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 가는 질문들 III
로컬·지원 제도·미술 전문지
Interviews
강재영 기자
Special Feature
작가를 포함하여 미술계에 걸친 총 여덟 주체에게 작가로 가는 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여기엔 작가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질문뿐 아니라, 작가가 되기 위해 마주해야 할 여러 관문을 어떻게 통과해 나가야 할지 묻는 현실적인 질문도 있다. 작가를 키우는 아카데미, 레지던시, 미술관, 독립공간 등의 주체와 지역 미술계를 지탱하고 있는 이들, 또한 지원 제도 담당자와 월간미술 편집팀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로컬
로컬리티는 한계이자 가능성이 되고, 다른 생존 전략을 요구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비슷한 조건에서 고민하는 예비 작가들에게 또 다른 지도이다.

김영규〈AI로 생성한 성공하는 미술작가 관상〉디지털 프린트 2025
김영규 작가
대구에서 작가로 성장하는 것은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성장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나?
대구는 미술작가 육성과 큐레이터 양성에 다른 지역보다 활발한 지원을 하고 있다. 오히려 서울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막 졸업했거나 이제 막 시작하는 초년생들에게 다양한 기회가 열리고 있다. 대안공간과 문화공간이 꾸준히 생겨나며 여러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도 긍정적이다. 아쉬운 점은 지원사업이 젊은 작가나 협회를 중심으로 한 일회성 전시 지원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장점과 한계는 무엇인가?
장점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부동산 임차료와 생활비, 그리고 인구 규모에 비해 많은 지원사업이다. 이는 초년생 작가에게 특히 유리하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하다. 지역 미술시장의 규모가 작고 전시공간도 제한적이라 활동의 확장이 어렵다. 지역에서 실력을 쌓은 뒤 서울로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문제다. 다양한 지원사업이 있지만, 성장 이후를 뒷받침하는 체계가 부족하다. 상위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지역 활동의 한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역문화재단과 기관들은 지역 작가들의 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은 무엇이 있나?
지역 공간과 기관들은 꾸준히 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한다. 이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지역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활동하는 청년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다. 작가 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와 전시 기회의 부족인데, 다행히 예술인복지지원금, 레지던시,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 예술인파견지원사업 등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지원사업에만 의존하면 위험하다. 장기적으로는 작품성과 독자적인 활동을 통해 작가로서 길을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레지던시, 오픈콜, 아트페어 등 기회를 얻는 방식에서 작가들이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품 자체다. 작품 사진을 잘 찍고 서류를 꼼꼼히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작품이 중심이다. 유행에 따라 쉽게 작업을 바꾸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동시대적 흐름과 시각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성장은 어렵다. 졸업작품이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하거나 지원사업에서 계속 떨어지는 경험은 흔하다. 무너지지 않고 꾸준히 작업을 발전시키는 태도가 중요하다.
지역 미술계에서 작가들이 협업하거나 연대하는 방식은 어떤가.
현재 협업과 연대는 주로 지원사업에 따른 전시 형태로 나타난다. 기획자가 사업을 수주한 뒤 여러 작가와 협업하는 방식인데, 많은 경우 일회성에 그친다. 대구만 보더라도 예전에 비해 자발적인 그룹 활동이 줄어들었다. 이유는 금전적인 문제와 더불어 레지던시 제도의 활성화로 그 역할을 대체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레지던시와 지원사업은 본질적으로 그룹이 지닌 지속성과 다르다. 지역 예술계가 다시 자생적인 연대와 장기적 협업 구조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 지역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젊은 지망생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면?
예술활동증명 통계를 보면 전체 예술인의 70%가 서울과 경기권에 몰려 있고, 그 외 지역은 광역시라도 3%를 넘기기 어렵다. 서울 중심의 구조 속에서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는 출발선에서 불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작가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작가 생활은 개인의 고립된 활동이 아니라 사회와 지역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역 안에서만 머문다면 오히려 고립될 수 있다. 따라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작업 시각을 확장해야 한다.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멈추지 않고 지속하는 가운데 스스로 길을 들어가야 한다.

김선영 독립큐레이터,오버렙디렉터
광주에서 작가로 성장하는 건 서울이나 다른 지역과 차이가 있을까?
현대미술 흐름에 반응이 빠른 서울과 거리가 있다 보니 시차는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 작가로 성장하고 활동하는 데 지역이 문제가 되진 않는다.
광주에서 활동하면서 느끼는 장점과 한계는 무엇일까?
광주는 비엔날레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있어 현대미술을 경험할 기회가 많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지역예술계와의 소통과 참여가 활발하지 않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그 간극을 좁히고 다양성을 확장하기 위해 독립예술공간들이 여러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문화재단과 기관들은 어떤 역할을 하나?
여러 공간들이 레지던시나 전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지역문화재단에서도 전시지원 공모를 진행한다. 국제 레지던시로는 광주시립미술관, 호랑가시나무창작소, 뽕뽕브릿지, 지구발전오라, 오버랩 등이 다양한 국가와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각 기관의 방향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작업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별해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
지역 작가들이 기회를 얻을 때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건 작업 방향에 맞는 기회를 선택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회를 잡으면 오히려 활용하기 어렵고,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화려한 경력이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지역 미술계 안에서의 협업이나 연대 방식은 어떤가?
전통적인 협회 활동도 있지만 협업과 연대의 방식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최근에는 미디어아티스트들이 만든 ‘RGBst’ 나 스페이스 DDF에서 진행하는 전라권 신진예술가 대상 렉처 프로그램 의 ‘Peer Up’이 주목된다. 또 오버랩의 기획·연구자 협업 프로그램과 창작자 협업 레지던시도 좋은 사례다.
젊은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현실적인 조언이 있다면?
누구나 조급함을 안고 살지만 그 조급함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예술가의 삶을 긴 호흡으로 보고 작업 세계에 몰두하는 게 중요하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태도를 더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가벼운 포장은 쉽게 들키지만, 고독하더라도 진중한 태도에는 묵묵히 응원하며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지원 제도
창작지원금 등 작가 지원 제도를 운영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담당자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이들은 어떤 작가를 주목하고 성장시키고자 하며, 지원의 방향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을까. 제도의 목소리를 통해 작가가 기회를 어떻게 포착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본다.
배예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인재양성팀과장
예술인재양성팀에서 담당하는 주요 사업과 목적은 무엇인가
대표적으로 청년예술가도약지원 사업을 운영한다. 2024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만 34세 이하 청년 예술가를 대상으로 창작 및 작품 발표에 필요한 경비 일부를 지원한다. 청년 예술가가 독자적인 예술 영역을 확장하고 꾸준히 발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지원 신청 때 유념해야 할 팁이나 지원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공고문의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 심의방법 및 기준이 중요하다. 심의위원들이 내 지원신청서를 어떤 항목과 내용으로 평가하는지 알고 있다면 지원신청서 작성 방향이 막막할 때 이정표가 될 것이다. 심의위원들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지원서를 평가하기 때문에 키워드와 압축적이고 인상적인 문장을 활용해 가독성을 높여야 한다. 난해한 용어나 미사여구보다는 자신이 탐구하는 동시대 주제를 이야기하듯 풀어내는 것이 설득력이 크다. 포트폴리오는 단순 이미지 나열이 아니라 작업 과정과 맥락, 사업계획 등 지원신청서의 내용과 연결성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동시대 주제에 어느 정도로 관심을 두고 예술을 매체로 풀어나가는지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청년 예술가의 경우 작가의 정체성을 그려나가는 항해의 여정에 있기에 자신이 이 항해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참신한 시도를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작가를 찾게 된다. 즉 다음 작업이 궁금해지는 작가를 찾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술가와 소통할 때 가장 중시하는 점은 무엇인가
담당자는 선정된 예술가에게 국고보조금을 교부하고 잘 집행되는지 모니터링 및 정산과 같은 행정 소통을 주로 한다. 그러나 행정 절차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어떤 주제를 탐구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그 내용을 먼저 이해하려 한다. 나와 의사소통하는 예술가의 작업과 작품세계에 애정을 가지고 꼼꼼히 들여다보는 편이다. 이를 통해 작가의 언어가 구현되는 과정에서 제작비와 재료비의 사용 맥락을 파악할 수 있고, 어려움이 생기면 함께 해결책을 찾아 나간다. 단순한 행정 담당자가 아니라 예술가의 작업을 응원하고 돕는 협업 파트너나 동반자, 짝꿍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예술가들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장 포인트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이전 작업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다양한 창작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고,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교류할 기회도 얻게 된다.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작업을 지속할 힘을 마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미술 전문지
작가의 뜻을 다지고 성장하는 데 월간미술도 매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편집팀 기자들에게 작가와 매체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또한 작가들이 성장을 위해 매체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은지 등을 질문하고 그 답을 구했다.

월간미술 편집팀
작가 성장 과정에서 미술 전문지의 역할은 무엇일까.
작가는 자신이 구성한 작업 세계에 천착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갖추기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지면에 소개된다는 것은 매체가 선정한 필자가 연구를 통해 집필한 양질의 글을 통해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자기 작업의 좌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방향성을 점검하며 관객과 깊이 있게 대면할 기회가 된다. 지면을 통해 작업 세계를 깊이 있게 확인할 수 있으므로 기관이나 갤러리 등에서 주목하는 미술 전문지는 리스팅(listing) 효과를 만드는 매체다. 또한 월간지를 통해 다양한 장르와 작품 사회나 세계에 대한 여러 관점을 품은 작가들을 압축적으로 대면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월간지
탐독은 작가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이다.
수많은 전시 중 매체에 게재되는 전시가 갖춘 조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전시를 보기 전에는 기획자와 참여 작가, 전시가 지닌 주제와 공간의 종합적 인상을 먼저 본다. 작가의 중요한 전환점인지, 기획자의 고민이 뚜렷한지, 참여 작가들의 조합이 기대를 불러일으키는지가 판단 기준이다. 보도자료에 담긴 서문 등의 완성도도 중요하다. 편집팀에는 전시는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월간미술은 이러한 현장성을 중시하며, 전시 이후에는 보도자료와 기획문을 꼼꼼히 확인하고 편집팀 내 토론을 통해 게재할 전시와 작가를 결정하고 기사화한다.
현장에서 ‘좋은 작가’라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설명글이 없어도 직관적으로 시선을 끌고, 시간을 들여 보면 또 다른 층위가 드러나는 작업일 때다. 즉각적인 매력과 동시에 심화된 리서치나 표현의 고민이 감탄을 이끌어내야 한다. 또한 한 전시에서 출품된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이 서로 다른 형식을 지니더라도 공통된 문제의식을 지닌다고 읽히는 순간이 있다. 작가의 의도가 작품으로 잘 발현되고, 같은 고민이 다양한 방식으로 발화될 때 좋은 작가라고 느낀다.
SNS 시대에 전문 매체만이 줄 수 있는 차별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SNS는 단상을 남기고 바이럴에는 유용하지만 긴 호흡의 생각을 담기엔 한계가 있다. 논문은 호흡이 너무 길다. 월간지는 그 중간 지점에서 전문 필자가 생산해 낸 두터운 의미망을 꾸준히 기록해 제공한다는 점이 다르다. 전문성은 진중함과 구조를 요구하는데, 빠른 이미지 소비에 최적화된 SNS만으로는 이를 대체하기 어렵다.
신진·지망생에게 기자로서 조언을 한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를 꾸준히 드러내라. 전시나 레지던시 같은 공식 무대 밖에서 신진 작가를 ‘우연히’ 발견하기는 어렵다. 네트워킹 자리에선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전시 홍보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개인 SNS에 소식을 반복 게시하는 걸로 그치지 말고, 전시 전에 전략을 세워 매체와 공유하는 적극성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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