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언어-수》

광주시립미술관
2024.6.5~8.15
Exhibition Focus

이이남 〈신은 수학자였을지도 모른다〉거울, 빔프로젝터 12분 24초 2024
《우주의 언어-수》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우주의 언어 -수

양초롱  독립 큐레이터


수학은 직선 원근법, 대칭성 분석, 뫼비우스 띠와 같은 수학적 객체와 같은 개념 도구를 사용하여 예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왔다. 시각예술과의 관련성 속에서 수학은 예술가에게 도구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수학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 우리의 흥미를 앗아가며, 때로는 공포스러운 존재로까지 느껴진다. 산수 이외의 고차원적 수의 개념은 일상생활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수를 이해하는 사람은 일반인과 무척 다른 존재로 여기는 것 같다. 문제 풀이에 능숙한 한국인에게 수학은 더더욱 이해보다는 계산에 가까운 존재이다. 그러나 수, 양, 공간의 구조와 성질, 변화 및 논리 등을 연구하는 학문인 수학은 경험적 과학과 달리 인간의 논리적 사고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확장시켜 나가는 선험론적(a priori) 학문이다. 어찌 보면 수학의 발전으로 인해 과학과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이 가능했다. 그래서 오늘날 수학은 과학을 풀어나가기 위한 핵심적인 도구로 사용된다.

어렵다는 이유로 대중과 멀어져 있는 수학을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우주의 언어-수》 전시는 ‘수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기존 작품들과 신작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전시는 ‘신은 수학자였을지도 모른다’, ‘예술 너머 수학 : 변화하는 세상을 보여주다’, ‘수학 너머 예술 : 미지의 세상을 보여주다’의 3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어 ‘수’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 접근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예술과 수학의 관계에 관한 작업뿐만 아니라 수학과 다양한 분야의 융복합 접근에 따른 작품, 이와 관련된 광주시립미술관 소장품으로 전시가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 ‘신은 수학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수학의 역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신은 수학자였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수학은 세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섹션은 수학의 역사를 다양하게 살펴보면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수학이 미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작품이 배치되어 있다.

SPACE 0〈Eternal Light- Space 0〉
스테인리스 미러볼 펀치 LED, 백 미러, 솔라 프로그램 비디오 프로젝션, LED 코스모스 1,000 × 500 × 400cm 2024
《우주의 언어-수》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이이남은 수학의 여러 분야의 역사를 통해 수학의 힘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작품과 만물에 스며든 수학적 질서와 체계가 창조주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전인경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져 한민족의 세계관이 반영된〈천상열차분야지도〉(국보 제228호)의 천문도 패턴에 전통색인 단청 오방색을 입혔다. 우주의 먼지와 가스를 배경으로 묘사한 〈우주의 패턴1〉(2024)은 서양인의 시선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주에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지를 별자리와 오방색, 세계 등의 관계를 통해 지도화함으로써 흥미롭게 보여준다.

기원전 5세기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서양에서 우주에 대한 미학적-수학적 관점을 탄생시킨 가장 중요한 사람은 피타고라스이다. 그는 우주와 현실의 질서와 규칙을 수에서 찾았다. ‘만물의 근원은 수’라는 그의 주요 테제는 존재와 철학, 그리고 우주(세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성찰을 제공한다. 또한 그는 현의 길이와 소리의 주파수의 관계를 발견하고, 음높이와 진동수의 관계, 5음의 음계를 체계화했다. 음악을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여겼다. 음악의 수학적 원리에 대한 연구, 즉 음정과 음계를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음악 이론은 바로크 음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바로크 음악은 화성의 발전, 대위법의 확립, 오케스트라의 발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서양 음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수의 연구, 음악, 천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건축,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세계를 창조했던 ‘신’의 관점을 빌려, 세계를 구성하는 ‘수’의 기원을 살펴본 이 섹션은 세계와 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홍혜란〈오일러 공식〉철 1,500 × 3,000 × 1,800cm 2024
《우주의 언어-수》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두 번째 섹션 ‘예술 너머 수학 : 변화하는 세상을 보여주다’는 예술 작품 속 수학 개념들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김현호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표적인 수리적 모형을 통해 복잡한 인간의 행동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추론하는 과정을 퍼포먼스 형태로 전시한다. 이 섹션은 수학에서 중요한 수의 개념, 함수, 기하학에 관한 해석을 엿볼 수 있는 장으로, 김현호를 비롯해 권영성, 김주현, 송민규, 정재일, 홍혜란의 작품이 펼쳐진다.

권영성과 송민규의 작품에서는 모든 사물의 관계를 표현하는 함수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관계의 문제를 그래프와 지도의 방법론을 이용해 기호화한 권영성의 〈산과 아파트의 관계 그래프〉(2014)는 자로 잰 듯한 조감도의 형태 같다. 그러나 따스한 색톤과 면밀히 그려낸 오브제를 살펴보면, 어떤 특별한 공간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일반적인 지도의 적용 방법과는 아주 다르게 중요한 표시가 아닌 우리 스스로 관심 없이 보는 것들에 관해 묘사함으로써 그런 일상 풍경들을 뭔가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송민규의〈영광의 움직임〉(2022) 역시 자신이 경험하는 풍경들을 수치 데이터로 전환하여 패턴과 기호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가 헬스장에서 본 기구들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관찰해 중력 에너지와 질량의 관계 등을 나타냈다.

최우람〈하나-이박사님께 드리는 답장〉
철, 타이벡 섬유, 모터, 전자장비 180 × 250 × 250cm 2020

또한 이 섹션은 광주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기하학 추상화를 전시한다. 대표적으로 강용운의 〈기억 II〉(1999)에서 선보인 패턴과 거친 붓놀림의 질감에는 행복, 슬픔, 후회, 기쁨, 따뜻함 등 다양한 기억들이 존재하며, 하동철의 〈빛〉(1991)은 공간과 공간 사이에 빛이 전달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기하학적 요소로 표현된 이 작품은 색채, 선, 반복적 패턴 그 자체로 우주의 수학적 원리가 짙게 깔려 있다.

이렇듯 수학은 예술의 관점과 시각적 인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무리수인 황금 비율은 오랫동안 예술가와 수학자들을 매료시켰다. 황금 비율은 자연과 인간의 지각에서 발견되는 미학적 비율로, 건축, 회화, 조각 등 예술의 다양한 측면에 나타난다. 두번째 섹션은 ‘수’가 어떻게 우주의 언어가 되었는지, ‘함수’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기하학’은 지금 미래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등 ‘수학’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에 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이 섹션은 대중이 수학에 대해 가장 궁금해 하는 4개의 질문 -‘수학은 무엇인가’, ‘수학으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수학은 왜 공부하기 어려운가’, ‘수학 공부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할 수 있나’- 을 토대로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대중의 질문을 확장하는 관객 참여형 전시 및 세미나를 개최한다.

마지막 섹션 ‘수학 너머 예술 : 미지의 세계를 보여주다’는 다른 학문과 융복합함으로써 다양하게 확장되는 수학을 예술 작품들을 통해 보여준다. 최우람은 수학을 기반으로 발전한 기술공학을 이용한 키네틱 아트로 움직이는 아름다움을, Space 0는 나사(NASA)에서 보내온 수 데이터를 통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수학적으로 계산한 이다희의 작품은 음악의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이다희의 〈S. Bach-Prelude in F# Major bwv858〉(2023)은 수와 음악의 내밀한 관계를 시각적 요소로 패턴화된 작업이다. 우리는 화음 구성의 기초가 되는 순정률과 화성학의 기본 개념이 음악에 있어서 피타고라스적 조화의 개념에 근거한 영속적인 견해를 다시 한번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오현금, 이주행, 채종혁, 홍혜란 등의 작품을 통해 수학 공식이나 블록체인, 기술공학, 우주공학 등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Space 0의〈Eternal Light-Space 0〉(2024)는 나사에서 보내온 빅데이터의 세계를 빗대어 우주의 아름다움을 심미적으로 묘사한 작업이다. 즉, 실시간 위성 접속 시스템인 API를 통해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영상 시각화함으로써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의 무한성을 숫자 0으로 설정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김현호〈경제의 수리적 표현 : 최적화와 균형〉퍼포먼스 200 × 540cm 2024
《우주의 언어-수》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최우람의 키네틱 작업 〈하나-이박사님께 드리는 답장〉(2020)은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는 꽃 형상의 작품이다. 시작과 끝, 삶과 죽음은 하나이며, 그 하나의 과정에 수많은 시간이 담긴다. 그러한 시간은 여러 꽃잎으로 중첩되고, 어떤 시간을 담은 역사의 페이지처럼, 피었다 졌다 하는 반복된 과정에서 또 다른 창조적 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전시에 소개된 일련의 작품을 통해 기술의 발전에 따른 수와 예술의 관계 변화를 유추할 수도 있다. 수를 바탕으로 논리 체계를 연구하는 수학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캐논(canon)과 원근법이다. 원근법은 고대 그리스 건축에서 처음 사용된 것을 시작으로, 15세기 초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소실점이 정식화된다. 수학은 직선 원근법, 대칭성 분석, 뫼비우스 띠와 같은 수학적 객체와 같은 개념 도구를 사용하여 예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왔다. 시각예술과의 관련성 속에서 수학은 예술가에게 도구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중세의 루카 파시올리와 르네상스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경우가 그러하며, 아이작 뉴턴의 광학 스펙트럼에 관한 연구는 괴테의 색깔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예술을 탐구하는 수학자나 수학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가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작품의 비율, 대칭, 형태, 테셀레이션 등을 이해하기 위한 색상과 빛의 조합은 수학적인 계산에 기반을 둔다. 기하학 패턴인 프랙탈은 디지털 아트에서 직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형태로 나타난다. 수학적 알고리즘,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자동생성, 수학적 규칙과 매개 변수는 무한한 변형을 허용하며 디지털 아트의 발전에 기여한다. 프랙탈에서 셀룰러 오토마타와 같은 수학적 객체를 탐색하는 컴퓨터 아트의 등장까지 미술과 수는 그 자체로 미학적 요소로서의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관객은 전시를 통해 예술과 수학 사이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들을 직 ·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으며, ‘수학’의 의미를 재해석해 볼 수 있다.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로 대중과 멀어져 있는 수학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이 전시는 수학적 발견의 쾌감을 통해 더운 여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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