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너희가 곧 신임을 모르느냐》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창작센터, 구석으로부터, 공간오십오
2024.10.25~2.2
Theme Feature

《너희가 곧 신임을 모르느냐》대전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사진: 팔사진관 제공: 대전시립미술관
소금기둥이 되어 돌아보는
강재영 기자
‘소돔’이라는 도시가 있었다. 기원전 2000여 년 즈음의 어느 날, ‘유황불 엔딩’을 앞둔 타락한 도시 소돔에서 하나님은 의인 룻과 그의 가족을 구출했다. 룻의 아내는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돌아보는 건 그렇게 본능적인지도 모른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든, 돌아오지 않을 시간에 대한 회한이든, 돌아볼 수밖에 없는 자는 이미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채 ‘스핀오프’를 설계한다. 대전시립미술관이 주최하는 2024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는 다가오는 미래를 위한 ‘결론이자 서론’을 자처했다. ‘비엔날레’의 형식적 정의와 제도적 문제를 참조하고 ‘스핀오프’라는 서사 전략으로 ‘비엔날레’ 급류에 주춧돌을 던져 징검다리를 만드는 데 도전했다.
‘너희가 곧 신임을 모르느냐(Magnum Opus)’라는, 제목의 웅장함은 급류의 속도에 비례하는 듯하다. 전시는 과학과 예술을 현대의 ‘연금술’로 상정하고, 서로 다른 형태와 지향을 가진 것들이 대립하며 공존하는, 답 없어 보이는 오늘을 긍정하는 힘으로 이 ‘연금술’을 지시한다.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본전시는 큰 뼈대를 문학적 메타포로 구성하여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의미를 생성하는 개별 작품을 묶거나 스치게 했다. 이를 통해 ‘과학과 예술, 인간과 기술이 함께하는 공유지의 건설’이라는, 20여 년간 대전이라는 ‘장소’를 기점으로 산개한 ‘과학예술’의 정체성을 영리하게 곱씹었다.
첫 번째 섹션 ‘헤르메스의 메시지는 혼돈스럽다’는 과학과 예술을 융합하려는 시도가 품은 혼란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민정의〈박연폭포〉(2024), 〈호수〉(2023) 등의 작업은 ‘기운생동’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인간 생명의 원초적 힘을 시각화했다. 화면 위로 솟구치는 형상들은 연금술에서 금을 추구하듯, 더 나은 존재를 향한 인간의 욕망과 가능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서재웅은 버려진 일상 사물을 재조합하는 작업으로 환경과 문명의 순환을 원초적 감각으로 가시화해왔다. 한국식 누빔 이불을 덮고 옆으로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의 모습을 역시 버려진 나무와 종이로 다듬어낸 〈한숨 자고〉(2024)는 한국적 자연철학을 유비하는 그의 다른 조각, 드로잉과 어울려 진지함과 해학을 넘나드는 역동적 공간을 만들었다. 마이클 주와 빌 비올라의 작업은 보이지 않아 혼돈을 만들지만 그럼으로써 존재하는 신 혹은 예술의 존재 의미를 묵직하게 증언해내며 섹션을 마무리한다.
두 번째 섹션의 제목 ‘전시장에는 그림이나 사진이 아닌 진짜 참제비고깔이 전시되어 있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는 1936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전시 《스타이켄의 참제비고깔》 보도자료를 참조했다고 한다. 참제비고깔 사진 대신 진짜 참제비고깔을 전시한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의 전시술에 기대어 살아있는지 알 수 없는 수집목록 속 뉴미디어 작업을 전시장에 풀어놓고 말 그대로의 소생을 시도했다. 이전의 소장품전과 이번 비엔날레의 소장품 전시가 달라진 지점은 박물관학(Museology)의 측면에서 수집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함께 조사·연구 함으로써 비엔날레의 다음 발걸음을 드러내 보이려는 태도에 있다. 백남준으로 시작해, 육태진, 김기라, 이용백, 김세진, 전준호, 양아치 등 10년 만에 관객을 만나는 반가운 작품들 사이에 작품 수집을 위한 수집위원회 회의록, 그리고 육태진〈유령가구〉 VHS 테이프의 발견은 그 목록의 행간을 빼곡히 채워가는일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는 한편, 전지구화에 발맞추어 부풀어 오르던 2000년대 과학도시 대전의 단면을 그리게 했다.
소설가 김초엽의 단편에서 제목을 딴 세 번째 섹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세 번에 걸쳐 열린 국제예술전 《프로젝트대전》의 참여작가를 초대해 과학예술이 그리는 애정과 믿음, 균열을 다룬다. 전시를 기획한 우리원 학예사는 마르타 데 메네제스 & 루이스 그라사의 〈두 사람을 위한 불멸〉(2014)이 과학예술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파트너 관계인 두 사람은 각자의 백혈구를 서로에게 주입하여 불멸을 실험한다. 몸은 항체를 만들어 침입자를 고립시킨다. 항체가 역설적으로 몸에 남아 서로를 각인시키는 것이다. 신재은은 생명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도살 예정인 동물을 키우고, 그 사체로 만든 소시지를 관람객에게 제공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인간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버리는가? 무엇이 생명이고 무엇이 소비 가능한 존재인가? 이 도발적 작업은 누구도 제대로 답하기 어려운 생물정치학적 질문을 던졌다. 헤더 듀이-해그보그(Heather Dewey-Hagborg)의 〈하이브리드: 중간 오페라〉(2022)는 돼지 심장을 인간에게 공급하기 위한 연구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사육-희생되는 돼지의 DNA를 기반으로 한 3D 프린팅(〈하이브리드〉)과 함께 전시되어 지속가능성이라는 미명 아래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를 건조하고도 치명적으로 제기했다.
마지막 섹션 ‘바빌론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세계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알려줄 것이다’에 들어서면 바레(BARE)의 〈인해비팅 에어-파편 A〉가 가운데 놓여있다. 폴리우레탄과 해조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건축 모듈인 에어셀은 조립되었을 때 주입된 공기가 단열효과를 만들어 적절한 실내환경을 조성하게 하는 미래 건축을 향한 제안이다. 바레 에어셀의 생분해성 비닐 구조물은 지속가능성을 실험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그 한계를 드러냈다. 생분해성 신소재가 지닌 구조적 연약함에 계속해서 공기가 빠져 모양이 유지되지 않았던 것이다. 비닐은 첫날부터 터지고 쪼그라들었지만, 그것조차도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쩌면 이러한 변형, 흔들림, 무너짐은 인류가 다른 존재와 공존하며 만들 새로운 생태계에서 계속 반복될 혼돈일 것이다. 전시는 혼돈에 둘러싸인 현재를 긍정하는 것만이 공존하는 방법임을 역설한다.
정지혜, 강성룡, 신승백, 김용훈
〈넌댄스 댄스 2〉 4-채널 비디오 설치, 무음, 무작위 반복재생, 인공지능 시스템 가변 크기 2024
사진: 팔사진관 제공: 대전시립미술관
이러한 맥락에서 대전의 원도심과 대전의 역사적 맥락이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 점은 의미가 깊다. 특히 ‘구석으로부터’라는 섹션은 대전의 옛 정동교회를 활용해 인간과 기술, 자연과 도시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곳에서 정지혜, 강성용, 신승백, 김용훈의 〈넌댄스 댄스2〉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교회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재해석하며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2024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는 거대한 예술 이벤트의 틀 안에서 지역과 인간, 과학과 예술의 관계를 회고적이면서도 담담하게 탐구했다. ‘대전에서 비엔날레를 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지역 정체성과 대전시립미술관의 기원, 과학예술비엔날레를 비롯한 여러 앞선 전시를 통해 연역적으로 도출하려는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비엔날레라는 형식이 글로벌 미술계에서는 확장과 확산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지만, 대전은 그와 반대로 시선을 ‘내부’로 돌려 ‘대전발 과학예술’의 형태를 돌아보고 이를 기반으로 전시를 구현했다. 대전시립미술관이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은 결국 대전이라는 지역이 미술과 과학을 통해 어떻게 자립하고 확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흔적이다.
우리원 학예사는 비엔날레의 역할에 대해 “미술관은 지역의 문화적 역할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비엔날레는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통해 ‘대전의 정체성’을 되묻고, 동시에 인간 본연의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하는 여정을 그렸다. 이 질문들은 여전히 답을 찾고 있지만, 그 자체로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가치다. 스핀오프는 과연 새로운 세계관과 내러티브를 만들어낼까. 급류에 던진 돌들이 어떤 선을 만들어 2026년으로 이어질까. ‘애정과 믿음’으로 도약하는 엔딩이 되길, 그 엔딩이 우리 것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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