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 가는 질문들 Ⅱ
작가이자 교육자·레지던시·미술관·독립미술공간
Interviews
강재영 기자
Special Feature
작가를 포함하여 미술계에 걸친 총 여덟 주체에게 작가로 가는 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여기엔 작가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질문뿐 아니라, 작가가 되기 위해 마주해야 할 여러 관문을 어떻게 통과해 나가야 할지 묻는 현실적인 질문도 있다. 작가를 키우는 아카데미, 레지던시, 미술관, 독립공간 등의 주체와 지역 미술계를 지탱하고 있는 이들, 또한 지원 제도 담당자와 월간미술 편집팀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작가이자 교육자
작가이자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들은 학교와 현장의 경계를 오가며 두 가지 시선을 함께 품고 있다. ‘미술대학은 무엇을 가르치는가’라는 질문에 이들이 내놓은 답은 무겁고도 현실적이다.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조언 역시 그들의 목소리에서 나온다.

홍승혜 〈표정연습〉(스틸) 단채널 영상, 컬러, 무성 4분 15초 2025
홍승혜 전 서울과기대 조형예술과 교수
작가와 교육자 두 역할을 모두 경험했는데,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보나.
애초에 교직에 몸담은 이유는 경제적 자립이었다. 미술은 창작에 따르는 열매를 맺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이를 버틸 수 있는 경제적 자유가 시간적 자유만큼 중요하다. 그럼에도 30년 가까이 이어진 교육 활동은 내 작업 세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미술대학은, 예술을 향유하고 위계 없는 치열한 대화를 통해 각자의 미술적 갈등을 해결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학생들은 내게 ‘무서운’ 관객이고 나 또한 그들에게 그러하길 기대한다.
오늘날 미술대학은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미술대학에서 배우는 것과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
‘현실과의 접속은 이상의 실천을 위한 절대 조건이고, 대학이 탈출해야 할 상아탑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대학이 현장이 되어야 한다’라고 어느 기고문에서 언급한 바 있다. 미술사와 미술 이론, 그리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적 정보들을 제공하는 일 이외에도 현장을 체험하고 미술계 인사와의 인적 교류를 지속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미술대학이 개발한다면, 학생들은 졸업 후 큰 충격 없이 현실을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미술대학 교육 내용이 실제 작가로 성장하는 데 충분하다고 보나? 보완이 필요하다면 어떤 점일까?
작가가 되려면 작가적 재능뿐만 아니라 성취동기, 그리고 미술계와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사회성 또한 필요하다. 재능이 있다고 모두가 작가가 되는 건 아니란 뜻이다. 미술대학은 작가를 키우는 곳일 뿐만 아니라 미술계의 저변 인구를 늘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작가 지망생은 졸업 직후부터 대부분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숫자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는 실패해서라기보다 궤도 수정에 따른 결과이다. 오늘날 미술의 영역은 무한히 확대되고 있고, 미술과 더불어 살아갈 방법 또한 매우 다양하다. 불필요한 좌절을 피하려면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따라서 미술교육은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비단 미술교육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지점은 ‘졸업 후 어떻게 작가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가’이다. 재직했던 미술대학에선 졸업을 앞둔 그들에게 무엇을 준비시키나?
진지하게 작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대부분은 대학원에 진학한다. 대학원 졸업생들이 작가 활동을 이어감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경제력이다. 작가로 정착하기까지 작업과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며 병행할 수 있는 경제활동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누는 편이다. 지원 프로그램 및 오픈콜, 레지던시에 지원할 때 필요한 포트폴리오와 텍스트의 점검도 빠질 수 없다.
작가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역량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성공과 행복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성공한 작가’보다 ‘행복한 작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성공의 잣대는 개인마다 다르고, 원하는 성공의 크기 또한 다르다.
스스로가 무엇을, 그리고 얼마만큼 원하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타인의 기준에 지배받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고 즐길 수 있다면 작업은 지속 가능할 것이다.
후배 작가들에게 격려의 한마디를 한다면?
어느 분야의 창작자든 개성과 자율성을 추구할 때 우리는 ‘작가주의’란 말을 사용한다. 개성은 본디 누군가와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자율성은 스스로 결정하고 제어하는 성질이다. 비교에서 벗어나 어느새 자기 자신이 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주형 〈Portrait 2〉 캔버스에 유채 162.2×130.3cm 2011
이주형 한남대 회화과 교수
작가와 교육자 두 역할을 모두 경험했는데,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보나. 여기에 학창시절의 경험도 영향을 미치는가?
교수는 교육에 충실해야 하며, 행정에 힘써야 한다. 또한, 연구를 통해 교육의 방향을 끊임없이 다듬어야 한다. 순수예술에서 연구는 트렌드와 담론, 미술계의 학문적, 산업적 가치를 끊임없이 탐구하여 자신만의 예술적 세계관을 만드는 작가 활동이다.
여기에서 학생들과의 관계는 중요하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 작업을 두고 토론하는 건 작가 활동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수업에서 학생들은 예술에 대한 여러 관점과 자신의 주관을 작업으로 이어가는 예술적 실험을 배운다. 선생은 학생들의 관점들을 함께 탐구하며 발전시키게 된다. 오랫동안 맥락을 갖고 이어지는 가치 교환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예술관이 세심하게 다듬어지고, 종국에는 예술적 각론으로 발전한다.
나를 지도했던 선생님 중 한 분은 학생이 아무리 엉뚱한 소리를 해도 끝까지 듣고 맥락을 찾으려 노력했다. 선생님은 학생이 자기 주관을 발견하고 이를 다듬어나가길 원했을 것이다. 나 또한 학생의 주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많은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주관적인 시도가 필요하고, 이를 시도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미술대학은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미술대학이 모든 것을 제공하진 못하지만, 출발 지점 설정은 미술대학이 아니면 어렵다. 예술 전체의 지형을 학습하는 건 학생의 주관을 형성하는 데 효율적이다. 이는 현장에서의 혼돈을 방지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현장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 도처에 널려있다. 자신의 예술적 주관을 객관화하는 방법도 현장에서의 방식은 학교의 그것보다 열 배는 많다.
학생들은 산업으로서의 예술도 알아야 한다. 예술이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월간미술』 같은 잡지로 예술 담론과 트렌드를 접하거나, 시장에 대한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의 보고서, 예술정책 리포트 등으로 삶의 배경을 점검할 능력은 갖추어야 한다. 졸업 이후에 더 구체적으로, 또 능동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
현재 미술대학 교육 내용이 실제 작가로 성장하는 데 충분하다고 보나?
언제나 부족할 것이다. 다만 무엇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테다. 그럼에도 한 가지를 언급하자면, 예술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삶의 조건들에 대한 사고 실험이다. 즉 먹고사는 방법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가 진전된다면, 예술은 더 발전할 것이다.
미술대학은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졸업 이후를 위한 어떤 준비를 지도하고 있나?
우리 학교에서는 첫 번째로 작가들이 데뷔하고, 작품을 발표하는 ‘일반적인’ 루트에 대해 교육한다. 일반적으로 작가로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관을 투영한 작업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무기다. 포트폴리오를 많은 곳에 제출해 노출시키는 데, 이것은 미술 생태계에 존재하는 여러 타자를 설득하는 작업이다. 이는 수많은 피드백과 가치교환, 당사자들의 상호인정을 통해 완성된다. 나는 이 과정을 ‘주관성립(포트폴리오) → 가치교환 및 레벨링(전시 따내기) → 객관화(레지던스 및 평론가와의 대화)’라는 체계로 설명한다. 그 이후에는 ‘가치의 성립(학계와 미술시장에서 자리 잡기)’이라는 과정이 올 것이라 말한다. 물론,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에 완성도 있는 지도라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다만, 최선을 다해 정밀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앞으로 미술대학은 ‘작가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는가?
미술대학의 목표가 ‘작가 양성’에만 있는 건 아니다. 시각 창작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작가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역량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사려깊게 고찰하고 다듬은 스스로의 주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객관화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체력’이 중요하겠다.
후배 작가들에게 격려의 한마디를 한다면?
예술은 어렵고 즐겁다. 예술은 사회와 인간을 다각도로 바라볼 기회와 함께, 끊임없이 능동적이어도 되는 환경을 제공한다. 고민과 사유 속에서 다양한 시선을 창출할 수 있다.
레지던시
레지던시는 작업을 위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이 열리는 현장이다. 지원서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입주 이후의 교류까지, 작가들은 이곳에서 또 다른 성장을 경험한다. 큐레이터의 시선을 통해, 레지던시가 오늘날 작가 되기의 어떤 관문이 되는지 살펴본다.
↑ 2025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오픈스튜디오 입주작가 스크리닝 전경
↑↑ 2023 프리즈 서울 VIP 난지창작스튜디오 방문 프로그램 진행 모습
이규식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교육과 학예연구사
많은 작가들이 레지던시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지원자를 평가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무엇인가?
형식과 내용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경험상 오래 기억에 남는 지원서는 대개 진정성이 담겨 있다. 단정한 포맷도 중요하지만, 왜 지금 이 시점에 이 레지던시가 필요한지, 여기서 무엇을 하려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지원서가 눈에 띈다. 레지던시 심사는 기업 채용이나 디자인 포트폴리오 심사와는 다르다.
포트폴리오나 작업계획서를 쓸 때 꼭 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시각예술에서 사진 자료의 품질은 작업 이해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글로 맥락을 어떻게 전달하는지도 빠질 수 없다. 요즘은 AI 툴을 활용해 정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마지막에는 반드시 작가 자신의 언어로 다시 써야 설득력이 생긴다. 보는 사람도 훨씬 진정성 있게 받아들인다. 지원서 작성은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스스로 작업을 성찰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면접이나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는 어떤 태도나 준비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나?
유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긴장된다면 스크립트를 준비해 오는 것도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질문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이다. 심사위원의 질문은 공격이 아니다. 더 듣고 싶어서 묻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방어적으로만 대답하거나 엉뚱한 답을 하는 것보다,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거나 차분히 설명하는 편이 훨씬 진솔하게 전달된다. 어떤 질문은 작가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나 통찰력을 얻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실제 선발 과정에서 아쉽다고 느낀 지원서의 공통적인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장 기본은 기관에서 제시하는 양식을 지키는 것이다. 의외로 이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기존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붙여 넣거나, 요구 항목을 빠뜨리는 경우다. 지원서가 지나치게 장황해 핵심이 보이지 않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간략해 맥락이 빈약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영상 작가라면 링크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긴 영상을 모두 시청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짧은 클립으로 작업 분위기를 먼저 보여주고, 이후 전체 영상으로 이어지게 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다.
레지던시에 들어간 후 최대한 잘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상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작업실을 쓰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만, 레지던시의 진정한 힘은 관계망에서 나온다. 동료 작가, 기획자, 초청 전문가들과 교류하면서 기회가 생긴다. 스튜디오 방문을 제안하거나 기획팀에 연결을 부탁할 수도 있다. 비평가 매칭, 워크숍도 형식적으로 넘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다. 레지던시는 직장과 아카데미, 생활이 교차하는 특수한 공간이다. 기수별로 유대감이 생기기도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극을 받기도 한다. 반대로 프로그램 참여가 거의 없는 경우는 늘 아쉽다.
앞으로 레지던시를 준비하는 신진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현실적인 조언은 무엇인가?
레지던시 경쟁률은 해마다 높아지고 그만큼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프로그램이 계속 생겨나는 점은 다행이다. 한 번에 선정되는 경우는 드물고, 여러 번 지원하거나 동시에 여러 곳에 도전하는 경우도 많다. 탈락했다고 해서 작업이 평가절하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왜 지금 이 시점에 이 레지던시가 필요한가”를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다. 지리적 위치나 생활 조건도 고려해야 한다. 눈앞의 기회를 모두 잡으려 하기보다, 작업 맥락과 상황에 맞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선정 여부와 상관없이 기록을 쌓고, 자신의 작업을 점검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미술관
미술관에서 주로 운영하는 오픈콜은 신진 작가에게 중요한 등용문이다. 어떤 작가를 주목하며 어떤 가능성을 찾아내는지가 이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사 기준과 선정 과정의 이야기를 통해 준비 과정에 대한 팁과 함께 그 위상을 재점검한다.

송지원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공모 프로그램은 어떤 작가를 대상으로 하나?
금호영아티스트는 공고일 기준 만 35세 이하 대한민국 국적의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장르나 경력, 매체의 제한은 없으며 평면, 입체, 다중매체 등 다양한 작업을 포괄한다.
지원자를 선발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요소는 무엇인가?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다만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참신함과, 기존 작업과의 연계성을 유지하면서 전시를 통해 작품 세계가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다시 말해, 이 프로그램이 작가에게 의미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지, 기관과 작가 모두에게 적합한지를 평가한다.
포트폴리오나 지원서를 검토할 때 주목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최근 지원자들은 전공이나 배경과 상관없이 매체에 한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조형 언어를 펼친다. 동시대의 복잡한 주제를 단순화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탐구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반면, 작가노트나 전시계획서에는 큰 문제의식을 제시했지만 작품이 이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거나, 표현은 세련되었으나 주제의 참신성이나 설득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작가가 탐구하는 주제를 자기만의 언어로 어떻게 실험하고, 의도와 표현 방식이 작품 완성까지 얼마나 명확하게 이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선정된 작가에게 제공하는 지원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나?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기회가 주어지고, 소정의 창작지원금과 전문가 비평을 지원한다. 전시에 필요한 홍보물 제작과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해 작가를 적극적으로 알린다. 이러한 지원은 신진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미술관에서 선보일 수 있게 하고, 비평적 담론을 축적하며 향후 활동을 확장해 나가는 데 기반이 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된 작가들의 성장은 어떤가?
금호영아티스트는 지금까지 107명의 작가를 지원했다. 초창기 출신들은 중견 작가로 성장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정재호 박혜수 김상진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후보로 선정된 바 있고, 강나영 김원진 무니페리 이희준 정아롱 등도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성장은 독립 프로젝트, 국내외 레지던시 참여 등 제도 안과 밖에서 드러난다. 금호영아티스트는 제도권 안팎에서 작가가 자신만의 기준과 방식으로 작업 세계를 확립하는 발판이 된다.
공모에 도전하려는 신진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현실적인 조언은 무엇인가?
현재의 흐름을 반영하는 주제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작가 자신의 세계관이나 문제의식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다루는 재료와 매체가 그 문제의식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도 함께 고민한다면 더 설득력 있는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가장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지원 규모를 넓히고 싶다는 바람도 있지만,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장기적으로 작가의 성장을 돕는 방식이 무엇일지 늘 고민한다. 금호영아티스트가 단발적 기회에 그치지 않고, 작가가 꾸준히 작업 세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든든한 발판이 되도록 제도를 보완해 나가고자 한다.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공모 프로그램이 대상으로 하는 작가군이 정해져 있나?
OCI 영 크리에이티브 프로그램은 만 35세 이하 대한민국 국적의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경력이 많지 않아도 괜찮고, 오히려 유사 취지의 타 공모 선정작가는 기피한다. 접수할 때 장르와 매체를 구분하고 있지만 행정 절차일 뿐 학예연구 차원에서 장르와 매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지원자를 선발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요소는 무엇인가?
사업의 목표는 한국 현대미술 발전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작가를 발굴하는 것이다. 선정된 작가는 한정된 자원을 선택적으로 수혜받는 만큼 창작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창작 활동은 멈추는 건 사회 전체의 손해이다. 따라서 전업 작가로서의 의지와 지속성이 핵심이다. 소통력과 사고도 중요하다. 이 부분은 포트폴리오나 심층 면접으로도 온전히 알아내기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일일 수 있다.
포트폴리오나 지원서를 검토할 때 확정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단순히 남들과 다른 게 아니라, 새로운 미적 쾌감을 선보이는 독창적인 작업인지 본다. 미술계에 1등은 없지만 괜찮은 작업의 기준은 있다. 몇 개월 안에 개인전을 이끌어갈 수 있는 이야기, 표현력, 생산력, 구성력은 필수다. 작업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포트폴리오 외에도 무궁한 콘텐츠를 품고 있는지 살핀다. 작가는 창작 기계가 아니라 창작 근처에 있는 사회인이기 때문이다.
선정된 작가에게 어떤 지원을 제공하나?
창작지원금 1000만 원, OCI미술관 개인전 개최, 큐레이터의 전시 기획·관리, 전문가 평론 매칭, 인쇄물과 홍보물, 영상 매체 제작, 온·오프라인 홍보 전반을 지원한다. 선정된 이후에도 미술관 네트워크에 참여해 정보 제공·홍보·교류·섭외 기회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된 작가들의 대표적 성장 사례는?
2015년 수상자 양정욱 작가가 대표적이다. 2021년 OCI미술관 전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고, 2024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되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신진 작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현실적인 조언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덕목들은 심사 기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로 오래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질이다. 현대미술은 개인 역량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자원과 피드백을 활용하는 과정이 기본이 되었다. 퀄리티나 실현 가능성 이전에 지속의 문제가 얽혀 있다. 또한 좋은 작업만큼 중요한 건 ‘잘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작업도 드러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보여주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은 이제 작가의 필수 과제다.
공모 프로그램을 지속하면서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OCI 영 크리에이티브의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꾸준함’이다. 매년 변함없이 열리는 공모 프로그램은 신진 작가에게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든든한 마차같은 존재다. 참신함과 다양성보다도 더 가치 있고, 어렵고, 절실한 게 바로 꾸준함이다. 지원금이나 시설, 지원 범위는 언제나 모자라다 느끼고 더 확대하고 싶은 부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모가 소모적이지 않고 작가와 기관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모델을 유지하는 것이다.

로렌시나 화란트 송은 아트 디렉터·로렌스 제프리스 대표
송은의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엔 무엇이 있나.
송은 아트큐브는 2002년에 시작된 신진 작가 공모 프로그램으로, 젊은 작가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창구였으나 2021년 종료됐다. 많은 이들이 프로그램 재개를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올해부터 장르 구분 없이 개인전 경력 2회 이하의 신진 작가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공모 프로그램 ‘스프링 피버(Spring Fever)’가 시작됐다. 올해 공모는 지난달 25일 마감됐다.
지원자를 선발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요소는 무엇인가.
송은미술대상은 외부 심사위원을 위촉해 공정성을 높이고, 꾸준한 작품 활동과 독창적인 시도를 이어온 작가를 발굴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아트큐브와 스프링 피버는 내부 심사로 진행되지만, 심사의 기준은 동일하다.
포트폴리오와 지원서를 검토할 때 중점적으로 보는 요소는 무엇인가.
내부 심사에서는 작가가 다루고자 하는 담론이 뚜렷한지, 송은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지를 본다. 외부 심사가 진행되는 송은미술대상의 경우에는 공정성을 위해 일정한 가이드라인만 제시한다.
선정된 작가에게 어떤 지원이 주어지나.
송은미술대상은 상금과 함께 서울시립미술관과의 협력 레지던시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송은문화재단이 각각 작품 한 점을 매입하고, 향후 3년 이내 송은에서 개인전을 열 기회도 주어진다. 아트큐브는 전시 공간과 도록, 광고를 지원했으며, 스프링 피버는 신진 작가 3인에게 송은 공간 한 층을 맡아 개인전을 열 기회를 제공한다.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대표적인 작가를 꼽는다면?
제17회 송은미술대상 수상자인 김영은 작가가 대표적이다. 수상 당시 국내 전시 경력이 많지 않았지만,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5 후보에 올랐고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와 해외 전시에도 참여했다. 울리 지그 컬렉션에 작품이 소장되기도 했다. 송은 프로그램은 이런 성장 과정에서 전시와 여러 지원을 통해 작가를 알리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신진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현실적인 조언은 무엇일까.
공모에 지원할 때는 단순히 기회 자체보다 기관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공간을 직접 방문해 본 경험이 있어야 본인의 작업과 맞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기관의 성격과 운영 철학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최종 결과에도 큰 영향을 준다.
공모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가장 고민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한국에는 뛰어난 신진 작가가 많아 늘 즐겁지만 동시에 고민도 따른다. 작가의 생존 사이클이 짧게만 느껴지기도 하고, 작가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생산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 그래서 특정 연령, 경력, 매체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배경의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자 과제다.
독립미술공간
독립공간은 언제나 실험과 시도의 무대였다. 제도권의 시선이 닿지 않는 프로젝트와 작가들이 이곳에서 살아 숨 쉰다. 신진 작가를 가장 먼저 소개하고 협업하는 독립공간의 눈은 어떤 작가들을 향해 있는지, 또 작가들에게 어떤 기회를 열어주고 있는지 들어본다.

안부 〈위로의 이름〉 패널에 유채, 오일스틱, 오일파스텔 133×158cm 2024
안부 작가·별관 대표
전시는 작가 제안으로 이루어지나, 아니면 디렉터가 선정하나? 다른 공간과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디렉터가 작가를 선정하는 경우가 더 많다. 지원제도의 구조 때문이다. 지원 결과가 상반기를 지나 나오고, 1월에 발표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금은 이미 대형 작가들에게 돌아가서 우리와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하반기 전시를 희망하는 작가들의 제안이 몰린다. 하지만 실제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한정적이다. 기금 없는 제안도 받지만 진행이 쉽지 않다. 별관은 아직 공모를 진행한 적이 없다. 누군가는 떨어지고 누군가는 선정되는 방식의 공모, 혹은 디렉터 취향으로만 결정되는 공모가 아니라, 다른 방향성을 모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공간과의 호흡을 본다. 이 작가의 작업이 왜 별관에서 전시되어야 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올해 6월 임다인의 개인전은 기존 회화 방식을 확장하는 방향을 별관에서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해 함께 했다. 이후 작가가 이 신작으로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기쁜 소식도 있었다. 또 하나의 기준은 다소 모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태도’다. 포트폴리오나 전시 기획서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태도, 작업에 임하는 진심, 전시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최종 선정 전에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작가의 태도를 파악하려 한다.
포트폴리오나 지원서를 준비하는 작가에게 주고 싶은 팁이 있다면?
디렉터이자 작가로 활동하다 보니, 바라볼 때와 경험할 때의 차이가 크다는 걸 느낀다. 검토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점이 잘 보이지만 막상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중요한 건 자기 작업의 특징과 매력을 찾고,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정답이 있는 듯 보이지만, 각자의 특성을 드러내는 게 핵심이다.
앞으로 별관이 작가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나?
별관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기존 작업 방향이 고착되었다고 느끼는 작가에게 새로운 실험의 장이 되길 바란다. 여전히 신진 작가가 전시할 수 있는공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첫 개인전을 열거나 수면 아래 있던 작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기회를 주는 공간이 되고 싶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무대가 되기를 희망한다.
성장하는 작가들,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생각보다, 보기보다 훨씬 치열한 길이다. 환경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자기 자신과도 치열하게 부딪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결국 내가 선택한 치열함이다. 그 속에서 행복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고백이자,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박지인 피에스센터 대표
전시는 작가 제안으로 이루어지나, 아니면 디렉터가 선정하나? 다른 공간과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피에스센터(PS CENTER)는 대표와 두 명의 큐레이터가 함께 전시 기획과 작가 선정 과정을 내부적으로 진행한다. 대부분의 전시는 긴밀한 내부 협의로 결정된다. 외부 제안이 갤러리의 예술적 방향성과 맞고 실현 가능성이 있으면 검토한다. 이런 내부 기획 중심 운영은 전시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작가와 중장기적 협업을 통해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 확장하는 데 관심이 많다.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포트폴리오, 작업 주제와 매체 사용 방식, 실제 작업물의 완성도, 작가의 서사를 담은 소개문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매체와 메시지의 적절성, 즉 작가가 선택한 매체가 자신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하는가이다. 미학적 완성도와 관객에게 닿는 전달력도 중요한 기준이다. 피에스센터는 상업 갤러리인 만큼 작품이 관객과 컬렉터와의 접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술을 화폐가치로 단순 환원할 수는 없지만 치열한 시장에서 작품성과 시장성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장성은 단순히 크기나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메시지와 매체, 작가의 서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관람자나 수집가가 작품의 가치를 신뢰하고 투자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다. 즉 작가와 작품의 서사가 일관성을 갖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 설득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포트폴리오나 지원서 작성에서 작가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점은?
갤러리는 작가 없이 운영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제출되는 포트폴리오를 하나하나 진지하게 검토한다. 지원자들에게 조언할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잘하는 것과 흥미 있는 내용이 포트폴리오에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둘째, 시각예술은 이미지와 오브제를 매개로 하므로 글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기보다, 솔직하고 명료한 작가노트가 더 강한 인상을 준다. 셋째, AI 도구가 보편화된 시대일수록 작가 자신의 사유와 관점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치게 포장된 문구나 외주화된 서술은 오히려 작품의 진정성을 해칠 수 있다.
앞으로 피에스센터가 작가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나.
작품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작업을 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는 세계를 드러내는 행위다. 피에스센터는 작가의 작업을 충실히 보여주는 전시공간이 되고자 한다. 협업을 통해 작가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하길 바란다. 이런 순간들이 관객과 컬렉터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가길 원한다. 결과적으로 공정한 경제적·사회적 보상이 작가와 공간 모두에게 돌아오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기획, 전시 설계, 홍보, 판매 전 과정에서 작가와 긴밀히 협력하며 지속 가능한 창작 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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