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젤 시앙러 아트바젤 홍콩 디렉터
미술 전문가 인터뷰
김소정 기자
Art Market Report

앙젤 시앙러 아트바젤 홍콩 디렉터
사진: 박홍순
아시아 최대의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을 지난 3년간 지휘해 온 앙젤 시앙러(Angelle Siyang-Le) 디렉터는 세계적인 경제 침체 속에서도 아시아 미술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여전히 높게 본다. 그는 다양성, 지역 특색, 언어와 문화의 교류, 대중의 높은 관심 등을 근거로 동시대 현대미술을 담아내고 확장시키기에 아시아 지역이야말로 최적의 ‘플랫폼’이라고 말한다. 월간미술은 서울을 방문한 그를 직접 만났다.
최근 몇 년간 세계 미술시장은 집중과 확장의 복합적인 양상을 보여줬다. 미국의 아모리쇼와 엑스포 시카고, 유럽의 피악,아시아의 타이베이 당다이 같은 지역 거점 아트페어가 문을 닫았고, 아트바젤이나 프리즈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글로벌 자본의 유입과 기존 지역 시장 간의 균형 구도-협업 또는 경쟁-는 사실 분야를 막론하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끊이지 않는화두다. 글로벌 기업에 10년 넘게 몸담아 온 ‘로컬’의 입장에서 이러한 양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예술 생태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국제적인 아트페어가 많아질수록 더 좋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균형’이 중요하다. 모든 도시가 페어를 열기에 적합한 것도 아니고 모든 도시가 여러 개의 대형 아트페어를 지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트바젤이 그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서 또 다른 아트페어를 열지 않은 이유는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이미 형성된 시장을지원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도쿄는 매우 넓고 다양하게 퍼져 있는 예술을 한데 묶어 보여줄 수 있는 ‘아트위크’라는 형식이 적합한 도시다. 도쿄 아트위크는 상업성보다는 교육적 성격이 더 강한데, 아시아의 많은 관객이 여전히 배움을 찾아 예술 행사에 참여하는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가 홍콩에서 퍼블릭 프로그램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예술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것은 아트페어의역할이기도 하다. 이런 프로그램이 수익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왜 아트바젤은 이렇게 많은 퍼블릭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상업 플랫폼으로서 우리가 장기적으로 비즈니스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생태계의 기반이 단단해야 한다. 건강한 예술 생태계는 결국 우리 비즈니스에도 이익이 된다.

아트바젤은 도쿄 아트위크가 시작된 2021년부터 파트너 기관으로 협력해 왔다.
제2회 도쿄 아트위크에 참가한 도쿄국립신미술관은 이우환의 〈Relatum – The Arch〉(2014/2022)를 선보였다
사진: Noriko Yamamoto 제공: Art Basel
예술 생태계를 지원하는 측면에서 아트바젤 홍콩의 퍼블릭 프로그램에 대해 좀 더 설명해달라.
미술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더 포용적인 플랫폼이 되고자 하는 시도다. 대중은 컨벤션 센터 내에 마련된 전용 공간에서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강연, 영화 프로그램이나 파트너 기관이 펼치는 대담·워크숍·북 사인회·소규모 행사 등의 콘텐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사실 아트페어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꽤 위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곳이다. 아트바젤 규모의 페어에서는 어디서 무엇을 봐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퍼블릭 프로그램은 이런 관람객에게 예술 생태계 안의 여러 역할을 소개하는 일종의 입문 역할을 하며 VIP 컬렉터들에게도 페어를 더 깊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된다.
우리는 퍼블릭 프로그램을 컨벤션 센터를 넘어 도시로 확장하고자 했다. 홍콩 대표 쇼핑몰 퍼시픽플레이스에 대형 작업을 설치하여 페어 기간 내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했다. 여기에는 퍼포먼스 등 공연 요소가 결합되기도 한다. 또 M+와 UBS와 협업해 M+ 파사드에 대형 영상 작품을 투사했는데, 이 역시 3월 아트바젤 기간 동안 시민들이 감상할 수 있는 퍼블릭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이를 통해 관객이 단지 아트페어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여정’을 경험한다고 느끼기를 바란다.
홍콩에서 아트바젤이 여러 해 동안 개최돼 왔지만, 도시 한쪽에선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해마다 축적된다면, 도시 속에서 더 쉽게 예술을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년 전에 M+ 파사드에서 진행된 필름 스크리닝을 봤는데, 확실히 페어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좋은 방식이라고 느꼈다.
우리는 아트페어라는 플랫폼을 통해 예술과 문화에 대한 인식을 더 크게 확산시키고자 한다. 어떤 도시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경제이지만 그들을 머물게 하는 것은 문화라고 믿는다. 홍콩 정부가 우리 브랜드를 강하게 지지하는 이유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우리가 홍콩 시민뿐 아니라 여행객들과도 높은 수준의 교류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홍콩 아트위크 기간에는 아트바젤과 M+의 공동 커미션으로 제작되는 세계적 작가들의 대형 영상 작품이
UBS와의 협력으로 M+ 파사드에서 상영된다
사진: Virgile Simon Bertrand 제공: M+
홍콩의 난제는 아마 정치적 문제일 것이다. 홍콩이 “중국화” 된다는 전망에 글로벌 자본이 대거 빠져나가기도 했고, 홍콩 내부의 민주화 운동에 의해 아트바젤의 지속적 개최 여부 자체가 불투명했던 때도 있었다. 현재는 홍콩 정부에서 아트테크 분야의 활성화 등을 위한 투자를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외교적 영향력이 매년 커질 것이라예상된다. 홍콩 미술시장의 추후 판세를 어떻게 보며 어떤 대응을 고려하고 있는가?
우리가 보기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일상적으로 정치적 문제를 직접 마주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가끔 홍콩과 물리적으로 먼 곳에 있는 일부 매체의 보도는 홍콩을 중국에 종속되거나 중국에 의해 위협받는 도시로 그려내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아트바젤 홍콩을 찾는 주요 컬렉터 대부분은 영국과 중국에서 온다. 이를 토대로 본다면 오히려 중국 본토와의 연결성은 우리에게 필수적이다.
홍콩은 세금, 지리적 접근성, 개방적인 문화, 운송의 편리함 등 아트페어를 운영하기에 최적인 비즈니스 조건을 제공한다, 이는 아시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장점이다. 비즈니스를 하는 데 결정적 요인은 도시가 제공하는 환경이 사업에 도움이 되느냐의 여부인데, 아트바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래’다. 그래서 우리가 홍콩에 바라는 것도 지금처럼 세금이 없는 환경을 유지해 주는 것이다. 홍콩에는 부가가치세도 없고, 미술품의 수입·수출세도 없다. 이런 조건은 전 세계 컬렉터들이 와서, 며칠간 머무르며 작품을 거래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아트페어 운영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2024년에는 양푸둥의 〈Sparrow on the Sea〉(2024)가 스크리닝 되었다
사진: Moving Image Studio 제공: M+
한국은 개화기 이래 서구 미술운동을 받아들일 것인지, 전통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대한 충돌과 논쟁을 경험했고 이는 한국 근대미술사의 기반이 됐다. 서울 아트위크 기간에 주요 미술관은 ‘한국 작가’를 내세우며, 이들의 글로벌 프로모션이 정부 차원에서도 크게 장려된다. K아트, K팝 등에 붙는 접두어 ‘K’는 한국이 문화예술 분야에 일종의 국가적 정체성을 내세우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회적 기호이기도 하다. 반면, 홍콩의 정체성은 ‘글로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홍콩 아트위크 기간에 사람들은 홍콩 작가나 홍콩 갤러리가 아닌 유명 해외 작가의 전시를 보러 홍콩에 온다. 이는 한편으로는 긍정적이고 유망해 보이나 그만큼 위험도 크다. 미술시장 분야에서도 글로벌 갤러리의 지분이 워낙 큰 만큼, 이번처럼 페이스 같은 대형 갤러리가 철수하는 경우 그 여파가 중대할 수 있다. 이러한 도전적인 측면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싶다.
홍콩이 지난 10년 동안 확실히 로컬 정체성보다 글로벌 정체성을 더 강하게 보여온 것은 사실이다. 홍콩은 작은 도시이지만 수십 년에 걸쳐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전 세계와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동시에 역사·철학·종교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중국적 뿌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존재한다. 또 한편으로는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아 다양한 배경이 함께 존재한다. 이와 같은 도시에 가장 적합한 포맷이 무엇인가? 문화의 교차 지점이자 국제 환승 허브이며, 도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유입되는 사람의 수가 매우 많은 곳인 홍콩의 조건은 아트페어가 운영되기에 최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트페어를 ‘교차점(intersection)’으로 본다. 홍콩의 아트 커뮤니티는 특히 코로나 이후 더욱 종합적이고 탄탄한 예술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기반 위에서 아트페어 비즈니스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프리즈 서울 론칭 후 많은 글로벌 갤러리가 서울에 지점을 열었다. 그런데 경제적 어려움이 오면 그들 중 일부는 도시를 떠날 수 있고, 이것이 한국 미술시장에 어떤 강세로 파급력을 가져올지 우려된다.
한국은 홍콩과는 다른 지점에서 매우 강력한 장점을 갖고 있다. 바로 잘 구축된 국·공·사립 미술관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사립 미술관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였고, 이들이 선보이는 프로그램의 수준은 정말 놀랍다. 한국의 미술관들은 도시의 문화적 기반을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나는 한국이 대중문화든 순수미술 분야든 문화의 성장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에 꾸준히 투자하는 점을 늘 높이 평가한다. 한국은 탄탄한 기반 위에서 문화를 성장시켜 온 역사적 자산을 갖고 있다.
지금 아시아 전역에서 국제적 행사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세계는 단순히 아시아에 관심을 갖는 수준을 넘어 아시아의 맥락, 지역별 차이와 다양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각 도시가 가진 고유한 장점을 최대한 잘 드러내고, 세계가 그 ‘다름’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아시아의 서로 다른 고유한 도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 다양성 자체가 우리의 힘이다.
지난 12월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는 디지털 시대를 위한 새로운 플랫폼 ‘제로텐(Zero 10)’을 처음 선보였다. 이는 디지털을 통한 창작과 수용, 판매와 수집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가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6년에는 홍콩에서도 이를 소개할 예정인데 이에 대해 설명해달라.
디지털의 성장은 이제 모든 이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디지털아트뿐 아니라 작품을 디지털로 공유하고 제시하는 모든 플랫폼까지, 디지털은 단순한 매체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 되었고 이미 우리의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동시대 미술의 모든 형식을 포괄하는 플랫폼으로서 아트바젤 역시 그에 걸맞은 중요성을 부여하고자 고민해 왔다. 기존 아트페어의 전시 방식만으로는 디지털아트를 충분히 보여주기 어렵다. 그래서 아트페어 안에서 공간을 분리해 디지털아트에만 헌정된 전용 섹션을 마련했다. 그래야 디지털아트가 기존 현대미술의 관습이나 형식적 부담을 그대로 짊어지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섹터로 성장할 수 있다. 또 디지털아트 분야에는 기존의 컬렉터, 미술 애호가들도 관심을 보이지만, 동시에 크립토(암호화폐) 커뮤니티와 같은 새로운 컬렉터 층도 존재한다. 제로텐이 이러한 커뮤니티와의 연결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 기대한다.
아트바젤은 56년 동안 운영되었고 수십 년째 꾸준히 찾는 충실한 관객층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비전과 운영 방식은 디지털아트 갤러리·스튜디오와는 상당히 다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서로 다른 형식과 관점을 하나의 플랫폼 안에 포용하되, 동시에 디지털아트가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의 제로텐 섹션에서 선보인 Ix Shells의 〈No Me Olvides〉(2025)
제공: Art Basel
서울, 홍콩, 도쿄, 싱가포르, 자카르타 등에서 열리는 국제 아트페어는 매년 확장되고 강화된 모습으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외 아트아시아델리(뉴델리), 아시아나우 (파리), T3포토아시아(도쿄) 등의 아트페어도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아트바젤은 오는 2월에 카타르에서 첫 아트페어를 개최한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성장 측면에서 2026년 한 해를 전망한다면?
이제 아시아 미술시장이 글로벌 차원에서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다. 단지 한두 개의 국제 아트페어만이 아니라, 여러 중요한 페어와 주요 예술행사가 세계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아트페어의 영역을 넓히는 동시에, 그 깊이를 확장하고자 한다. 도시와 도시, 도시와 지역 간의 연결을 더 촘촘하게 만들기 위해 공공기관과 협업을 키워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파트너십이 홍콩이라는 도시 안에서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더 확장되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미술시장을 일반 산업의 시장처럼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술시장은 무엇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시장이다. 감정,개인적 경험, 신뢰가 그 어떠한 데이터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최상위 컬렉터들은 작품을 살 때 경매 결과나 투자 가치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 작품이 자신에게 얼마나 울림을 주는지, 자신의 컬렉션과 다음 세대의 유산에 어떤 의미를 더할 수 있는지를 보고 결정한다. 예술은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며 희망과 연결감을 제공하는 요소다. 그것이 여러 번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미술시장이 견고히 유지된 이유이고 사람들을 이어준 힘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미술시장의 성장은 하나의 팀처럼 이뤄져야 한다. 영리·비영리기관, 기업,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이 자신들의 조직적 깊이, 지역 커뮤니티와의 접점, 프로그램의 질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나갈 때 비로소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그럴 때 아시아 미술시장 역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