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미술공간의 유보된 시공
정시우 라인문화재단 큐레이터
Special Feature
아트-토커(김맑음, 김명진, 류희연, 문진주, 이선주, 이소라, 지하운, 하수경, 황지원)
〈타임 패치워크〉혼합 매체 가변 크기 2025《그런 공간》인사미술공간 1층 전시 전경 2025
사진: 박홍순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700여 미터를 걷다 보면 조선 왕실을 돌보던 나인과 하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원서동 빨래터 방면 ‘인사미술공간. 세탁소’ 정류장에 발길이 닿게 된다. 이 정류장 맞은편에는 3층을 제외하면 환기를 위한 작은 창만 존재하는 폐쇄적, 혹은 구도(求道)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붉은 벽돌 건물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그런 공간’ 인사미술공간이(었)다.
인사미술공간(이하 인미공)은 지난 25년간 신진 예술가의 발굴과 지원, 실험적 예술의 플랫폼을 자처하며 한국 현대미술계에 독특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2025년 6월 운영 종료를 예고하며, 인미공의 역사를 되짚는 두 전시《미니버스, 오르트 구름, ㄷ떨: 안녕인사》(아르코미술관)와 《그런 공간》(인미공)이 시간차를 두고 열렸다. 표면적으로는 “시간이 흐르며 공간의 역할이 변했고, 지역 개발에 따른 임대료 상승 등 대내외적 여건이 악화”1 된 것이 폐관의 이유라지만, 그 이면에는 유보적 대안공간이라는 태생적 특성과 그것이 미술 정책 및 환경 변화에 반응하며 축적해 온 문제가 자리한다. 이 글에서 ‘유보된 시공’이란 인미공이 제도권의 안정성과 대안공간의 실험성 사이에서 온전히 어느 한쪽으로 귀속되기를 끊임없이 유예하며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불완전성으로 인해 야기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품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본고는 인미공의 소멸을 단순히 한 기관의 종결을 넘어, 한국 현대미술 지원 제도의 단면과 그 안에서 특정 공간이 수행해 온 역할, 특히 그 정치적 함의를 재정 지원의 방식, 운영의 자율성 문제, 그리고 변화하는 정책 환경과의 관계 등에서 비평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인미공을 돌아봄으로써, 그 한계와 남겨진 과제를 통해 미래의 예술 지원 방향을 모색하는 작업일 것이다.
인미공은 IMF 구제금융 시기, 문화예술계 전반이 위축되었던 2000년 5월 문을 열었다. 당시 미술관이나 상업 화랑에 포섭되지 않은 신진 예술가의 작업을 소개하는 통로로써 1세대 대안공간들이 등장하던 흐름에서, 인미공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의 지원으로 운영된다는 독특한, ‘제도 안의 대안’이라는 위치를 점하게 된다. 초기 인미공은 외부 심의를 통한 공모 중심으로 운영되며, 제도권 미술관의 높은 문턱과 상업 화랑의 시장 논리 사이에서 신진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관문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이 관문의 역할은 때로 새로운 형태의 위계나 제도적 인정을 향한 경쟁을 야기할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미공의 유보적 성격, 즉 국가 지원에 기댄 대안성은 태생부터 양날의 검이었다. 안정적 운영 기반 확보는 제도적 영향력, 심의 과정의 개입, 나아가 정책적 방향성에 일정 부분 종속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했다. 초기 인미공이 지향했던 날카로운 대안성과 현장 중심의 실험정신, 예를 들어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거나 기존의 미술 형식에 급진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작업, 혹은 과정 중심의 비물질적 프로젝트 등은 점차 제도적 안정성과 결합하며 때로는 그 예리함이 무뎌지거나, 심의와 평가를 의식한 제도 친화적인 결과물을 유도할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인미공의 정치적 함의는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 변화와 맞물리며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이명박 정부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효율성 논리는 예산 및 인력 감축, 예술위 조직 내 모호한 위상으로 이어져 인미공의 실험적이고 장기적인 지원 기능을 제약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 융성’ 기조와 예술계 검열 논란 속에서는 신진 예술가 발굴 기능은 유지하되 사후 지원 및 성과 관리가 강화되는 경향을 보였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아르코미술관과의 통합 운영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독자성이 약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처럼 정책 변화에 따른 운영상의 부침은 인미공의 자율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옴니버스 전시 《오르트 구름》 아르코미술관 2전시실 전시 전경 2025
사진: 박홍순
인미공의 지원 방식, 즉 공모를 통한 선발과 지원금 선지급 후 정산이라는 시스템 역시 공정성 확보와 행정 효율성이라는 명분의 이면에, 경쟁을 통한 자원 배분이라는 정치적 장치로 읽힐 수 있다. 이는 점차 인미공을 결과 발표장의 이미지로 고착시키고, 과정 중심의 실험보다는 성과 중심의 프로젝트를 양산할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런데도 인미공은 “제도를 가장 잘 아는 주관자가 가장 제도답지 않은 방식으로 공간을 운영”하며 “스스로 취약성을 극복”하려 한 “제도의 윤리적 노력”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제도의 안티-제도”, “대안공간의 대안”이라는 수식어는 그 독특한 위상과 고민을 잘 보여준다.2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미술계의 지형도 변화했다. 특히 기존 대안공간들이 제도화되거나 운영난으로 초기의 실험성이 퇴색하는 한편, 2014년을 전후하여 젊은 작가들이 자립적으로 운영하는 신생공간이 급부상했다. 이들은 국가 지원에 의존하기보다 소규모 자본과 느슨한 연대를 통해 보다 기민하고 자율적인 실험과 과정 중심의 활동을 펼쳐 나갔는데, 이는 기존 제도의 경직성과 지원 시스템의 한계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었다. 이러한 신생공간들의 자생적 에너지와 날카로운 문제 제기 앞에서, 한때 대안적 실험의 장이었던 인미공은 국공립 레지던시나 여타 지원 사업과의 경쟁 및 차별화라는 과제에 직면했고, 예술위 조직 개편으로 인한 내부적 혼란까지 겪으며 공간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혁신적인 의제를 던지는 것에 한계를 드러냈다. 젊은 세대에게 인미공이 때로 ‘진입 장벽이 높은 곳’ 혹은 ‘특별한 상징성이 없는 곳’으로 인식되기도 했다는 점은 이러한 변화의 단면을 보여준다.3
필자 역시 인미공이 대안공간으로서 예술생태계 중심에서 작동하던, 이른바 호시절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다. 인미공과의 관계는 이미 그것이 하나의 정착된 지원 제도로 기능하던 이후였기에, 물리적 ‘공간’의 체험보다는 일련의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인식된다. 이는 경직된 행정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예술 활동을 지속하며 자연스럽게 통과하고 머물렀던 접속의 구조이자, 느슨하지만, 반복적인 관계 맺음의 장(場)이었다. 이러한 지점에서 인미공은 이상화된 대안공간의 기표보다는, 지원 제도가 구성한 구조 안에서 예술가와 기획자가 접속하고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던 공공성의 매개, 혹은 일종의 제도적 리듬으로 기억된다.
《플래시 폴리곤 OBT》 인사미술공간 전시 전경 2018
제공: 인미공
인미공이 25년간 구축해 온 이 유보된 시공은 분명 한국 현대미술계에 중요한 자산을 남겼다. 수많은 신진 예술가에게 성장의 발판을 제공했으며, 다양한 실험적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 담론 형성에 기여했다. 특히 공공 영역에서 과정 중심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예술가를 지원하려는 시도 자체는 그 의미가 크다. 그럼에도 그 시공간의 정치적 함의는 지속적으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한다. 유보적 대안공간이라는 위치는 필연적으로 제도적 논리와의 타협, 혹은 그 안에서 자기검열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지원 시스템이 성과와 결과 위주로 흐르면서 예술가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지원 제도의 관료화에서 인미공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미공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인큐베이팅을 넘어선 예술 생태계 내에서의 실질적인 액셀러레이션(중견작가 지원, 국제 교류 확장, 프로젝트 프로덕션 지원 등의 성장 가속화)의 필요성과, 예술 행정 자체에 대한 창의적 큐레토리얼 접근(유연한 펀딩 구조, 리스크 감수성을 높인 심의, 예술가와의 파트너십에 기반한 행정)에 대한 요구를 도출할 수 있다. 현재 인미공의 역할이 다른 대안공간이나 창작지원 프로그램에 완전히 흡수되거나 제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공공과 대안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며 제도와 현장을 매개하려 했던 유보적 대안공간이 지닌 독특한 역할의 중요성이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인미공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지금, 이는 예산이나 공간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공공 지원 시스템 내에서 실험성과 과정 중심 지원, 장기적 작가 성장 지원, 제도와 현장 간의 유연한 소통을 담당했던 한 축의 상실을 의미한다. 특히 다수의 창작지원 프로그램이 유사성을 보이며 특성화에 실패하고, 초기 실험정신에서 멀어지는 현시점에서 인미공의 사례는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인미공이 유보적 대안공간으로서 만들어낸 시공과 그 정치적 함의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중요한 것은 그 유보되었던 가능성, 즉 제도적 안정성과 실험적 자율성 사이에서 온전히 발현되지 못했던 잠재력을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예술 지원 제도가 예술가의 자율성과 실험정신을 실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을지, 그리고 제도적 지원이 관료주의를 넘어 창의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현장과 접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은 인미공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일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 가령 지원 시스템의 다원화, 평가 방식의 혁신, 예술가 중심의 장기적 지원 체계 구축 등을 모색하는 과정이야말로, 다가올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시공을 여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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