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서재 6: 노순택

 글 노순택 진행 노재민

The Artist’s Bookshelf


『전쟁과 사회–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노순택은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를 통해 한국전쟁을 ‘3년의 사건’이 아니라 광복 이후 오늘까지 80년 동안 지속되는 구조적 현실로 바라보는 시선을 끌어온다. 반공 교육과 기념의 언어가 만들어낸 납작한 전쟁 서사 뒤에 응축된 폭력의 반복, 사회 곳곳에서 재연되는 전쟁의 잔존 형태, 그리고 분단을 살아내는 주체로서의 ‘분단인’이라는 정체성을 짚는다. 광주 5·18을 ‘한국전쟁의 재연’으로 읽는 김동춘의 분석처럼, 노순택은 자신이 기록해 온 현장적 체험을 통해 전쟁의 현재성과 그 지속을 사유한다. 이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불러와 그는 ‘악의 평범성’이 드러나는 또 다른 장면과 마주한다. 2024년 계엄령과 내란 재판으로 이어진 정치적 위기 속에서 드러난 관료의 무능은 단순한 무책임이 아니라 말하기·사유하기·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포기한 구조적 무능임을 드러낸다. 성실함과 충직함의 외피 뒤에서 판단력의 부재가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그리고 그 반복되는 역사의 패턴이 오늘의 한국 사회에 어떻게 되살아나는지를 되묻는 자리에서 노순택은 두 권의 책을 매개로 ‘현재형 한국전쟁’과 ‘평범한 악’의 작동 방식을 함께 사유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전쟁과 사회–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김동춘 지음 돌베개 2000

어린 시절, 해마다 6월이 되면 우리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투철한 반공투사인지 앞다투어 증명해야 했다. 반공웅변대회에 참가해 김일성 수괴와 북한괴뢰군을 목이 터져라 규탄해야 했고, 부모님이 들려준 전쟁 이야기에 어설픈 상상력을 버무려 ‘무찌름의 글짓기’에 열중했으며, 분노를 응축한 표어를 만들고, 원색의 물감을 발라 포스터를 그려야 했다. 뭘 안다고.

우리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몰랐다. 무섭다니 무서운 줄 알고, 쳐부수자니 쳐부수자 외쳤을 뿐 그 전쟁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고 무장공비에게 입이 찢긴 채 죽었다던 이승복을 숭배했으나, 간첩 앞에서 그 아이처럼 외칠 용기는 없었다. 부모들은 전쟁을 알았을까. 선생들은 그 전쟁의 의미를 알았을까.

우리가 달달 외워야만 했던 ‘6·25 사변’의 단순 구도를 넘어 ‘한국전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오랜 시간 불순한 짓으로 금지되었다. 전쟁의 발발과 전개, 그것이 남긴 상처의 지속은 한 마디로 규정할 수도 섣불리 요약할 수도 없는 복잡성의 심연 안에 있는데도, 우리에게 그 전쟁은 납작한 것이어야만 했다. 국민을 총화단결로 이끄는 에너지원이어야만 했다. 총화단결의 과정 속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 불가피한 희생들은 눈감아도 무방한 일이었다.

‘적대적 공존관계’, 전쟁 이후 남북관계를 진단하는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우리의 눈은 적을 똑바로 바라봐야지, 스스로를 바라봐선 안됐다. 전쟁은 망원경을 줄 뿐, 거울을 주지 않는다.

김동춘은 “한국전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오늘의 한국 정치, 한국 경제, 한국 사회, 한국의 법과 사회심리, 이데올로기 등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전쟁과 사회』를 썼다. ‘전투로서의 전쟁’을 넘어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사회적 사실들’에 대한 정리와 분석을 시도한다. 여기서 ‘전쟁 과정’이 ‘한국전쟁 3년의 과정’만을 의미할까.

“재개발 철거 현장의 폭력이나 노사분규 현장의 구사대 폭력, 사용자들의 ‘빨갱이 시비’ 등을 연구자의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그것이 사회학 교과서에 나타난 단순한 사회갈등이 아니라 전쟁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문장에 나는 밑줄을 그었다. 분단체제와 사회적 폭력의 문제를 작업의 중심에 두고 있던 내가 여러 현장에서 느낀 바와 똑같았으니까.

1980년 ‘오월 광주’의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다룬 작업〈망각기계〉를 20년 넘게 이어오면서 나는 그 사건을 ‘지나간 과거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김동춘은 5·18을 “한국전쟁의 재연”이라고 말한다. 나는 오월 광주를 “분단역사의 분수령”이라고 말해왔다.

문서상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만 3년 동안 벌어진 것이지만, 사실상 한국전쟁은 1945년 광복 이후 2025년 오늘까지 8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전쟁이 터질 당시에 성인이었던 사람들은 이제 세상에 ‘거의’ 없지만, 한국전쟁은 살아 여전히 우리 사회를 꽉 틀어쥐고 있다. 왕을 꿈꿨던 대통령이 계엄령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눈에 띄게’ 드론을 띄운 곳이 어디였나, 평양 하늘이었다. 새로운 대통령은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핵 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며 미국 대통령에게 허락을 구한다. 이 또한 지속되는 한국전쟁이 아닌가.

남한인은 남한인이고, 북한인은 북한인일까. 남북한의 시민과 인민의 정체성을 아우르는 말은 무엇일까. 나는 스스로 ‘분단인’이라고 말한다. 그런 고민 속에 2011년부터 여러 차례 〈분단인 달력–쉴 새 없는 광란의 나날을 기억하는〉을 만들어왔다. 해방 이후 오늘까지 벌어진 수천 건의 분단 사건들을 수집해 해당 날짜에 ‘붉게’ 새겨 넣은 달력이다. 빈칸 없이 빽빽하고 심지어 사건 일지가 날짜마저 뒤덮은 날도 무수한, 사실상 무용한 달력이다.

김동춘은 책의 부제를 통해 묻는다.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나는 〈분단인 달력〉을 통해 현재형으로 묻는다.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여전히 무엇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지음 한길사 2006

손바닥에 임금 왕(王)을 써넣은 것도 모자라 툭하면 왕처럼 격노했다던 ‘그’가 열 살도 더 많은 관록의 한덕수를 국무총리에 앉혔을 때 의아했다. 함부로 부려먹기 어려울 텐데, 게다가 노무현 정부의 총리였던 사람을. 한덕수는 경기고-서울대-하버드대로 이어지는 화려한 학벌에, 스물한 살 행정고시 합격을 시작으로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장관, 대통령실 경제수석, 주미대사, 국무총리까지 관료로서 오를 수 있는 모든 자리를 두루 섭렵했다.

말마따나 좌파 정부 국무총리를 지냈는데, 우파 정부 국무총리까지 맡았으니 그의 경륜과 노련함, 성실함,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데는 좌우가 따로 없다고들 생각했다. 놀라운 착각이었다.

2024년 12월 3일 선포된 계엄령과 국회 해제 결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덕수가 보여준 ‘무능력의 능력’은 많은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겁이 났을 것이다. ‘예스맨의 비단길’을 걸어온 그가 왕의 결단을 거스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계엄령이 해제된 뒤에는 내란 주요 임무에 종사했던 사실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했다. 사태 수습과 민주주의 회복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무엇이 어떻게 되든 일단 버티며 살고 보자는 비겁한 투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근면성실하게 살길을 찾아 한덕수는 안 움직이는 듯 움직였다. 머나먼 시골에 내려와 살던 나는 숨 막히는 풍경들을 외면할 수 없어 다급하게 서울을 오갔다.

마침내 내란재판정에 피의자로 소환된 그를 보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린 사람이 나뿐일까. 아돌프 아이히만은 “살면서 한 번도 법을 어긴 적 없고,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었다. 바람직한 아버지였고 다정한 남편이었으며 성실한 동료였다. 그 충직함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했고, 유대인 추방 수송 학살의 최고위급 관료가 됐다. 600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됐다. ‘학살’이 아니라 ‘최종 해결책’이라는 명목으로.

이는 불법계엄령을 두고 ‘내란’ 아닌 ‘질서유지’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장난을 연상시킨다. 사람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도 ‘경고성 계엄’이니, ‘계몽령’이니 하는 언어도단을 일삼지 않았던가. 아르헨티나로 달아났던 아이히만은 끝내 체포돼 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 선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뉴요커’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을 참관하고 연재에 이어 1963년 책으로 묶는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재판정에서 아이히만은 항변한다. “도대체 무엇을 인정하란 말인가. 나는 남을 해치는 일에 아무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맡은 일을 잘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잘못이 없다. 단 한 명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다. 나는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인간이며 관리였을 뿐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에겐 총통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법이었고, 그 법을 수행하는 것이 양심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유능했다. 그것이 그의 무능함이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세 가지 무능함을 주목한다. 말하기의 무능, 사유의 무능,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 경륜과 노련함이 있으면 무엇하나, 성실하고 충직하면 무엇하나. 옳고 그름을 구별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판단력이 부재한 자에게 권력이 주어질 때 사회에 어떤 불행이 닥치는지를 동서고금의 역사는 보여주었다.

시인 김남주가 1980년대 전주교도소에서 쓴 시 〈어떤 관료〉는 근면·정직·성실·공정으로 무장한 어느 관료의 일그러진 탄탄대로를 그리고 있다. 한덕수를 미리 그린 시라고 해도 어긋남이 없으리라.

아렌트의 책은 수많은 논쟁과 동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역사학자 베티나 슈탕네트는 “아렌트의 성급한 판단”을 지적하며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을 상징하는 자가 아니라 노련하고 체계적으로 유대인을 학살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예루살렘 법정에 서기 전 아이히만의 삶을 추적한 끝에 내놓은 두툼한 책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글항아리, 2025)을 함께 읽어도 좋을 듯하다.

한덕수도 노련했다. 살아남기 위해 대통령 후보로 나설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마음먹었다”고 출사표를 던지면서 5·18 묘역 앞에서 외친 한 마디가 지금도 머리를 때린다.

“여러분, 저도 호남사람입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껴야 합니다!”


노순택 NOH Suntag
1971년 서울 출생. 대학에서 정치학을, 대학원에서 사진학을 공부했다. 분단체제가 낳은 작동과 오작동의 풍경을 사진과 글로 수집해 왔다.《분단의 향기》(2004)를 시작으로 《얄읏한 공》(2006), 《비상국가》(2008),《망각기계》(2012), 《검은 깃털》(2023) 등 국내외 개인전을 열었으며 같은 제목의 책을 펴냈다. 동강사진상(2012),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2014), 구본주예술상(2016)을 수상했다.

2025년 12월호 (VOL.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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