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서재 1: 강홍구

강홍구 진행 노재민

Art Books

책은 예술가의 내면을 안내하는 지도와 같다. 작품 뒤에 숨겨진 사유의 흐름과 예술적 태도는 그가 무엇을 읽었는가에서 출발한다. 교수의 리딩 리스트나 이론가의 문헌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공유되지만, 작가가 어떤 책에서 영감을 받고 감응했는지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비평가나 연구자만큼이나 탄탄한 학문적 배경과 리서치를 바탕으로 작업하는 아티스트가 점점 늘어나는 지금, 작가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일은 더욱 의미 있고 필요한 과정이다. 본 기획의 첫 필자로 참여한 강홍구는 『열하일기』를 통해 예상을 뒤흔드는 새로운 시야를 얻었고,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시각 이미지가 지닌 정치성을 발견했다. 『이미지와 글쓰기』는 사진에 대한 깊은 고민을 불러일으켰으며,『계몽의 변증법』은 인간의 이성과 문명에 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했다. 강홍구가 독해한 책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시선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비판적 성찰로 이어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강 홍 구 Kang Hong-Goo

1956년 전남 신안 어의도 출생. 목포교육대 졸업 후 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홍익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 졸업. 디지털 사진과 회화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서울: 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2024)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6년 한국문예진흥위원회 올해의 예술가상, 2008년 동강사진상, 2015년 서울 루나포토 올해의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무인도』(열화당, 2024) 등을 저술했으며,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


『열하일기』
박지원 지음 리상호 옮김 도서출판 보리

교과서에서 제목만 보던 책을 만난 것은 초등학교 교사 재직 시절이었다. 작은 섬에 있는 학교의 빈약한 장서에 놀랍게도 하드커버 장정의 열하일기가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고전국역총서를 관공서와 기관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묻어 들어온 책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열하일기를 읽고 나는 충격을 받았었다. 읽기 전에는 이른바 고전과 경전들이 가지고 있던 딱딱한 분위기만 생각하다 박지원의 글이 그런 예상을 산산이 깨뜨렸기 때문이었다. 1780년 청나라 사신의 수행원 자격으로 다녀온 일을 기록한 열하일기는 기행문처럼 시작되지만 읽어 나갈수록 연암의 관심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가 보였다.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 연암은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청나라의 수많은 문물들을 보면서 질투를 느끼는 한편으로 흠모한다. 즉 약소국 주변부 지식인의 콤플렉스가 여러 군데서 보이고 이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여러 가지 방안을 궁리해 본다. 때로 그것은 글솜씨와 그림 솜씨를 보여주거나 고전 문헌에 대한 박식함을 과시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가 청국을 바라보는 시각의 압권은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보게 되는 최고의 장관은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연암은 거기서 기왓조각은 천하에 버리는 물건이지만, 민간에서 담을 쌓을 때 무늬를 만들고, 똥을 거름으로 쓰기 위해 말똥을 줍는 자가 삼태기를 들고 말 뒤를 따라다니는 광경에 감탄한다. 또 그는 똥 거름을 쌓는데도 네모, 여덟모, 여섯모로 하고 누각이나 돈대 모양으로 만드는 것에 주목한다. 요컨대 청나라의 장관은 요동 천 리 넓은 들판도, 유리창도, 통주의 배도 아닌 민간의 모든 살림에까지 이르는 실용성과 제도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을 위해 연암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밤이 되면 숙소를 몰래 빠져나와 청나라의 선비며 장사치들을 만나 필담을 주고받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지적 소양을 검증하고 때로는 과시하며 수많은 정보들을 얻는다. 그 정보는 가짜 골동품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고, 라마교에 대해 궁구하고, 천문과 지리를 논의하는 데까지 미친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다. 실사구시 이용후생을 위한 기록문만도 아니며 연암이라는 한 인간의 사상과 세계관과 새로운 문물에 대한 정서적 반응들을 망라한 총체적인 결과물이다. 그의 시선이 가닿는 모든 것은 새롭게 의미가 부여되고, 그 의미들은 연암이 가진 지적 능력에 의해 그려진 일종의 인식적 지도 속에서 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는 미시적인 시선과 거시적인 관점을 동시에 가진 예외적인 인물인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바닥까지 드러내 희화해 보이는 탁월한 유머 감각까지 갖추고 있다. 열하일기를 자꾸 다시 보게 되는 까닭은 그 재미도 재미지만 그의 시선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처지를 조명해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연암이 보는 청나라의 문물은 그대로 지금의 미국이나 유럽의 문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많은 이들이 미국과 유럽을 다녀왔지만 연암처럼 그 나라를 꿰뚫어 본 사람이 있었을까. 그리고 동시에 연암이 안고 있던 주변부 지식인으로서의 콤플렉스와 한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열하일기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제기한 수많은 문제들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오늘의 그것이다. 열하일기는 아직도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비판적 거울 노릇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열화당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원을 졸업한 뒤였던 듯하다. 당시에는 정식 번역본이 없었고 동문선이라는 출판사에서 아마도 일본 번역판을 중역해 ‘이미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시각과 미디어’라는 일본인이 쓴 글을 덧붙여 냈었다. 나중에 교재로 쓰기 위해서 번역의 미심쩍음을 살피려 영어판을 샀었는데 그 책은 사라져 버려서 다른 작가가 가진 것을 한 권 얻었다. 한참 뒤에야 최민이 정식으로 번역해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제목으로 열화당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이 내게 주었던 가장 큰 영향은 미술작품이 어떤 맥락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화라는 매체가 개인적 소유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라든지, 미술사적 평가라는 것이 얼마나 편향될 수 있는지를 프란스 할스가 그린 초상화를 통해 보여준 부분들이 인상적이었다. 또 본다는 문제에서 시작해서 여성 누드화의 의미, 광고와 소비, 욕망에 이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시각적 문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해 그 내부에 무엇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드러내 주었다. 이러한 수정주의 미술사적 시각은 지금은 일반상식이 되었지만 TV 강연이 이루어진 것이 1970년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존 버거는 그 밖의 소설이나 다른 에세이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아마 이 책일 것이다.


『계몽의 변증법』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르 아도르노 지음
김유동, 주경식, 이상훈 옮김 문예 출판사

나치의 집단수용소에서 대량학살이 자행되던 2차대전 중에 쓰인 『계몽의 변증법』은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책이라는 하버마스의 평처럼 무거운 책이다. 독일 철학자들 특유의 난삽한 글들로 이루어진 이 책의 요점은 인류가 어찌하여 2차대전과 같은 어리석은 전쟁에 빠졌으며 17세기 이래 유럽 문명의 핵심인 계몽이 어떻게, 왜 타락했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그들은 계몽을 신화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해석하는 방법으로 본다. 신화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서사와 종교적 권위를 이용한다면 탈신화화를 추구하는 계몽은 계산 가능성과 유용성의 척도에 맞추어 세계를 해석한다. 그 해석의 과정에서 수학, 과학 등이 도구가 되며 그것이 객관성과 진리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의 모든 것이 동일하게 취급되고, 그 동일성을 숫자로 나타내며 숫자는 계몽의 핵심이 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이진법적 디지털화가 결국 계몽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것이다. 세계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인공지능이나 양자 컴퓨터 역시 계몽의 핵심인 숫자에 매달려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본다. 계몽의 타락은 세계의 모든 개별자의 독자성을 강제로 동일화하며, 자연을 단순한 객체의 지위로 떨어뜨리고 계몽이라는 말이 애니미즘적 주술이 되어 신화화되는 데서 시작된다. 그 결과 애초에 전통적 신화와 종교를 깨부수고 인간 중심의 세계관과 진보와 민주주의를 표방하던 해방적 계몽이 다시 신화화되어 인간을 속박하고 자기 파괴적 욕망과 행위에 빠뜨리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그랬지만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인간이 진리나 진실을 추구하는 행위는 결국 인간의 제어되지 않는 욕망을 탐색하고 실현하는 것이며 파멸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문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이 꼴로 사는 것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진리나 원칙을 몰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것을 알아도 근본적으로 실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우울하고도 어두운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지와 글쓰기-롤랑 바르트의 이미지론』
롤랑 바르트 지음 김인식 옮김 세계사

『이미지와 글쓰기』는 롤랑 바르트의 회화, 사진, 영화에 대한 글을 편집해 번역한 책이다. 사실 영화 편은 대강 읽었고 집중해서 본 것은 회화와 사진 편이었다. 회화에서는 언어로서의 회화, 사이 톰블리의 작품에 대한 분석, 앤디 워홀의 작품에 대한 언급 등이 관심을 끌었다. 사이 톰블리에 관한 글에서는 회화의 원재료인 물감, 종이 등의 재료를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절대적인 소재로 본다. 그는 톰블리가 ‘라루스(Rarus)-산재’라는 개념을 통해 그 어떤 것도 포착하기를 바라지 않는 선적 태도를 보이며 이는 노자(老子) ‘무위자연’과 유사하다고 해석한다. 그 해석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물질과 회화, 그것을 다루는 화가와의 관계, 무엇보다 한 작가의 작품을 얼마나 깊고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지를 제시한 점에 감명받았다. 사진에 관한 글들은 코드 없는 메시지로서의 사진이 내포와 외연, 이미지로서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기호학적 관점에서 쓴 것들이다. 이 글들은 그의 다른 책 『밝은 방』에 나오는 ‘스투디움과 푼크툼’ 등의 개념과 함께 그의 사진론의 근간을 이룬다. 물론 이 글들은 나중에 사진으로 작품을 하게 되면서 더 꼼꼼히 읽었고,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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