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 Jiseon Lee Isbara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리더십

심지언 편집장

The Interview

실험적 융합교육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아온 시카고예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이하 SAIC). 그 160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한국인이 있다. 바로 SAIC 최초의 이민자 총장이자 두 번째 여성 총장으로 취임한 이지선 총장이다. 한국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한 한 명의 유학생이, 수많은 장벽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예술교육 기관을 이끄는 리더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그 자체로 많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키아프-프리즈 서울의 토크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이 총장을 만나 한국과 미국을 잇는 예술적 경험, 학제 간 융합 교육을 통한 혁신적 비전 등 작가, 교육자이자 행정가로서의 여정을 들어보았다.

이지선 / 이화여대에서 미술학 학사 및 석사(섬유 전공),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미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5년 가까이 고등 교육계에 몸담으며 오티스미술디자인대 부총장, 오리건 예술공예대학 임시 총장 및 학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학제 간 융합과 학생 중심의 교육을 이끌어왔다. 교육자인 동시에 작가로 활동하며 이민자로서의 정체성과 언어, 문화, 가정, 여성성, 이주 경험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2024년 7월 시카고예술대학의 제16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사진:박홍순

작가에서 행정가로, 호기심이 이끈 여정

 SAIC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총장이자 첫 이민자 총장이 되셨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영예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상징하는 바가 커 보입니다.
SAIC의 총장으로 임명된 사실 자체가 저의 인종, 성별, 이민자 신분 등의 요소를 떠나 개인적 영광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특히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대학인 SAIC에서 총장직을 제안받았을 때, 그 자체로 무엇보다 큰 기쁨이었습니다. 동시에 여성이자 유색 인종, 그리고 첫 이민자 총장이라는 사실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SAIC에는 무척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있고, 교직원과 교수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총장으로 임명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학교 구성원의 변화와 다양성을 반영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시카고예술대의 제16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구상하는 첫 계획은 무엇이었나요?
SAIC은 내년이면 개교 160주년이 되는 학교입니다. 역사가 깊고 체계적으로 운영되어 온 학교이기에 그 명성과 가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어떻게 안정적으로 운영할 것인지가 저의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또한 재능있는 교수진을 계속 학교로 모시는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교육비에 대한 문제입니다. 특히 미국은 교육비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졸업 후 진로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궁금증이 상당합니다. SAIC는 졸업생들이 여러 분야에 진출해 있기에, 학생들에게 다양한 커리어를 선택할 기회를 폭넓게 제공할 수 있고 이것이 현시대 대학의 중요한 목표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하고, 미국에서도 섬유미술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작가로 출발해 교육자와 행정가로 자리매김 하기까지 여러 전환의 순간이 있었을 텐데요,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작용한 계기나 내적 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화여대에서 섬유예술을 공부해 석사까지 마쳤는데, 섬유예술과가 원래는 자수과였어요. 그러니까 전통적으로 좋은 신붓감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에서 현대미술로 이행하면서 성격이 변한 과에서 공부한 거죠. 미국 유학을 선택한 건 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처음 유학 갈 당시에는 빨리 학위를 따고 귀국해서 한국에서 작업을 계속하며 교수가 되거나 작가 생활을 이어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작업과 더불어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돌이켜 보면 처음 교수직을 맡았을 때는 그저 철없는 젊은 작가였어요. 교수 생활을 2~3년 이상 경험해보니 교육이라는 것이 제가 생각한 것보다 깊고, 학생들의 어려움과 희망을 함께 고민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더 진지하게 임하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행정을 맡게 되고 서서히 행정 영역이 확장되어 갔어요. 지금까지 설계한 계획에 따랐다기보다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가에서 교육자, 행정가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굳이 계획하지는 않았으나 자연스럽게 다음 역할로 이어졌군요. 그 자연스러운 이행에는 주변에서 인정할 만한 뛰어난 역량, 또는 본인만의 장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제가 모든 분야에 호기심이 굉장히 많다는 것입니다. 작품을 할 때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 학과장이나 학장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행정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학장의 일은 무엇인지 매번 궁금했죠. 잘 모르는 일이지만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기에, 기회가 주어졌을 때 뛰어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는 제가 작가로 작품 활동과 전시를 해왔기 때문에 동료 교수, 그리고 학생들의 어려움이나 열망을 다른 행정가들에 비해 잘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경험이 학장이나 총장으로서의 역할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엇을 바라볼 때 늘 넓은 시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행정 업무에서도 당장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기보다,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를 하도록 훈련되어 온 것 같습니다.

키아프 서울×예술경영지원센터×프리즈 서울 토크 프로그램에 참석한 이지선 총장
(오른쪽 맨 끝) 제공: Kiaf SEOUL ⓒ Creative Resource

한국에서 출발해 미국 예술교육의 중심에 서기까지의 여정에서 가장 크게 체감한 문화적 차이와 가능성은 무엇이었나요?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갔을 당시는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대였어요. 정보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었기에 모든 것을 직접 부딪치며 경험했죠. 그중 가장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낀 문화적 차이는 바로 자유로운 토론이었어요. 누구나 자유롭게 본인의 생각을 말하고 질문하고 답하는 미국의 문화 자체가 저에게는 충격적이었죠.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정중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놀라웠어요. 어렸을 적 한국에서 ‘말대답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질문을 할 분위기도 아니었으니까요. 특히 당시만 해도 어른이나 선생님의 피드백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환경에서 자라왔잖아요. 이런 문화와는 너무나 다른 대화와 토론이 저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고 자극이 되었습니다.

SAIC, ‘실험과 혁신’의 교육 철학

국내에도 SAIC의 명성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학점 대신 ‘Pass/Fail’ 제도와 전공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적 교육 등 실험과 혁신을 중시하는 독자적인 교육 철학을 실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SAIC의 명성을 만들어온 미술교육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SAIC 교육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시카고라는 도시 자체가 가진 깊은 역사와 다채로운 사회 구성원, 뛰어난 건축 환경 등 도시가 제공하는 특별한 환경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시카고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과 대학이 같은 재단으로 학교의 많은 자원 중 하나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미술관 운영 시간 동안 언제든지 자유롭게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고, 교수들은 미술관에서 직접 작품을 보며 토론, 연구하는 수업을 진행합니다. 또한,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교수들과 파트너가 되어 작가 프로그램을 연계하는 등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세 번째는 커리큘럼에서 가장 중요한 전공의 경계를 허문 스튜디오 중심 교육입니다. 학점은 합격/불합격(Pass/Fail) 제도를 운영하여 불필요한 경쟁을 지양합니다. 학생들은 입학 시 전공을 정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형태와 재료, 아이디어를 갖추어 나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교수진도 대부분 학제 간 융합적 실천을 보여주는 분들로, 학생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실패를 감수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합니다. 이 덕분에 SAIC 졸업생들은 성공적인 작가로 성장하기도 하고,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창의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실제로 6,500명 이상의 한국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제가 미국에서 일해 온 모든 기관에서 SAIC 출신들과 함께 일했을 만큼 많은 졸업생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SAIC는 순수미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공예, 패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학제 간 융합을 강조하는 교육 철학이 급변하는 현대미술계에서 큰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모든 교육 과정에는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의 성향에 따라 한 전공만 깊게 공부하는 것을 선호하고 그것이 잘 맞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SAIC을 선택하는 학생은 이미 학교의 다양한 융합 교육과 독립적·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교육 철학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고, 이러한 교육 방식이 자신의 예술적 성향과 맞는 학생들이 SAIC을 선택하는 것이죠. 이처럼 학교와 학생의 궁합이 잘 맞아야 가장 성공적인 교육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SAIC은 160년 동안 축적된 노하우로 교육 과정이 훌륭하지만,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학생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졸업생 대부분이 예를 들어 페인팅, 패션, 애니메이션 등 보통 두세 가지를 공부했다고 얘기합니다. 이것은 다전공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보다 집중했다는 의미로, 경계 없는 창작,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경험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오티스 미술디자인대 재직 시절 학교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기반 시설 강화 등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최근 미국 정부의 DEI 정책은 큰 변화를 보이는데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SAIC에서 이를 어떻게 이어가고 있나요?
저는 미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 다양하고 포용적인 나라이며, 이민자를 가장 잘 받아들이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미국 내에서 DEI에 대한 여러 비판적 시각이나 정부 정책 변화가 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계의 역할은 이처럼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미래의 미국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책적 변화가 가져오는 어려움은 적지 않지만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방향을 잡아 나가느냐가 중요하겠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는 시대에 예술가와 예술교육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SAIC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AI 시대에 예술교육의 역할은 ‘복잡한 문제를 가장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AIC은 AI를 사용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창의적으로 사용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희는 AI를 이용해 이미지를 생산하거나 3D 작업을 하는 창작 수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AI와 관련된 지적재산권(IP)과 도덕성 교육도 제공합니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문제의식을 가지고 AI를 활용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른바 Z세대, 알파세대 학생들은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태도와 세계관을 보이고 있습니다. 총장께서는 그들의 열망과 불안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내고 있나요?
제가 처음 교수직을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도 교수들이 ‘요즘 애들은 우리 때와 너무 다르다’며 고민했었죠. 지금 SAIC에서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에, 저는 현재의 Z세대가 안고 있는 고민이 과거 세대의 젊은 사람들이 가졌던 고민과 본질적으로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교육계에 있으면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현재의 젊은이들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매우 깊고 넓다는 것입니다. 성 정체성, 인종, 이민자로서의 정체성 등 다양한 문제를 사회와 어떻게 타협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교육자로서 저는 항상 어떻게 하면 작가들이 오늘날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고 질문하는 사상가이자 발표자로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카고예술대학 캠퍼스 제공: SAIC

오늘날 미술대학이 직면한 현실적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크게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학 교육은 굉장히 비용이 많이 듭니다. 사립대학의 경우 특히 그런데요, 이 때문에 학생들이 상당한 빚을 지고 졸업하는 경우가 많아 교육 기관으로서 어떻게 하면 학생의 부담을 낮추는 운영을 할 것인지 고민합니다. 장학금 지원 등을 통해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방법에 대한 과제가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SAIC에 오는 학생은 남다른 재능을 바탕으로 용기를 내어 대학에 진학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그 용기를 창의적으로 풀어낼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동시에 모든 학생이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들이 사회에 나갈 때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첨단기술이 세상을 주도하는 현시대에 사용자 입장에서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사회를 성찰하며 문제 해결 의식을 기르는 교육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지선〈Top Ten Books to Read before You Die〉(부분) 책, 천, 실, 염료, 나무
제공:작가

예술가, 교육자, 행정가라는 여러 역할 속에서 가장 소중히 지켜온 개인적 가치 혹은 삶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어쩌다 보니 한 명의 평범한 유학생에서 미국 유수 대학의 총장이 되었는데요, 이 사회에서, 예술 및 교육 분야에서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이는 어떤 자리에 있든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재능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가장 좋은 결과를 끌어낼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비영리 사립대학에서 일하며 학생들의 등록금뿐 아니라 많은 기부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만큼, 제가 사회에 다시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세계를 잇는 시선

작가로서 직물에 담아온 시간과 기억, 정체성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자연스럽게 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이는 작품의 주요 주제로 드러났습니다. 처음 미국에서 작업을 시작했을 때, 큐레이터들은 제가 한국에서 교육받고 온 ‘코리안 아메리칸 여성’이라는 배경에 주목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Koreanness)이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었냐”고 계속 물었습니다. 이전까지 그 부분을 크게 생각해 본 바 없었지만,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제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작품에 연결되었어요.

작품에는 크게 세 가지 정체성이 녹아 있습니다. 첫째는 이민자로서의 고민, 둘째는 두 직업(작가와 교육자)을 가진 일하는 엄마로서의 어려움, 셋째는 1970년대에 딸 둘만 가진 집의 장녀로서 느꼈던 책임감과 기대에 대한 고민입니다. 특히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둘째 딸이 태어났다고 우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여성으로서의 책임과 충족시켜야 하는 기대에 대한 고민이 제 작업의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저는 주로 바느질(stitching) 기법을 사용하는데 이는 전통적인 여성의 기법으로, 이를 통해 전통적이지 않은 현재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며 체감하는 한국 미술의 위상은 어떤가요?
1999년에 유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갔으니, 저는 미국에서 이민자로 26년 동안 살게 된 셈입니다. 제가 20세기 후반에 보고 경험했던 것들은 지금과는 무척 다릅니다. 특히 한국 작가나 한국계 미국 작가들이 인정받고 전시에 참여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어요. 또한, 미국에서 교육받은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미술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확인한 가장 큰 변화입니다.

지난 4월 엑스포 시카고에 20개가 넘는 한국 갤러리가 대거 참여하였고, 동시에 LA카운티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미술관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국의 거물급 작가들의 전시를 보았습니다. 물론 이들의 작품은 미국의 유수 갤러리에서도 전시되었고요. 이처럼 질적, 양적인 측면에서 한국 작가들의 활동이 증가했고, 미술 기관, 민간 부문, 그리고 예술 환경의 모든 측면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커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여전히 미국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국제무대에 많은 기회가 창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미술계는 서구화된 큐레이터, 컬렉터, 기관, 후원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작가나 아시아 작가들이 어떻게 발굴되고 해석되며 평가받는지는 종종 그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서울을 방문하여 가까이서 살핀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요?
저는 한국에 올 때마다 깜짝 놀라요. 제가 자란 한국의 미술 환경과 180도 다른 지금의 환경을 대면하며, 이 변화 자체만으로도 한국 미술계가 대단한 것을 이뤄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급격한 성장은 대개 성장통을 수반합니다. 시장이 갑자기 커졌기에 안정을 찾는 시기가 올 것인데, 그 과정에 어떻게 충격을 줄이며 이어갈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해외에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 보았을 때, 지금 한국 미술계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앞으로 어떻게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지가 가장 중요하겠죠.

최근 다양한 콘텐츠의 글로벌 성공을 목도하며 한국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문화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지금의 한국의 모습이 매우 자랑스럽고,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술가를 꿈꾸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젊은 작가들이 저보다 훨씬 깊고 넓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배울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교육자로서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첫째, 작가의 길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페이스 조절을 잘하면서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작가로서 지속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합니다. 둘째,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작가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척 많습니다. 자신의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하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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