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석
건축,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키는 매개체
The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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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스터디스 대표/ 연세대 건축공학과 학사,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렘 쿨하우스의 건축사무소(OMA)를 포함해 유럽과 뉴욕의 다양한 건축 및 도시 계획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와 ‘매스스터디스’를 설립했다. 미국 젊은건축가상(뉴욕건축가연맹, 2000), 미국 프로그레시브 아키텍처 어워드(1999, 2003)를 비롯해, 세계 최우수 초고층건축상 톱5(부티크 모나코(2008), 에스트레뉴(2010))를 두 차례 수상했고, 2010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으로 국제박람회기구(B.I.E.)에서 수여하는 건축부문 은상과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유명전(Named Design)》을 안토니 폰테노와 공동 기획했고(2011), 베니스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로 황금사자상(2014)을 수상했다. 2024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설계자로 참여했다.
건축,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키는 매개체
심지언 편집장
건축가 조민석은 매해 여름 세계적인 건축가를 초대하는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2024년 설계자로 초대되어 ‘군도의 여백’을 선보였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건축 프로젝트 중 하나로 2000년 자하 하디드를 시작으로, 렘 쿨하스, 프랭크 게리 등이 참여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조민석이 초대되었다. 독창적인 디자인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건축물을 선보여온 매스스터디스의 조민석 대표를 만나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경험과 건축 철학에 대해 들어 보았다.
군도의 여백_틈, 사이의 서사 소환
서펜타인 파빌리온에서 선보인 ‘군도의 여백’은 서양의 건축 양식과 한국의 건축 철학의 조화로운 결합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건축에 대한 동서양의 태도에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이분법적인 구조로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어요. 파빌리온이라고 하면 우리의 개념으로는 정자와 같은 것이죠. 정자는 풍광이 좋은 장소를 배경으로 감상하고 생각을 하기 위해 그곳에 건축물이 생겨난 것이라 건축물 자체가 중요한 개념은 아닙니다. 반면 서양의 파빌리온은 좀 다른 개념이죠. 20세기의 파빌리온은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며 마치 우주선이 착륙한 것처럼 완결적 형태의 유토피아적 상상 같은 것을 구현해왔죠. 한 저널리스트가 기존의 파빌리온들은 우주선이 착륙한 것 같았다고 하기에 제가 이번엔 불시착한 우주선이 다섯 조각으로 쪼개지고 가운데 큰 구멍이 뚫린 형태로 역전한 듯하지 않냐고 반문했죠.
저는 파빌리온이 위치한 켄싱턴 가든, 서펜타인 사우스 갤러리와 주변 요소들, 그리고 장소에서 출발했어요. 갤러리를 중심으로 나무들, 진입도로와 여러 산책로가 방사형으로 펼쳐지거든요. 그런 특정한 부지에서 주변과 대화하는, 마치 정자에서 좋은 풍광과 대화하는 듯한 것이 한 축이었고, 동시에 이 파빌리온이 이후 미지의 장소로 가게 되니 장소 특정적이면서 비장소적인 측면을 동시에 충족시킬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이 둘을 동시에 생각하며 좀 거칠게 보자면 동양의 정자와 서양 파빌리온의 차이, 두 가지를 동시에 구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군도의 여백’은 가운데 마당과 같은 공간을 중심으로 5개의 군도-갤러리, 오디토리엄, 도서관, 티하우스, 플레이타워가 펼쳐지는 구조입니다. 5개 군도에 부여한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요?
저희의 관심사는 매번 건축물이 지어지던 가운데 공간을 비워 ‘마당’이라 부르며 기존의 공간 활용을 역전시키는 것이었어요. 건축물이 가장 많이 지어졌던 자리를 좀 쉬라고, 23번째에는 비워둔 결과로 그동안 배경으로만 삼았던 공간, 나무와 뒤쪽 산책로 등 주변에 관심을 가지게 한 것이죠. 그랬던 이유는 그동안의 파빌리온이 건축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이상적인 제스처로서 응답을 했었다면, 이번에는 다른 가능성, 하나의 장소에서 여러 가지 서사를 만들 수 있는 요소를 끄집어내려 했습니다.
다섯 개의 군도를 기능상으로 보자면, 도서관은 한국의 정자 전통과 맞닿아 있어요. 정자에서 시를 짓고 글과 그림을 그리던 시대를 떠올리며 그 공간에서 무엇인가를 향유하고 만들어내는 문학적인 건축 유형을 생각했어요. 다음으로, 서펜타인 사우스는 1934년 티하우스로 만들어졌던 건물로 1970년대에 갤러리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기능이었던 티하우스에 다시 건축적인 형태를 주었죠. 갤러리 공간은 현재 서펜타인 갤러리의 기능을 확장하자는 생각으로, 갤러리의 전시가 외부로 흘러나오는 것을 제안하고자 공간을 만들고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오디토리엄은 마당과 같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고, 마지막으로 플레이타워는 그간 드러나지 않은 서사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행위들을 부과한 곳입니다. 다양한 사람들, 평소에 이곳에 오지 않는 사람들을 오게 하는 역할로 기존에 주목하지 않은 어린이 또는 가족을 위한 시설로 마련했습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시각적인 문화가 디지털로 대체되고 있는데, 건축은 공간 경험이 중요하고 오감을 다루는 일입니다. 그래서 전시를 통해 청각(사운드 인스톨레이션), 티하우스의 후각과 미각, 그리고 플레이타워에서 온몸을 던지는 촉각적인 부분까지 다 어우러지는 건축물로, 건축 본연의 것들을 펼쳐내려고 했습니다.
서펜타인 파빌리온 2024 ‘군도의 여백’ 전경
설계 :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 매스스터디스 사진 : Iwan Baan 제공 : 서펜타인
지속가능한 건축을 위해 목재와 돌 등 친환경적 소재를 선택했는데, 재료와 건축 방법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지속가능성은 이제 특별한 것이 아닌 기본이 되었습니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세계가 주목하는 프로젝트로, 솔선수범해야 하는 측면이 있고 기후 위기 등 환경 변화와 더불어 제한사항이 늘어나고 있어요. 주재료로 런던 근교 서리(Surry ) 지역의 더글러스 퍼(Douglas fir) 소나무를 구해 통나무로 사용했고, 탄소발자국을 가장 적게 남기는 재료인 자연석을 사용했는데 두 가지 모두 파빌리온에서 처음 사용한 재료였어요. 그리고 건축물의 기초가 되는 지하 공간도 1.5m 이상 팔 수 없는 제한이 있어 조립식을 택해 건식구조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기존에 콘크리트를 부어 바닥을 만들고 끝나면 부숴 폐기 처분하고 새로운 재료를 화려하게 사용하던 방식과는 다르게 진행되었죠. 모든 재료는 재활용될 수 있는 것으로 사용하는 등 철저하게 신경을 썼습니다. 더글러스 퍼는 연질이라 날렵한 느낌을 내기 어려운 재료이지만 오히려 통나무 벤치가 되어 온기가 느껴지는 촉각적인 효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23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쟁쟁한 건축가들이 참여한 프로젝트인데 이전 건축가들의 레퍼런스는 어떤 영감을 주었나요?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제가 존경하는 많은 건축가가 참여해 22번의 스토리를 만든 유례가 없는 장소죠. 이 프로젝트는 007시리즈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몇십 년째 찍고 있는데, 이번에 아시아 감독이 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거죠. 서사 특정적이라고 할까요, 앞서갔던 22명 건축가의 층층이 쌓인 서사와 대화를 나눈 부분도 있고 그들이 하지 않은 부분, 일종의 보완적인 태도를 가지려 했습니다. 저는 항상 주변과 대화를 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 그것에 대해 반응하고, 또 문제가 있다면 처방을 찾아왔어요. 이번 프로젝트도 제가 건축에 가지고 있던 태도를 바탕으로 기존에 없던 서사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파빌리온의 전시 공간 역할을 넘어 다양한 문화적 배경, 국적, 분야, 사회적 계층이 만나서 교류하는 열린 공간의 역할을 강조해왔는데, ‘군도의 여백’에서 열린 공간으로서의 역할은 어떻게 설정하셨나요?
요즘 온 세상이 스마트폰과 SNS, 기술로 연결되어 있지만 디지털 에코 체임버(Digital Echo Chamber) 효과로 점점 신뢰가 무너지고 고립된 세상에 살고 있죠. 그래서 건축을 통해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하기 위해 제시된 5개의 공간은 유인 요소와 같은 것입니다. 다양한 밥상 차림이라고 표현하는데 다섯 개 모두 좋아하지 않아도, 한두 개만 좋아하면 와서 즐기면 되는 거죠. 5개의 공간과 그 사이사이 공간을 합치면 11개의 서로 다른 공간이 되는데 독립성과 다양성이 존중되고 또 사이를 유연하게 오갈 수 있는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읽다가 오디토리엄에서 모이기도 하며 그 사이의 교류, ‘조직된 사회적 친밀도’ 같은 것들이 유발되는 상상을 하면서 건축을 통해 꿈을 꾼 것입니다.
변형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 형태의 파빌리온인데, 이후의 이동을 고려한 선택이었나요?
네, 이 프로젝트는 서펜타인에서 선보인 이후 판매되어 제3의 장소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부터 옮겨가게 될 장소에 따라 주변의 복잡한 환경을 반영해 변형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어요. 5개의 공간은 총 120개의 조합으로 변형 가능합니다. 장소를 여러 번 옮겨가더라도 트랜스포머처럼 재조합되어 새로운 조건에 대응할 수 있는 거죠.
파빌리온 개방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건축은 몸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것인데, ‘군도의 여백’의 구조를 방문자들이 날씨, 상황에 따라 반응하며 향유하더라고요. 한 젊은 커플이 파빌리온에서 프로포즈하는 영상을 큐레이터가 보내줬어요. 그것이 저에게는 최고의 칭찬이었죠. 파빌리온은 몇 개월 후에 사라지지만 이 공간을 특별하게 여긴 커플에게는 평생 기억하는 공간이 되겠죠. 건축물도 중요하지만, 그 안팎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활동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결하고 실현하는 건축과 큐레이팅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건축의 위상을 해외에 알린 바 있습니다. 비엔날레의 커미셔너 역할은 건축가 조민석에게 어떤 경험이자 의미였나요?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제 역할은 커미셔너 겸 세 명의 큐레이터 중 한 명이자 전시 디자이너였습니다. 저는 어쩌다 큐레이터로, 큐레이팅을 건축 활동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건축이 물리적인 재료를 다루는 일이지만,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뭔가를 조합하고 새롭게 만드는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는 큐레이팅도 동일한 스펙트럼의 작업이었죠. 베니스에 참가한 해가 2014년이고,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맡은 것이 2024년으로 딱 10년 차인데, 둘 다 저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반도 오감도》라는 제목으로 남북한 건축 100년을 조망한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남북한 건축을 주제로 공동 전시 기획을 제안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지금 당시의 전시를 돌아보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의 총감독 렘 쿨하스가 국가관의 공통 주제로 지난 100년간 모더니티의 흡수를 각자 풀어내야 할 수수께끼처럼 제시했어요. 1914년부터 100년이면 분단을 다루지 않을 수가 없죠. 그래서 예기치 못한 무언가를 해 볼 수 있겠다 싶어 플랜 A로 남북 공동건축 전시를 제안했는데 되돌아보면 과대망상적인 계획이었죠. 실제로는 플랜 B로 진행되었는데, 해외 대사관 등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셔서 13개 국가가 참여하며 남북한 건축과 도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지금도 유지되고 있어요. 저에게 건축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하는데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으로서 역할, 계기들이 연결되고 계속 굴러가게 하는 역할을 한 전시였다고 생각합니다.
원불교 원남교당 외관 전경 제공 : 메스스터디스
매스스터디스, 건축으로 꾸는 꿈
매스스터디스의 건축 철학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매스스터디스는 건축가들이 스티로폼 등의 덩어리로 조형적인 실험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데요, 첫 번째는 그런 기본적인 의미가 있고요. ‘매스’는 건축뿐 아니라 물리학, 사회학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흥미로운 단어예요. 물리에서 ‘매스’는 물질이죠. 우리가 벽돌로 건물을 만들 때 그 물질로, 여기서 벽돌은 수단이죠. 사회학에서 ‘매스’는 대중, 군중을 의미하고 인간이 목적이죠. ‘매스’는 수단과 목적이 동시에 내포된 단어예요. 또 한편으로 물리학은 자연에 대한 것이고 사회학은 문화에 대한 것으로 건축은 자연과 문화의 접점, 그 사이를 연결하며 인터페이스의 역할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담고 있어요. 두 번째 단어는 ‘스터디스’인데, 세상이 계속 변하니 하나의 고정된 지식이나 가치를 넘어서 학생처럼 계속 배우는 자세를 의미하고 있어요.
매스스터디스가 설계한 전시 공간으로 송원아트센터, 구하우스, 페이스갤러리 서울, 스페이스 K 등이 있습니다. 전시 공간을 건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건축은 다른 사람이 꾸는 꿈을 공간적으로 해석하는 일입니다. 전시 공간뿐 아니라 모든 경우에 마찬가지인데, 보통 의뢰인이 저희에게 올 때 건축에 대한 각자의 꿈을 안고 있습니다. 그 꿈, 주어진 과제는 물론 그 이상의 또 다른 것, 생각하지 못한 것을 주고자 합니다. 스페이스 K는 공원과 미술관을 유기적으로 확장해 마곡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스페이스 K의 건축적 시도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2017년 미술관 설계를 위해 방문한 마곡은 황무지였어요. 주변 인구통계학을 파악해 보니 LG R&D 등 공학도들이 밀집하게 될 지역이었죠. 현대미술 전시는 문턱이 높아 주변 인구를 유인하기 쉽지 않죠. 미술관이 공원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으니, 미술관도 도시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고자 옥상을 공공활동의 공간으로 내어주었죠. 그 결과 미술관이 자연과 더불어 문화를 매개로 한 도시의 촉매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옥상 공간을 내어줌으로써 미술에 관심 없던 분들도 미술관으로 이끄는 미끼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저는 이런 접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술이 미술관을 나와 공원에 펼쳐지면서 가능한 일이라는 점에서 서펜타인 파빌리온에서 제시하고자 한 것과 맞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근 당인리 문화발전소, 밤섬 프로젝트 등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스스터디스가 공공 프로젝트를 주목하는 배경은 무엇인가요?
공공 영역이 문화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우리가 직접 해 보고 싶었어요. 특히 당인리가 중요한 프로젝트인 것이, 저는 그곳이 한강변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요. 당인리 문화발전소는 테이트 모던을 참고해 만들어진 많은 프로젝트 중 하나죠. 테이트 모던 앞에는 밀레니엄 브리지를 비롯한 강변 도보권이 형성되고 있고, 헤이워드 갤러리, 오페라하우스 등 문화 시설이 즐비해 강변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어 있는 것에 반해 당인리 문화발전소 앞은 강변도로를 차들이 쉼 없이 달리고 아파트가 병풍처럼 자리 잡은 지역이죠. 그러기에 공공 공간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공감대가 있어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습니다. 건물 옥상에 전망대를 만들고 있는데, 최고의 한강 전망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역경, 제한 요소가 많은 프로젝트를 선호하는 건축가인데, 지금까지 가장 도전적인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나요?
가장 힘들었던 프로젝트 중 하나는 2010년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 프로젝트였어요. 한국 특유의 ‘더 크게, 더 빨리, 더 싸게’의 모토가 삼위일체를 이룬 난감한 상황이었죠. 국가관 중 중국을 제외하고 규모 면에서 제일 컸고, 예산은 다른 국가에 비해 턱없이 적은데, 집행도 늦어져 국가관 중 제일 늦게 시작했어요. 악재가 겹쳤지만 긍정적으로 역이용해서 은상을 타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삼위일체의 악재를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시작이 늦다 보니 다른 국가관의 진행 사항을 볼 수 있었는데, 모두 비슷하게 동그란 비행접시와 같은 형태더라고요. 우리는 차별화하여 한글의 기하학적 특징을 건축적으로 해석해서 열린 공간을 제시했어요. 건물의 중심, 내부는 비워 놓고 바깥으로는 여러 개의 건물이 연결되는 형태로 8개의 입구를 두고 가운데 마당과 같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어요. 사방에서 내부로 접근할 수 있어 700만 명이 방문했어요. 이는 중국관 다음으로 많은 방문객이었어요. 비용적인 부분은 저렴하면서도 윤리적인 측면이 강한 재활용 재료를 사용해 해결했어요. 건축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규정되는 까닭에 장소, 시간, 특정한 상황에 반응하면서 합의해 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와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근의 프로젝트로 원불교 원남교당을 꼽고 싶은데요, 이 프로젝트가 특별한 이유는 저는 건축은 동사이고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완공 이후 건물 내에서 일어나는 활동이 확장되고, 새로운 용도가 생기며 다양한 사람이 각기 다른 목적으로 찾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종교적 목적의 공간이지만 음향 효과가 좋아 국악, 현대음악 하시는 분들이 공연을 위해 모이고, 내년부터 결혼식장으로도 쓰일 계획이라 교인이 아니어도 사용하고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죠. 이런 것이 바로 제가 서펜타인 파빌리온에서 꿈꿔왔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건축가의 여가 생활
요즘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
에드 콘웨이(Ed Conway )의 『물질의 세계(Material World )』라는, 물질의 산전수전을 그리는 책을 읽고 있어요. 인간 세계를 확장시킨 물질로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 6가지를 선정해 물질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이는지 정리한 내용이에요. 이를테면 한 챕터가 모래에 대한 내용인데, 모래는 하나의 광물이지만 어디에서 채취되어 어디로 옮겨지고 어떻게 가공되느냐에 따라 반도체, AI 등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물질이 문화에 의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줘요. 매스스터디스가 말하고자 한 ‘매스’라는 단어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물질이 어떤 사회와 행동을 거쳐 문화적으로 변화하는지에 대한 여행기, 다큐멘터리로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건축가도 예술가처럼 창의력이 요구되는 직업인데, 아이디어나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주변 사람들요. 창의적인 친구가 많은데, 그들을 만나면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멘토와 스승, 동료들과 같이 저에게 기준이 되는 분들. 제가 조금 바보 같은 짓을 해도 한번 해 보라고 응원해주는 동료들, 그리고 앞을 내다보는 혜안으로 기준점을 제시해 주시는 멘토, 스승이 있는 것이 참 축복이죠. 그분들이 저를 겸손하게 하고 또 영감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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