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키워드 리포트
2025 Recap, 2026 Preview

정연심·최빛나·홍창희·이장욱·주연화·노재민

1월 특집기사 ③


정연심 홍익대 교수
뉴욕주립대 FIT 미술사학과 조교수, 《제12회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2018) 공동 큐레이터,
《2021 DMZ Art & Peace Platform》예술 총감독 역임.
대표 저서 『The Making of Modern Korean Art: The Letters of Kim Tschang-Yeul, Kim Whanki, Lee Ufan, and Park Seo-Bo,
1961~1982』(공저, 2025), 『현대공간과 설치미술』(에이엔씨, 2015), 『비평가,
이일 앤솔로지』(편저, 미진사, 2013; Les Presses du réel, 2018) 외 다수

#얽힘 (2025’s Keyword)
2025년은 한국 동시대 미술가들의 글로벌 뮤지엄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김 크리스틴 선의 휘트니미술관 전시, 서도호의 테이트모던 전시, 김수자의 피노 컬렉션 전시뿐 아니라 김아영 등이 새로운 글로벌 스타 작가로 부각되었다. 한국미술은 특히 북미의 미술관에서 전통과 현대미술 양 영역에 걸쳐 커다란 관심을 받았다. 이러한 개별 작가의 부상과 함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 난민/망명/디아스포라, 블록화된 지정학적 정치성은 단순히 작가가 이를 미술의 주제로 다루거나 재현하는 이슈를 넘어서 예술과 정치, 제도와 자본, 그리고 디지털 플랫폼 등이 서로 분리된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관계로 얽힌 구조임을 보여주었다. 세계화와 전지구화가 해체되고 블록화된 세계에서 미술은 디지털 맥락으로 새로운 발언의 가능성을 찾게 되었고, 소셜 미디어를 통한 탈중심의 시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었다. 지정학적인 정치성과 양분화된 정치적 지형도가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치면서 2025년에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나, 국제전 등은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윤리적인 선택을 취하거나 정치적 발언을 가하는 반전/탈식민주의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는 북반부와 남반부에서 동일하게 등장한 요소였다. 얽힘은 인간과 비인간의 새로운 에콜로지적 관점에서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미술과 제도의 복잡한 지형 안에서 새롭게 부각되었다. 블룸갤러리가 갑자기 상업 갤러리 모델의 한계를 밝히며 갤러리를 접은 일도 아트마켓의 불황과 거대화된 아트페어’ 시스템에서 새로운 대안적 모델의 필요성을 이슈화시켰다.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강령: 영혼의 기술》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홍철기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글로벌 사우스 담론 가시화 (2026’s Keyword)
남반부, 즉 글로벌 사우스는 2010년대에 예술적 담론으로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제3세계와 지역주의 담론이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과 함께 부각되었듯이, 2010년대에는 구겐하임미술관 등에서 심포지엄 ‘(De)Coupling as Discourse on the Global South’ 등을 개최하면서 예술계에서 남반부에 대한 논의가 탈식민주의 담론과 함께 제기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를 포괄하는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논의는 2026년에도 더욱 가시화되며 존재감을 높일 것이다. 예술의 공간이 투명하고 중성적 공간 같지만, 작품과 전시는 국제적인 맥락에서는 항상 지정학적인 상황과 제도적인 관계 속에서 담론화되고, 파급효과를 가진다. 과거 글로벌 사우스는 식민공간의 서사로 주변부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담론을 생산하는 중심부로 부상했으며 미술계 권력구조와 대표성을 비롯해 탈식민주의 비평을 적극적으로 내세움으로써 글로벌 아트의 중심축을 보여준다.

2026년 광주비엔날레 예술 총감독인 호추니엔은 싱가포르 출신으로 이미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49번째 괘〉(2020)를 보여준 바 있으며,〈동남아시아 비평사전(The Critical Dictionary of Southeast Asia)〉(2012~)을 통해서 바타유의 비평사전을 경유하며 동남아시아의 식민 공간을 전복시키고 역사적인 현상과 경향, 파편성을 지니는 이미지들을 탐구했다. 광주비엔날레 전체 전시의 축은 개별 작가들의 작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호추니엔의 전반적인 관심사에 따라서 남반부적인 시각과 탈식민주의적 시각, 역사적 파편들을 새로운 시간성으로 재배치하며 이시적(異時的) 시간성으로 혼성화시키는 특징을 드러내지 않을까 한다. 덧붙여 2026년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전시 준비중에 별세한 카메룬-스위스 출신 큐레이터 코요 쿠오(Koyo Kouoh)가 기획한 유작 전시가 오픈하게 되는데, 그녀의 주요 관심사가 디아스포라와 아프리카 등이므로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그녀가 남긴 전시 주제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선정, 전시되지 않을까 한다. 베니스비엔날레 역사상 아프리카계 여성 총감독으로, 주제적인 면에서 보면 2024년도 베니스비엔날레 전시와 커다란 차이는 없겠지만 글로벌 사우스의 주제, 여성의 이슈나 흑인들의 디아스포라가 본전시에서도 주를 이루지 않을지 예상한다. 2026년에는 최근 작고한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구겐하임 아부다비 뮤지엄이 개관하며, 프리즈 아부다비(11월)를 계기로 중동에도 새로운 예술 자본의 인프라스트럭처가 형성된다.

호추니엔이 기획한 2026년 광주비엔날레는 9월에 개최될 예정이다. 호추니엔 프로필.
사진: 박홍순

#인공지능이 가져올 예술/교육계의 변화 (2026’s Keyword)
인공지능(AI) 기술의 대중화로 노동구조가 변화하고 더불어 자동화 장치 개발이 가속화하며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릴스와 밈 등이 여러 글로벌 채널을 통해 그 파급력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AI 기반의 이미지 생성은 원본도, 복제본도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이 수년 동안 창조한 데이터들에 기반함으로써 인간의 창조력과 노동력에 기댄 것으로, 향후 저작권 이슈 등을 예술계에서도 논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전시장 안에는 전시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AI 기반으로 작고 작가의 생전 모습이나 보이스를 재생시켜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생생하게 보여주지만, 또 반대로 인간의 신체성(corporality)과 물질성(materilaity)을 강조하며 예술적 경험 그 자체를 더욱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며, 디지털 문해력처럼 AI 문해력 또한 새로운 예술 언어로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2019년에 출간된 『고스트 워크: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새로운 글로벌 언더클래스를 만드는가, 그리고 이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Ghost Work: How to Stop Silicon Valley from Building a New Global Underclass)』가 말하는 것처럼, 생성형 인공지능은 비가시적인 글로벌 하청노동 구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AI는 사회, 문화, 예술, 교육 전반에 걸쳐 새로운 명암을 만들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로 인한 환경, 인간/비인간, 전력 이슈 등이 계속 논의될 것이다.


최빛나 베니스비엔날레 2026 한국관 예술감독
하와이트리엔날레 2025 공동예술감독, 싱가포르비엔날레 2022 공동예술감독,
네덜란드 카스코아트인스티튜트 디렉터 (2008~2023) 역임

#주권적 우울과 회복 (2025’s Keyword)
2022년 전면화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2023년 11월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 그리고 2024년 대한민국의 12·3 비상계엄 등이 끝나지 않고 이어진 2025년은 참사와 사건들로 점철되었다. 2024년 말 치러진 미 대선에서 결국 선출되고만 트럼프 정부가 2025년 공식 출범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극우세력의 등장이 일상화하고 세계 각국은 각자도생의 외교적 전략술에 몰입하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 팬데믹의 경험과 기후 재난이나 생태계 파괴의 일상화 때문일까. 2025년 죽음과 애도는 점점 더 우리에게 익숙한 주제로 다가왔다. 스테이시 부 쉐(Staci Bu Shea)의 『Dying Livingly』가 출간되기도 한 2025년에 한국에서는 노혜리 차연서 홍지영 봄로야 황예지와 같은 20~30대 여성 작가들이 마치 돌림노래처럼,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죽음과 애도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어루만지고, 쓰고, 기록하고, 나누었다. 또한 하와이에서, 부하라에서, 샤르자에서 열린 비엔날레/트리엔날레를 통해 나를 포함한 여성 큐레이터들은 공히 부서진 마음과 상처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짚어가며 그로부터의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2025년 길고 추운 겨울 내내 광장에 홀로 또 같이 나와서 자리를 지키고 발언하던 모든 이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민이자 국민으로서의 “주권적 우울”(김홍중)을 버텨가며 그 우울을 포기나 정체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미학적 가능성을 향해 던져내었다. 그 가능성이 향하는 바를 함께 바라보고 함께 움직이자며 2025년을 살아낸 그리고 그들을 수호하는 망자 모두에게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

로즈 B. 심슨 〈A’gin〉 2025 하와이트리엔날레 《ALOHA NÔ》 전시 전경 2025
사진: Duarte Studios 제공: 작가, 하와이 컨템포러리

#각성하는 개인과 실천의 연합 (2026’s Keyword)
탄핵 촉구 집회의 광장에 참여한 이들은 단지 단체나 동료 집단만은 아니다. “혼자 온 사람들이 많았다(이해빈).” 그렇게 혼자 온 사람들이 합을 맞추어 노래하고, 응원봉과 깃발을 흔들며 거대한 연합체를 이루어 절대권력을 탐하고 여기에 기생하려 했던 무리를 광장으로 끌어내고, 이후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스멀스멀 상용화되고 담론화되던 AI가 동료로, 상담자로, 조력자로 일상에 자리 잡아가는 가운데 절실해지는 것 중 하나가 가장 인간적인 주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가장 인간적인 것, 그리고 주체성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응답은 인공지능이 규합하고 연계하는 거대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정보의 총체량에 대비한 무엇이어야 할 것으로 다시,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일 수밖에 없다. 그 어떤 K산업 혹은 K-민주주의도 이에 대한 질문 없이는 데이터의 망망대해 속 “고래밥” 신세일 것이라 장담한다. 개인적으로 데이터의 총체를 넘어서는 광활한 우주와 지구의 존재 양태를 이해하고 그 안의 인간, 개개인의 위치, 몸과 마음을 이으며 그 이음 안의–마법과 같은 혹은 기적과 같은-사건을 만들어내는 의식의 힘에 대해 각성하고, 이 각성의 순간을 지속적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적인 갈등이나 사사로운 욕심 혹은 불신, 맹목적인 목표 의식이나 이름없는 불안을 멈추고, 그로 인해 억압되고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하며 동시에 깨어있는 자신의 자유와 타자와의 연대 및 확장된 “나”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로부터 파생하는 예술의 창조력과 응집력으로 미술인들이 “세계 허물기” 그리고 다시 구성하기에 적극적으로–그러나 결코 거국적이지 않게–함께 하면 어떨까. 나는 그 가능성이 작년 광장에서 발현되고 경험되었으며, 미술계에는 국내외적으로 베니스비엔날레나 광주비엔날레 등 큰 행사가 열리는 2026년 병오(丙午)해가 그 경험의 불씨를 키우고 실천하며 확산하는 시기가 되리라 감히 예견해 본다.

김어진의 시국선언 포스터 2025 《시대 정신》 프로젝트
제공: 일상의실천

#확장하는 커먼스 (2026’s Keyword)
대안적 세계보다 재앙을 상상하기 쉬운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는 하루의 시간을 주어진 혹은 스스로 부여했다고 생각되는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기존 시스템에 스스로를 맞추어 가며 (기껏해야 조율 혹은 그것과 협상해가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마치 이러한 일상이 지금 이대로 지속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적인 의견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2050년 거주 불가능 지구”(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점진적으로 다가오는 기후 재앙적 파국(김산하) 등 심지어 남겨진 시간은 25년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접근성과 돌봄의 문제, 기후 변화, 제도 비평 등을 주제로 한 작품과 전시들이 이어지지만, 무언가 전면적인 그리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 기존 시스템 내 미술의 힘에는 아쉬움이 따른다. 그것을 보완 혹은 개선할 방안으로 “아방가르드”라는 선도적 위치, 선언적 자리가 다시 요구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각자의 현 자리에서 각성한 주체의 안팎으로의 움직임 그리고 그 움직임들의 자기 조직적인 집단적 코레오그래피가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할 메커니즘이다. 그 메커니즘의 이름을 나는 커먼스(commons)라고 붙이고자 한다. 보통 소규모 마을공동체나 예술가 콜렉티브 등으로 이해되지만, 실상 커먼스의 지속과 힘은 깨어있는 개인과 그들의 경계 없는 연계 및 연대 확장의 지평에서 가능한 바, 그러한 커먼스의 움직임에는 재화의 소유나 적재, 영토의 확보가 아니라 공유 혹은 공명하는 가치와 의미, 그것을 위한 실천적 수행이 즐거움 혹은 숨쉬기의 원천이 되고, 그 수행의 지속이 변화와 동시성의 확장을 가져온다. 커먼스는 한국에서 공유지로도 번역되곤 해왔는데 커먼스의 물질적 기반이 땅이며 그 땅이 지난 반세기 빠르게 사유화와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되는 가운데 생활의 기반인 소위 “터전”이 허물어져 왔기 때문이다. 터전의 핵심에는 물론 농토와 숲이 있는 바, 이들이 필요한 생태계를 살리고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에 힘을 더해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 미술 작업에 흔치 않게 등장하는 흙, 그리고 예술을 재고하는 가운데 예술과 농사짓기를 접목하려는 시도들–한국에서는 감동환, 홍자영, 이유진  등–혹은 생태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작업에 도입하는 경우–박선민, 이우만 등-이미 운동의 씨앗은 심어지고 싹을 틔웠다고 본다. 물론 몇십 년 전의 대지미술나 야투(임동식 작가를 위시하여) 등의 계보도 살펴볼 일이다. 한편, 사유화된 도시의 틈새를 차지하며 서울 곳곳에 자리 잡은 미술 안팎의 소규모 공동체 공간들–동네 책방이나 신생공간이라고 불리던 미술공간들 포함–이 각자의 틈자리로부터 더 멀리, 서로 간의 이어짐과 용기를 통해 커먼스 회복과 확장에 동력을 더할 것을 기대해 본다.

박선민은 오랜 시간 열대우림에 대한 연구와 상상을 음악으로 형상화했고,
북보르네오 
열대우림을 탐험하며 채집한 필드 사운드를 바탕으로
화랑유원지의 산책 경로에 연결된 몰입형 
사운드스케이프를 구성했다.
박선민 〈늪의 노래 
사운드 드리프팅〉 관객참여형 몰입 사운드스케이프 26분 21초 2025
사진: 서주희 제공: 작가


홍창희 아트 어드바이저리 HONGCHANGHEE 대표, 갤러리 르롱 아시아 세일즈 디렉터
런던대 골드스미스컬리지 현대예술이론 석사 졸업.
서울옥션 홍콩법인 팀장, 서울옥션 영업이사 및 경매사 역임

#전략적 연대 (2025’s Keyword)
2025년 12월 1일, 페이스갤러리는 뉴욕에서 고가 작품을 거래하는 디도나 갤러리즈의 에마누엘 디 도나, 소더비에서 글로벌 프라이빗 세일즈를 이끌어 온 데이비드 슈레이더와 연합해 2차 거래에 특화된 부티크 갤러리 PDS의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이 새로운 결합은 시장의 구조 변화를 선제적으로 읽어낸 결과이자, 각자가 구축해 온 네트워크와 신뢰 기반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묶어낸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시장 생태계 확장을 위한 구조적 선택인 셈이다.

엔젤스 바르셀로나 갤러리가 출품한 세실리아 벵골리아의 작품을 상영 중인 루프 랩 부산 아트페어.
제공: 작가, 엔젤스 바르셀로나

이러한 흐름은 2025년 한국 미술시장에서도 감지되었다. 대표적으로, 지난 4월 세계 최초의 비디오 아트페어로 시작한 루프 바르셀로나가 아티비스트 김영은 대표의 기획 아래 부산에서 개최되며, 미디어아트 마켓에 특화된 국내 최초 모델인 루프 랩 부산 아트페어를 선보였다. 에밀리오 알바레즈 루프 공동설립자는 자문과 패널 토크 참여에 더해, 바르셀로나 소속 갤러리들을 함께 유치하며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는 단순한 도시 간 교류를 넘어, 바르셀로나와 부산, 유럽과 아시아의 미디어 생태계를 잇는 시장 모델의 공유이자 확장이라 볼 수 있다.

미술시장의 국제적 연대는 아트페어 간 협업에서도 드러났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미술시장 활성화 지원사업과 연계하여, 아트부산은 조현화랑, 가나아트 등 9개 갤러리와 함께 일본 요코하마의 도쿄 겐다이에 참여했고, 더프리뷰를 운영하는 아츠미츠라이프(AML)는 인도네시아의 아트 자카르타에 갤러리2, IAH 갤러리 등 12개 국내 갤러리와 함께 참가했다. 이는 한국 갤러리의 해외 진출을 넘어, 현지 페어의 구성 방식까지 변화시키며 양측 모두의 시장을 확장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형성한 결과였다.

2025년, 이러한 연대의 움직임은 국내외 갤러리 간 공동 전시, 페어 공동 기획, 경매사 간 프로젝트 등으로 더욱 다양해졌다.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시장 구조를 함께 설계하는 단계로 연대가 확산된 것이다. 미술시장이 경쟁 중심의 단일 구조를 벗어나, 확장 가능한 생태계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그 지점에서 2025년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전략적 연대였다.

아트 자카르타에 참가한 IAH 갤러리 부스 제공: IAH 갤러리

#오프라인 커뮤니티 (2026’s Keyword)
2020년 이후 한국 미술시장에서 대중의 컬렉팅 문화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온라인 거래 시스템의 고도화(갤러리·경매·아트페어), 거래 정보의 공개(Artnet, Mutual Art, Artprice) 및 다양한 플랫폼(Artsy, 유튜브, SNS, 네이버 카페)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활동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아트마켓 관련 주요 SNS 계정의 팔로워는 2만에서 많게는 20만 명에 이르며,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 수 역시 2,000명에서 2만 명을 넘어가는 등 그 영향력은 작지 않다.

그러나 온라인이라는 환경의 특성상 양질의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는 장점과 함께 자극적 콘텐츠나 부정확한 정보, 신뢰하기 어려운 출처에 노출되는 부정적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시장이 급속히 팽창했다가 조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관심도 이전보다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다.

반면, 미술관·갤러리·예술 교육기관에서 운영하는 멤버십 프로그램이나 소규모 컬렉터 모임 등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결속력과 영향력은 지난 2~3년간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참여를 넘어 정기적으로 국내외 전시를 함께 관람하고 작품에 대한 의견과 정보를 교류하며 서로에게 일정 수준의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전시나 아트페어 현장에서 특정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구성원임을 알아볼 수 있는 컬렉터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필자 또한 지난 9월 프리즈 서울 부스에서 근무하며, 여러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추천받은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러 온 컬렉터들을 다수 접한 바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의 내부 작동 방식도 흥미롭다. 구성원 중 누군가가 특정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면, 서로 축하를 건네는 동시에 해당 작가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추가 구매로 이어지는 사례가 종종 나타난다. 작은 그룹에서의 선택이 시장의 흐름을 미세하게 움직이는 ‘집중도 높은 파장’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2026년 한국 미술시장이 급격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시장을 둘러싼 환경과 컬렉터층의 관심은 상승 가능성을 품은 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갤러리 신라 서울은 삼청동에서 이태원으로 이전하며 저녁 미술사 강의, 주말 요가 등 다양한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집중 운영해 작품 판매 외 추가적인 수익 구조를 확장하고 있다. 서울옥션 또한 오랜 기간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커뮤니티를 구축해 왔음에도, 최근 별도의 멤버십 프로그램 ‘더 체임버’를 신설하며 오프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2026년 한국 미술시장에서 갤러리와 옥션 회사의 성패는, 구매로 실제 이어질 확률이 높은 오프라인 커뮤니티층에 얼마나 깊이 도달하고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커뮤니티 내에 단 두세 명의 신규 강성 컬렉터만 등장해도, 그로 인한 파급력은 시장의 기대보다 훨씬 큰 나비효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환경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결정적 거래는 결국 사람 간의 신뢰와 만남 속에서 성립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서울옥션에서 VIP 대상으로 진행된 아티스트 토크. ‘더 체임버’는 2026년 1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다시 만나랴 (2026’s Keyword)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에서 따온 김환기의 1970년 첫 전면점화 제목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다시금 떠오르는 요즘이다. 지난 11월 1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20세기 이브닝 세일’에서 김환기의 대형 전면점화〈19-VI-71 #206〉(1971) 이 구매수수료 포함 약 151억 원에 낙찰되었다. 이는 2019년 크리스티 홍콩에서 약 153억 원에 판매된 〈우주〉(05-IV-71 #200)에 이어,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그다음 주 케이옥션 경매에서는 김환기의 1954년 작 〈답교〉가 24회 경합 끝에 18억8000만 원에 낙찰되었으며, 이어지는 12월 케이옥션 라이브 경매에도 그의 작품 16점이 출품되었다. 페이스갤러리 서울은 김환기와 아돌프 고틀리브의 《추상의 언어, 감성의 우주》전을 2026년 1월까지 이어가고 있다. 친구 김광섭이 세상을 떠났다고 오해하고, 그리움 속에서 한 점 한 점 찍어 올렸다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마음처럼, 김환기의 작품들은 밤하늘 별처럼 다시금 애호가들의 눈앞에 빛나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가 불확실할 때, 갤러리와 경매사는 자연스럽게 블루칩 작가와 재평가가 필요한 중·장년 작가군에 집중하게 된다. 고가 작품 시장의 중심이 유지되어야 그 아래 구조 또한 안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6년에 예정된 주요 전시들을 살펴보면, 타데우스 로팍 서울은 2025년 11월 개막한 호안 미로의 청동조각 중심 전시를 2월까지 선보이고, 화이트 큐브는 에텔 아드난과 이성자의 전시를 1월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유영국〈작품〉켄버스에 유채 130×130cm 1967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주요 미술관의 기획 역시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는 유영국 개인전을 준비 중이며, 호암미술관에서는 3월부터 조각가 김윤신의 회고전을 통해 여성 조각 1세대의 70여 년 여정을 조명한다. 한편, 이우환의 대형 설치 작품이 상설전으로 공개되고 있으며 별도의 이우환미술관 건립도 논의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는 일본 요코하마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그룹전《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을 열어 백남준 이우환 이불 다카시 무라카미 등 양국 작가 50여 명의 작품 160여 점을 재조명할 예정이다.

이처럼 2026년 한국 미술시장에서는 블루칩 작가와 재평가가 필요한 장년 작가군이 중심축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시장의 조정기를 거치며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지금 다시 만나야 할 작가는 누구일까.’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 큐레이터
제이디 차, 다니엘 리히터, 로즈 와일리, 캐롤라인 워커 등의 한국 첫 개인전 기획.
소더비 홍콩에서 열린 제여란 개인전(2025)을 비롯한 다수 전시의 기획 자문

#미술 애호가의 귀환 (2025’s Keyword)
2025년 미술시장은 2023년부터 이어진 약세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변화는 갤러리 생태계에서 가장 먼저 감지됐다. 2025년 7월 팀 블룸은 LA와 도쿄 공간을 닫으며 전통적인 공간 중심 운영에서 물러났고, 말보로는 2024년 6월 영업을 종료했다. 미첼-인네스 & 내시 역시 같은 해 뉴욕 첼시 공간을 닫고 프로젝트 기반 자문 체계로 전환했다. 닫는 곳과 형태를 바꾸는 곳이 동시에 늘었다는 사실은 운영 모델이 ‘재배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홍콩도 비슷한 흐름을 겪었다. 2024년 말 이후 레비고르비다얀 갤러리와 페이스갤러리를 비롯한 메이저 갤러리들이 공간 운영 전략을 재편하거나 거점의 성격을 조정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VSF의 서울 공간 종료, 쾨닉 서울의 운영 중단, 페레스프로젝트 서울의 정리 등 한국 진출 해외 갤러리의 철수는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바로 ‘서울의 매력 상실’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는 시장 전체가 양적 확장의 경쟁구도에서 내려와,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다시 정렬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리만머핀은 2024년 김윤신과의 전속 계약을 국제갤러리와 공동으로 체결했다.
제공: 리만머핀 및 국제갤러리

프리즈 서울에서도 그 기류는 읽혔다. 2025년에는 전년 대비 40곳 이상의 갤러리가 이번 행사에 재참여하지 않았다는 보도와 현장 평가가 이어졌고, 이는 시장 환경 속에서 페어 참여 여부를 정하는 기준이 ‘선택과 집중’으로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해외 메가 갤러리가 빠진 자리는 규모는 작지만 색깔이 분명한 로컬 갤러리와 아시아 갤러리들이 메웠다. 거래는 고가 집중에서 분산형으로 옮겨갔으며 신규 컬렉터 유입도 관측됐다. 결국 2025년 한국 미술시장은 대형 갤러리 중심의 확장 국면이 한 박자 늦춰진 사이, 시장이 더 현실적인 구조로 재정비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재정비가 남긴 가장 건강한 결과는 ‘단기 투자자’가 아니라 ‘애호가’(미술품 장기 보유자)가 다시 컬렉션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애호가의 태도와 결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컬렉터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징후도 뚜렷해졌다. 이 흐름은 2026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우저앤워스는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이불 작가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 윤형문 제공: 작가, BB&M

#환율이 쏘아 올린 질문 (2026’s Keyword)
2026년 한국 미술시장은 원화 약세가 가격 지형을 흔들며, 시장이 여러 갈래로 재편되는 국면에 들어설 것이다. 원화 약세가 ‘뉴노멀’로 받아들여지며 해외 작가의 작품은 더 이상 “일시적으로 비싼 상태”가 아니라 “그냥 비싸진 상태”로 고착된다. 이 변화는 국내 컬렉터의 구매 판단 메커니즘을 바꾼다.

해외 작가 작품이 체감상 ‘더 비싸질수록’ 한쪽에서는 국내 작가 작품으로 수요가 옮겨간다. 이는 국내 시장이 저가화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국내 작가를 더 깐깐하게 고르는 시장이 된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상승장에 대한 기대가 거래를 밀어 올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무엇이 합리적이며 설득력(내러티브, 기획 의도 등)이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보는 형태로 변화한다. 그리고 버블 기간에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작품의 진위나 컨디션 체크를 비롯한 계약에서의 안전성을 더욱 면밀하게 점검하게 될 것이다. 작업의 궤적, 전시 이력과 비평 등의 아카이빙 자료가 가격과 더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 동시에 공급 쪽에서도 재편이 가속된다. 최근 1~2년 사이 해외 메가 갤러리들이 한국 작가를 전속으로 영입하는 발표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런 움직임은 국내 대형 갤러리가 그동안 맺어온 느슨한 전속 관계의 강화를 자극할 것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전속작가제’ 등의 지원에 힘입어 중소 갤러리 역시 국내 작가 영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네트워크가 교차하는 플랫폼 도시 서울 (2026’s Keyword)
2026년 한국 미술시장의 성패는 해외 작가를 국내 컬렉터에게 ‘판매하는’ 구조에 머무느냐, 아니면 해외 컬렉터가 서울에 와서 구매가 발생하는 플랫폼으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서울의 역할’을 재정의해야 할 때다. 서울은 이벤트 도시가 아니라 아시아 컬렉터와 기관 네트워크가 교차하는 플랫폼 도시로 포지셔닝되어야 한다.

이 전환의 핵심은 아트페어와 갤러리의 규모가 아니라 경험 설계다. “여기서만 살 수 있다”는 희소성보다 “여기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설득이 작동해야 한다. 전시의 내러티브도 판매를 위한 수사에서 벗어나, 작가의 세계를 이해시키고 공감하게 만드는 구조로 이동해야 한다. 동시에 해외 컬렉터가 ‘시간 대비 가치’를 체감하도록 기관-갤러리-작가 스튜디오를 잇는 도시 단위 동선이 설계되어야 한다.

2026년 한국 미술시장의 경쟁력은 서울을 중심으로 도쿄-홍콩 싱가포르를 잇고, 더 나아가 중국과 동남아로 확장되는 아시아 시장의 흐름을 실제 거래로 연결하는 데서 나온다. 따라서 갤러리의 전략도 서구 대형 갤러리를 모사하기보다, 아시아의 여러 기관 및 갤러리, 작가 등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공동 프로그램과 공동 고객으로 단단히 묶어내는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

결국 2026년은 작품을 파는 해가 아니라 왜 한국이 여전히 매력적인가를 증명하는 해이다. 원화 약세가 만든 시장 재편 속에서 회복 국면은 선별적으로 오고, 거래는 더 예민해진다. 서울이 살아남는 방식은 아시아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해외 컬렉터가 방문해 구매하도록 만드는 경험형 플랫폼을 완성하는 데 있다. 이를 뒷받침할 자원으로 K-컬처, 푸드, 의료 서비스, 코스메틱 등은 플랫폼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훌륭한 ‘양념’이 될 수 있다. 결국 2026년은 ‘왜 서울까지 와서 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설계하는 쪽이 승자가 될 것이다.


주연화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부교수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법인장 및 한국 총괄, 갤러리현대 기획실장 역임.
『예술, 가지다』 (학고재, 2022) 집필

#불황에 적응한 이후의 미술시장 (2025’s Keyword)
2022년 5월,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과 함께 시작된 경기 둔화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미술시장 역시 냉각을 피하지 못했고, 시장은 햇수로 4년째 침체를 겪고 있다. 2024년 시장 참여자들은 “더 내려갈 곳이 있을까?”라며 2025년 시장의 회복을 기대했다. 그런데 불황은 한 번 더 길어졌다.

해외 미술시장 기사에서는 “◦◦갤러리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제 새롭지도 않다. 대형 상업 갤러리들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필요한 투자를 줄이는 것, 바로 구조조정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새로운 유형의 갤러리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파트형 갤러리, 작가 주도 갤러리. 뭔가 기시감이 든다. 2014~2015년경 국내에서도 작가 주도 갤러리들이 잠시 등장한 적이 있었다. 당시 30대였던 1980년대생 작가들이 직접 공간을 열고 전시를 만들었던, 자구책이 필요했던 그 시기. 상황은 다르지만, 마켓이 어렵고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그렇게 창작과 전시는 계속되었다. 한국에서도 최근 한 갤러리 디렉터가 자신의 주거 공간을 활용한 장소에서 갤러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아, 이제 모두가 적응하고 새로운 유형의 시도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는구나.’ 그렇게 자연스럽게(?) 불황에 익숙해지며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 2025년의 미술시장이었다.

엑스라지갤러리는 대표가 실제 거주 중인 집에서 개관전 《Rose is a Rose is a Rose is a Rose》를 시작으로
《고근호: 굽이굽이》, 《이동현: 구멍 구멍 소동》 등을 개최했다.

《고근호: 굽이굽이》 엑스라지 갤러리 전시 전경 2025 사진: 박홍순

그렇다면 이 전환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시장은 사실 단순하다. 아니, 어쩌면 미술계는 단순하다. 옥션은 좋은 작품을 내놓지 않으면 불황기 사람들의 지갑을 열 수 없었다. 갤러리는 새로운 전시나 프로그램, 혹은 소속 작가의 대외 활동 같은 ‘새 소식’이 없으면 매출을 만들기 어렵다. 아트페어도 마찬가지다. 2022년에는 “아트페어에 볼 게 너무 많다”던 사람들이 이제는 슬슬 “올해도 별로 새로운 게 없는 듯하다”라는 코멘트를 던지며 ‘새로움’을 요구한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의 성대한 합작, 그리고 여기에 결합된 미술관·정부 행사들까지도 어느새 정례화되는 분위기가 되면서, 사람들의 대화는 달라졌다. “어느 파티 다녀왔냐”, “누가 솔드아웃 됐다더라”가 아니라 “어떤 전시 좋더라”로 이동한다. 결국 좋은 작품, 좋은 작가, 좋은 전시만이 살아남는 시기. 거품이 빠졌다.

#지속 가능한 국내 미술시장 (2026’s Keyword)
2020년 이후의 호황과 불황에서 가장 많은 학습을 한 사람들은 어느 연령대일까? 아마 30~40대일 것이다. 이들은 지난 3~4년 사이 시장을 가장 뜨겁게 즐겼고, 동시에 뜨거운 맛도 봤다. 2008년 글로벌 경기 침체와 함께 미술시장이 무너졌을 때를 떠올리면, 당시 호황기에 올랐던 작품 가격은 폭락했고 “취향에 맞지 않지만 가격이 오른다”는 이유로 작품을 사들이던 사람들이 시장을 떠났다.

그런데 이번 시장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상당수 30~40대가 여전히 남아 있고, 여전히 작품을 구매한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최근 예술경영지원센터 연구용역으로 진행한 미술품 구매자 서베이 결과를 보면, 젊은 세대의 작품 구매 동기는 기성 세대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그들에게 미술품 구매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사회 속에서 ‘나’를 확인하는 방식이며, 동시에 나름의 자산 관리 방식이기도 하다. 사회에 공헌할 수도 있고, 공간 인테리어까지 된다. 효용이 참 높다.

카타르 국립 박물관 제공: 아트바젤

그렇다면 얼마로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자산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500만~5000만 원 수준에서 이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미술품 구매가 고액 자산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이제 미술품 구매는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자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표현’이라고 하니 미술이 수단이 된 듯도 하지만,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철학과 세계관의 공유다. 내가 공감하는 가치와 철학을 가진 작가의 작품을 지향하는 것. 시각적 요소나 스타일을 넘어 작품에 담긴 의미를 구매하는 시대로 진입하는 것. 이는 곧, 내가 지지하는 작가를 지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성숙한 미술시장, 지속 가능한 미술시장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그것이 2026년의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한국 미술시장의 중장기적 성장 (2026’s Keyword)
현상적 키워드를 덧붙이자면, 지역적으로 내년은 아트바젤 카타르(2월)와 프리즈 아부다비(11월)의 개최로 중동이 국제적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서울은 이제 ‘퀄리티로 승부&증명’해야 하는 시기로 진입했고. 작품 경향으로는 중세·근대 작품, 한국에서는 원로·작고 작가, 즉 전통 동양화나 고미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계 작가에 대한 수요는 지속 성장하겠지만, 동시에 아시아 작가에 대한 수요도 함께 커지지 않을까. 다만 고가보다는 여전히 중저가 중심으로. 실제 초고가 작품 시장이 좌우하는 ‘전체 미술시장 규모’는 결국 거시경제 흐름을 따라간다. 그래서 시장 규모 확장은 경제 상황을 봐야 한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한국 작가들의 국제적 활동과 인지도 상승,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마켓 수요로 이어질 것인가이다.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한국의 성숙하고 현명한 컬렉터들이 한국 작가들의 성장을 뒷받침하지 않을까! 더불어 국내 원로와 블루칩 작가 작품들의 국제 시장또한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한국에서 재판매 작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판매자들이 달러에 맞춰 가격만 올리지 않는다면, 국내 작가의 글로벌 시장 진출은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단기에 수익을 올려보겠다며 가격을 올리면, 가격 경쟁력이 사라지며 한국 작가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다시 가격 상승 중지 혹은 하락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단기 수익이 아니라 중장기적 성장을 위해 하나씩 돌을 놓아야 하는 2026년이다. 2026년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가 앞으로 10년 뒤 한국 미술시장을 결정한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2025~2026 전환기, 동시대 미술이 응시하는 키워드들

노재민 기자

월간미술은 미술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개념과 문제의식을 통해 지금 이 시기를 진단하는 사고의 좌표를 점검해 왔다. ‘키워드’라는 형식은특정 시기에 무엇이 논의되고 있는지뿐 아니라, 어떤 언어와 태도가 점차 힘을 잃고 있는지를 동시에 드러내는 장치이다. 이번 특집은 2025년을 지나 2026년으로 접어드는 국면에서 동시대 미술이 어떤 질문을 지속하고 있으며 어떤 전제들을 더 이상 유효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참여 필진은 각자의 위치에서 관찰한 변화들을 바탕으로 창작, 전시, 시장, 글로벌 맥락 전반에 걸쳐 감지되는 흐름들을 키워드 형태로 제안했다.

이번 응답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생태’와 ‘기술’이 더 이상 독립적인 의제로 호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후 위기는 이미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졌고, 친환경을 둘러싼 윤리적 선언은 피로 국면에 접어들었다. 인공지능 역시 미래를 예고하는 상징이나 충격적인 담론의 대상이라기보다, 작업의 도구이자 환경으로 빠르게 일상화되었다. 그 결과 기술의 가능성과 윤리성을 정면에서 탐구하는 발언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반면, 비인간 존재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인간 중심의 사고를 어떤 방식으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보다 넓은 층위에서 제기되었다.

생태와 기술은 개별 주제가 아니라, ‘공존’이라는 보다 큰 범주 안에서 재배치된다. 변화의 배경에는 한국 사회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상황 역시 자리하고 있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정치적 불안의 그림자 속에서 불황은 가속화됐고, 제도와 시장을 둘러싼 압박은 창작과 전시의 조건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동시대 미술은 거창한 선언보다는, 공존과 공공성에 대해 다시 사유하거나 전략적으로 연대하며 제도 이후의 실천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동시에 ‘#중심의 해체’라는 키워드는 언제나처럼 스테디셀러처럼 반복되지만 그 의미와 적용 범위는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첫 번째로 도드라진 키워드인 ‘#중심의 해체’는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세계를 대표하거나 해석하는 단일한 주체라기보다, 물질·기술·환경·비인간 존재들이 발화하도록 매개하는 존재로 설정된다. #중동태적 전환, #플렉시모더니즘, #인터-아시아, #상황적 지식과 같은 개념들은 모두 하나의 보편적 중심 대신 다원적이고 복수의 출발점을 전제한다. 이는 동시대 미술이 단일한 미술사적 서사나 서구·남성 중심의 좌표에서 벗어나, 각자가 놓인 조건과 맥락에서 의미를 생성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두 번째 키워드는 ‘#공존과 공공성에 대한 재사유’다. 공존은 더 이상 이상적인 윤리나 선언적 가치로 호출되지 않는다. 생태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이 삶의 조건으로 내려온 상황에서, 공존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전환된다. 이번 특집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연대 역시 낭만적인 연합이 아니라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불가피하게 선택되는 협력의 방식으로 등장한다. #비가시적 연대나 #전략적 연대와 같은 키워드들은 공공성이 더 이상 프로그램이나 슬로건이라기 보다는 제작 과정과 노동 구조, 자원 배분의 문제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로 주목할 흐름은 ‘#제도 이후의 실천과 체제 바깥의 실험’이다. 자본과 성과 중심의 평가 체계가 강화될수록, 전시는 결과물보다 과정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과정 위주의 전시, #사라지는 미술과 같은 논의는 탈성장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제도 이후의 실천은 반드시 제도 바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도 내부의 빈 틈새에서, 혹은 체제와 느슨하게 연결된 상태에서 지속되는 실천들이 하나의 대안적 풍경을 형성하고 있다. 공명장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실천들이 특정한 중심 없이 공진하며 유지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함께 이번 특집의 배경음처럼 흐르는 키워드는 동시대 미술이 처한 조건을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지연된 미래와 비선형성, #분절된 세계가 공통의 시간 감각을 해체하고 있다면, 한편에서는 이미 축적된 역사와 감각을 다시 불러오거나, 시장과 제도의 장기적인 작동 가능성을 차분히 점검하려는 시도들도 감지된다. 이는 단절과 갱신의 서사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움직임이다. 이러한 키워드들은 2025년과 2026년의 전환기에 우연히 등장한 현상이 아니라 그간 축적되어 온 문제의식이 현재의 조건 속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2025년과 2026년의 경계에서 동시대 미술은 새로운 주제를 찾기보다, 이미 일상화된 조건 속에서 중심을 해체하고 공존과 공공성을 다시 설계하며 제도 이후에도 실천을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을 탐색하고 있다. 이번 특집은 이러한 움직임을 단일한 결론이 아닌 여러 갈래의 좌표로 제시함으로써, 변화하는 미술의 방향을 가늠해보는 하나의 참고점이 될 것이다.

2026년 1월호 (VOL.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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