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마주하는 예술
정소영 기자
ART BOOKS
지구를 마주하는 예술
이상기온으로 산 불, 폭염, 폭우와 같은 자연재해가 전 세계를 뒤덮었다. 팬데믹의 경고는 종결이 아닌 예고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요즘이다. 예술, 사회, 경제 전 분야에서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생태와 환경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아트북 에서는 인류를 둘러싼 생태와 환경, 미술에 대한 책을 소개한다. 지금의 인류는 생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미술은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담아내고 제안하는지 살펴보자.

어두운 생태학
티머시 모턴 지음 · 안호성 옮김
400쪽 · 2024
갈무리 · 25000원
책의 저자 티모시 모턴은 철학자이자 영문학자, 생태이론가이다. 미국 라이스대학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객체지향 존재론이 생태학적으로 함의하는 바를 탐구한다. 2018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어두운 생태학(Dark Ecology)』은 2014년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캠퍼스에서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이룬 학자들을 초청해 진행한 웰렉 강의(Wellek Lectures)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책에서 모턴은 생태적 알아차림을 세 가지 단계로 나눈다. 어두운 우울함, 기이함, 달콤함. 첫 번째 단계인 우울함은 우리가 생태적 위기 속에서 느끼는 비극적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그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우리의 행동이 환경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하며, 개인적 무력감과 행성적 책임의 모순을 드러낸다. 모턴은 이러한 모순을 탐정소설의 형식으로 비유하며, 독자 곧 인류가 형사이자 범인이라는 정체성을 깨닫게 한다.
책의 중심 개념 중 하나는 농업로지스틱스이다. 모턴은 이 개념을 통해 신석기 시대 이후 발전해 온 농업 시스템이 어떻게 인간과 비인간 세계를 분리하고, 현재의 생태적 위기를 초래했는지 분석한다. 농업로지스틱스는 단순히 식량 생산을 넘어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논리적 접근 방식으로, 그 결과는 행성의 파괴적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축소시키며, 우리의 사고와 생존 가능성을 제한해왔다고 그는 주장한다.
모턴은 이러한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두운 우울함을 직면하고, 그 속에서 기이함과 달콤함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 겪은 우울증을 고백하며 싸우기보다는 그것을 수용하고, 우울함 속에서 새로운 놀이와 창조적 가능성을 생태에서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인류세 풍경: 우리 곁의 파국들과 희망들
강남우 외 15명 지음 · 남종영, 박범순 엮음
296쪽 · 2024
이음 · 25000원
인류세(anthropocene)는 인간 활동이 지구에 미친 광범위한 영향을 연구하는 개념으로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를 정의하기 위해 제안된 개념이다. 하지만 그 영향이 복합적인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는 개념이다. 미술에서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전시와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인류세 풍경: 우리 곁의 파국들과 희망들』은 남종영 환경 전문 기자와 박범순 인류세연구센터 센터장의 주도로 16인의 필진이 주변의 인류세적 사례들을 소개한다.
책은 총 4가지의 축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 ‘개념’에서는 기초적인 인류세에 대한 정의와 그 함의를 논의한다. 저자들은 인류세를 단순히 기후 위기로 축소하는 시각에 대해 경고하며, 이를 지질학적 사건이자 정치적, 경제적 시스템의 산물로 확장한다.
두 번째 축, ‘감지’에서는 인류세의 역사적 배경과 구체적 사례들을 탐구한다. 근대 유럽의 자연 착취에서 시작된 변화가 현재의 환경 파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밝히는 내용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찰을 제공한다. 또한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호주의 산불, 히말라야 빙하 홍수 등 재난의 현장을 통해 인류세적 위기를 생생히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인류세의 근원이 되는 사회적 시스템과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며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세 번째 축, ‘탐구’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이 얽힌 관계망에 주목한다. 코로나19 대유행을 비롯해 미생물, 곤충, 식물과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이 인류세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하는 내용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선 다층적 관점을 제시한다.
마지막 축인 ‘상상’에서는 인류세 너머의 지구를 상상한다. 기술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며, 데이터 기부나 인류세 지평을 우주로 확장하거나 작가의 쓰레기장에서의 체험을 통한 물질 순환에 관한 예술적 탐구 등 혁신적 사례를 제시한다.
기존 인류세에 관한 이론서와 대중서 사이에서 갈증을 느낀 독자라면 다양한 분야의 사례집으로서 개념에서부터 실질적 적용 사례를 다룬 이 책에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생태미술의 흐름과 현재: 자연미술에서 생태미술에 이르기까지
국립현대미술관
635쪽 · 2021
국립현대미술관 · 19000원
『한국 생태미술의 흐름과 현재: 자연미술에서 생태미술에 이르기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에서 발행한 첫 번째 생태미술에 관한 정리서이자 아카이브 전시 《대지의 시간》과 연계한 연구서이다. 아카이브에 참여한 유현주 생태미학예술연구소 소장은 생태미술 작업을 선정하면서 펠릭스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가 『세 가지 생태학』 에서 분류한 자연생태와 사회생태, 정신생태를 기준으로 생태미술의 개념을 정리했다. 가타리는 이론을 통해 세 가지의 형태는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어 생태문제가 단순히 환경오염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와 인간 정신의 부조화를 일으킨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국현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문제에 대해 연결성을 가진 작업을 5년 이상 이어온 단체와 작가, 전시를 아카이브 대상으로 선정해 연구했다.
필진으로 참여한 박윤조 미술사학자는 미술계에서 다양한 생태미술전이 열리는 이유를 “인류가 직면한 위기 앞에서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책은 1970년대 자연미술 운동의 태동과 한국적 특수성, 그리고 생태미술로의 확장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특히 자연과 인간, 기술과 환경 사이의 균형을 추구했던 초기 자연미술가들의 철학과 작업 방식을 분석하며, 이러한 운동이 현대 생태미술의 기틀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조명한다. 더불어 현대 생태미술의 다층적인 면모를 통해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지속 가능한 발전 등 글로벌 생태 문제를 반영한 작가들의 작품과 전시를 통해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활용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들을 담았다.
학문적 연구와 미술사적 분석, 작가 인터뷰와 작품 해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풍부한 자료와 통찰을 제공하는 연구서는 한국 생태미술이 국내 예술계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로 살펴봄으로써 한국적 정체성과 보편적 가치를 융합한 생태미술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무크 에코 플러스 생태+미술
국립생태원
276쪽 · 2024
국립생태원 · 18000원
『무크 에코 플러스 생태+미술』은 가장 근래에 발행된 생태와 환경, 미술에 관한 책으로 국립생태원과 월간미술의 협력으로 제작되었다. 국립생태원에서 생태와 다른 분야의 융합을 위한 작업으로 발행하고 있는 『무크 에코 플러스』는 ‘생태+문학’을 시작으로 다섯 번째인 미술로 이어졌다.
『생태+미술』은 기존의 생태미술 정의와 개념에서부터 시작해 생태미술에서 주장해왔던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재조명으로 여성주의 미술과의 접점에서 생태미술 양상을 조명한다. 또한 국내외 작가들의 작업과 함께 생태주의 철학을 실천하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인터뷰와 좌담, 연구 보고서를 통해 폭넓은 스펙트럼의 생태미술을 살펴봄으로써 생태적 가치를 예술적 시각에서 탐구하고 그 상호작용을 조망한 책이다.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생태와 미술의 교차점을 탐색하며, 생태미술의 정의와 개념, 국내외 생태미술의 역사를 지금의 시점에서 정리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생태미술이 단순히 환경 문제를 시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철학적 사유와 미학적 실천의 중요한 장르로 발전해왔음을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생태미술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과 활동을 소개한다. 여기에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작가들의 사례가 폭넓게 담겨 있으며, 각 작가의 작업이 생태적 메시지를 예술적으로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세 번째 장은 로컬리티와 생태미술의 관계를 조명한다. 각 지역의 특성과 자연환경을 반영한 프로젝트 사례들을 통해, 생태미술이 지역 사회와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네 번째 장에서는 생태주의적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터뷰의 형태로 담겼다. 이 장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기획자, 연구자, 교육 활동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생태적 사고와 실천의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다섯 번째 장은 생태미술 작가, 기획자, 연구자들이 생태에 대해 사유하는 철학적 기반을 탐구하며, 마지막 장에서는 생태와 예술의 역할에 대해 이들의 좌담을 수록했다. 좌담회는 이론을 넘어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생생한 대화를 통해 생태미술의 현재 위치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책 전체는 생태미술을 단순한 학문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넘어, 독자들이 생태적 감수성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풍부한 시각 자료와 생생한 사례들은 독자에게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이해를 제공하며, 생태미술의 대중화와 실질적인 활용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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