 에르완 부훌렉(Ronan & Erwan Bouroullec) 형제와의 협업으로 완성된 세리프 TV는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심미성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세리프 TV를 영국 2015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하였고, 런던 패션 위크, 브뤼셀 디자인 셉템버(Brussels Design September), 덴마크 차트 아트페어(Chart Art Fair), 파리 디자인 위크와 메종 오브제(Maison & Objet) 등을 거치며 유럽 주요 아트 & 디자인 행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2016년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세리프 TV의 미국 시장 공식 런칭을 알렸다. 이후 세리프 TV는 MoMA 디자인 스토어에서 판매되며, 모마 87년 역사상 최초로 판매되는 상업용 TV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세리프 TV의 유통채널을 기존 제품과 크게 차별화하였다. 일반적인 가전 유통망을 통해 공급하지 않고, 럭셔리 프리미엄 가구 브랜드 비트라(Vitra)를 시작으로 프랑스의 퐁피두센터와 봉마르셰 백화점, 뉴욕의 MoMA 스토어와 MoMA 온라인숍, 쿠퍼 휴잇 국립 디자인 박물관과 주요 고급 백화점으로만 판매처를 한정하며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포지셔닝을 더욱 강화하였다. 나아가 삼성전자는 2017년부터 라이프 스타일 TV ‘더 프레임(The Frame)’을 통해 벨베데레(The Belvedere), 테이트(Tate), 프라도(Prado)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 소장품 2,100개 이상을 감상할 수 있는 전용 구독 서비스 ‘아트 스토어’를 제공하고 있다.
BMW그룹은 자동차가 이동 수단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아트를 매개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75년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이자 모빌의 창시자인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로부터 시작된 아트카 프로젝트는 앤디 워홀(Andy Warhol),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등 현대미술 거장들과 함께 지금까지 19종을 완성했다. 이 가운데 제프 쿤스 아트카는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제프 쿤스는 경주용 차량인 2010년식 BMW M3 GT2에 힘과 움직임, 빛의 이미지를 그래픽으로 입혀 레이스카 특유의 역동성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정지한 상태에서도 마치 달리는 것 같은 착시를 전했다. BMW는 아트가 지닌 고유한 가치를 자사의 뛰어난 기술과 성능으로 끌어들여 제품에 프리미엄 속성을 부여하였고, 이를 통해 기술과 혁신, 현대미술이 서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콜라보레이션을 보여준다. 한편 아트카 전시뿐만 아니라 신제품 홍보 역시, 구겐하임, 루브르, 휘트니 뮤지엄과 바젤, 프리즈 아트페어 등 글로벌 아트 플랫폼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프로모션은 소비자가 자동차가 아닌 예술품을 소유한다는 의미있는 착각을 불러왔고 단숨에 BMW의 모든 속성을 아트 프레임 안으로 모으며, 자사의 최첨단 기술력이 예술과 같은 절대적 가치를 지녔음을 보여주었다.
3 ‘카퓌신(Capucines )’은 뇌브 데 카퓌신 거리(Rue Nueve -des -Capucines )에 오픈한 루이 비통 첫 매장에서 그 이름을 따 만들어진 제품 라인이다. 동시대 가장 뛰어난 예술가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아티카퓌신은 루이 비통만의 전통과 장인 정신에 예술의 창의성과 혁신을 더한 대표적인 아트 인퓨전 제품이며, 2019년을 시작으로 매해 론칭되고 있다
2022년 6월 미국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 외관의 LG 구겐하임 글로벌 파트너십 맵핑 광고 제공 : (주 )LG
BMW 아트카 프로젝트 중 제프쿤스 아트카 제공 : BMW
아모레퍼시픽 그룹의 대표 브랜드 설화수는 ‘예술과 헤리티지로 빚어내는 아름다움의 세계’라는 비전을 전 세계와 공유하기 위해 예술계와의 협업을 지속해 왔다. 지난 202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설화수 제품에 과거 유산의 현대적인 계승이라는 브랜드의 정신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미술에 관심 가진 여성으로 이뤄진 ‘우먼 앤 크리티컬 아이(Women and the Critical Eye)’, 젊은 후원자들의 모임인 ‘아폴로 서클(Apollo Circle)’ 등과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진행하며, 젊은층은 물론 상위 고객과의 접점을 확실히 늘리고 명실상부한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자리매김을 기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이번 파트너십으로 북미 매출 증가와 함께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리고 2023년 기준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사업 매출은 아시아 지역 부진과 달리 북미의 경우 설화수와 라네즈, 이니스프리 등 주요 브랜드의 전체 매출이 83% 증가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설화수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1년간 파트너십을 체결하자 설화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50% 이상 증가하는 등 MZ세대 인지도가 크게 늘었다.
한편 사용 경험을 기반으로 한 제품 외 패키지에도 아트 프리미엄 효과는 작동한다. 패키지 디자인에 아트 이미지를 입힌 해태제과의 오예스 역시 품질의 변화 없이도 소비자의 폭발적 반응을 불렀다. 국내 대표 미술가의 작품이 오예스 한 상자에 작품 원본의 3분의 1씩 인쇄돼 있어 상자 3개를 잇달아 연결하면 작품 전체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또 작품 이미지를 엽서로 제작해 오예스 상자 속에 넣어서 제공하고, 과자 상자로 ‘아트 박스’라는 대형 설치물을 제작하여 제품과 함께 전시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제작한 다양한 예술작품도 전국 대형마트에서 연간 5,000회 이상 순회 전시를 가졌다. 이는 곧 제품 매출로 이어져 아트 마케팅을 처음 시작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크라운-해태제과의 대형마트 매출은 매년 15% 이상 성장했다. 같은 기간 오예스는 매출 30% 증가라는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
설화수 나이트 앳 더 메트(Sulwhasoo Night at The Met ) 행사장 전경 사진 : Hanna Kim, BFA 제공 :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글로벌 앰버서더 송쟈, 윤여정, 로제
사진 : Hanna Kim, BFA 제공 : 아모레퍼시픽
동원데어리푸드의 덴마크 커피우유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목이 긴 여인〉을 시작으로,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의 〈리비에르 부인상〉,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의 〈이레느 깡 단 베르양의 초상〉,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피리부는 소년〉 등 일반인에게 친숙한 초상화 시리즈를 패키지에 입혔다. 그 결과 패키지 리뉴얼 3개월 만에 기존 매출의 3배를 초과하였고, 출시 5년 만에 매출 150억 원을 넘었다.4
종근당의 펜잘큐는 기존 보수적인 의약품 패키지 디자인에서 과감히 탈피, 국내에 널리 알려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대표 작품인 〈아델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Portrait of Adele Bloch Bauer)〉을 입혔다. 진통제 시장의 주 소비층인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핸드백에서 꺼내는 예술’이라는 컨셉을 설정하고, 제약업계 최초로 아트 마케팅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한번 각인된 제품 효능으로 인해 브랜드를 쉽게 바꾸지 않는 의약품 소비자 특성에도 불구하고, 펜잘큐는 1년 만에 48.9% 매출 성장을 이루었고 오랫동안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였다.5
롯데뮤지엄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해외 거장의 대규모 전시를 기획하고 미술관 밖에서도 전시와 관련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그룹 차원에서 아트 굿즈를 개발하고 각종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다. 한 달간 무려 6만 명을 불러 모은《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2021) 전 당시, 롯데그룹은 엔제리너스, 롯데제과의 나뚜루, 몽쉘과 함께 아트 인퓨전 제품을 출시하며 관람객은 물론 소비자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하였다. 엔제리너스는 한정판 아트 상품으로 머그컵, 텀블러, 에코백, 볼펜 등을 선보였다. 또 나뚜루는 시그니처 3종에, 몽쉘은 ‘몽쉘 크림’, ‘몽쉘 카카오’에 각각 바스키아의 대표 작품 이미지를 입혔다. 그 결과 ‘나뚜루×바스키아’ 3종은 28만 개의 한정 수량으로 출시된 이후, 두 달여 만에 전체 물량의 약 90%가 소진되며 기대를 훨씬 웃도는 판매 추세를 보였고, 10월 기준으로 전년 대비 매출이 30% 이상 증가했다.
《장 미쉘 바스키아 거리,영웅, 예술》展 × 몽쉘 콜라보레이션 제공 : 롯데뮤지엄
우리는 지금까지 아트가 더하는 프리미엄 가치를 확인했다. 아트는 중세시대 이후로부터 줄곧 사회적 계층화와 지위 구분을 나타내는 기준이 되어 왔으며, 어떤 식으로든 따라 하고 싶은 선망(Envy) 요소로 자리 잡아 왔다. 자본주의 틀에서 아트는 부(Wealth), 지성(Intellectuality), 심미성(Esthetics), 여가(Leisure) 등으로 대변되는 하이 콘셉트(High Concept)가 된다. 그리고 시각적 자극으로서 아트는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보는 사람에 따라 주관적 해석이 이루어짐으로써 강한 정서적 애착을 형성한다. 바로 기업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반드시 아트가 필요한 이유이다.
다음 편에서는 프리미엄 효과를 가져오는 아트의 본질적 속성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화해 온 아트의 의미와 역할을 찾다 보면, ‘평범한 대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4 한여훈 「디자인 요소로서 아트 인퓨전에 관한 연구」 『디자인지식저널』 27권 27호 2013 pp. 203~215
5 한여훈 위의 글 pp. 20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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