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대구사진비엔날레
《생명의 울림》
대구문화예술회관 9.18~11.16
김소정 기자
Theme Feature

카롤리네 요르트 & 리타 이코넨(Karoline Hjorth & Riitta Ikonen) 〈접시만한 눈. 안드레아스〉
전시용 프린트 50×60cm 2019
제공: 대구사진비엔날레
잃어버린 것들의 메아리
김소정 기자
작가 안젤리카 마르쿨은 멕시코 아래, 유카탄반도 남동부 연안의 벨리즈에 갔다. 고대의 지구가 지상의 생명체를 맞닥뜨린 구멍, 옛 마야문명의 발상지 유카탄의 화산 분화구 앞에 선 그는 천천히 카메라를 내려보냈다.
그의 영상 작품 〈1335미터〉(2022)는 하강하는 카메라의 시점으로 지구의 깊이를 가시화한다. 카메라가 내려갈수록 관객의 눈앞에서는 오래된 광물의 반짝이는 속살이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보는 것은 죽음의 흔적이다. 지구의 심연이 생명체의 종말을 예고한 과거 어느 시점의 재앙. 이를 감각하는 행위는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고, 자꾸 떨어져 내리는 카메라는 상승의 이미지를 송출하며 마치 과거에서 미래를 되짚는 것과 같은 역설을 연출해 낸다.

왼쪽 | 메건 리펜호프(Meghann Riepenhoff)〈아메리카의 물: 미국지질 조사국#410401112134801, 역대최저수위, 4192′, 앤텔로프아일랜드둑길A (그레이트 솔트레이크, 유타, 2018.8.27)〉 시아토타입 16점 193×245cm 2018 © Meghann Riepenhoff
제공: Yossi Milo, New York 제공:대구사진비엔날레
오른쪽 | 김주연〈존재의 가벼움 Ⅲ〉 코트에 이끼 가변 설치 2025 사진:김소정
제10회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 《생명의 울림》은 수만의 형태로 존재하는 지구상의 생명체와 지구가 맺는 다형의 관계를 탐구한다. 탐구의 한 면은 철학자 글렌 올브렉트가 제안한 공생세(Symbiocence) 개념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는 최근에서야 인류세를 인문·예술 전반에서 수용 및 이해하기 시작한 우리로서도 상당히 전위적인 사유를 요구하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서로 다른 종의 생물이 상호작용하며 일종의 생명 공동체를 형성하는 시대로 전환(해야)한다는 것은 결국 인류가 생존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모색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전의 반대쪽 면에는 ‘공생 아니면 멸망!’이라는 위기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기자가 엠마뉘엘 드 레코테 예술총감독에게 공생세의 개념이 기후 위기의 현실을 이상화하거나 낭만화하는 사념이 아닌지 물었을 때 그는 그러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확실한 것은 우리가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고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이 전제는 그가 비엔날레에 참여한 모든 작가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의 속성을 설명해 준다. “당신은 생명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이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탈피하고 생명의 보존을 물리성의 측면으로 국한하려는 기존의 관념에서 나아가 문제의 근원을 파고드는 성찰에 대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전시는 모두 8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땅과 하늘, 그리고 그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물리적·영적 생명체를 피사체로 포착한다. 첫 번째 섹션 ‘대지에서 하늘로’는 새들이 상공으로 날아오르는 아그니에슈카 폴스카의 〈우주 속의 새들〉(2025)로 시작해 엘리스 앤더슨이 촬영한 한 부족 여성들의 끊이지 않는 의식 〈집단적 기술 춤〉(1972)으로 끝이 난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하늘의 새, 해와 달, 별을 보며 이 땅 외에도 존재의 터가 있음을 인식했을 것이며, 인간 차원의 날아오름을 구현하기 위한 행위로 제의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는 레코테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대로 동식물과 인간 외 불가시적인 힘과 영적인 에너지까지 포괄하는 ‘가이아’로서의 지구가 본전시의 범주로 설정됐음을 보여준다. ‘대지와 이어지다’에서는 공생세의 개념이 좀 더 구체화 되는데, 전시는 대지를 “살아있는 행위자”로서 공존과 공생의 길을 안내하는 주체로 설정했다. 김주연의 〈존재의 가벼움 Ⅲ〉(2025)은 생명을 안착시키는 자연의 적극적인 행위를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물이다. 전시장에서 작품은 주기적으로 인간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으며 생의 힘을 키워나간다. ‘지구 중심으로의 여정’은 앞서 소개했던 마르쿨의 영상을 시작으로, 인간이 도달하기 꺼리는 땅속의 생태를 드러낸다. 모든 생명의 중심이 되는 지구의 물리적 중심에 실상 죽음의 세계가 있다는 역설적 명제는, 인간의 무절제한 채굴이나 벌목 행위의 말로가 무엇이겠느냐는 레토릭으로 귀결된다. 이어지는 ‘인간, 자연’은 장-밥티스트 윈의 〈꽃의 아이〉(2021)와 같이 두 미지수인 인간과 자연의 귀속과 엉킴을 사진 매체 특유의 신화적인 이미지로 보여주거나, 제인 진 카이젠과 거스턴 손딘쿵의 〈폭풍의 주름 속에〉(2023)처럼 인간 생활반경을 감싸는 자연의 주술적인 힘으로 포착했다. 본전시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다섯 번째 섹션 ‘중심의 중심’은 호주 작가 멜 오캘러헌에게 헌정됐다. 동태평양 심해의 열수 분출구의 모습을 담은 동명의 영상 설치작 〈Centre of the Centre〉(2019)는 전시장 삼면의 벽을 채운 3개 스크린과 곳곳에 놓인 사운드의 조합을 통해 시청각을 자극한다. 생명이 희박한 심해의 극한 환경에 놓인 관람객은 낯선 세계를 받아들이며 ‘생명의 울림’이라는 대전제를 고찰할 기회를 갖는다. 이후에는 인간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조망하는 ‘정원을 가꾸다’와 ‘물의 길을 따라’가 이어진다. 전시가 안내하는 대로 물을 따라가는 길은 피할 수 없는 현생 인류의 종착지, 기후 위기라는 주제에 커다란 물음표와 함께 도달하는 여정이다.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지다가 오염과 타락의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 물은 맨디 바커의 현장 탐사나 앨리스 팔로의 기후 활동으로 재조명된다. 팔로는 〈녹조 속 질식〉(2022) 영상에서 미세 생태계 속 일원들을 주요 피사체로 담아내며 자연의 회복 가능성을 모색했다. 마지막 섹션 ‘동물의 편에서’는 초상과 재현이라는 사진의 전통적 역할을 동물의 관점으로 비튼 작품들이 소개됐다. 인간의 자리를 탈환한 동물의 모습, 이를테면 팀 플랙의 〈인간 이상의 존재〉(2012~2017) 연작은 자연의 입장에서 인간은 여러모로 대체가능한 존재임을 상기시켜 준다. 여기서 “우리의 공동 미래는 이 연약한 연속성을 인식하는 데 달려 있다”는 메시지는 24개국에서 참여한 110여 명 작가들의 작품 활동이 미학적이고 사변적이면서도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에 수렴한다는 사유로 귀결되는 것이다.

멜 오캘러헌(Mel O’Callaghan) 〈중심의 중심〉 3채널 비디오, 사운드 20분 2019
제공: 대구사진비엔날레
이번 대구사진비엔날레에서 사진은 빛을 받아 상을 맺히게 하는 본질적 원리를 따르는 작업을 모두 포괄함으로써, 관람객이 그 장르적 특성을 고찰하기보다 전시의 주제에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사진 외 영상과 설치 작업의 변주를 함께 보여준 전시장은 가시 세계와 비가시 세계가 망막과 렌즈, 공간과 신체를 통해 각각 어떤 차원의 물성으로 환원되는지 확인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사진이라는 매개체와 그 방법론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각 작가가 사진을 대하고 이해하는 태도나 구체적인 작업 방식에 대한 설명이 전무한 까닭에 기자는 하나의 작업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시장 벽에 부착된 각 작가와 작업에 대한 소개글이 서로 차별화되지 못하고 반복된 단어와 표현, 비슷한 수준의 난해함을 보이게 된 점도 지적될 수 있겠다. 비엔날레 측은 앞선 기자회견에서 내년이 사진 기술이 세상에 탄생한 지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라고 소개하며 지난 20년간 이어져 온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지자체별로 장르 특성화 비엔날레를 내세우는 지금, 사진의 동시대적 확장성에만 몰두하지 않고 매체 특유의 고유성을 확립할 수 있는 큐레토리얼의 강화가 요구되는 국면이다.

팀 플랙(Tim Flach)〈아홀로틀 종: 암비스토마 멕시카눔〉
(사진 가운데) 전시용 잉크젯 프린트 60×40cm 2018
사진: 김소정 
왼쪽 | 안젤리카 마르쿨(Angelika Markul) 〈1335미터〉 비디오 설치, 필름, 컬러,
사운드 음악: Romain Camiolo 18분 반복재생 2022
오른쪽 | 레프 일리지로프(Lev Ilizirov)〈모래언덕의 예언들〉
사진 설치, 전시용 잉크젯 프린트, 140개의 제록스 프린트, 4개의 선풍기 320×322cm 2024
제공: 대구사진비엔날레
우리는 다시 유카탄 분화구 앞에 와 있다. 생명과 비생명의 교차를 담아낸 마르쿨의 이미지는 “잃어버린 것들의 메아리이자 견뎌내는 것의 숨결을 담고 있다.” 결국 공생세의 세계는 상실을 경험했으되 연대하며 견디는 존재들의 것이다. 잃은 것은 명료하나 견디는 것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인간과 자연 중 과연 무엇을 견디고 있는가? 발원지가 요원한 질문만이 메아리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