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미술장터 운영자들
강재영 기자
Special Feature
작가미술장터는 지난 10년간 한국 현대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상업 갤러리와 기존 유통 구조 바깥에서, 예술과 관객의 접점을 만들고 미술을 경험하는 방식을 확장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월간미술은 무소속연구소, 오아에이전시, 미학관을 만나 각기 다른 방법론으로,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작가와 관객을 연결해온 작가미술장터 사업과 굿즈, 앞으로의 방향까지 나누었다.
《bac. 2024 속초아트페어》 칠성조선소 전시 전경 2024
제공: 무소속연구소
무소속연구소 임성연 대표
무소속연구소는 《연희 아트페어》와《bac아트페어》를 운영하며, 지역성과 커뮤니티가 작가미술장터와 만나는 방식을 실험해왔다.
Q. 무소속연구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큐레이터 워크숍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우리가 예술가들과 모여 노는 걸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를 시도하게 됐다. 미술계에서 ‘이건 미술에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게 있으면, 우리가 해보자고 생각했다. 2010년대 초반 공예, 디자인 분야 전시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다.
Q. 카페 보스토크 운영이 연희동 아트페어로 이어졌다.
사람이 모이고 일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연희동 카페 보스토크는 그렇게 시작했다. 우리도 손재주가 있으니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카페 운영은 어려웠다. 카페로 돈을 벌어 예술 활동에 쏟으려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처음 3년은 카페 운영에 집중했다. 다행인 건 작가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프로젝트를 꾸리게 됐다. ‘연희동 아트페어’도 그중 하나다. 손님들이 “마당도 있는데 왜 플리마켓 안 해요?” 해서 플리마켓으로 먼저 시작했다. 공예하는 손님도 많고, 다섯 팀만 모이면 할 수 있으니까 가볍게 시작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다. 그때 연희동에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한편 구매 경험을 유도하는 것도 중요했다. 커피 마시러 온 손님에게 사고 싶은 작품에 빨간 스티커 붙이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작품 구입 경험이 없는 손님들이 구입을 상상하게 했고, 실제로 구매로 이어지기도 했다.
Q. 속초에서 진행하는 bac 아트페어는 연희 아트페어와 어떻게 다른가?
속초 아트페어는 2박 3일을 책임진다는 느낌으로 기획한다. 보통 아트페어는 체류시간이 1~2시간꼴인데, 속초는 여행지니까 ‘이틀 동안 뭘 경험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낮에는 전시를 보고, 저녁에는 파티를 하고, 강아지랑 놀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참여하는 작가들도 2박 3일 동안 현장에서 관객과 교류해야 한다. 단순히 작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본다. 작년에는 페어가 끝나면서 작가들끼리 “내년에 뭘 가져와서 놀아야 하지?”라고 이야기하더라. 그걸 보면서 bac가 자리 잡았다는 걸 실감했다.
Q. 작가 미술 장터가 처음 시작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달라졌나.
초반에는 기성 갤러리와 갈등도 있었다. 그래서 작품가액이 150만 원 이하로 제한되었다. 우리는 아는 작가들에게 “150만 원 아래로 작품 좀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원래 그런 가격대의 작업이 없는 작가도, 작업실에서 스케치했던 걸 가져와서 팔기도 했다. 카드 단말기 도입은 우리가 처음 했는데, 쉽지 않았다. 국세청에서도 카드로 판매된 작품을 과세해 본적이 없다보니,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엔 경쟁 관계처럼 보였던 갤러리들도 이제는 작가 미술 장터를 시장의 일부로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Q.《굿-즈》가 미술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나?
작가들은 100만 원짜리 그림은 팔아봤어도 천 원, 이천 원짜리 물건을 파는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도 작가들에게 ‘뭐라도 팔아보자’고 했다. 중요한 건 판매 경험이기 때문이다.《굿-즈》는 그런 의미에서 미술을 접하는 새로운 방식을 성공적으로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영향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흐름 속에서 우리도 페어를 준비할 수 있었다.
Q. 무소속연구소는 올해 어떤 행사를 준비하나?
올해 속초 아트페어는 더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을 초청하려고 한다. 디자인, 공예, 그리고 미디어아트 작가들도 함께할 예정이다. 또 하나는 속초에서 ‘예술과 관광’을 결합한 프로젝트다. 아트페어 기간 관람객들이 작가들과 함께 할 작은 워크숍이나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서킷서울》루프스테이션 익선 전시 전경 2022
제공: 오아에이전시
오아에이전시 윤영빈 디렉터
오아에이전시는《그림도시》와 《서킷서울》,《PRPT》을 기획하며, 기존 아트페어의 구조를 해체하고 관객의 능동적 경험을 유도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Q. 오아에이전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나는 미술 전공자는 아니지만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인문학을 공부했고, 주변에 개발자나 디자이너 친구가 많았다. 처음에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을 하면서 예술 시장을 서서히 이해해 보려 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시장을 너무 모르고 시작했더라. 그러던 중 일러스트 작가나 독립출판, 만화 쪽 작가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경험을 설계하는 걸 좋아한다면 이런 플랫폼을 만들어 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고, 그렇게《그림도시》를 시작하게 됐다.
Q.《그림도시》는 어떤 프로젝트였나?
《그림도시》는 작가와 관객이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기존의 화이트 큐브 전시는 너무 어렵고, 아트페어는 너무 상업적이니, 중간 지점을 찾고 싶었다. ‘작가 작업실로 이루어진 도시’를 만드는 게 우리의 콘셉트였다. 처음에는 일러스트 작가들과 시작했는데, 서울, 부산, 경기, 뉴욕까지 총 13회까지 진행하면서 독립출판, 사진, 애니메이션, 조각 등 다루는 장르를 넓혀갔다. 7년 정도 진행하고서, 《그림도시》를 통해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미술시장 자체가 변화하고 있기도 했다.
Q. 《그림도시》 이후 새롭게 시도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그림도시가 작가와 관객의 접점을 만들었다면,
《서킷서울》은 작품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다르게 설계한 프로젝트였다. 보통 전시는 작품을 한 공간에 늘어놓고 관객이 돌아다니면서 보는데, 《서킷서울》에서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작품이 런웨이 위를 움직이는 형식을 만들었다. 관객이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작품이 한 점씩 지나가는 방식이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관객들도 “작품을 기다리면서 보니까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피드백을 줬다.
Q. 오아에이전시가 기획하는 프로젝트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는 단순히 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예술을 경험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데 집중한다. 기존 아트페어는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목적이 되지만, 우리는 ‘작품을 보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고 싶었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에서 메뉴판을 보며 음식을 선택하는 경험, 패션쇼에서 모델이 워킹하는 걸 구경하는 경험, 은행에서 대기하며 차례를 기다리는 경험 등 익숙한 일상의 장면을 전시장으로 가져와 작품 감상과 연결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2023 PRPT(PromptSet)에서는 관객이 테이블 오더 앱을 통해 “보고 싶은 세 점을 직접 골라보세요”라고 요청하면, 서빙 스텝이 직접 작품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서 보여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한정된 선택 속, 관객은 메뉴판을 보며 자신의 취향을 고민하게 된다.
Q. 《굿-즈》 등의 다른 프로젝트는 어떤 영향을 주었나?
오아에이전시를 시작할 때 미술계를 전혀 몰랐다. 그래서 《굿-즈》뿐만 아니라 《취미관》, 《더스크랩》,《PACK》 같은 프로젝트도 스터디하면서 배웠다.《굿-즈》를 처음 알게 된 것도 인터뷰를 하다가 취미관 대표님을 만나면서였다.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를 보면서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깨닫게 됐다. 기획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실험을 해나가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Q. 앞으로 오아에이전시가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올해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PRPT의 확장이다. 작년에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과 작품을 연결하는 시도를 할 예정이다. 특히, 작년에 진행했던 ‘Vault Service’라는 은행 금고 콘셉트의 전시 형식은 유지하면서, 마케팅과 관객 접근 방식에 변화를 줄 계획이다. 요즘은 콘텐츠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고, 전시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고 SNS 환경도 많이 바뀌고 있다. 그런 변화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관객과 소통할지 고민 중이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6월 성수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많이 찾아와 주시고, 재밌다고 생각되면 널리 소문도 내주셨으면 한다.
《드로잉그로잉》 탈영역우정국 전시 전경 2023
제공: 미학관
미학관 이슬비 디렉터
미학관은 연희동에 전시공간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드로잉그로잉》을 통해 작가들에게 판매 경험을 제공하고 미술시장의 접근성을 낮추는 방식을 실천해왔다.
Q.《드로잉그로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미학관은 원래 전시 공간으로 시작했지만, 사회적인 이슈나 의제들을 미술로 풀어내는 것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과거 신생공간들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미학관이 장기적으로 유지되려면 작품 판매 같은 수익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드로잉그로잉》은 단순히 그런 이유로 만들었다. 단순한 아트페어가 아니라 드로잉을 중심으로 장터의 특색을 만들고 싶었다. 드로잉은 보통 작품이 완성되면 잊히거나 버려지는 매체인데, 이걸 다시 조명하고 판매로 연결하는 게 의미 있다고 봤다.
Q.《드로잉그로잉》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처음에는 연희동에서 작게 시작했다. 미학관을 알리는 동시에 판매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이길 바랐다. 이후 탈영역우정국, 이음갤러리 같은 전시 공간들과 협력하면서 규모를 조금씩 키웠다. 매해 콘셉트도 달리했다. 예를 들어, 어떤 해에는 종이 드로잉에 집중하고, 또 어떤 해에는 드로잉 행위 자체를
조명했다. 작년에는 발달장애 작가들과 협력해 신경다양성 작가들의 드로잉 작업을 보여주는 시도를 했다. 드로잉을 기반으로 미술 시장의 접근성을 높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다.
Q. 드로잉을 판매한다고 할 때 작가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작가마다 반응이 다양했다. 드로잉을 작업 과정의 일부로 여겨 기꺼이 공개하는 작가도 있었고, 반대로 드로잉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하여 않아 참여를 망설이는 작가들도 있었다. 처음 섭외할 때 90명 정도에게 제안하면, 일정 문제나 소속 갤러리의 정책 때문에 실제로 참여하는 작가는 50명 정도였다.
Q. 운영하면서 인상 깊은 점들은 무엇인가?
가장 예상 밖이었던 건 판매 결과였다. 초반에는 판매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던 작품들이 더러 팔리기도 했다. 예상과 다르게 관객이 반응하는 작품들이 있었고, 그런 데이터가 쌓이면서 점점 운영 방식도 달라졌다. 작년에는 관람객 수가 기대보다 적었지만, 판매율은 가장 높았다. 특정 작가의 드로잉만 수집하는 컬렉터도 생기고, 매해 찾아오는 단골 관객도 늘어나고 있다. 장터가 지속되면서 관객층도 점점 형성되고 있는 게 느껴졌다.
Q. 《굿-즈》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굿-즈》는 확실히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행사였다. 그러나《드로잉그로잉》을 기획할 때 《굿-즈》를 의식하지는 않았다. 《굿-즈》가 가져온 효과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 이후에도 미술계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Q. 작가 미술 장터에 대한 생각을 들려달라.
작가 미술 장터는 처음에는 작가들이 직접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하여 작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직거래 장터’를 표방한 형태를 띠었지만 차츰 기획자가 개입하는 구조로 변화했다. 결국에는 갤러리가 아니라 기획자 혹은 단체가 중간 매개자가 된 형태다. 이는 처음 사업이 출범했을 때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방향이다. 지금은 갤러리 전속 작가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되었고, 수익 배분 구조도 변화하고 있다. 초반에는 판매금액 100%가 작가에게 가도록 했지만, 현재는 7:3 비율로 운영 단체도 일정 부분 수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바뀌었다. 작가 미술 장터가 단순한 단기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작가들뿐만 아니라 이를 실행하는 단체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드로잉그로잉》이 기존 아트페어와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기성 아트페어들은 컬렉터 중심의 프로그램이 많다. 컬렉터 투어나 도슨트 프로그램 같은 정형화된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드로잉그로잉》은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한다. 사람들이 직접 드로잉을 하고, 만들어서 가져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Q. 올해 《드로잉그로잉》은 어떻게 진행되나?
올해 행사는 보안여관 구관에서 6월 6일부터 29일까지 열린다. 보안여관은 전형적인 전시장과는 다른 공간이라서 이를 오히려 장점으로 살릴 계획이다. 프로그램도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기존 3년 동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많은 일반 관객이 방문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
Q. 앞으로 《드로잉그로잉》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나?
《드로잉그로잉》은 허들을 낮춘 친근한 장터로 남고 싶다. 너무 힘을 주는 행사보다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 다른 아트페어들이 구조적으로 잘 정착하고 있는 만큼,《드로잉그로잉》은 조금 더 자유롭고 러프한 형태로 가고 싶다. 긴 호흡으로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Focus
지금, 동시에 그 바깥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수건과 화환의 이예현, 이우솔은 문자 중심의 전시와 텍스트 유통을 통해, 미술의 유통 방식이 반드시 작품 판매에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전시 공간을 단순한 작품 발표의 장이 아니라, 글과 아이디어가 순환하는 플랫폼으로 확장하며 새로운 미술 경험을 실험하고 있다.
이미지 제공: 수건과 화환
수건과 화환
강재영 기자
공간 ‘수건과 화환’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이예현 2020년 후암동에서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전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실험적인 공간이었다. 내부에 가벽을 세워서 미로처럼 연출하고 그 사이로 작품을 배치했다. 관람객을 일일이 응대하며, 자연스레 관람객의 요구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후 《텍스트 뷔페》를 진행하며 정체성을 굳히게 되었다. 2023년 성북동으로 이전하면서 운영 방식을 바꾸고 기획자들과 협업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우솔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에 참여했다. 미술에서 텍스트의 위치에 대해 고민해왔다. 《텍스트 뷔페》가 공간의 중요한 기획으로 자리 잡으면서 전시를 하나의 텍스트로 바라보는 방식을 시도하게 되었다.
《텍스트 뷔페》는 어떤 전시인가?
이예현 《텍스트 뷔페》는 작가가 생산한 여러 종류의 텍스트를 마치 뷔페처럼 테이블 위에 올리면, 관람객이 제한된 시간 동안 이를 선택해서 읽도록 만든 전시이자 이벤트다. 글을 책이나 서점이 아닌 공간에서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지, 텍스트를 개인의 관심사 속에서 엮어나가도록 연출했다.
이우솔 입장료를 받고 주어진 시간 동안 텍스트를 감상하는 형식을 처음 시도했는데, 관객 반응이 좋았다. 단순히 텍스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 형식 자체를 실험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수익화 측면에서는 여전히 고민이 많다.
기존 전시 공간과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
이예현 기존 전시 공간에는 일정한 형식이 존재한다. 특히 2015년 이후 신생 공간이 고착화하면서, 비영리 전시 공간의 운영 방식도 어느 정도 정형화됐다. 우리는 그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전시를 기획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와 관람객이 텍스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방식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고민했다.
이우솔 기존 비영리 전시 공간들이 예술 작품을 ‘보는’ 방식에 집중했다면, 우리는 ‘읽는’ 경험을 중심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전시 공간이라기보다는 플랫폼의 개념에 가깝게 운영하고 있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겪은 변화는 무엇인가?
이예현 처음에는 (자율성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기금을 지원받지 않고 운영하려 했다. 그래서 전시 기록도 남기지 않았고, 관람객에게 전시에 대한 기록자로 참여할 것을 요청했다. 후암동에서 운영할 때는 월세 부담이 작았고, 공간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북동으로 오면서 상업적 운영을 고민하게 됐다. 기금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려다 보니 지속적인 수익 모델을 찾는 게 중요해졌다. 작년부터 기금도 받아가며 운영에 보태고 있다.
이우솔 전시 공간이 단순한 실험 공간이 아니라, 작가와 관람객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려면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를 더욱 확장하는 방향으로 기획하고 있다. 대관을 하더라도 기존 전시 공간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진행할 수 있는 방식을 찾고 있다.
‘수건과 화환’이라는 공간 명은 어떻게 탄생했나?
이예현 전시 공간 이름을 (지명이나 운영자 이름을 따거나 취지를 반영하는 등) 흔한 방식으로 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시라는 것이 결국 사람들이 모이고, 작가들을 기념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시를 축하하는 상징적인 물건인 ‘수건’과 ‘화환’을 결합해 이름을 지었다.
이우솔 공간을 시작할 때부터 작가 중심의 공간을 고민했기 때문에, 작가들이 환대받을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수건과 화환’이라는 이름도 그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앞으로 열리는 이벤트를 소개해달라.
이예현 현재는 텍스트의 새로운 유통 방식을 연구하는 ‘언바인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두성종이와 협업으로 ‘인더페이퍼’라는 공간에서 수건과 화환의 팝업이 4월 첫 주까지 열린다.
이우솔 4월에는 가구의 최소 단위를 규정하는 ‘파츠’와 텍스트의 최소 단위로서의 단어를 서로 연결 지어 디자인과 (독해)행위의 연계를 시도하는《파츠 가설소》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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