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Hyun-Sook Lee

Go Global! 단색화 신화를 넘어, 세계를 향한 도전
The Interview

국제갤러리 회장. 중앙대 가정교육학과 졸업, 1982년 인사동에 국제화랑 오픈, 1987년 소격동으로 이전, 2007년 K2, 2012년 K3 신설, 2018년 F1963에 부산점을 개설 운영 중이다. 2024년 아트넷이 발표한 ‘영향력 있는 아트 딜러 100인’에 뽑혔으며, 2015년 단색화의 국제화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대통령 표창)’ 문화부문을 수상했다. 아트리뷰가 선정하는 ‘파워 100’에 10년 연속 선정되었다.
사진: 박홍순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Go Global! 단색화 신화를 넘어, 세계를 향한 도전
심지언
편집장

국제’라는 이름은 갤러리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국제갤러리는 초창기부터 해외 대가들의 전시를 유치해 한국 미술계에 국제적 미술의 흐름을 소개하고, 해외 시장에 한국 작가를 알리며 한국미술의 대사 역할을 해왔다. 또한 ‘단색화’를 국제 미술계에 소개해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해외 관계자의 이해를 높이는 역할도 도맡았다. 미술계가 급격히 글로벌화 되는 현시대에 국제적인 영향력을 바탕으로 한국 작가와 더불어 해외 미술계 공략을 준비하는 이현숙 대표를 만나 갤러리스트로서의 여정과 철학, 포부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위기를 기회로, 국제갤러리의 성장과 변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아트리뷰 파워 100’에 10년 연속 선정되며, 국내외 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입증했습니다. 선정을 축하드리며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이러한 평가의 근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갤러리 소속 작가들의 세계적인 활동에서 제 역할을 중요하게 봐준 것이겠죠.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시로 개최한 《Dansaekhwa》 전시라고 생각하는데, 후원 없이 갤러리 단독으로 단색화의 국제화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룬 분을 만나면 항상 그 출발이 궁금합니다. 컬렉터에서 갤러리 대표로 전향하셨는데, 첫 개인 소장품과 갤러리의 출발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작품을 소장할 때 동양화부터 시작했어요. 남편이 소정(小亭) 변관식 선생을 좋아해 소정 작품과 고미술, 도자기를 조금씩 구입했어요. 그러다가 ‘현대미술회’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강의를 듣고 공부하면서 작품 보는 안목이 바뀌더라고요. 그런데 당시 작품 재판매나 구입이 용이한 시대가 아니어서 직접 갤러리를 하게 되었어요. 동양화 거래가 중심이었지만, 최초로 서양화를 중심으로 하는 작은 갤러리를 시작했어요. 도상봉, 임직순 등 서양화 작가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며 많은 도움을 주셨고, 초창기 미술시장의 호황기를 만나 순조롭게 화랑을 시작했어요. 경험이 없었지만, 작가들을 가까이서 접하고 좋은 작품 원하는 대로 사고팔고 싶다는 열망으로 덤벼든 거였죠.

국제갤러리는 해외 미술시장이 개방된 1990년대 초·중반 헬렌 프랑켄탈러, 프랭크 스텔라, 앤서니 카로, 안젤름 키퍼, 솔 르윗, 사이 톰블리 등 해외 작가전을 연속으로 선보이며, 국제적인 작가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갤러리로서 입지를 구축했습니다. 초기 갤러리의 해외 인지도 및 신뢰도가 쌓이기 이전 시기에 작가 섭외와 전시 유치 과정은 어땠는지요?
1990년대 초 미국 미술관을 자주 방문했는데, 당시 미국 미술계에서는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미술이 전개되고 있었어요. 그 현장을 보며 우리 미술계도 빨리 현대미술을 접하게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전 항상 최고를 선택하려고 해요. 그래서 제일 유명하고 잘나가는 작가들을 택했죠. 헬렌 프랑켄탈러, 프랭크 스텔라, 앤서니 카로 등 당시 최고 작가들의 전시를 하고 싶어 작가와 전속 갤러리를 무작정 찾아가 설득했어요. 당시는 아시아에서 전시 제안이 드물었던 때라 작가들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세계적인 명성의 작가들을 서울에서 소개하니 알아보는 손님이 늘어 작품 거래가 꽤 많이 이루어졌어요. 결제를 빠르고 깔끔하게 해서 국내외로 좋은 평판을 쌓아서 이후로 작가 섭외가 쉬워졌지요. 한편 IMF 시기에 앤서니 카로 전시를 해서 출품작을 거의 다 판매했어요. 작품 대금을 송금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환율이 폭등한 거예요. 갤러리가 큰 손해를 안아야 했지만, 은행 대출까지 받아서 결제를 빠르게 진행했는데 그렇게 어려운 시기에 철저히 신용을 지킨 것이 큰 자산이 되어 지금까지 신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운송회사도 없던 시절이라 작품 포장과 운송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는데 해외 작가, 갤러리들과 일하면서 갤러리 비즈니스도 배우고, 전시 기획과 운송 등 국제적인 기준을 터득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에 해외 작가 작품을 사립미술관에서 많이 소장했어요. 미술관 입장에서 서울에서 양질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였던 동시에, 갤러리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었죠.

 2015년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시 《Dansaekhwa》 설치 전경
사진: Fabrice Seixas

2015년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시 《Dansaekhwa》 외부 전경
사진: Andrea Avezzu

1999년 외환 위기 때 ‘더 레스토랑’을 오픈하며, 어려운 시기 갤러리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레스토랑과 갤러리는 교차점을 찾기 어려운 사업인데, 이와 같은 사업의 확장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졌고, 현재 두 사업 간 시너지 효과는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IMF 시기에 경기가 무척 어려워지며 저희뿐만 아니라 고객들도 심각한 타격을 받은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갤러리 방문객이 뚝 끊겼어요. 전시를 보러 와야 작품 거래가 이루어지는데, 어떻게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해결책으로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했어요. 레스토랑 오픈 프로모션으로 갤러리 손님을 하루에 20분씩, 3일간 초대해서 “우리 레스토랑 음식 한번 드셔 보셔라”는 마음으로 대접했어요. 이 조용한 동네에 서양 음식을 맛있게 하는 레스토랑이 생기니 문을 열자마자 꽤 북적였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갤러리 방문객도 늘어갔고요.

처음 레스토랑을 시작했을 때는 부정적인 기사도 나고 좋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갤러리의 일반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두 사업이 참 보완적인데 사전 약속 없이 방문하는 고객의 경우, 식사하면서 기다리고 또 미팅을 할 수도 있고요, 좋은 작품이 있으면 부담스럽지 않게 “식사하러 오세요” 하며 초대할 수 있어 갤러리 사업에 레스토랑은 꽤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K2와 K3 신설, 부산점 오픈에 이어 2020년 K1의 재개관과 함께 국제갤러리의 2막이 열렸습니다. 기존의 카페, 더 레스토랑에 명상과 운동을 위한 ‘웰니스 K’를 오픈하며 라이프 스타일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웰니스 시설을 만든 것은 제 개인적인 건강 문제와 연관이 있어요. 무릎이 좋지 않아 수술 후 재활을 진행해 많이 좋아졌지만,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니까 일터와 한 공간에 웰니스 시설을 갖추게 되었어요. 저뿐 아니라 우리 고객들도 건강을 함께 챙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해보니까 미술이 ‘웰니스’의 개념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 자체가 라이프더라고요. 저희가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고객들과 함께 공부해 온 시간이 20년 정도 됐어요. 일주일에 한 번 미술 수업 듣고, 식사도 하고 건강관리 할 분은 운동하고, 차 마시며 네트워킹도 하면서 이 건물에서 함께 하루를, 그리고 삶을 보내는 거죠.

갤러리가 해외 마켓, 국제적 아트신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감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1998년 아트바젤 때부터 반응이 다르다 느꼈어요. 기존 고객이 친구, 동료 컬렉터와 함께 부스를 방문해 아시아의 탑 갤러리라고 추천해 주고, 아카데미 회원 해외 투어를 할 때도, 뉴욕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유수의 미술관과 개인 컬렉터들이 크게 환대해 주었죠. 해외 아트페어에 참가할 때마다 고객들을 모시고 디너나 파티를 여는데, 매년 100명이 넘는 분이 와서 함께 안부를 묻고 반가워하는 정례 행사가 되었으니 국제적 아트신에서 함께 활동한다 할 수 있겠죠.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해외 고객이 70% 정도의 비율이었는데, 현재는 국내와 해외 고객 비율이 5: 5 정도 됩니다. 초기부터 비즈니스 자체가 해외 고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제갤러리 K1(1관) 2층 더 레스토랑 Courtesy of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국제갤러리 K1(1관) 3층 웰니스 K Courtesy of TeoYang Studio 사진: 심윤석

단색화 국제화와 한국미술 해외 프로모션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시 《Dansaekhwa》를 통해 단색화를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소개했습니다. 갤러리 소속 작가의 프로모션이 아니라 한국미술 사조의 해외 프로모션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해외 아트페어에서 이기봉, 양혜규, 홍승혜 등 젊은 작가를 소개하니 고객들이 “이 작가들의 선배들은 어떤 작가들인지, 한국미술의 뿌리는 어떤 것인지” 질문을 자주 했어요. 그래서 티나킴갤러리 대표가 해외 비즈니스로 성공한 갤러리로서 한국 현대미술의 뿌리를 알리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며 프로젝트를 권했어요. 이미 소속 갤러리가 있는 작가도 있고 작품의 시장 가격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등 난제가 많았지만, 작가들의 열렬한 지지로 추진하게 되었죠.

1993년 프리즈 런던에서 단색화 작품을 선보였는데, 디아 비콘의 큐레이터 한 분이 관심을 보였어요. 1960~70년대 한국에서 현대미술을 시작한 작가들의 작품이라 소개했더니, 그분이 적극 추천해 2시간 만에 작품을 솔드아웃 했어요. 단색화의 국제적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죠. 그 이후로 참가하는 아트페어마다 해외 갤러리들까지 가담해서 단색화 작품에 큰 반응을 보였고, 단색화 전시가 있으면 전용 헬기를 타고 오는 컬렉터도 생기는 등 유럽, 미국의 주요 미술관과 이사회를 중심으로 작품을 소장하며 국제적 인지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단색화를 국제 미술계에 성공적으로 알린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도 작품이 훌륭했죠. 그리고 일본을 비롯한 해외 갤러리들이 단색화 작가를 주목하면서 박서보, 하종현 등의 개인전이 해외에서 개최되고 동시에 프로모션하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붐을 일으켰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단색화 작품의 양입니다. 원로작가들이 평생의 작업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었고 덕분에 국제적인 시장이 형성됐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 단색화로 해외 미술관 전시를 못했어요. 작가들의 미술관급 개인전도 마찬가지고. 그 점이 아쉬운데, 저로서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은 셈이죠.

한국 작가들의 국제 프로모션에 대한 갤러리의 역할을 강조하신 바 있는데, 현재 국제갤러리의 작가 프로모션 방향성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몇 년 전부터 갤러리 운영 방향을 다시 설정했어요. 그동안 해외 블루칩 작가를 중심으로 전시와 세일즈를 했다면 최근에는 한국 작가 비율을 70% 정도로 높여 집중하고 있습니다. 갤러리스트로서 마지막 염원은 우리 갤러리 소속 작가들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로 성장해 이들의 국제적 그룹전을 개최하는 것, 그것이 현재 최고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꾸준히 작가 리서치를 하면서 만나고 있고, 또 김윤신 선생처럼 미처 조명하지 못한 작가를 만난 것도 중요한 지점이죠. 한국 작가들과 함께 갤러리가 동반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안정적 해외 마켓 비즈니스를 위해 해외 거점 마련 등 구체적인 계획은 어떠한가요?
지금은 한국 미술시장이 워낙 글로벌화해서 굳이 해외 거점 없이도 글로벌 비즈니스에 무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전시해도 세계 곳곳에서 해외 고객들이 와서 보고, 또 온라인 자료, 영상을 통해서 작품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요. 현재는 사업을 외부로 확장하는 것보다 우리 작가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갤러리 비즈니스와 운영 철학

갤러리 운영 철학이 궁금합니다.
저는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은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이 행운이고, 또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우리 직원들이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게 양성하는 것, 그것이 대표로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한 가장 큰 투자는 무엇인가요?
전 세계 주요 미술관과의 관계 형성에 투자한 것 아닐까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뮤지엄 등 미술관에서 1년에 한 번 갈라 행사할 때, 큰 비용을 치르더라도 테이블을 구매해 저희 고객들을 초대했어요. 예전에는 해외 고객 중심이었는데, 요즘은 한국 고객도 함께 모셔서 네트워킹의 기회를 제공하죠. 이런 활동을 통해 전 세계 미술관들과 관계를 잘 형성해 왔어요. 그리고 한국 작가들이 해외 미술관에서 전시할 때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도 큰 투자죠. 이를 위해 2020년에 국제예술문화재단을 만들어 갤러리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고, 이사회 회원들의 회비와 기부금으로 기금을 마련해서 작가들 해외 활동도 후원하고, 큐레이터를 양성하는 프로그램 등도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트 바젤 파리 2024 국제갤러리 부스 설치 전경 사진: Sebastiano Pellion di Persano

본인에게 영감을 준 갤러리스트는 누구입니까?
저는 폴라 쿠퍼 갤러리의 창업자 폴라 쿠퍼(Paula Cooper)를 존경해요. 칼 안드레, 도널드 저드, 솔 르윗 등 미니멀리스트들을 당대에 인정하고 지원하신 분이잖아요. 젊은 작가를 발굴해서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현대미술사에 남게 한 공이 큰 분이죠. 그분의 안목과 작가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은 갤러리스트로서 참조할 지점이 큽니다.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에 애쓰고 있는데, 국제갤러리가 작가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언어나 활동, 그리고 태도 등이 글로벌화된 작가, 동시에 한국적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작가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혜규, 강서경, 문성식 등의 작가가 한국적 감성을 충족시키면서도 세계 미술시장에서 설득력과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해요. 한국 작가니까 그래도 작품에서 한국의 느낌이 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한국 미술사와 작가의 체계적 연구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아카이브를 마련해 해외 프로모션에 활용할 계획을 언급하셨는데, 갤러리의 작가 아카이브 구축 현황은 어떤가요?
단색화 작가들을 프로모션할 때 원로작가들의 자료의 취약함을 목격하면서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절감했어요. 작품의 제작 과정, 거래 이력 등의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으면 투명한 거래와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데, 원로작가들은 그 부분이 굉장히 취약했죠. 현재 소속 작가별로 거래 및 전시 등 출품 이력, 연구자료, 이미지 자료 등을 면밀히 정리하고 있어요. 내부에 아카이브 부서가 있어서 미술관, 연구자의 요청이 있을 때 방문해서 자료를 열람하게 해드리고, 해외 미술관이나 기관에 자료를 제공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세대 경영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데, 세대교체와 함께 주요한 변화 지점은 무엇인가요?
큰 틀에서 움직이면서 점진적으로 2세대 경영으로 넘어가고 있어 세대교체로 인한 본격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는 않아요. 다만 보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 직원의 복지와 유연한 근무 형태 등 젊은 세대에 맞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미술시장은 급격한 국제화와 성장을 맞았는데, 앞으로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는 단색화 다음의 미술에 대해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것이 한국미술의 지금, 젊은 현장이라고 소개하려면, 일군의 그룹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양혜규와 같은 작가가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시기에 비슷한 역량을 가진 작가들을 그룹으로 소개할 필요가 있어요. 단색화가 국제적으로 소개된 이후, 한국 작가들에 대한 인식과 인지도 자체가 달라진 것과 같이 한국미술의 해외 진출을 견인할 대표 작가 그룹을 성장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예산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곳에 제대로 집행되는 것이 중요하겠죠. 특히 해외 진출의 경우, 선택과 집중의 지원, 투자가 유의미한 결과로 연결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미술관과 갤러리 간의 경계를 허물고 보다 상호협력적, 보완적으로 활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상업신과 비상업신이 상당히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서로 간의 벽이 높아, 이런 점이 개선돼야 한다고 봅니다.

앞으로 국제갤러리가 취할 방향과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세계 미술무대에 소개할 한국의 젊은 세대 작가들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 그걸 이룬다면 언제라도 갤러리 운영에서 물러나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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