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강 Haekang Lee
전시라는 축제-이해강의 도깨빙 월딩
Artist
〈덩크〉(2024) 옆에서〈도깨비 페스티벌〉을 만든 이들과 함께 한 이해강 프로필 사진 : 박홍순
이해강/ 1989년 출생인 이해강은 홍익대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전공 졸업 후, 주로 그라피티 아티스트와 영상감독으로 활동하다 2017년부터 자신이 사용하던 매체를 캔버스에 정착시키는 작업으로 다수의 단체전과 개인전에 참여했다. 그동안 스프레이 래커와 붓 페인팅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캐릭터에 담아 표현해왔다. 그라피티, 일러스트레이션, 회화, 뮤직비디오 등 사용하는 매체도 다양하다. 《도깨비공원》(갤러리2, 2022) 이후, 도깨비가 작업의 주제가 되었다. 최근 이를 발전시킨 다원예술 프로젝트 ‘도깨비 페스티벌’(TINC, 2024)을 열었다.
도깨비공원 운영 당시 기록 사진
전시라는 축제-이해강의 도깨빙 월딩
조주리 전시기획
페인터로서 이해강을 처음 만난 것은 몇 해 전이다. 왜곡된 기억일까 싶지만, 아틀리에 안 편으로 그라피티용 스프레이가 한가득이었고, 형형색색의 강력한 캔버스가 사방에 도열된 작업실에 설명하기 힘든 귀기(鬼氣)가 흘렀다. 경쾌한 스케이트보드 룩의 이해강의 맑은 표정, 천진한 말투와 대비되어 그렇게 기억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백건대 그날의 작업실 풍경과 화면을 뚫고 나오는 ‘것’들의 울퉁불퉁한 게슈탈트, 그날 접한 이야기 모두 난생처음 듣고 보는 생경함이었던지라, 작은 판단조차 쉽지 않았다. 온통 도깨비였다. 이에 얽힌 장구한 서사와 이해강이 짊어진 예술적 유산들, 신인 작가로서 입증해내고자 했던 작업의 방법론을 듣는 내내 판단을 잠시 멈춰야만 했다. 놀라움도, 공감도, 의심도, 무관심도 오롯이 비평적인 판단이라 할 수 없었지만, 평가를 유예해야만 하는 낯선 작업과 대면하는 순간 익숙하게 소비해오던 시각예술의 교집합을 건너뛰어 무한한 공집합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시간 속에서 두텁게 쌓여온 ‘에픽(epic)’의 한 부분으로 슬며시 침투하는 기분에 비견할 수 있을까. 작업실을 뛰쳐나와 올해 이해강이 준비한 ‘도깨비 페스티벌’로 입장하기 전, 이에 얽힌 프리퀄을 잠시 들춰봐야만 할 것 같다.
우연한 계기로 페인팅을 시작한 이해강은 몇 차례 그룹전과 개인전을 통해 스트리트 아트가 화이트큐브에 침투했을 때 발생하는 이질적 긴장감을 꽤 인상적인 방식으로 펼쳐냈다. 만화나 대중문화 속 캐릭터와 같은 팝적인 소재와 자신의 서사를 결합한 이해강의 작업은 두 가지 대비되는 캐릭터의 모핑 (morphing) 속에서 발생하는 잔영으로 인해 경계가 뭉개지는 듯한 효과를 회화표면으로 끌고 들어왔다. 주저함 없이 그린 것 같은 빠른 속도와 터프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그라피티 작업의 영향이지만, 그와는 또다른 매체 실험이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걸친 회화 이미지는 그린 것도, 칠한 것도 아닌, 마치 즉흥에 기반한 액션 페인팅처럼 다가오지만, 각각의 것들이 명확한 출전을 갖고 있고, 일관된 계획하에 시뮬레이션 되어 나온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렇듯 실재와 가상 사이를 순환하며 만들어 낸 작업 안에는 필연적으로 이항대립적 요소들의 진동과 공백이 동시에 존재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두 세계에 나란히 위치한 작업 간의 접속과 순환에 대한 질문, 이미지의 과잉과 빈곤, 제도화된 미술과 미술에 수렴되는 하위적 요소들 사이에 놓인 장벽에 관한 예민한 인식은 이해강 작업을 촉발시키는 기저의 조건들이다.
〈D1〉 캔버스에 스프레이페인트, 유화 162.2 × 130.3cm 2022
〈D5-깨숑〉 캔버스에 스프레이페인트, 유화 259.1 × 193.9cm 2022
도상적 관점에서, ‘도깨비’는 최근에 등장한 소재처럼 보인다. 초기 작업에서 자주 선보였던 만화나 대중문화 속 캐릭터와 달리 도깨비는 작가의 부친께서 생전에 건립했던 제주도의 도깨비 공원 내에 실재했던 도깨비 캐릭터를 아카이브로서 차용한 것이다. 이해를 돕고자 상세한 설명을 하자면, 2005년 당시 이해강의 아버지, 고(故) 이기후 교수는 제주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당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수집, 연구한 도깨비 캐릭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캐릭터로 재해석하고 서사를 입혀 조형물로 제작하고, 6000여 평(약 1만9835㎡) 규모의 테마파크를 조성하여 운영해 온 바 있다.1 직접 땅을 다지고, 전체 구성과 설치를 완성하기까지 7년이 소요되었고, 그 가운데 탄생한 도깨비 조각의 숫자가 2300여 점이라고 하니, 집념과 강박, 고행과 헌신을 떠올리게 하는 프로젝트였음을 은밀히 가늠해 본다. 그러나 세간의 큰 주목과 높은 평가를 받았던 공원은 건립 2년 만에 급작스럽게 찾아온 이기후 교수의 사망 소식과 함께 퇴장 수순을 밟게 되었다. 도깨비 공원은 남은 가족이 떠맡게 된 유산이자 해결해야 할 부채가 되었다. 아버지의 과거는 가족의 현재와 맞물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깊은 회환과 생생한 질문을 남긴다. 무엇이 한 개인으로 하여금 그토록 집념어린 일을 추동하였을까. 그 수많은 도깨비들의 형상과 배치, 이야기의 향방은 시간 속에 영원히 잠들어 망각되고 마는 것일까. 현실 논리로 인해 결국 폐기되어야 하는 장소에 봉인된 한 인간의 노력과 그것의 예증이라 할 수 있는 도깨비 종족의 자취는 아버지를 이어 미술 작업을 이어나가는 이해강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되어, 또 다른 차원의 유산으로 이행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도깨비월드〉지도 스크린샷 2024
올해의 ‘도깨비 페스티벌’은 이에 대한 응답이자 모색이다. 이십년 전 세워진 도깨비공원의 물리적 축소판인 동시에 컨텐츠의 확장판이며, 두 세대를 이은 세계관의 중첩과 연결이기도 하다. ‘페스티벌’은 현실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며 흥을 발사하는 행위에 대한 직접적 명칭이기도 하지만, 디지털로 되살려낸 도깨비 종족의 부활과 오래전 문 닫은 공원의 세계관 속으로 재방문, 후속 세대의 헌정 행위를 두루 포괄하는 일종의 수사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도깨비들이 살아가는 가상의 세계관이자 참여형 웹 게임 작업인 〈도깨비월드〉와 현재는 문을 닫은 제주의 ‘도깨비 공원’, 이 둘을 매개하는 프로그램으로서〈도깨비 페스티벌〉의 삼중 레이어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필요하다. 2021년부터 시작된 도깨비 회화 시리즈, 2022년부터 진행된 도깨비 조각에 관한 연구조사 및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 그리고 2024 년, 지금까지의 작업 수행과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여 만든 온라인 플랫폼, 도깨비월드의 웹사이트(https://dokkebi.world)가 함께 연동되며 서로를 지시하는 구조다. 공원 조성과 도깨비 조형물 제작에 온 열정을 바쳤던 ‘아버지 도깨비’와 이를 다시 디지털 아카이브로 복각하고, 공원의 지형과 캐릭터의 서사를 게임으로 되살린 ‘아들 도깨비’의 작업 궤적과 몰입적 태도가 중첩됨은 물론이다.
한편으로 일시적 축제로 이행하게 된 작은 전시의 기나긴 여로가 작가 개인과 가족에게는 한참 전에 수장되거나 잊힌 도깨비 수백 수천, 그리고 아버지를 기리는 진혼식일 것이다. 이승과 저승을 통과하는 포털(관문)로 상정된 전시장은, 그러나, 개인 서사 바깥에 있는 관람객들에게는 힙스터 예술가들과 마주할 수 있는 오늘의 공연장이자 전시장, 워크숍 공간일 것이다. 몽환적 감각으로 연출된 민속 정취는 행사의 맥락을 적절하게 은폐하면서도 호기심을 부추긴다. 그런가 하면, 디지털 도깨비들이 우글거리는 온라인 플랫폼 또한 페스티벌의 또 다른 장소이다. 작가를 처음 만난 당시부터 그는 아버지가 남긴 도깨비 조각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디지털 이미지와 애니메이션 형태로 부활시키고,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진행하며, 도깨비 월드를 재건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으로서의 웹페이지를 구상해 왔었다. 회화작업을 위한 도상으로 도깨비 캐릭터를 소환하는 것이 자기 자신과 관람객을 위한 소극적 초대라면, 온라인 게임 영역으로 옮겨와 유저들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로 설계하는 일은 훨씬 더 대중적인 접근통로가 되었다.
도깨비공원 탐사 기록
영상 기록 : 한유원 / 영상 기록 보조 : 이준호, 이해강 / 사진 : 강지훈 2022
도깨비공원 탐사 기록.
지도에 도깨비 위치를 표시하는 이해강. 사진 : 강지훈 2022
홈페이지로부터 현실 세계로 튀어나온 도깨비월드의 문을 열어내는 과정에서 이해강은 주변 동료들을 규합하여 하나의 팀으로 묶어 공동연출과 제작을 시도하였다. 전시의 공간이 축제적 사건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도깨비공원’이 부자간의 예술적 계승이라는 숙제를 넘어서고, ‘팀 도깨비월드’로 재편되어 공동의 예술적 이해와 실천으로 옮겨올 수 있었던 선택이다.2 이해강이 페스티벌에서 맡은 몫은 작업의 당위성을 꾸준히 확인하고 설득하며, 협업자들이 온전히 이 프로젝트에 몰입하여 각자 중요한 의미를 성취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이었을 것이다. 지난 시간 홀로 매달려온 공원에 대한 애착과 무의식적으로 그려놓고 있었던 전시의 형상을 잠시 내려놓고, 또 다른 이들의 해석과 대응을 살피고, 동료들의 협업과 협조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킨 방향으로 선회하고자 한 것이다. 그토록 신산한 과정을 통해 부분적 경로 이탈과 어쩔 수 없는 포기의 지점, 폭발력 있는 협업의 구간을 차례로 관통하며 ‘도깨비 페스티벌’은 전시라는 이름을 걸친 공동의 축제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전시로서는 특별한 사건이 없는 상태에서도 관람할 수 있는 자족적 세계로 연출되었으나, 언제든지 춤과 노래, 사람들의 이야기와 행동이 열릴 수 있도록 예비된 빈 자리이며, 전시의 준비 단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정성을 다해 꽉 채운 제의의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예로부터 도깨비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야기가 무성한 자리였다면 기획에 차질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도깨비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 의미를 조금 더 얹어보자면, 인간도 신도 아닌 중간형의 잡귀/잡신에 대한 포괄적 명명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보다 우월한 초능력과 기술력, 넘치는 장난기, 놀라운 생산성, 내기꾼, 요괴. 이런 것들이 도깨비의 특질을 요약하는 열쇳말이다. 공포보다는 즐거움에 가깝고, 죽음보다는 삶에 가까운 존재로 오독하고 싶어지는 덕목이다. 신비함과 불온함, 불안정과 창조성에 관한 덕목은 오늘날 창작자의 내면과도 닮아있다. 어째서 (아버지가 ) 도깨비에 주목하였고, 또 어째서 (아들이 ) 도깨비의 유산을 이어가고자 했는지에 관한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이로써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2천 점이 넘는 도깨비 자소상이야말로, 기어이 되살려 마음 깊이 추념하고, 함께 놀고 싶은 자신의 한 조각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도깨비 페스티벌 퍼포먼스. 돈노도조(Don’t Know Dojo)와 나언의 5시간 동안의 즉흥연주 2024
〈ㅂㅕㄱ〉 시멘트, 발포폴리스티렌, 철망, 스프레이페인트, 오일스틱 2024
축제의 날들과 그 면면을 조금 더 들여다보도록 하자. 교회 건물이었던 TINC를 페스티벌 장소로 선정한 것은 썩 괜찮은 선택이었음이 틀림없다. 입구를 가로막듯 서 있는 커다란 머릿돌과 내부로 이어지는 전시공간의 어슴푸레한 정경은 기대했던 것보다 고요하고 몰입적이다. 한낮 교회당 창을 통해 들이치는 빛을 가리고 장막 위로 작게 난 구멍을 통해 투과되는 빛이 핀 조명처럼 공간 내부를 밝히면서, 공간의 연출에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도깨비가 튀어나올 것 같은 큰 바위와 평상돌, 벽, 밝은 곳과 응달진 곳이 교차하며 생기는 다채로운 지형과 분위기는 무대미술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떠올리게 한다. 공간에 배치된 조형들은 독립정으로 명명된 조각이면서, 연주와 워크숍, 이야기의 배경으로 기능한다. 공간에 개입되는 다양한 사운드와 빛, 관람객의 움직임이 공간의 정동을 창출하는 관계적 요소로 작동한다. 프로그램은 9일 동안 진행되었고, ‘도깨비 월드’와 연결되는 포털의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관객들이 함께 방망이를 흔들며, 다국적 밴드 ‘돈노도조’와 뮤지션 나언의 즉흥연주(Jam )와 일렉트로닉 셋으로 첫날이 시작되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목소리와 이야기, 움직임과 춤, 소리와 음악을 오가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의식이 쉼없이 이어졌다. 이런 것이 축제의 본질이라면 본질일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 아흐레간의 전시가, 축제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해강이 페인터의 자리에서 잠시 이탈하여 스스로 축제의 감독이 되기로 한 순간부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노동과 고민과 즐거움이 함께했으리라 충분히 짐작하고 공감한다. 제주도 도깨비 공원이 개장했던 2005년의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0년의 시간 속에 깃든 아버지의 유산을, 때로 버겁고 벅찼을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기억을, 그것을 작업으로 옮겨오는 동안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자기 의심과 불안과 안녕을 고할 수 있을까? 그 또한 그만한 시간이 들 것이다. 행사를 돌아보는 내내 전시와 축제라는 말을 번갈아 가며 써야 했던 것은, 오늘날 전시가 결여한 서사와 정취, 의식의 해방과 연결의 가치를 축제라는 수사로서 회복하고 싶었던 마음이고, 반면 축제에 결여된 서사의 정합과 제작의 치밀함을 전시라는 제도 안에서 갈구하고자 했던 까닭이다. 물론 도깨비 페스티벌은 너무나 예외적이며 특수한 예증이긴 하다. 제도적 지면에서도 다뤄지고 기록되기 힘든 영역에서 솟아난 행사라는 생각에, 도깨비 페스티벌이 지닌 복잡한 레이어와 미처 소화하지 못한 연구 지점이 있음에도 축제의 기억이 휘발되기 전 다급한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작가가 작가 되기를 열렬히 소망하게 된 순간이 언제였을까를 떠올리며, 도깨비라는 말 대신 도깨‘빙’으로 고쳐 쓴다. 타인의 경험과 기억에 예리하게 공명하고 풍부하게 상상하는 누군가의 세계가 월‘딩’인 것처럼.
* 본 원고는 (재 )예술경영지원센터 ‘2024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기고이다.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