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시대의 회화
최종철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Special Feature
레픽 아나돌 〈Machine Hallucinations: Coral Dreams〉 AI 기반 데이터 조각(Data Sculpture) 가변 크기 2021~2024
《Echoes of the Earth: Living Archive》 런던 서펜타인노스갤러리 전시 전경 2024
사진: Hugo Glendinning 제공: 작가, 서펜타인
‘증발시대(the era of vaporization)’란 디지털 미디어의 선구적 전략가인 로버트 터섹이 고안한 용어로서, 문화의 다양한 물질적 양태들이 디지털의 비물질적 조건들에 의해 대체되고 사라져 버린 시대를 일컫는다. 터섹은 책과 같은 물질적 문화의 시대를 ‘고체시대’, 인터넷 서핑이나 데이터 스트리밍처럼 물의 은유로 구조화되는 시대를 ‘액체시대’, 그리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정보가 공기처럼 신속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대를 ‘기체시대’로 구분하며, 오늘날과 같은 첨예한 기체시대에 “무형의 소프트웨어가 유형의 제품을 대체하는 현상”을 ‘증발’이라 부른다. 이 증발 현상은 타워레코드를 도산시킨 아이튠스, 동네서점을 위협하는 아마존과 같은 인터넷 서점들, 화폐의 개념을 낡은 것으로 만든 비트코인처럼 전례 없는 속도와 파급력으로 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바꿔 놓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비물질화 혹은 ‘증발’ 현상들은 물리적 도구에 종속되어 왔던 인류를 완전히 새로운 정보적 전환의 시대로 이끄는 한편, 인간 문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물리적 경험, 물질적 자산들에 대한 급격한 가치하락과 망실을 예고하기도 한다.
최근 미술계에서 발생한 몇 가지 사건들은 이러한 증발이 미술의 영역에서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예증한다. 특히 데미안 허스트의 NFT 프로젝트인 〈통화(The Currency)〉(2021~2022)는 이러한 증발 예술의 한 전형을 이루는데, 이는 〈통화〉가 예술적 가치의 원천인 물리적 특정성과 감각적 경험을 악명 높은 작품의 ‘소각식’을 통해 증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는 허스트가 지난 10여 년간 제작한 1만 점의 소형 회화 작품을 NFT로 민팅(minting: 발행)한 것으로서, 개당 2000만 원에 판매되었다. 구매자는 구매 후 1년 안에 실제 작품 또는 그것의 NFT 버전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데, 만약 구매자가 NFT를 선택할 경우 실제 작품은 소각된다. 2022년 7월 22일 허스트는 자신의 SNS에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통화〉 작품을 들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 본 작품은 2021~2022년에 NFT로 발행됐다
〈통화〉 수제 종이에 에나멜 페인트, 워터마크, 마이크로닷, 홀로그램 각 20×30cm (ed. 10,000) 2016
총 1만 명의 구매자 중 5,149명이 물리적 작품을, 그리고 4851명이 NFT를 선택했다. 약속대로 허스트는 그해 10월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작품의 소각식을 거행했다. 약 100억 원 상당의 물리적 가치가 있는 총 4,851점의 실제 그림이 소각로 안에서 소각되었다.
허스트가 “이제껏 [자신의] 작업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이라 칭한 이 실험적 프로젝트는 디지털 시대에 회화의 운명을 극적으로 예시해 주었다. 그림이 NFT라고 하는 실체가 모호한 기술적 대체물에 의해 대체되고 소각되었으며, 구매자의 상당수가 작품의 증발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허스트의 NFT 실험은 회화가 ‘증발시대’의 여파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리는 중요한 징후가 되었다.
허스트의 소각식이 매우 작위적인 방식으로 회화의 증발을 시연했다면, 최근 미술계에 틈입한 인공지능(AI)은 보다 정교한 기술적 논리를 통해 회화의 종말을 예고한다. 허스트의 논쟁적인 프로젝트가 한창이던 2022년 8월, 당시 39세의 온라인 게임 기획자였던 제이슨 앨런은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에서 주최한 미술대회에서 자신이 출품한 회화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éâtre D’opéra Spatial)〉으로 우승을 차지한다. 앨런의 수상은 즉각 전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이 그림이 생성형 AI의 일종인 미드저니(Midjourney)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미드저니, 달리(DALL-E),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과 같은 생성형 AI는 사용자가 일상어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즉시 전문가의 작품과 구별할 수 없는 회화적 이미지를 생성해 준다. 앨런은 그림의 장중한 우주적 풍경을 위해 수백 번 프롬프트를 고쳐 썼고 지난한 디지털 후반 작업을 거쳤다고 주장했지만, 관객들은 이 AI 그림이 숙련된 장인적 솜씨와 이를 위한 예술가의 부단한 노력, 그리고 이로부터 형성되는 회화적 창조성과 독창성의 관념을 무화시켜 버리리라 우려했다. 이후 트위터에는 8만5000건 이상의 반대의견이 올라왔고, 앨런 본인은 수차례의 협박 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한 비판자는 SNS에 이 그림이 촉발한 세간의 걱정과 염려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는 예술의 죽음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고 있어요.”
데미안 허스트가 2022년 10월 11일 런던 뉴포트스트리트갤러리(Newport Street Gallery)에서
〈통화〉작품을 소각하고 있다
사진: Naomi Rea 출처: Artnet News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그 놀라운 성능과 파급력으로 물질적 작품에 입각한 창조적 문화 전반을 위태롭게 한다. 레프 마노비치는 소프트웨어를 향한 문화의 대전환 속에서 “20세기의 용어인 ‘작품’이 더 이상 불필요한 것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마노비치에 따르면, 모든 매체가 통합되는 ‘메타미디엄’의 시대에 예술가들이 어떤 특정한 매체(회화, 조각 등)를 고집할 필요는 없으며, 그저 다양한 뉴미디어의 정보들을 리믹스(remix)하고 인용(quoting)하는—앨런의 인공지능 회화는 바로 이러한 인용의 최신판이다—“미디어 혼종화”가 예술의 새로운 유형이 된다. 인류의 역사를 커뮤니케이션의 발달 과정으로 이해하는 빌렘 플루서는 이러한 변화를 그림—문자—기술적 형상(Technischen Bilder)이라는 필연적 흐름으로 요약한 바 있다. 이때 기술적 형상이란 전통적인 그림처럼 세계로부터 직접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문자적 진술로부터 형성된 그림”인 바, 문자 프롬프트에 의해 생성되는 AI 이미지는 일종의 기술적 형상으로서 역사적 필연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플루서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에서 기술적 형상이 문자를 몰아내고 전면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 대략 반세기 전이니, 회화의 증발과 종말이 공공연히 언급되는 생성형 AI 시대에 그의 예언은 완전히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회화의 항구한 가치는 결코 잊힐 수 없다. 왜냐하면 회화란, 적어도 내가 아는 미술사의 지혜들 안에서는, 단지 어떤 언어적 개념의 구현이거나 시각 기호들의 지속적인 혼합과 인용이 아니라, 한 사람의 뛰어난 화가가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의 시각적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와 대화하며, 회화라는 매체 안에 누적된 그 모든 과거의 성취들을 집요히 발굴해 내려는 노력 속에서 분명해지는 실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 일컬은 세잔이 은둔 속에서 고집스럽게 추구해 온 회화적 형상의 구조적 본질을 자신의 입체주의적 화면으로 부단히 계승하고 쇄신했던 것이야말로 이러한 노력의 한 예일 것이며, 미래주의의 파동치는 화면들, 피에트 몬드리안의 사각형들, 애드 라인하르트의 색면들, 그리고 프랭크 스텔라의 격자무늬들은 후대의 화가들이 각자 자신의 매체 속에 집적된 모더니즘 회화의 특수한 구조적 본질을 (자기 시대에 가능한 그와 같은 방식으로) 기억해 내고 가리킴으로써 형식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술사학자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이러한 점에서 매체를 “기억하기의 한 형식”이며, 회화라는 특정한 장르의 집합적 기억 속에 내장된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혹은 그렇게 자기 매체의 본질을 “재귀적으로 가리킴”으로써, 쇄신될 수 있는 특정한 경험으로 정의한다. 과연 생성형 AI가 이처럼 매체에 고유한 회화의 특정성을 학습하거나 대체할 수 있을까? 과학자가 아닌 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예단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보면 가까운 미래에 회화의 특정성에 대한 요구 역시 충족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장 인공지능 회화의 미래보다 내게 더 유의미하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것의 과거로서, 이 과거는 ‘디지털 회화가 초창기부터 전통적인 회화에 대한 자신의 연루와 채무를 결코 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킨다.
제이슨 앨런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미드저니의 생성형AI 디지털이미지, 피그먼트프린트
71.1×101.6cm 2022
1965년 뉴욕의 하워드와이즈갤러리에서 최초의 컴퓨터 아트 전시회 중 하나인 《Computer Generated Pictures》가 개최된다. 이 전시는 독일의 게오르그 네스(Georg Nees), 프리더 나케(Frieder Nake)와 함께 컴퓨터 아트의 ‘3N’ 중 한 사람이라 불리는 마이클 놀(Michael Noll)의 전시였다. 당시 벨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놀은 동료인 벨라 줄스와 함께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던 중 우연한 버그로 인해 출력된 기묘한 형상들을 보고 “추상화 같다”고 말했다 한다. 이 농담은 곧 전시로 이어졌고, 오늘날 컴퓨터 아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원이 되었다. 무엇이 이 과학자들을 미술로 이끌었을까? 벨 연구소의 복잡한 기계 장치였을까? 나의 생각에 그것은 ‘추상화 같다’라는 생각, 즉 이 연구자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미술에 대한 경험이,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괴상한 선들의 중첩에 불과했을 이미지들에 미학적 가치를 부여케 한 것이다.
초기 생성형 AI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해럴드 코헨과 그의 AI 그림장치 〈아론(AARON)〉 역시 미술에 대한 충만한 기억 속에서 자신의 혁신적 실험을 시작한다. 아론은 작은 거북이처럼 생긴 규칙기반시스템(프로그래밍된 지침을 통해 결과물을 생성하는 초기 생성 AI 형식) AI 장치다. 원래 성공적인 경력의 화가(1966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을 대표한 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였던 코헨은 아론에 ‘IF-THEN’ 알고리즘을 입력하여 추상화가의 조형 과정을 모방하도록 만든다. 가령 아론은 “(If)긴장감을 주려면 (then)대각선을 사용하라,” “(If)강조하려면 (then)보색을 사용하라”와 같이 화가들이 사용하는 기법상의 관습을 규칙으로 정립해 형태를 완성해 나간다. 아론의 그림이 인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기계적 화면이 아니라, 꽃과 인물 등 인간적인 소재와 표현성을 특징으로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 달러에 판매된 최초의 AI 회화가 있다. 파리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AI 창작 콜렉티브 오비어스(Ovious)가 적대적 생성 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을 활용해 그린 〈에드몽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의 초상화다. 오비어스는 WikiArt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초상화 1만5000점을 학습시켜 〈벨라미 가족(La Famille de Belamy)〉이라는 초상화 연작을 제작했는데,〈에드몽 드 벨라미〉는 그중 하나였으며, 벨라미(bel-amy)라는 이름 역시 적대적 생성 신경망의 창시자인 캐나다의 컴퓨터 공학자 이언 굿펠로(Goodfellow)의 이름을 불어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오비어스는 “인간의 창조물도 무의 상태에서 갑자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므로 기계 학습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로 저작권 문제에 대한 세간의 의심에 답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 AI라는 혁명적 기술의 생산품이 인류의 시각적 전통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미지가 아니라, 바로 그 전통으로부터 유래함을 역설한다. 벨라미의 흐릿한 초상들이 17세기 초상적 전통의 잔존하는 유령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최근 생성형 AI 회화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레픽 아나돌의 사례는 몇 가지 중요한 논점을 던진다. 아나돌은 인간을 둘러싼 데이터를 인공지능을 통해 포집/학습하고 이를 다학제적 협업을 통해 시각화하는 데이터 회화(Data Painting)의 선도자다. 엔비디아의 연구자들이 만든 StyleGAN2 소프트웨어와 아나돌 스튜디오의 Latent Space Browser를 사용해 생성된 이미지들은 미술관의 벽에 걸린 디스플레이 화면 속에서 끊임없이 요동치고 변화한다. 2022년 뉴욕현대미술관(이하 MoMA)에서 선보인 〈기계 환각: 비지도(Machine Hallucinations: Unsupervised)〉는 MoMA가 200여 년간 수집한 미술작품 13만8000여 점을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 인간의 감독 없이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는 머신러닝의 한 유형)해 이를 매혹적인 화면으로 재해석해 냈다. 통계에 따르면 관객들은 대략 40여 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림 앞에 머물렀으며, 전시는 관객들의 쇄도하는 요청으로 4차례나 연장되었다고 한다. 결국 MoMA는 2023년 10월 〈기계 환각: 비지도〉를 영구 소장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아나돌의 데이터 회화는 MoMA에 수장된 최초의 AI 미술이 되었다. 그러나 MoMA의 무수한 컬렉션에 대한 AI의 학습 요체는 무엇일까? 피카소, 잭슨 폴록을 망라하는 MoMA의 긴 수장 리스트는 그저 카메라로 학습될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의 병렬에 불과한가? 시각적 스타일만으로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회화의 깊은 정신적, 정치적, 역사적, 매체적 의미는 어떻게 학습될까? 왜 AI는 과거의 학습에만 몰두하고, 그 과거를 자기 매체의 혁신적 특성을 통해 쇄신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아나돌의 매혹적 화면은 우리에게 AI 회화의 새로운 위상보다, 오히려 회화의 본질에 대해 집요하게 되묻는다.
레픽 아나돌 〈기계 환각: 비지도〉 맞춤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기반 설치, 컬러·사운드,
생성적 알고리즘과 인공지능(GAN: StyleGAN2 ADA) 가변 크기 2021~2022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뉴욕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2
“오늘부로 회화는 죽었다.” 1839년 파리에서 사진의 발명 소식을 듣고 화가 폴 들라로슈는 이렇게 외쳤다. 그러나 들라로슈의 걱정스러운 외침과 달리 회화는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다시금 개화했고, 모더니즘의 위대한 전통을 갱신해가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발터 벤야민은 초기 사진 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회화의 아우라를 목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로운 것의 창조적 가능성은 새로운 것에 의해 해소되었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자극을 받아 개화하는 과거의 형식과 조형 도구를 통해 서서히 드러난다.” 그러니 디지털 이미지의 창조적 가능성이 이제는 낡은 것이 되어버린 회화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서서히 드러난다는 우리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결코 증발하거나 소멸될 수 없는 회화라는 작품과 그것에 대한 우리의 감각적 경험이다. NFT나 AI와 같은 첨단 기술의 지혜를 따르기 위해 작품에 종언을 고하고 물리적 경험을 경시하는 것이야말로 우매한 짓이다. 작품이 증발하고 기술적 경이가 미적 관조를 대체해 버린다면, 미술사와 비평, 미술관을 포함한 모든 미술의 제도 역시 함께 증발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본 글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Buk SeMA 미술사 산책’ 시리즈 ‘회화 반격’에서 진행된 필자의 강연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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