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정 Sojung Jun

‘싱코피’와 디아스포라들

ARTIST FOCUS

전소정/ 1982년 출생, 서울대 조소과 학사 졸업 및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아트 전공 석사 졸업. 제18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및 제14회 송은미술대상 등 수상. 개인전《오버톤 Overtone》(바라캇 컨템포러리, 2023 ) 및 《올해의 작가상 2023》(국립현대미술관, 2023 ), 《보통 사람들의 찬란한 역사》(경남도립미술관, 2023 ),《황해어보》(인천아트플랫폼, 2023 ), 《그것은 내러티브를 걷는 방식이었다》(프리즈 필름, 2023 ) 등 다수 단체전에 참여. 국립현대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등에 작품 소장 사진 : 박홍순

〈싱코피〉(가운데 ) 단채널 4K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29분 30초 2023 작가 소장

《올해의 작가상 2023》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싱코피’와
디아스포라들

김주원 | 상명대 겸임교수, 전시기획

전소정은 2010년 〈일상의 전문가〉시리즈 이후 ‘근대(성)-경계’를 주목하면서 ‘시공간’과 ‘감각’의 인식/번역/통합/재위치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인간학적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는 근대성의 안팎 또는 그 과정과 결부된 거대한 도시의 집단적 균질화, 구분화, 전문화가 놓아버린 낯선 자, 도망자, 실종자, 망명자의 각기 다른 서사를 따라 근대적 인간의 조건과 형태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전소정의 작업 속 낯선 자, 도망자, 실종자, 망명자들은 한때 게토(Ghetto)로서 성곽 아래 바다 위 배에 태워진 채 백화점 뒷골목 안 조명 없는 구석에 몰려 하얀 가면을 쥔 노란/검은(피부)색 손의 실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시각 중심의 근대적 문화가 축소하고 상실해 버린 촉각, 청각, 후각 등의 개별적인 신체감각들을 일깨우고 활성화한 특정한 경험을 가졌다.

근대에 등장한 증기선과 기차, 자동차와 비행기, 시계와 시간표는 느린 음악은 느리게(Adagio-Grave-LargoLento), 빠른 음악은 빠르게(Allegro-Vivace) 연주하길 지시하는 인쇄 악보와 같다. “느린 음악이라도 빠르게 연주하면 다른 노래가 돼”(싱코피, 2023)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의 연관이고 주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누군가의 지각과 해석에 따라 다르게 구상되고 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이런 차원에서 전소정이 최근에 제작, 발표한 작품〈싱코피〉(2023)와 〈오버톤〉(2023)은 근대를 딛고 있는 동시대의 다양한 시공간 영역과 감각들을 불러내어 비가시적-가시적인 영역의 경계와 사이, 그 실존을 호출하고 그것들의 전이, 융합, 이어붙이기 등을 통해 감지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나의 세계시와 디아스포라들
19세기 중엽까지 세계의 각 도시는 고유의 시간 기준을 사용하고 있었다. 시간 기준에 대한 국제적인 협약이 1884년 국제자오선회의를 통해 결정되면서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하나의 세계시(universal time)로 통일되었다. 실로 첫 번째 전지구화의 시작으로 세계의 생활과 사유 구조는 통합, 일치, 규제되는 동시에 고유의 것들은 해체, 폐기되면서 세계는 하나의 풍경으로 수렴되었다. 전소정의 신작〈싱코피〉(2023)는 이러한 일치의 풍경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전소정은 ‘하나의 세계시’와 기차/도시/워디안 케이스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이것들이 강요한 “패권적인 시간 기준이 신체와 정신에 가한 피해를 전경에 세워, 현실을 경험할 새로운 접근법을 제안한다. 시공간을 조작하고무너뜨려 만든 30분 길이의 비디오를 통해 작가는 더 바람직한 가능태의 미래를 불러낸다. 서울, 족자카르타, 파리, 도쿄에서 촬영한 영상과 모바일 테라리움 앱으로 생성한 클립이 뒤섞인 몽타주는 도시들의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며”1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의 노선길이 9,289km에 달하는 대륙을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여정을 따른다.

19세기 극동지방의 군사적 의의(意義) 증대, 시베리아 식민, 대(對)중국무역 등을 목적으로 계획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러시아와 동아시아 간의 교역을 확장할 목적으로 탄생했지만, 러시아는 물론 일본 제국주의가 촉발한 디아스포라와 깊숙이 결부되어 있다. 전소정이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 1938~2023)의 일본 만화〈은하철도999〉(1978~1981)를 직접 인용하며 허구적 시간인 우주여행을 끌어안는 것은 이와 같은 근대성의 욕망이 깊숙이 배태되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2023 올해의 작가》에서 처음 소개된〈싱코피〉는 기차를 통해 시간이 공간과 속도를 어떻게 관리하여 개인과 개인의 삶을 감시, 규제, 일치시키는지를 상기시킨다. 이렇게 전지구화와 그 가속의 상징으로 소환된 기차는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적 욕망의 속도를 멈추게 하고 선형적 경로를 이탈하는 전복의 장치로 기능한다. 끊어지고 멈춰서 경로를 이탈한 기차는 자본과 근대의 속도 밖에서 유랑하는 사람들과 같다.


1 밸런타인 우만스키 「보조모음」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 https ://koreaartistprize.org/project/전소정/

〈절망하고 탄생하라〉 단채널 비디오, HD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24분 45초 202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올해의 작가상 2023》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가믈란과 가야금, 인생의 두 번째 파트가 시작되다

“어쩌면 내 인생의 두 번째 파트가
이렇게 시작되려는 것인지도 몰라.”

한국에서 프랑스 가정에 입양되었던 셀리아 휴엣(Celia Huet)이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소리를 따라 족자카르타로 이주한 자신의 이야기를 작가에게 들려주며 한 말이다. 가믈란은 인도네시아의 자바, 순다, 발리 사람들이 연주하는 전통 합주 음악으로, 주로 타악기로 구성되어 있다. 셀리아는 인도네시아에서 세카튼 가믈란 소리를 처음 듣고는 ‘데자뷔 내지 데장탕뒤(이미 들은 듯한 기분)’를 경험했다고 말한다.2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되면서 시작된 셀리아의 디아스포라 여정은 그녀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한 가믈란 소리로 인해 프랑스에서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로 이어졌다. 비자발적, 난민적 디아스포라가 자발적, 대안적 디아스포라로 전환되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그녀는 이 새로운 고향 족자카르타에서 가믈란 연주를 하고 있다. 전소정은 셀리아의 디아스포라 여정을〈싱코피〉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래서 30분 길이의 영상은 셀리아를 주요 맥락으로 채택하면서, 신화 속 디아스포라의 여정이 구축하는 임시통로의 가능성을 가시화한다. 예컨대, 신화 속 인물인 카르나(Karna)와 바리데기도 소환하고 있다. 반신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들은 둘 다 삶과 죽음 사이를 떠도는 노마드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들은 디아스포라적 여정을 나선 방랑자들을 보호하는 부적과 같은 존재이다. 카르나는 미혼의 여성 쿤티(Kunti)가 몰래 낳은 아들이다. 혼전 임신에 대한 사회의 분노를 두려워한 쿤티는 갓 태어난 아들을 바구니에 넣어 누군가 길러주길 바라며 갠지스강으로 떠내려 보냈다. 카르나는 강을 따라 떠내려가던 중 드리타라슈트라 왕을 위해 일하는 마부 아디라타와 궁중 시인인 그의 아내 라다에 의해 발견되어 그 부부의 양자로 자라게 된다. 한편 우리나라 관북지방의 설화 속 버려진 공주인 바리데기 역시 태어나자마자 버려졌으나 한 노부부에 의해 구해져 양육되었다. 후에 자신을 버린 왕과 왕비를 다시 살렸다. 비평가 우만스키의 말대로 카르나와 바리데기는 모두 두 번째 기회를 선사하는 존재이며 이들 모두가 경계의 신이다. 이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고 시간을 희롱한다. 가속주의 같은 근대의 선형적 구성체를 우회하며 탈선을 시도한다.

인도 출신의 영국 소설가인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 1947~)는 고국에서 물리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상실감을 보상받기 위해 그들의 고향을 상상에서나마 되찾고자 하는 충동에 휩싸이게 됨을 지적한 바 있다.그는 자신의 고국 인도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디아스포라들이 인도로부터 물리적으로 소외되어 있다는 것은 거의 필연적으로 잃어버린 고향을 완벽히 떠올릴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인다. 즉 실제 존재하는 도시나 마을을 떠올리는 것이 아닌 상상의 고향 다시 말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상상의 인도들(imaginary indias )’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루시디의 언급에서 주의를 요하는 부분은 디아스포라가 상상을 통해 떠올리는 고국이 단 하나의 대상인 ‘상상의 인도’가 아니라 복수의 대상인 ‘상상의 인도들’이라는 점이다.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상상 속에서 고향은 얼마든지 새로이 발견될 수 있다.4

루시디의 이런 주장은, 버려져 조국과 고향을 상실한 디아스포라 셀리아가 경험한 가믈란 소리의 데자뷔 경험, 그 아포리한(당혹스러운) 향수에서 비롯된 ‘상상의 고향’은 어디인 것일까. 셀리아에게 ‘상상의 고향’은 그녀가 태어난 한국이 아니라 “어쩌면 내 인생의 두 번째 파트가 이렇게 시작되려는 것인지도” 모를 족자카르타인 듯하다. 셀리아가 새로이 발견한 심상지리로서의 고향 족자카르타에서 그녀는 가믈란 연주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한편,〈싱코피〉는 셀리아와 함께 또 다른 여성 연주자의 디아스포라 여정도 살피고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두 번째 인물은 전소정의 전작〈이클립스〉(2020)와〈오버톤〉(2023)에 출연한 박순아다.〈싱코피〉4장에 등장하는 그녀는 셀리아의 디아스포라를 둘러싼 감각과 이동의 형태, 그 경험과는 다른 기억과 향수에서 비롯된 디아스포라 여정을 보여준다. 전통 가야금 연주자인 박순아는 한국이 분단되기 전 조부모님의 일본 이주로 재일교포 3세대라는 정체성을 지녔다. 그녀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어린 시절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의 민족학교를 다니던 중 10살 때부터 독학으로 가야금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오사카에 있는 조선 고급학교(고등학교에 해당) 2학년 때 오디션을 통해 평양음악무용대학 통신교육생으로 뽑혀 가야금을 배웠다.

“이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 머리로 생각하면
그게 안 되고 몸이 느끼는 뜯는 중력감과 템포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 거기서
무중력을 저는 느꼈고, 거기서 제일 자연스러운
소리가 나왔고.”

전통가야금 연주를 통해 근대가 배제해 온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기까지 박순아의 디아스포라 여정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포스트-식민주의 공간, 한때의 식민본국 일본에서 녹음기 등 통신을 통해 접하게 된 가야금 소리는 이데올로기와 분단으로 방문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북한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일본과 북한, 한국을 오가며 전통 가야금 기법인 농현(弄絃) 연주에 능하다. 거문고나 가야금 등의 현악기 연주에서 왼손으로 줄을 짚어 원래의 음 이외에 여러 가지 장식음을 내는 기법인 농현은 ‘현(絃)을 희롱(戱弄)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음을 흔들어서 물결과 같은 파동을 얻는 기법을 가리킨다. 전소정에 의하면 박순아가 터득한 가야금 왼손 기법의 핵심인 농현은 ‘기보화 되지 않은 소리’, ‘빈 공간’, ‘악보 바깥으로 나아가는 여음’이다. 어쩌면 일본, 북한, 남한의 문화를 종횡하는 박순아의 심상지리로서의 ‘상상된 고향’은 시공간 속 속도와 무관한 가야금 연주를 통해 경험한 ‘무중력’ 상태, 그 시간일 수도 있다.


2 위의 글 참고 인용
3 Salman Rushdie Imaginary homelands, Ashcroft, Bill, Griffiths, Gareth, Tiffin, Helen(edt. ) The Post-Colonial Studies Reader(2nd edition ) Routldege 2006 pp.428~434
4 김태준은 “심상이란 어떤 사물의 이상적 표상으로 사물로부터 멀어진 거리에서 사물이 지배하는 기억의 윤곽을 말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심상지리’는 어떤 특정한 실제 지역을 뜻하는 지리에 ‘심상’이라는 단어를 합성함으로써 기억을 통해 보다 넓은 차원으로 재구축 혹은 재배열된 영토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준 「고향 근대의 심상공간」 『한국문학연구』 31집 2006 pp.11

〈광인들의 배〉단채널 비디오, HD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22분 50초
2016 작가 소장《올해의 작가상 2023》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 모호함의 가능성
전소정의 〈싱코피〉는 포르투갈어로 당김음이자 문법적 용어로는 소실어, 중략어를 뜻하며, 의학용어로 때로 맥박이 느려지거나 중지되어 뇌의 산소 공급이 급격히 저하하여 일어나는 단기 인지장애, 즉 졸도, 기절, 실신 상태를 일컫는다. 작품 안에서 이 단어는 갑작스럽게 튕겨 나간 음과 같이 정상적인 규칙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현상을 포함하며 근대화 과정에서 놓아버린 바깥의 영역을 탐색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정착할 곳을 찾으려는 연주자, 여성 시인 작가 등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에 개입하여 앞으로 발생할 일들을 예견하거나 선형적 구조를 흐트러뜨리고 새로운 결합이 가능하게 하는 소리이자, 미래를 감지하게 하는 하나의 징후로서의 소리가 된다.5

졸도, 기절, 실신은 회복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체에 대한 궁극적인 통제 상실, 맥박의 중지는 감각과 서사의 중단을 의미한다. 전소정은 의도적으로 작품 속 서사를 중단하고 방해하는 장치로 철도 건널목에서나 카르나 이야기가 나올 때처럼 여러 장면에서 마이크를 화면에 끼워 둔다. 용어 ‘싱코피’가 의미하는 바를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리, 발화자 없는 소란스런러운 무중력한 상태처럼 허공을 향해 거듭 끼워 둔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 한국계 입양아 셀리아 휴엣과 재일조선인 박순아의 디아스포라적 여정의 변화 계기는 아포리한 ‘데자뷔’와 ‘무중력’ 경험이 의학용어 ‘싱코피’가 설명하는 졸도, 기절, 실신 상태가 줄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시공간일 수 있다. 이것은 전소정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자 명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함’이다. 〈싱코피〉는 그렇게 경계와 모호함에서 구축 가능한 대안적 통로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마치 졸도, 기절, 실신이 초래한 ‘지워진 이야기를 되찾고’,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6 당겨진 시간의 생산적 가능성과도 같이. 그리고 새가 먹은 과일이나 씨앗에 의해, 배나 차량의 히치하이커로서 원래 지역을 벗어나 “이주하여 흩어진 식물들(escaped garden plants)”7 처럼.

전지구화와 그 가속의 상징으로
소환된 기차는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적 욕망의 속도를
멈추게 하고 선형적 경로를
이탈하는 전복의 장치로 기능한다.

여기에 살지만 여전히 ‘다른 곳을 욕망’ 하는
워디안 케이스에 실려 ‘이주하여 흩어진 식물’들은 전소정에 의해 디지털 세계로 옮겨져 모바일 테라리움이라는 애플리케이션 형식의 3D 애니메이션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이 열대 다육식물인 ‘에피필름(Epiphyllum )’은 멕시코에서 이주한 착생식물이다. 영상 비디오에도 등장하고 앱을 이용하면 전체를 볼 수 있는 이 식물-조각들은 새로운 시공간 속에 옮겨 놓을 수 있으며 증강 현실(AR)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데이터 씨앗이 원하는 장소로 옮겨지고 여러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이동하는 데이터로 증강 현실 속 신체인 이 덩굴식물은 실제 공간 속 틈을 비집고 중력을 역행하는 방식으로 변신과 변형을 거듭하는 신체가 되어 무게와 중력, 속도와 시간을 감각하는 방식에 관여하며 시공간의 경계를 허문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식물들도 ‘여기에 살지만’ 여전히 ‘다른 곳을 욕망’하는 심상지리로서의 ‘상상의 고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영상의 후반부에 핑거드럼을 연주하는 한국 뮤지션이자 DJ 소월의 다음과 같은 말은 온몸으로 부딪힌 근대와 근대가 놓아버린 바깥의 영역에 있을지도 모를 ‘상상의 고향’을 탐색하게 한다.

“결국 우리 모두 다 서로 다른 속도”
“그 틈에서만 살게 될는지도 모르지.”


5 밸런타인 우만스키 「보조모음」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 https ://koreaartistprize.org/project/전소정/ 참고
6 제임스 클리포드(James Clifford ) Diasporas Cultural Anthropology vol.9 no.3 1994 pp.264 밸런타인 우만스키 「보조모음」『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 https ://koreaartistprize.org/project/전소정/ 에서 재인용
7 밸런타인 우만스키 「보조모음」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2023 https ://koreaartistprize.org/project/전소정/ 참고.
한편, 워디안 케이스(Wardian Case )는 영국인 의사 나다니엘 백쇼 워드(Nathaniel Bagshaw Ward, 1791~1868 )가 만든 일종의 휴대용 테라리움 장치로서 영국의 제국주의적 연구의 산물이다. 이 덕분에 전 세계 외래 식물 종을 수집해 ‘살아있는 채로’ 유럽으로 운반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워디안 케이스는 한편으로는 ‘집안의 수정궁’이라 불리며 중산층 가정의 거실을 장식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와 고무 같은 상업작물의 지리적 독점을 돌파하는 역할을 했다. 염운옥 「워디안 케이스와 이동하는 식물」 인권연대 https ://hrights.or.kr/susan/?mod=document&uid=594105 참고 2024년 4월 22일 접속


본 원고는 (재 )예술경영지원센터 ‘2024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기고이다.

〈싱코피〉(스틸) 단채널 4K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29분 30초 2023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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