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혜 : 마법의 갑옷과 신비의 칼을 주오
2018. 2. 8 – 4. 7
PIBI갤러리
봄과 말함 사이의 빈 곳
안소연
미술비평가
글을 잘 쓰는 한 사람이 있었다. 1년 전 이맘때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는 과거의 사람이다. 그의 글은 한 장의 사진 같기도 하고 한 장의 소박한 연필 드로잉과도 닮았다. 그가 쓴 글은 하나의 이미지로서 때때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봄을 가능케 한다. 존 버거 John Berger, 결코 화려하지 않은 그의 글은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의 빈 곳을 메우면서 볼 수 없던 것을 보게 하고 말하지 않던 것에 대해 언어를 붙여 놓는다. 예컨대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2005)[원제: Photocopies(1996)]을 보면, 스물 아홉 편의 짧은 글들이 일련의 사람, 사물, 풍경에 대한 이미지를 복사하듯 매우 시각적인 프레임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단 한 사람의 시선이 포착한 사사로운 장면들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아는 언어들로 소박하고 정성스럽게 써낸 문장들은 흐릿하면서도 눈에 밀착된 이미지들을 충분히 쏟아낸다. 이때, 존 버거의 간결한 글은 흐릿하게 비어 있는 행간 속에서 묘하게도 보이지 않는 시각적 장면들을 담아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시각적 장면들이라는 표현이 꽤 적절하지 않은가.
정승혜의 드로잉과 글, 그리고 연출된 드로잉 설치 장면들을 보는 내내, 나는 줄곧 글을 잘 쓰는 한 사람, 존 버거를 떠올렸다. 그가 쓴 글은 한 편의 서사이자, 드로잉 혹은 사진처럼 하나의 시각적 이미지로 충분하다. 존 버거는 자신의 글과 꼭 닮은 드로잉을 많이 남겼다. 사실 드로잉이 글을 닮은 것인지, 글이 드로잉을 닮은 것인지 조차 모르겠다. 서로가 어떤 위계 없이 각각 언어와 형태를 초월하여 내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종종 글과 드로잉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더욱 중층적인 서사의 맥락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정승혜의 작업은 글과 드로잉의 교차점에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이미지로서 작가의 내밀한 시선을 상상케 한다. 주로 연속하는 드로잉들과 거기에 따라 붙은 짧은 글들이 하나로 묶여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그 서사는 마치 흐릿한 목소리를 지닌 이미지들로 각인된다.
이번 전시 《마법의 갑옷과 신비의 칼을 주오》는 그간 정승혜가 지속해 온 작업의 맥락을 전체적으로 아우른다. 하나의 제목을 정해 놓고, 그는 드로잉과 글 사이를 오가며 어떤 이야기를 짓는다. 가만히 보면, 그가 지어낸 짧고 간단한 서사는 독백처럼 내밀하고 비밀스럽다. 또한 굵은 선으로 그린 드로잉은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단순하고 명료하게 각각의 장면들을 드러내지만, 우리는 그것이 생략해버린 복잡하고 흐릿한 것들에 대한 공허함과도 대면해야 한다. 많은 것들이 검고 두꺼운 선 아래 가려져 있고, 잔잔하고 아름다운 동화의 서사 뒤로는 요동치는 삶의 비극도 공존한다. 이렇듯 정승혜의 작업은 그렇게 둘 사이에 멀어진 틈-검고 두꺼운 선과 그 아래 가려진 여린 선들 또는 아름다운 동화와 삶의 비극 간의-을 배회하는 한 사람의 사유하는 시선에 의해, 어떤 희미한 순간 혹은 보이지 않거나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사건의 존재를 인식케 한다. 이는 정승혜가 간혹 작업에 끌어들이는 낯선 공간 설치를 통해 보다 분명한 경험으로 감지되곤 한다.
《마법의 갑옷과 신비의 칼을 주오》는 네 권의 책과 그것을 배치한 공간 설치로 구성된 전시다. 정승혜는 평소 낱장의 드로잉을 모두 펼쳐 벽에 나란히 배열하는 방식으로 전시해왔다. 동시에 그는 그 드로잉에 글을 달아 직접 책으로 엮곤 했는데, 하나의 서사로 묶인 이미지의 흐름을 차곡차곡 담아 누군가에게 열어 보이기 위한 작가의 선택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을 일일이 펼쳐 놓는 대신 그것을 표지 안에 모두 넣어 놓은 네 권의 책만 설치했다. 서사의 구조를 고려하여 서로 다른 맥락의 책을 띄엄띄엄 배치해 놓고, 전시의 동선을 각각의 책의 표지 앞에서 잠깐씩 멈춰 서게 했다. 이러한 장치는 그가 글쓰기와 드로잉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일련의 우회적인 이미지-서사 구조를 환기시킨다. 말하자면, 정승혜는 어떤 희미한 기억(아니면 선명한 망각이라 말해야 할까) 속에 부유하고 있는 이미지의 파편들을 현실로 길어 올려, 그 사이의 크게 벌어진 틈새를 계속해서 언어와 형태로 메우고 또 그 틈새 속에 감추어진 무언가의 현전을 골똘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 같다.
누군가의 공간 앞에 서서 창문 커튼을 조심스럽게 젖히듯 책의 표지를 넘기면, 마법의 갑옷을 입고 신비의 칼을 쥔 익명의 두 사람이 등장한다. 그와 그녀, 혹은 한 소년과 소녀 정도로 해두자.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으므로. 정승혜는 행여 어떠한 의심과 이해의 빌미도 제공하지 않으려는 듯 형태의 섬세한 윤곽들을 무심하게 두껍기만 한 검은 선으로 덮어놓았다. 마치 이 서사의 제목이 암시하듯, 무엇으로도 상처받지 않을 두꺼운 마법의 갑옷과 그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할 강하고 날카로운 신비의 칼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무심한 형태들이 구축하고 있는 동화 같은 서사에는, 작가의 내밀한 경험과 그로부터 파생된 수수께기 같은 기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의 현전처럼 비밀스럽고 역설적인 공백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이 서사의 행간과 드로잉의 검은 선들 밑에 감춰진 공백으로서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승혜는 이렇듯 드로잉과 글쓰기를 시도하면서 동시에 봄과 말함 사이의 빈 곳을 강하게 환기시키며, 그 모호하고 추상적인 경험을 익명의 누군가와 공유하려 든다. 언뜻 보통의 익숙하고 친밀한 언어를 가져와 보편적인 감성을 한껏 드러내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그 완벽한 이면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누구도 끌어들일 수 없는 불확실한 사건에 대한 내밀한 시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특히, 그는 2013년 작 《Dear. 여린 과거를 지킨 강건한 당신을 위해》와 2015년의 개인전 《안녕, 무지개》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일상의 경험을 끌고 와 마침내는 그것마저 초월한 지점에서 “당신”이라는 익명의 타인들에게 재차 말을 걸며 불가능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드러운 레이스 뭉치, 곰돌이 동화책, 꽃을 들고 있는 한 남자의 손, 열린 창문 너머로 나부끼는 커튼, 수줍게 잡은 두 사람의 손, 솟아오른 작은 불씨 같은 것들이 검고 두꺼운 선으로 단순하고 강렬하게 표현되었고 그것은 다시 컴퓨터 스캔을 거쳐 포토샵을 통해 매끈하고 가벼운 색을 얻게 됐다. 정승혜가 늘 해오던 대로다. 그는 이렇게 만들어진 뚜렷한 형상들과 그것으로 꾸민 단순한 이야기들에 대해 스스로 말하길, 좀 유치한 긍정의 메시지처럼 보일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더없이 얇고 가볍게 출력된 프린트 드로잉 위로 드러난 단순하고 선명한 윤곽의 익숙한 형상들이, 작가는 그렇게 보일 거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게 보이기 위해, 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스스로 단절시킨 자신의 여린 시선을 침묵 속에서 지켜내고 있다. 이를테면 유독 두껍고 선명한 윤곽선을 집요하게 메우는 가늘고 흐릿한 선들이나 자신의 감정과 속내를 숨길 수 있는 일상의 매우 시각적인 사물의 형상들을 앞세워 스스로를 위장하듯 말이다.
정승혜는 《마법의 갑옷과 신비의 칼을 주오》에서 익명의 주인공들이 쥐고 있는 마법의 갑옷과 신비의 칼로 서사의 단서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그렇게 명료하게 보여지고 구축된 이미지들의 서사와 결부돼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에 대해 여전히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정승혜는 그의 숨기고 싶은 사사로운 감정과 여린 시선이 놓일 자리를, 역설적이게도 봄과 말함 사이의 빈 곳을 자처하는 드로잉과 글쓰기 안에서 찾고 있다. 그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스스로 “흔한 풍경”에서 발견될 수 있는 뜻밖의 “예외”와 그것들이 잠들어 있는 “비워진 자리”를 만들고 있음을 고백했다. (《마법의 갑옷과 신비의 칼을 주오》에 대한 작가노트 참조) 말하자면, 그는 글쓰기와 드로잉의 궤적이 우회하면서 만들어내는 “빈 곳”과의 불가능한 대면에 대해 사유하며 그것을 조심스럽게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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