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 급진화될 때
김정현 미술비평
Art Critique

민나 헨릭슨 & 아흐메드 알-나와스 《창세기》 렉처 퍼포먼스 전경(2025.11.7)
사진: 이동웅 제공: 로쿠스 솔루스
나는 예술의 정치적 실천이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마는 불응, 저항, 갈등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동참하여 일시적인 공론장을 발생시키고, 이어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관이 문화를 보존한다면, 행동주의 예술은 갈등을 보존한다. 미결의 검열 사태들 이후 숱한 시위, 퍼포먼스, 토론, 때로 패배한 법정 투쟁마저 있지만, 그것은 실패와 좌절의 역사가 아니라, 공공 기관이 독점하게 된 공적 영역을 되찾아와 다시 창출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보는 방법
가끔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미술에 어떤 희망을 투사하는가. 미술관/전시가 미술이 일차(원)적으로 펼쳐지는 장소라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가 왜 미술관을 찾아가 전시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지 떠올려 보자. 가벼운 기분 전환도 좋다. 문화적 실내 산책이라는 시각 연구의 방법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며칠 전에 나는 내게 중요한 한 가지 이유를 오랜만에 다시 떠올렸다. 핀란드에서 온 민나 헨릭슨(Minna Henriksson)과 아흐메드 알-나와스(Ahmed Al-Nawas)의 렉처 퍼포먼스 〈창세기〉(2025)를 통해서였다.
민나와 아흐메드의 전시 《창세기》(로쿠스 솔루스, 2025; 드리프트 페스티벌 공동 기획)와 함께 마련된 동명의 퍼포먼스는 공간 한구석에 쌓아놓은 열 장의 카펫을 한 장씩 떼어내어 바닥에 넓게 펼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간단한 형식의 작업이었다. 핀란드 중부 만따(Mänttä)에 위치한 세를라키우스뮤지엄(Serlachius Museum)의 2023년도 기획전에 초대된 것을 계기로 한 작업이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지만 나는 작년 여름 우연히 이곳에 다녀왔다. 세를라키우스뮤지엄은 훌륭한 근대미술 소장품을 구비하고 국제적인 동시대 미술 기획전을 선보이는 예스타(Gösta)관과, 이를 운영하는 세를라키우스문화재단의 모기업인 제지기업 G. A. 세를라키우스주식회사의 구 본사 건물을 기업박물관으로 조성한 구스타프(Gustaf)관 두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나와 아흐메드는 구스타프관에서 전시하면서 공장의 역사에 관심을 두고 노동자 투쟁의 관점에서 도시의 역사를 조망했다.
이 작업에 호기심이 생긴 이유는 우선 지난해 구스타프관에서 상설 전시를 꽤 감명 깊게 봤기 때문이다. 회장단 회의실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으로 그려진 거대 노동자 군상이 걸려 있고, 공장의 역사를 개괄하는 전시 코너에서 피켓 시위하는 노동자들의 일러스트가 눈에띄었기에, 노동하는 신체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노사 갈등의 역사까지 반성적으로 포괄하는 드문 기관이라고 기억한 것이다. 민나와 아흐메드의 작업은 벌써 흐릿해진 기억을 환기할 뿐 아니라 나의 모호한 인식을 파고들었다. 두 작가가 노동자 투쟁의 역사를 통해 도시의 삶을 그리는 데 반해, 기업박물관인 이곳은 창업주 일가의 시점에서 도시의 탄생과 흥망을 서술한다. 20세기 초의 춥고 척박한 핀란드 중부 내륙 지방에서 어느 기업인이 산업을 일으키고 도시 전체의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영웅 서사는 구스타프관을 관람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창세기〉를 통해 다시 본 역사에는 심각한 노동자 탄압과 희생이 있었다. 물론 상설전에는 거의 가시화되지 않고 지워지다시피 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이곳이 노동자 친화적이라는 인상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임원들의 사무실마다 장식된 노동하는 신체의 이미지가 그동안 내가 미디어 등을 통해 접한 동시대 기업의 추상적인 공간 풍경과 달랐기 때문인 듯하다. 노동자의 이미지를 기념비적으로 이상화하는 사회주의의 실패한 전략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사실상 독점한 세계-한국에서 낭만적으로 붙들고 있던 게 아닐까. 민나와 아흐메드의 텍스트 작업 중에 세를라키우스 공장에서 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해 작성한 서류에서 인용한 대목이 있다. 붉은 바탕으로 옮긴 “덜 바람직한 노동자/ 공공장소 붉은 셔츠 착용/파업 선동 성향 유/산업 평화 유지 위협 가능/직장 내 수다쟁이”는 요주의 인물이며, 푸른 바탕에 옮긴 인물은 “공산주의 활동으로 해고/맨태 자유노동조합, 애국민회원 IKL 소속 후 복직/노동자 회관 행사 불참/결점 없음”으로 허용한다. 〈창세기〉는 이미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과제가 미학적 과제에 한정되지 않고, 지극히 현실적인 가치판단의 문제에 결부됨을 깨닫게 한다. 노동하는 신체의 이미지는 이론적 이념주의자에게 노동자의 주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숭고화되는 동시에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가에게 순종적인 기계의 상징적 표상이 될 수 있다. 동시대 미술은 이렇게 보는 눈의 순진함을 비판적으로 일깨우는 기획이 될 수 있다.
정향
의식은 언제나 모종의 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공평무사하게 세상을 수용하고 인식한다는 사고는 권위적이고 규범적인 문화를 지향하는 주체의 것에 가까울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그간의 글쓰기에서 의식적으로 자제해왔던 ‘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글을 쓰는 주체의 위치를 생략하거나 ‘필자’라고 객관화된 관습적 표현을 쓰는 것은 글의 대상과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객관성을 추구하는 고전적인 전략이자, 독자에게도 저자 및 대상과 거리를 두고 이성적으로 사고할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서 요즘에는 인기가 없지만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기서 글을 쓰는 나의 위치를 강조하여 밝히는 것은 ‘편견’으로서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즉, 이 글의 제목으로 내세운 ‘의식이 급진화될 때’란 개별 주체의 주관에 매개되어 비로소 발현되는 긴급한 사고에 관한 것이 아닌가. 내게 가장 시급한 주제란 무엇인가? 지난해 월간미술 11월호에 기고한 글 「매일이며, 생활이고, 돌봄이며, 꿈인 것 – 탈장소와 장소로서 비어 있는 몸」에서 밝혔듯이 최근 몇 년의 삶을 통해 그것은 이동하는 삶의 위태로움이 되었다. 날마다 새로운 전시와 이벤트가 폭발하듯이 열리고 닫히는 서울을 벗어나서 자발적으로 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2025)를 보러 찾아간 이유다.
이 전시는 표제 이미지로 14개국 언어로 번역한 제목을 한 화면에 나열했다. 담당 학예사인 박지영은 수도권을 제외하고 재한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경상남도의 지역성에 주목했으며, 이곳에 자리한 14개국 교민회의 언어를 빌려 전시의 얼굴로 삼았다. 전시 제목과 함께 벽면에 새긴 이 한 장의 이미지만으로도 국내 이주사 주제 전시를 대표할 만한 기념비적인 장면이 될 법하다. 전시 구성과 세부 프로그램 모두 매우 사려 깊게 기획된 이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2전시실 ‘지금, 여기’ 섹션에서 벽면 전체를 두른 연표 형식의 아카이브 작업이었다. 19세기 중순부터 점차 증가한 한인의 해외 이주사와 1899년 마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의 유입부터 전후 마산 귀화 동포촌 형성과 같은 경남 이주의 역사가 흑백 기록 사진과 간략한 설명과 함께 펼쳐졌다. 또한, 내국인의 해외 이주나 외국인의 국내 이주를 무난한 에피소드 중심으로 다룰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창원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며 집을 강제 철거당하고 내쫓기는 원주민과 철거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사진 기록도 포함하며 국가 폭력의 현대사를 직시하게 했다.
이 전시에서 경남 이주민은 연구 대상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층위에서 주체적인 행위성을 지닌다. 경남노동자상담소에 제출된 이주 노동자들의 모국어 자기소개서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라 각국 이주민들이 직접 작성한 한국어 번역본과 함께 전시된다. 〈지금 여기 살고 있습니다〉(2025)에 소개된 영상은 경남이주민센터와 교민회를 통해 모집한 이주민 참가자들이 직접 촬영한 일상을 전문가가 편집하는 방식으로 공동 창작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의 연표 아카이브는 이주민의 정치적 행위주체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주민 인종차별과 강제 추방에 반대하는 출신 국가별 노동조합-교민회, 종교단체, 지역 중소기업의 연대, 성명, 시위의 현장부터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지진해일 피해 지원 모금(2004)이나 미얀마 민주주의 연대 일요 시위(2021~2023)까지, 이와 같은 실천은 이주민이 자신의 소수자성을 연대와 저항의 자원으로 삼아 왔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이동하는 삶은 주체를 고립시키지 않고 다양한 소수자 주체와 연대하며 시민 공동체를 형성하고 강화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갈등을 보존하기
앞서 언급한 두 작업의 사례에서 예술과 정치의 영역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정치 이론가 샹탈 무프의 설명대로 “정치에는 미학적 차원이 있고, 예술에는 정치적 차원이 있”기 때문이다. 부연하자면 “예술은 기존의 상징 질서를 구성하고 유지하거나 그것에 도전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측면이 있다. […] 정치는 인간 공존의 장면과 서식으로서의 사회적 관계의 상징 질서에 관련된다는 점에서 미학적 측면이 있다.”1 〈창세기〉에서 노동 투쟁의 역사를 통해 도시사를 비판적으로 재고한 민나와 아흐메드는 이 작업을 의뢰한 뮤지엄의 노동 착취에 희생된 창작 노동자이기도 하다. 애초에 카펫으로 제작한 작업이 렉처 퍼포먼스로 발전하게 된 것은 미술관이 창작비 지급 대신 작품 소장을 구두로 약속했다가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해프닝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경남도립미술관의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는 국내외 이주민의 역사 아카이브와 근·현대미술 작품을 한데 모아 예술과 정치가 서로의 복합적인 차원을 환기하고 강조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두 작업을 통해 의식이 급진화되는 순간을 발견한 것은 그 안에 ‘갈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서울 미술 현장에서 비평가로서 첨예하게, 또한 가깝게 인지할 수밖에 없던 사건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의 비평 검열 사태가 있다.2 여러 화자가 다양한 지면과 장소에서 계속 언급하고 있는 이 사건의 기묘함은 ‘행동주의’를 의제로 삼아 관련 예술가와 활동가를 초대한 기획에서 바로 그것의 비판적 능력을 검열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8월 비평가와 작가 등이 모여 독립적으로 조직한 ‘미술, 제도, 검열: 서울시립미술관 검열 사태 토론회’(2025.8.22)에서 주최자 중 한 사람인 이진실 비평가는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공공성을 미술관에 요청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검열을 당한 당사자인 남웅 비평가는 한 지면에서 “2000년대 초부터 빈번하게 이뤄져 온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가 공론화되고, 미술기관이 포용과 환대, 미래와 공동체의 가치를 표방하는 상황에서 검열은 예술기관에도 민감한 사안”이 되었지만, “정세와 예산 변동, 인사 등에 따라 언제고 취약해질 여건에 놓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3 서울시립미술관은 여전히 수긍할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8월에 열린 토론회에서도 지속적인 항의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는 ‘한국 미술계에서 공적 영역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공공기금 사업이 팽창한 2010년대를 거치며, 공적 자금과 공공 기관을 중심으로 극도로 제도화된 당대 한국 미술 현장에서는 제도 비판뿐 아니라 제도와의 대화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종류의 대화인가? 합리적 합의를 목표로 하는 하버마스식의 정치적 공론장을 전제로 하는가? 나는 다시 무프의 사고에 기대어 공론장의 형상을 그려보려고 한다. 무프는 정치적인 것의 본질적인 적대(antagonism)적 차원을 인식하면서, 갈등을 해소하려 하지 말고 적대를 경합(agonism)으로 전환하여 민주적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민주적 정치의 경합 모델은 최종적 합의의 지대로서의 공론장이라는 널리 퍼진 개념에 도전한다. 경합 모델에서 공론장은 최종적 화해의 가능성 없이 서로 다른 헤게모니 프로젝트가 맞닥트리는 전장이다.” 또한 그러한 공론장은 “단 하나의 공간이 아니”며 “항상 복수적”이다.4
오래된 정치 이론을 재고하여 내가 다시 강조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 국공립미술관과 같은 공공 기관은 공적 영역의 핵심적 실체는 아니며, 적어도 단일한 장소는 아니다. 나는 여기서 한국 동시대 미술 현장이 공적 자본과 공공 미술관에 과도하게 의지하고 순응하게 되었다고 의심한다. 둘, 공적 영역은 존재론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것으로서 탄생한다. 즉, 공적 영역은 주체의 구체적인 활동으로 창출된다. 예를 들어 리트레이싱 뷰로의 리서치북 『주변으로의 표류』(2022)5에서 심소미 독립 큐레이터는 코로나 팬데믹 발발 이후 파리에서 더욱 규율화된 도시 공간의 풍경에 주목하는데, 신체적 이동을 관리하고 금지하는 도시의 포화한 기호들 뒤편에서 “진짜 바이러스는 자본이다”, “가사노동은 노동이다”와 같이 시민 불복종의 선언을 담은 각종 그래피티를 발견한다. “며칠 후면 단속반에 의해 사라지는 한시적인 그래피티는, 마치 인터넷의 피드처럼 쓰여지고 사라지고 다시 쓰여지기를 반복하며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거리 벽면을 공공영역으로 변모시켰다.”6 나는 예술의 정치적 실천이란 이렇게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마는 불응, 저항, 갈등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동참하여 일시적인 공론장을 발생시키고, 이어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관이 문화를 보존한다면, 행동주의 예술은 갈등을 보존한다. 미결의 검열 사태들 이후 숱한 시위, 퍼포먼스, 토론, 때로 패배한 법정 투쟁마저 있지만, 그것은 실패와 좌절의 역사가 아니라, 공공 기관이 독점하게 된 공적 영역을 되찾아와 다시 창출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본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25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 기고이다.
1 Chantal Mouffe “Artistic Activism and Agonistic Politics”(2007) Atlas of Transformation http://monumenttotransformation.org/atlas-of-transformation/ html/p/political-environment/artistic-activism-and-agonistic-politics-chantal mouffe.html
2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기획전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2025) 도록에 남웅 비평가의 원고가 ‘계엄’을 비판한 이유로 배제된 사건
3 남웅 「‘약자’의 연대, 윤리의 감성학」 『아트인컬처』 2025년 9월호 p.149
4 Chantal Mouffe 앞의 글
5 심소미 외 공저 리트레이싱 뷰로 편집 『주변으로의 표류: 포스트 팬데믹 도시의 공공성 전환』 무빙북 2022
6 위의 책 p.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