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에시자, 오시자》
강릉역, 옥천동 웨어하우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강릉대도호부 관아 일대 3.14~4.20
황수진 기자
Sight & Issue

윤석남 〈1,025: 사람과 사람 없이〉 나무에 아크릴릭 가변 크기 2003~2008, 2025
1,025개 중 367개 강릉대도호부 관아 전시 전경 2025
제공: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대관령을 넘나드는 존재들을 향한 초대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이하 GIAF)은 지난 3월 14일 개막해 4월 20일까지 강릉 곳곳에서 열린다. 강릉의 자연, 역사, 현대미술이 어우러지는 이번 페스티벌은 “에시자, 오시자”를 주제로 대관령을 주목한다. ‘에시자 오시자’는 강릉단오굿에서 유래한 구음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를 초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자연, 신화와 전설, 설화 등 인간 이외의 존재들을 환대하며 대관령을 새롭게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올해 GIAF는 강릉의 역사와 장소성을 탐구하는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장이다. 《강릉연구》(2022)는 강릉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공간적 경험을 확장했고, 《서유록》(2023)은 1913년 강릉김씨 부인의 기행문을 따라 이동의 의미를 조망했다. 《에시자, 오시자》는 대관령을 넘나드는 존재들을 걸음의 주체로 삼아 강릉의 문화·역사적 층위를 들여다본다.
박소희 총괄 감독은 이번 전시는 2022년 강릉 옥계에서 발생한 산불이 번지는 참경(慘景)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양양과 간성을 가로지르는 강한 바람 ‘양간지풍’이 작은 불씨를 거대한 화재로 확산시키며, 산 전체를 검게 태운 장면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같은 대관령에서 천 년 동안 단오제가 이어져 온 점 또한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박 감독은 강릉의 문화가 대관령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음을 강조하며, 대관령이 거대한 장벽이자 동시에 유일한 소통로였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를 통해 이 지형이 만들어낸 문화적 서사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왼쪽 이양희 〈이양희 산조〉 2025 작은공연장 단 퍼포먼스 전경 2025
오른쪽 호추니엔 〈변신술사〉 2025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전시 전경 2025
제공: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역사 유적지부터 명주동 카페 거리까지
올해 GIAF는 강릉역, 옥천동 웨어하우스, 강릉대도호부 관아, 옛 함외과 의원, 창포다리, 일곱칸짜리 여관, 작은공연장 단,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등 8개 공간에서 열린다. 전시 공간들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모여있다.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강릉의 행정 중심지이자 강릉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주미 봉정과 신주빚기 의식이 열리는 장소로, 이번 전시의 핵심 공간이다. 관아 내 전대청에는 흐라이르 사르키시안의 3채널 영상 〈Sweet and Sour〉(2021~2022)가 상영된다. 작가는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로 고향을 떠난 할아버지의 뿌리를 찾아 사순 지역 한초릭(Khantsorig)을 방문해 기록하고, 그곳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아버지가 이 영상을 지켜보는 모습까지 담아, 단절된 기억과 정체성이 사진과 영상으로 다시 연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윤석남의 〈1,025: 사람과 사람 없이〉(2003~2008, 2025)는 버려진 개들을 돌본 이애신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작가는 돌봄과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 나무 조각에 1,025마리의 개를 새겼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중 367점이 강릉대도호부 관아 마당에 설치됐다. 안민옥은 굿과 축원의 소리가 공간을 채우며 신성한 기운이 퍼지는 경험에 주목했다. 그는 강릉의 전설과 설화 속 신성한 장소에서 채집한 소리와 진동을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일곱 지점에 〈럭키헤르츠_일곱 장소의 행운〉(2025)을 설치해, 관람객이 공간을 새로운 감각으로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과거 양곡 창고였던 옥천동 웨어하우스는 제2회 GIAF부터 전시장으로 활용되었으며, 올해는 이곳에서 정연두의 〈싱코페이션 #5〉(2025)이 상영된다. 이번 작업은 영동지방의 산불, 단오제의 기도, 신주와 무악 등 작가가 강릉에서 마주한 장면들을 담은 3채널 영상으로 구성된다. 서로 마주 본 두 대의 피아노 중 하나는 현이 제거된 채 연주되며, 양옆 화면에서는 단오제의 장면과 산불 피해 지역이 교차한다. 신주를 빚으며 효모가 발효되는 과정이나 산불처럼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요소들이 자연의 섭리와 연결되며, 자연을 향한 인간의 염원과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을 시각화한다.
명주동의 옛 함외과의원과 작은공연장 단도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 각각 1942년 설립된 강릉 최초의 병원과 1958년에 준공된 강릉 최초의 교회 건물로 도시의 역사성이 깃든 장소다. 작은공연장 단에서는 전통 무용가 이양희가 신작 퍼포먼스 〈이양희 산조〉(2025)와 영상 작품〈이양희 입춤〉(2025)을 선보인다. 오랜 시간 전통 무용을 체득하며 자신만의 춤의 문법을 형성한 그는, 단오제를 통해 전통이 공동체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함께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격했다. 이번 작업은 그가 지키고 싶은 것과 남기고 싶은 것에 대한 고민을 퍼포먼스로 풀어낸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는 싱가포르 출신 작가 호추니엔이 기존 다섯 편의 영상 작업을 ‘변신’이라는 모티프로 재편집한 옴니버스 형식 〈변신술사〉(2025)가 상영된다. 이외에도 강릉대도호부 관아에는 홍이현숙의 작업이, 강릉역과 창포다리에 김재현, 옛 함외과의원에는 이해민선과 키와림, 일곱칸짜리 여관에서는 서다솜 등 국내외 11팀이 참여해 강릉 곳곳을 전시장으로 확장한다.
강릉을 거점으로 한 예술의 지속 가능성
올해부터 GIAF는 2년마다 개최되지만, ‘비엔날레’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는다. 강릉이 단오제라는 전통 축제를 이어온 도시인 만큼, 민속 축제와 현대미술 축제가 공존하는 방향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박소희 감독은 “올해까지의 3부작이 강릉이라는 도시를 발굴하고, 역사적 장소를 재탐색하는 과정이었다면, 2027년부터는 새로운 거점 공간을 중심으로 전시 테마에 맞는 공간을 연결하는 또 다른 챕터가 시작된다”고 밝혔다.
GIAF는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이사장 박필현)이 지자체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강릉을 국제적인 문화 플랫폼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7년에는 경포대 인근 안현동에 문화복합시설을 설립해 강릉의 예술 인프라를 더욱 확장하고, 강릉의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예술과 삶을 연결하는 실험을 지속할 계획이다. 박소희 감독은 “1592년 허균이 대관령에 올라 단오제를 기록한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에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듯, 지금 우리가 진행하는 이 작업이 이 시대 강릉의 성소부부고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전했다. ‘에시자, 오시자’라는 초대의 구음이 강릉을 찾은 이들에게 어떤 예술적 경험으로 남게 될지 기대를 모은다.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