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초 Omyo CHO

다시 만난 세계의 기억

ARTIST FOCUS

오묘초 / 1984년 출생, 골드스미스대학교 순수미술 졸업, 2020년 수림미술상 수상, 2024 아트바젤 스테이트먼츠 섹터 선정. 《오묘초》(아트바젤, 2024),《Punch-Drunk : 발굴된 미래》(작은미술관 보구곶, 2023), 《배럴아이》(오시선, 2022), 《점보 쉬림프》(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2021),《택시더미아》(n/a, 2019) 등 개인전 및 《풍경들》( 우손갤러리, 2023), 《데이터정원》(김희수아트센터, 2022),《섀도랜드Shadowland》(아마도예술공간, 2021) 등 다수 기획전 참여. 옴니버스 소설 『언급되지 않을 것들의 흔적』 (2018) 집필. 수림아트센터 등에 작품 소장

〈배럴아이〉 유리, 레진, 피그먼트,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서지컬 체인 130 × 110 × 130cm 2022
〈4도씨〉세화미술관 전시전경
제공 : 작가

다시 만난
세계의 기억

오정은 |  미술비평

바다달팽이 실험

“동물의 복잡성은 인형 속에서 작은 인형이 한없이 나오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연상하게 한다. 미시적인 차원으로 들어갈수록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것이다.”1

2018년, 미국의 통합생물학 교수 데이비드 글랜즈먼 연구팀은 ‘기억 이식’ 실험에 성공한다. 바다달팽이의 신경세포 중 뉴런의 핵을 추출해 다른 개체에 이식하는 방법을 통해서였다. 이는 단순한 세포 이식이 아니었다. 꼬리에 인위적 전기자극을 받아 위축 반응을 보인 바다달팽이의 기억이 전기자극을 한 번도 받지 않은 바다달팽이의 기억으로 전이돼 같은 위축 반응을 보이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2000년, 에릭 캔델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안겨준 실험에서도 바다달팽이가 등장한다. 캔델 박사는 바다달팽이 반사 실험을 통해 생물의 뇌 속에서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는지를 밝혔다. 그는 기억이 수천 개의 시냅스 (뇌신경접합부)에 저장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후 이뤄진 글랜즈먼 박사의 실험은 기억이 시냅스가 아닌 신경세포 핵에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일명 엔그램(engram), 즉 기억의 물리적 실체를 찾아 과학계는 여전히 뇌 탐색 지도를 그리고 있다.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의 치료는 물론, 기억의 조작과 복제, 이식에 관한 메커니즘이 인간에게 적용될 날을 고대하며.

기억이 우리에게 점차 자기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사이, 디지털 혁명기의 21세기는 인간과 비인간종의 경계를 자문하고 인공지능의 활동 영역확대에 경탄, 혹은 우려하며 포스트휴먼 서사에 물들어갔다. 특히 전 세계를 팬데믹 위험에 빠뜨린 코로나19는 현대 지성의 한계를 인식케 하고 인류세와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을 증폭하는 데 일조했다.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인류가 처한 위기에 불안감 또한 가속도가 붙은 나날, 우리는 공상과학이 선취한 세계를 참조하며 지금을 본다.

미래세계의 추동
김초엽의 단편「관내분실」2에는 기억을 보관하는 도서관이등장한다. 일명 마인드 업로딩으로 불리는 기술을 거쳐 망자의 생전 기억이 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 보존 · 관리되는 설정이다. 김영하가 쓴『작별인사』의 주인공 화자는 인간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다. 그는 백업을 거친 기억과 의식이 신체를 바꿔 이동함으로써 영생할 수 있다. 더 이상의 백업을 멈추고 노후한 몸 안에서 전원을 끌 때 휴머노이드의 생은 종결된다. 이들 픽션 속에서 기억은 일종의 데이터처럼 다루어진다. 저장과 복제, 해킹과 삭제가 가능할 뿐 아니라 상용화까지 되는 대상이다.「관내분실」속 마인드 업로딩은 사별한 남편의 기억 시뮬레이션과 재회하는 한 여성의 감동적 광고 장면을 통해 대중에게 팔리는 상품으로 회자되고,『작별인사』의 휴머노이드 두뇌 정보는 물리적 유용성을 다해 처분되는 신체와 달리 정보로 추출돼 클라우드에 모아진다는 배경 속에 있다. 인공지능에 쌓인 기억이 점차 고도의 집단지성이 되어 인간을 위협한다는 내용도 담는다. 이들 소설이 다룬 기술 예견과 증후, 그리고 근래 급등한 과학문학 장르의 인기가 증명하는 바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관한 동시대의 감각적 추동일 것이다. 2020년대 미술계 역시 그 갈망을 함께한다. 가상현실의 시공간을 설계하고, 인간 너머로 진화된 존재를 그리며, 미래 담론과 관계한 작업에 주목하고 있다. 일련의 현상으로 부상하는 그 궤적 가운데 오묘초가 있다.


1 조르주 샤푸티에『동물이란 무엇인가?』 황금가지 2006 pp.24~25
2 김초엽「관내분실」『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허블 2018 pp.9~60
3 김영하『작별인사』 복복서가 2022

《언급되지 않을 것들의 흔적》 시대여관 전시 전경 2018

〈비문증〉퍼포먼스 20분 2020

살과 기억
오묘초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과거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18년 오묘초가 첫 개인전《언급되지 않을 것들의 흔적》의 대상지로 택한 곳은 창신동 쪽방촌의 폐허가 된 시대여관이었다. 삶의 역동이 모두 떠나고 빈곤과 절망의 흔적마저도 휘발돼 낡은 골조와 회백색 콘크리트 벽만이 냉담히 남은 곳이었다. 오묘초는 거기에 머물며 지도를 그리려 한 것 같다. 유학 후 서울로 돌아와 전업 작가로서 걸음을 내딛는 시점에서 자기 경로를 그리는 지도. 그리고 지역과 장소에 깃든 이전 시간의 흔적과 망실된 바들의 자국을 찾고 그들을 미술을 경유한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지도를 말이다. 이에 거대한 물리적 집체의 곳곳이 작가의 발굴 노력에 의해 조각적 사물로 재발견되었다. 마치 백골화된 잔해의 이미지로 잔존하던 여관이 가촉적 (可觸的) 경험의 산물로 재생되던 과정으로 그 수행성을 해석해 볼 수 있다. 오묘초의 조각은 여관과 동거하며 그 내부로부터 태어났다. 건물을 배경으로 두고 전면에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바닥에 누워 한 겹씩, 한 점씩 덮어씌워 만들어냈다. 살이 차오르듯, 동질의 물성으로, 내부의 힘으로. 주제를 조각 매체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주제를 조각으로 체현해낸 것. 메를로 퐁티의 살 개념이 그 조각의 정의에 어우러질 수 있을 것이다.

오래 비어있던 벽면에 말라붙은 가죽처럼 겹겹이 붙어 있는 벽지. 오묘초는 그것이 나이테 같다고 했고, 공간의 엔그램이자 예술적 영감의 발원지로도 본 것 같다. 껴묻어 잠재된 역사를 문학적으로 추적했고, 사실과 환상을 오가는 옴니버스 소설을 전시와 연동하여 작성했다.4 이는 장소가 발원한 문학적 서사를 끌고 와 공간의 층위를 채우는 방식이다. 빈 쪽방 한 칸에 소라게 껍데기와 스피커가 놓이고 파도가 치는 음향이 재생되며 다른 울림을 주었다. 작가는 도시가 지우고 외면한, 이른바 ‘언급되지 않은 것들’을 현상학적 실체로서 호명했다. 오묘초는 자작 글의 에필로그에서 “껍데기가 중요하다. 소라든, 소라게든, 어떤 인생이든 상관없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기억되지 않고 소비된다”5고 위악을 부렸지만, 실제로 그녀는 자본이 폭격하듯 공동체를 함락시키고 떠난 뒤의 공허를 살과 기억으로 채워가던 것으로 보인다. 앙상한 뼈만 남은 폐허와 산 생물 없는 껍데기 속을 채운 조각 작품과 이야기, 사회 비판의 수사는 이후에도 오묘초의 주된 작법이 된다.

“소라게는 껍데기 없이 태어나 평생 집을 14번 바꾼다.이 과정에서 더 큰 껍데기를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 언제부턴가 현대인은 소라게처럼 사는 거 같다. 평수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이웃과의 소통은 줄어든다. 그 안타까운 부재를 말하고 싶었다.”6

〈점보 쉬림프〉파이렉스 글라스, 서지컬 체인으로 엮은 그물 가변 크기 2021

정보의 그물망
이번에는 2021년 발표한《점보 쉬림프》를 되짚어 볼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데 사용되는 사용자 인증 테스트 ‘캡차 (CAPCHA)’에 착안한 작업으로, 작가는 인간과 기기를 가려내는 단서조차 거대 디지털 기업의 데이터베이스에 누적되고 있음을 꼬집는다. 개인의 의지를 벗어난 데이터 산물로 클라우드에 잔존하고 악용되는 문제를 오묘초는 흙에 캡차의 도안을 새긴 전통 조각의 방법론으로 우회해 드러냈다. 소성된 흙에 새겨진 디지털 정보의 역설을 탐닉하던 작가의 기호학적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기존 벽으로 구분된 전시실의 다른 곳에서 작가 개인의 기억 속 표상이 풀어진 바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금속 체인과 유리로 만들어진 그물 형태의 현대조각. 오묘초가 에세이 노트를 통해 공포감의 파편으로 증언한 기억 속 사물의 재현이었다.

어린 시절 처음 간 스키장에는 1인 리프트가 있었다. 매번 허공의 줄에 매달려 위태롭게 공기를 항해했다. 그물이 있지만 언제나 불안했다. 나의 손이 되어줄 폴대가 추락한다. 그물은 잡아낼 듯 말 듯 추락을 받아낸다. 마치 나 대신 그 폴대를 제물로 바친 것 같았다. 그 후로 리프트를 탈 때 항상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가장 많이 추락한 건 오래된 인형이었다. 항상 그 자리에 떨어진 그 아이가 보여야 안심이 됐다. 곰 인형의 초점 없는 눈이 나를 원망하듯 바라본다. 안심과 동시에 죄책감이 엄습한다. 그러나 그 안심도 일시적일 뿐, 근원적인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나 연약한 그물이 항상 거기에 있다. 확인할 방법은 직접 떨어져 보는 수밖에.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 쳐진 그물이 오히려 끝나지 않는 공포로 몰아넣는다.”7

캡차는 일종의 그물망이다. 웹사이트 로그인 등 접근 보안을 위한 절차지만, 목적이 전도될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서 두려운 그물망이다. 그런데 오로지 유사 공포심을 공유하기 위해 오묘초가 유년기 트라우마와 같은 그물망을 끄집어낸 것 같지는 않다. 그물망은 기억과 망각을 솎아내는 층위 산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른다. 그러나 절대적인 이분법은 없기에 그것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오묘초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그런 빈틈이다.

“세상에는 빈틈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쌓아 올린 세계는 아무리 촘촘해도 빈틈이 있게 마련이다. 그물이 세상의 뼈대를 보여주는지는 몰라도 삶 전체를 덮지는 못한다.”8

차오른 살이 되지 못한 조각, 온전하지 않은 기억에 빈틈과 구멍이 관계한다. 그 아래 떨어진 기억은 상실이 되고 부재가 된다. 오묘초는 허상의 그물망 위를 떠다니는 기억을 봤을 것이다. 더 아래로 추락한 기억의 잡을 수 없는 한계도.〈비문증〉 퍼포먼스를 포함해 전작〈의심많은 도마〉(2020),〈브로큰 리얼리티〉(2020)는 그런 한계를 주제로 부각한 작업이었다. 이후 오묘초가 과학과 SF장르를 참조하며 시작한 작업은 한계 너머를 상상하는 것으로, 떠난 자의 자흔을 메우는 방법으로 시도된 것이 아닐까 싶다.


4 오묘초『언급되지 않을 것들의 흔적』 물질과 비물질 2018
5 오묘초 앞의책 p.103
6 김포그니「“예술로 사회적 문제 풀어낼수 있어야”」한겨레 2020.7.2
7 오묘초 《점보 쉬림프》 작가노트에서 발췌 2021
8 오묘초 앞의 글

〈누디 핼루시네이션 #1〉유리, 실버, 피그먼트,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레진, 서지컬 체인
100 × 210 × 130cm 2022

〈누디 핼루시네이션 #1〉 유리, 실버, 피그먼트,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레진, 서지컬 체인
100 × 190 × 90cm 2022

“30대가 되었을 때, 엄마와 나는 다른 세계로 들어섰다.[…] 희미해져가는 엄마의 세상에서 나는 매일 파편화된 시간을 헤집어 간신히 존재했던 기억을 겨우 건져 올릴 수 있었다. 엄마의 사고에는 언제나 공백이 있었고, 구멍 난 기억은 하찮은 사건이 되었다. 부재는 그것이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을 때 쓰는 표현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없지만 존재한다. 반면 공백은 그야말로 없는 것, 잃어버린 것이다. 나의 세계에서의 부재가 엄마에게는 공백이었다. 어느새 엄마의 구멍 난 시선은 내가 대상을 바라보는, 부재한 현상을 쫓는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9

〈브로큰 리얼리티〉《수림미술상》 수림큐브 전시 전경 2020

미래의 기억을 찾아서
2022년 그룹전《데이터 정원》10에서 발표한〈누디 핼루시네이션〉에서 오묘초는 살성의 조각을 생물과학적 전경으로 완성해 등장시켰다. 이어 구축된 서사는 그들 조각에 미래 선상의 시제를 부여하는 장치가 되었다. 조각이 실재적 즉물성을 벗어나 비가시적 존재를 소환하는 상징체로 기능하고, 시공과 관계된 관념의 것이 되었다.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조각을 건축과 풍경의 장으로 확장해 범위를 구했다면,11 오묘초가 의도한 조각은 거기에 시간의 축을 추가하여 사차원의 장에서 펼쳐지기를 바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움직이지 않으나 살아있다고 여겨지는 생경한 조각이자, 미래 시점의 이질적 생명체라 사유되는 것들의 연작 〈누디 핼루시네이션〉은 작가가 지은 SF소설「메모리서처」와 함께 할 때 보다 깊이 이해될 수 있다. 오묘초는 글랜즈먼 박사의 바다달팽이 기억 전이 실험에 영감을 받아 해당 소설의 플롯을 짰다. 소설은 기억을 거래하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서 기억은 화폐 가치에 의탁하며 소비 상품으로 전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미성년자 기억 삽은 10여 년 전만 해도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기억도 일종의 스펙이 되면서 0퍼센트대 부모들이 자녀를 데리고 센터에 나타나는 일이 흔해졌다. 물론 이들은 자식에게 기억 삽입을 했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기 때문에 소문이 퍼지거나 유행하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센터를 찾는 부모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많아졌다. 어쩌면 자녀에 대해 고민하던 부모들이 모두 같은 결론에 이른지도 모른다. 좋은 경험을 주긴 어려우니 좋은 기억을 심어버리자고.”12

「메모리서처」 속에서 기억을 재화로 파는 기업 ‘화이트메타’의 서사는 VR영상〈배럴아이〉를 통해 실사화된 경험으로 관람객에게 전달됐다. 그런 한편,〈누디 핼루시네이션〉 조각은 바다달팽이의 외·내형을 닮은 모습으로 설계되었다. 연체동물의 부드럽고 유연한 살은 비정형 곡선을 한 유리조형, 젤리 느낌으로 바닥에 퍼진 레진 설치물로 각기 대체됐다. 서지컬 체인과 스테인리스, 은 등의 금속성 물질은 휘어진 곡선을 띠면서 바다달팽이의 촉수가 되어주고 있다. 바다달팽이의 피막일 투명 유리 안쪽에는 뉴런의 긴 섬유질과 신경 세포체일 가지 줄기가 보인다. 모사된 바의 의미가 그렇다면 거기에는 이식 가능한 기억도 있을 것이다. 바다달팽이의 살을 은유하며 육화된 조각, 인식의 지평을 넓힌 경계적 산물이 기억의 실체를 가시화한다.


9 오묘초 작가노트 2021
10 수림문화재단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공동주최한《Artist View of Science 2022 : 과학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의 일환으로 진행된 전시
11 Rosalind Krauss Sculpture in Expanded Field October Vol.81977 pp.30~44
12 오묘초「메모리서처」미출판 원고 2022

역사를 환원하듯, 고생대의 원시 생물을
닮았으되 그와 다른 종일 이들은 더이상
인간의 기성 지식과 지능에 따라 정의되는
생명체가 아니다. 새로운 뇌, 다른 유전과
진화의 정보를 가지고 배태된 무엇이다.

이듬해 오묘초는〈누디 핼루시네이션〉을 더 발전시킨〈변형액체〉작업을 통해, 지구 멸망 후 모종의 생물종이 나타나 생존해가는 모습을 생각한다. 현생 인류 이후의 존재를 가정하고 그들의 살과 뼈를 유리와 금속물질로 대체하며, 미래형 생체조각으로서 선보인다. 온도가 다른 환경에서 그들은 봉인이 풀리듯 반고체화되어 유동할 수 있다. 실제로 오묘초가 유리와 금속을 액화 뒤 소성시키는 방법으로 조각을 만들어왔음을 상기한다면, 이 같은 가정은 작가의 세계관에서 자연스럽게 융화된다. 단백질을 대체한 미래의 살 속성은 그렇게 창안된 것이다. 역사를 환원하듯, 고생대의 원시 생물을 닮았으되 그와 다른 종일 이들은 더이상 인간의 기성 지식과 지능에 따라 정의되는 생명체가 아니다. 새로운 뇌, 다른 유전과 진화의 정보를 가지고 배태된 무엇이다.

세상에 없는 존재의 모습을, 그물망 사이로 빠져나간 기억의 자취를, 오묘초는 상상한다. 사라진 기억과 도래하지 않은 미래가 자리바꿈을 하는 것 같은 여정에 우리도 어느새 동참하고 있음을 느낀다.


《변형액체》 수림큐브 2023 전시 전경

〈BIRTH〉(부분) 유리,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가변 설치 2023

《변형액체》 수림큐브 2023 전시 전경
제공 : 작가

*본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24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기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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