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키워드 리포트
2025 Recap, 2026 Preview
박가희·전소정·강재현·윤원화
1월 특집기사 ②
1월 특집기사 ① 읽기
아트 키워드 리포트 ①
박가희 제16회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역임. 프로젝트《우리가 모여 산을 이루는 이야기》(2023),
김성환 개인전《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2024)와 동명의 책 등 기획
#현실정치 (2025’s Keyword)
2025년의 미술계는 더 이상 정치적 사건을 ‘다루는’ 위치에 머물지 않았다. 현실정치는 전시의 조건이 되었고, 작품의 해석을 넘어 초청과 취소, 발언과 침묵을 결정하는 실질적 힘으로 작동했다. 지속된 전쟁과 분쟁, 특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일부 작가의 전시가 취소되거나, 정치적 입장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작업과 태도의 불일치가 공론화되는 장면들이 연이어 전개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미술이 현실정치 앞에서 어떤 위치에 놓이는지를 드러내는 구조적 징후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중요한 것은 미술이 정치의 도구로 흡수되는가, 혹은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지켜야 할 가치와 태도를 중심에 둘 수 있는가이다. 현실정치의 압도적인 존재감 속에서, 미술은 반응의 속도가 아니라 판단의 기준을 다시 묻고 있다.

《성장교본 (The Growing Manual)》은 11종의 식물을 서울시립미술관 환경에서 재배하는 실험을 통해
주어진 조건에 적응한 형태와 생존의 문제를 시각화한다.
전시는 식물을 비유적 도구로 삼아 작가 공동체의 성장과 지속가능한 자생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성장교본》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시 전경 2014 사진: 홍철기
#창조적 회복탄력성 (2026’s Keyword)
창조적 회복탄력성(creative resilience)은 위기 이후의 낙관이나 예술의 치유적 기능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기보다, 현실정치와 제도적 압박, 경제적 불안 속에서도 각자의 언어와 실천을 지속하고 변형시키는 능력에 대한 신뢰에 가깝다. 지난 몇 년간 미술계는 팬데믹 이후의 구조적 취약성, 전쟁과 분쟁, 검열과 자기검열, 시장의 급격한 변동을 동시에 경험해 왔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창작은 더 이상 자율적인 행위로 전제되기 어려워졌고, 많은 작가와 기획자들은 급격하게 위축되고 변형된 환경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복력’은 버틴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작업을 둘러싼 조건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쉽게 소진되지 않는 리듬과 작동 가능한 형식을 새롭게 조직하는 능력에 가깝다. 거대한 선언이나 급진적인 제스처보다, 지속하는 힘이 중요해질 것이다. 미술의 본질적 힘은 언제나 가장 취약한 조건에서 드러났다. 창조적 회복탄력성은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이며, 다시 한 번 예술을 믿어보자는 조심스러운 제안이다. 2026년의 미술은 어쩌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계속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묻는 해가 될 것이다.
#상황적 지식 (2026’s Keyword)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은 보편적 담론이나 글로벌 이슈를 빠르게 호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이 놓인 구체적인 조건(지역, 제도, 언어, 관계, 역사) 안에서 생성되는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전시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세계로부터의 후퇴나 로컬리즘의 강화라기보다,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의 재조정에 가깝다. 동일한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라 하더라도, 그것을 경험하고 해석하는 위치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며, 상황적 지식은 바로 그 차이를 잊지 않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미술의 실천과 역사를 하나의 키워드나 방향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맥락에서 출발한 실천들이 나란히 존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 특정한 중심이나 기준을 설정하기보다, 각자의 맥락에서 형성된 언어와 방법들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구조를 전제하는 것이다. 미술계가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황적 지식에 기반한 실천들이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고, 서로 다른 속도와 밀도로 공존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해질 것이다.

전소정 작가, 한예종 교수
《올해의 작가상 2023》(국립현대미술관, 2023), 《제11회 광주비엔날레》(2016) 외 다수 전시 참여.
제18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제14회 송은미술대상 등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오사카국립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 작품 소장
#분절된 세계 (2025’s Keyword)
2025년 한국미술의 창작 환경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단어는 ‘분절된 세계’일 것이다. 정치적 긴장, 기술적 가속, 생태적 위기, 사회적 정동 변화가 서로 다른 속도로 작동하며 하나의 세계가 단일한 리듬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조건이 분명해졌다. 정치와 제도가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동안 기술은 과도하게 빠른 주기로 갱신되었고, 생태는 붕괴에 가까운 변화를 보이며 시간의 감각 자체가 일정한 방향성을 잃었다. 이러한 속도 차이는 세계가 하나로 묶여 있다는 전제를 흔들었고, 현실은 더 이상 연속적인 장면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창작에서는 역사적 회귀와 미래적 상상이 동시에 호출되거나, 기술적 이미지와 생태적 서사가 한 장면 안에서 충돌하는 구성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디지털 환경이 만들어내는 압축된 시간과 기후 변화가 야기하는 지연된 시간은 서로 다른 세계를 병렬적으로 제시했고, 이러한 균열은 새로운 감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2025년은 세계가 하나의 장면으로 포착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선명하게 드러낸 해였다.

2024년 12월 13일에 촬영한 계엄 후 거리 시위 모습. 주용성 〈빛나는 마음이 모여든 풍경〉
제공: 작가
#공존의 방식들 (2026’s Keyword)
2026년의 한국미술은 공존을 둘러싼 조건들이 재구성되는 국면으로 점차 진입하고 있다. 생태 위기는 더 이상 추상적 담론에 머물지 않고 삶의 조건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요소로 작동하며, 재난의 분포가 사회적·경제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인식은 공존의 문제가 자연의 영역을 넘어 정치의 문제로 읽히게 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예술은 생태적 감수성을 사회적 불평등, 지역성, 생존권과 얽힌 구조로 해석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공존의 재구성’은 거대한 이념적 선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도시의 경계, 인프라의 작동 방식, 공동체의 돌봄 구조, 물질의 순환 방식 등 일상적이지만 보이지 않던 조건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미세한 감각의 이동에 가깝다. 2026년에는 이러한작은 재구성들이 오히려 창작의 중심 질문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기술과 생태, 인간과 비인간, 지역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다시 짜는 과정에서 예술은 공존이 어떤 선택과 배제를 통해 유지되는지를 드러내는 매개로 작동한다. 공존을 감각하는 일은 결국, 정치적 재구성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지를 다시 묻게 한다.
#지연된 미래와 비선형성 (2026’s Keyword)
기술의 가속은 미래를 앞당기지 못했고, 기후·전쟁·경제 위기는 오히려 미래의 도래를 지연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2026년 한국 미술은 이러한 ‘지연된 미래’를 전제로 한 시간 감각의 변화가 점차 뚜렷해지는 국면에 놓여 있다. 미래가 더 이상 직선적 진보나 낙관적 전망으로 상상되기 어려워지면서, 단절·회귀·정지·중첩과 같은 비선형적 시간 구조는 하나의 사유의 조건으로 감지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술적 시간과 생태적 시간의 간극은 더욱 분명하게 인식되며, 시간은 중립적인 배경이 아니라 작업의 구성 방식을 좌우하는 요소로 다뤄진다. 서로 다른 시간대가 병렬적으로 제시되거나, 과거의 흔적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가 동시에 호출되는 방식은 특정한 방법론이라기보다 동시대적 조건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2026년의 한국 미술에서 시간에 대한 실험은 불확실성을 해소하기보다 유지한 채, 예술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강재현 사비나미술관 학예실장
원서갤러리 큐레이터, 갤러리현대에서 어시스턴트 디렉터 역임.
강홍구, 안창홍, 홍순명 작가연구 진행. 2025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비인간 중심의 생태주의 (2025’s Keyword)
기후위기와 재난 상황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해를 거듭할수록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자연, 생명, 환경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고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유의 변화는 전시 환경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며, 생태주의와 환경 문제를 다루는 최근 전시들은 단순한 현상의 재현이나 시각적 재해석을 넘어 현대 문명이 직면한 총체적 전환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자연·기술이 서로 맞물려 관계를 구성하고 상호 교감을 도모하는 주제들은 결국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질문을 내포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아트선재센터의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는 폐허가 된 전시장을 연상시키는 충격적인 공간을 통해 일종의종말론적 미래를 제시하며 포스트휴먼 시대의 존재 조건을 상징적으로 가시화했다.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이 설치는 인간 이외의 존재가 독자적 행위자로 등장하는 세계를 암시하며, 곳곳에 비인간적 흔적과 기호를 남긴다. 사비나미술관의 《생태의 집–한옥》은 한옥이 지닌 자연 순환 구조, 기후 대응력, 비인간 친화적 공간 구성 방식을 오늘의 생태 담론과 연결시키며, 전통 건축이 지닌 원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 주거의 비전을 제안하였다. 이 두 전시는 각각 상반된 분위기를 생성한다. 하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호기심을 촉발시키고, 다른 하나는 자연 스스로가 회복과 치유의 주체가 되는 비인간 행위자의 관점을 조명한다. 초연결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의 실험과 활용이 확산되는 오늘의 예술 환경에서 창작자들은 생명과 비생명, 기계와 환경이 뒤얽힌 관계망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재구성, 생명의 감각적 회복, 인류세 이후의 존재 방식, 새로운 가상 생태계의 구축 등에 관한 질문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이처럼 행위자로서의 ‘비인간 중심 생태주의’는 2025년 전시 담론의 핵심 키워드로서 강하게 작동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기술·자연·생명의 경계가 재편되는 미래에도 지속될 주요한 흐름으로 보인다.

《생태의 집–한옥》 사비나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제공: 사비나미술관
#인공지능 (2026’s Keyword)
AI는 급속도로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부터 질문에 대한 추론을 제기하고, 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결과물을 도출하는 등 창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미지, 영상, 사운드 생성이 가능한 AI 플랫폼의 기술은 더 이상 창작의 보조적 과정에 머물지 않는다. AI를 사용하는 작가들은 이제 AI를 단순한 실험적 보조도구가 아니라 창작 과정의 협력자이자 개념을 생성하는 조력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간과 기계의 공동 창작은 창작 주체를 인간–알고리즘–데이터로 확장시키며, 작품을 고정된 결과물이 아닌 생성되고 변형 가능한 존재로 재정의한다. 그에 따라 관람 경험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재편되며, 전시 환경은 보다 역동적이고 관계적인 구조로 변화할 것이다. 나아가 AI가 구현하는 시공간의 압축과 확장, 비인간적 시점, 데이터 기반의 감각적 전환은 관람자에게 생경하면서도 확장된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AI의 개념을 단순한 기술로서가 아니라, 세계 이해를 넓히는 감각적, 사유적 틀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25년 11월, 이재명 정부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2026년도 예산안에 AI 분야 예산 10조 1000억 원을 편성해 전년 대비 3배 이상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2026년 1월 22일 시행되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은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AI 초강국’을 지향하는 전환기에 진입했음을 알린다. 이러한 정책적 흐름은 향후 문화예술계가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예고한다.
이러한 환경은 다양한 전시 형태로 기획되어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동시에,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기술 권력의 구조, 데이터 기반 창작의 윤리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장이 된다. 이에 따라 윤리적 문제, 기술적 취약성, 과도한 의존성 등 AI를 둘러싼 문제의식에 대한 논의 역시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업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유의미한 문화적, 철학적 담론을 생산하는 초석이 될 것이며, 기술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예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K-컬처 이후의 한국미술 (2026’s Keyword)
민화, 전통회화, 한국적 상징과 같은 전통 요소를 현대적 어법으로 재해석하며 한국미술의 뿌리를 다시 검토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한국적 미학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화의 위기 담론을 넘어, 전통적 재료와 한국적 자연관, 동양 사상과 같은 개념이 동시대적 감각에 맞게 진화하며 개인의 정체성뿐 아니라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특히 ‘케데헌’ 열풍으로 상징되는 글로벌 K-컬처에 대한 높은 관심은 지역성과 국제적 네트워크가 중층적으로 결합되는 환경을 조성하며, 한국 특유의 미감과 정서가 더욱 두드러지는
전시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을 오늘의 담론으로 재위치시키고, 미래적 관점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나아가 동양 사상은 기후위기와 재난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세계관을 제시한다. 한국문화에 뿌리를 둔 전시와 작품들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하나의 주체적 존재이자 동등한 행위자로 바라보는 시각을 강조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촉구한다. 이러한 접근은 동시대 관람자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깊은 공감과 정서적 울림을 이끌어낸다. 회화뿐만 아니라 영상, 미디어아트, 설치, 퍼포먼스 등으로 확장되는 다양한 전시는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예술적 확장성을 높이는 동시에, 비가시적, 비물질적 차원의 세계에 대한 감수성을 자극한다.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지속가능한 가치, 그리고 동양적 세계관에서 강조되는 순환, 상생, 연결성의 의미는 미래 지향적 생태 감각을 일깨우는 방향과 연결된다. 이러한 흐름은 K-컬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폭을 한층 더 넓혀주며, 한국미술이 국제적 담론 속에서 고유성을 기반으로 한 동시대적 미학을 구축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글로벌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국미술은 독자적인 미감과 세계관을 제시하며 미래 지향적 예술 담론을 선도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최수련은 동아시아 문화영향권에서 한글문화로 번역된 문화적 양상을 회화적으로 탐색한다.
최수련 〈우물 밑이 귀신이 사는 곳〉 리넨에 유채 163×130cm 2023 제공: 작가
윤원화 미술비평가, 시각문화 연구자 및 번역가
『껍질 이야기, 또는 미술의 불완전성에 관하여』(미디어버스, 2022),
『그림 창문 거울』(보스토크프레스, 2018),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워크룸프레스, 2016) 등 집필
#가까스로 있음 (2025’s Keyword)
2025년은 계엄 이후의 혼란 속에서 시작된 해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날에도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그냥의 세계”와 “’가까스로’의 세계”를 구별하는데, 전자가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게 흘러가는 자연스럽고 거의 자동적인 안정성을 전제한다면, 후자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간신히 버티는 것들로 이루어진 연약하고 경이로운 세계다.1 계속되는 생태 위기, 정치적 혼란, 기술 혁신 속에서 미술이 보여주는 풍경은 완연하게 더 어둡고 신비해졌다.

《박미미: 핑크》 YPC SPACE 전시 전경 2025 사진: 이의록 제공: YPC
예술의 종교적 기원으로 거슬러 오르면서 현재 상태를 돌파하기 위한 어떤 종류의 미적 기예를 모색하는 시도가 여럿 있었다. 외계 행성 ‘솔라리스’와 일본의 고대 사찰 ‘도다이지’를 중첩한 《임민욱: 하이퍼옐로우》, 합리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대안적 지식으로서 비서구의 영적 전통을 전면화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그리고 《올해의 작가상 2025》에서 관객을 문자 그대로 무덤 속으로 데려가는 임영주의 〈고故 The Late〉 등이 그 예다. 현대의 유토피아적 유산을 아름답게 반짝이는 미래의 폐허로 재구성한 《이불: 1998년 이후》와 전시장 전체를 인류가 사라진 수만 년 후의 황량한 미래 풍경으로 탈바꿈한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도 기억에 남는다. 이 두 전시는 서울의 미술계가 가장 풍요롭고 번성하는 듯이 보이는 키아프-프리즈 기간에 열렸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동시대 미술이 초월을 꾀한다면 목적지는 어디이고, 그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같은 시기에 열린 박미미의 《핑크》는 원본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쇄된 알록달록한 종이 조각들을 바닥에 하나하나 늘어놓는 방식으로 완성된 일종의 무상한 드로잉 작업이다. 미세한 색종이들은 어쩔 수 없이 흐트러지고 때로 관객의 신발에 붙어 알 수 없는 여정을 떠난다.
#연결하고 꿰매기 (2026’s Keyword)
이 표현은 황예지가 사진 웹진『더미덤피이미지』에서 한 말을 빌려온 것이다. 그는 웹진에 새로 합류한 편집인들과의 대화에서 “꿰매는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2 이 말의 일차적 의미는 담론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뜻이다.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리서치와 기록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있다. 프레젠테이션의 기회는 충분히 많았다고, 특히 사진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개관으로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묘하게 구별되는 사진계와 미술계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잘 등록되지 못하는 활동들이 있다. 특히 사진을 “재료처럼 사용”하는 아티스틱 리서치는 종종 사진 매체의 탐구와 구별 불가능하게 뒤섞이면서 대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 몰이해를 넘어 스스로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자란다. 단순히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의 이야기,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이야기, 그들을 휘감고 있는 꿈과 현실을, 또는 그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인간과 사물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정동의 흐름 속에서 파악하기 위한 매체와 포맷을 스스로 구성하려고 할 때, 사진은 편리한 도구이자 재료이자 참조 대상으로 기능한다.
그렇게 사진을 경유하는 이야기들은 다성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꿰매는 작업은 불가피하게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모으는 일이 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진을 다루는 작가들을 모아 확장된 사진의 장을 구성하려는 열의가 있고, 지금 같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불안도 있다. 개인의 이해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공적 활동을 조직하는 일이 조금은 의아하게 여겨지는 202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그럼에도 그런 의심을 잠시 유예한다면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세대의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대화를 시도하고, 전시를 만들고, 본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로컬의 현장들과 연결된다든지, 그런 꿰매기의 “시간이 쌓이면 정말 알 수 없는 세계로 갈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황예지는 말한다. 그것은 꽤 산뜻한 미래의 예감이다.

더미덤피이미지 편집인 강지웅 개인전 《펄》 준비 과정 아카이브 사진: 김상하
#시적 언어 (2026’s Keyword)
시인이자 미술가였던 존 조르노(John Giorno)는 1968년 전화기와 자동응답기를 조합해서 누구나 전화만 걸면 시 낭송을 들을 수 있는 〈다이얼아-포엠(Dial-a-Poem)〉을 선보인 바 있다. 최근 이 프로젝트는 프랑스, 멕시코, 브라질 등에서 그 지역의 언어로 다시 태어났고 2026년에는 M+에서 광둥어와 표준 중국어 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타라 앤 댈보(Tara Anne Dalbow)는 미술관 전시에서 시가 부흥하는 현상을 “언어가 부패”하고 “산문이 그것을 착취하는 시스템에 의해 텅 비워진” 상황에 대한 하나의 반응으로 본다.3 공공 담론이 소수 기업들이 독점하는 플랫폼 알고리즘에 의해 매개되고 더 광범위하게 소비되기 위해 최적화되는 악조건에서, 시의 불투명한 언어는 인간 경험의 복잡성과 양가성을 소화하기 위한 시간을 벌어 준다.
국내에서도 시적 언어는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미술계로 스며들었다. 애써 찾아다니지 않아도 문학가와 미술가가 함께 만든 전시나 글이 종종 시야에 들어왔다.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운영하는 웹진 『비유』는 문학, 미술, 음악, 공연예술 등 여러 분야의 작가, 비평가, 기획자들을 교차시키는데,서로 다른 분과들 간에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일은 공론장의 언어와 내밀한 시적 언어가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이다. 미술 이론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는 주장과 일반 관객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언어를 쓰자는 제안은 상반되는 것 같지만, 각자 염두에 둔 담론의 장이 다를 뿐 그 속에서 매끄럽게 순환할 수 있는 말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여기에는 즉각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을 의심하거나 아예 건너뛰는 산문 독자 특유의 조급함이 있다. 반면 시의 독자는 불투명한 말에 호기심을 가지고, 애초에 말이 아니었던 것을 말로 옮기는 일의 어려움과 보람을 함께 맛본다. 이것은 좋은 관객의 미덕이기도 할 것이다.

더미덤피이미지 웹사이트 제작: 홍진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