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재민 Jeamin Cha
카메라의 눈, 감각하는 몸:
차재민의 언어
Artist
《IMA Picks 2024》일민미술관 앞에서의 차재민 〈광합성하는 죽음〉(사진 왼쪽)
싱글 채널 비디오, 4K, 사운드, 컬러 2024 사진 : 박홍순
차재민/ 1986년 출생으로 무빙이미지, 설치, 글 작업을 한다. 심리 혹은 감정과 육체의 관계를 다루며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을 가진 개인들에게 초점을 둔다. 또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점점 축소되는 미지의 영역을 보존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마픽스 : 빛 이야기》 (일민미술관, 서울, 2024 ), 《동결 반응》(잘츠부르크 쿤스트페어라인, 잘츠부르크, 2024 ), 《마음 1, 2, 3의 문제해결》(카디스트, 샌프란시스코, 2020 ), 《사랑폭탄》(삼육빌딩, 서울, 2018 ), 《Day for Night》 (신도문화공간, 서울,2015 ), 《히스테릭스》(두산갤러리, 서울, 뉴욕, 2013, 2014 )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안개와 연기〉(스틸 컷 시퀀스) 단채널 비디오 설치,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20분 2013
『1보다 크거나 작거나』 내지 제공 : 우아름
카메라의 눈,감각하는 몸: 차재민의 언어
우아름 미술비평
차재민은 스스로를 소개할 때 촬영한 영상을 주로 사용하는 무빙이미지 작가라고 말하곤 한다. 촬영한 이미지에는 현실을 직접 바라보려는 태도와 현실에 카메라를 향하는 데 따르는 복잡한 윤리적 고민이 담겨 있다. 차재민은 예술의 효능과 무능 양쪽을 향한 질문을 품고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와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마음을 다뤄왔다.
차재민의 작업 활동은 15년으로 그리 길지 않지만, 그가 탐구해 온 주제에 따라 시기를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탐구 주제는 자본주의와 도시이다.〈몽유병자〉(2009),〈안개와 연기〉(2013),〈미궁과 크로마키〉(2013),〈히스테릭스〉(2014),〈독학자〉(2014)가 이 시기 대표적인 작업의 목록이다. 도시 개발로 밀려나는 이들에 관한관심(몽유병자)에서 시작된 관찰과 탐구는 성장주의의 욕망이 투영된 도시 경관(안개와 연기)과 그 반향으로 내몰리고 떠도는 개인의 처지를 고루 조망한다. 시선의 궤적은 노동의 문제를 경유하여(미궁과 크로마키) 권력에 은폐된 진실을 추구해 온 이의 생(히스테릭스, 독학자)에 이른다. 어떤 이의 난제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연구를 시작해, 개인의 구체적인 문제를 통해 사회를 가늠하도록 하는 작품으로 귀결 짓는 차재민의 방법이 구축된 시기다. 카메라의 눈으로 현실 세계를 포착하되, 그것을 감각의 대상으로 변환하여 제시하는 방법이다.
〈안개와 연기〉는 개발 공사가 중단된 송도국제신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안개와 연기는 비슷해 보이지만 원인도 온도도 다른 물질이다. 멀리서 피어오르는 것이 간척지에 피어오르는 차가운 안개인지 개발 현장에 피어오르는 뜨거운 연기인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공기 중에 손을 뻗어 만져보아야 한다. 이것은 감각이 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차재민은 송도의 마지막 어부 (안개와 연기)와 케이블 설치 노동조합원(미궁과 크로마키)을, 군 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오랜 싸움을 해온 허영춘 선생(독학자)을 만났다. 이때 수집한 정보들은 다큐멘터리나 르포르타주와 같은 ‘직접적 말하기’의 형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 법한 크기의 사실 다발이 되곤 한다. 그러나 차재민은 자주 이 말들을 버리고 감각으로 우회한다. 인터뷰 대신 카메라의 시선으로 사물과 풍경을 비추고, 탭 댄스를 추는 이들을 장면 속으로 들여보내 도시 공간을 퍼포먼스의 공간으로 전환하거나, 손노동 장면을 크로마키 기법으로 증폭시키며 감각으로 독해해야 하는 길을 연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차재민의 영상은 명료하게 언어화된 내러티브 대신 병치된 장면 다발로 구성된다. 카메라의 눈과 감각하는 몸으로, 차재민의 영상은 다큐멘터리나 극영화가 아닌 독자적인 무빙이미지로 자리매김했다.
〈1보다 크거나 작거나〉(스틸) 단채널 비디오 설치, F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28분 2018
〈네임리스 신드롬 패치 버전〉(스틸) 단채널 비디오, 4K, 컬러, 사운드 24분 2022
제공 : 우아름
차재민의 두 번째 탐구 주제는 개인의 심리와 돌봄이다. 이 시기 발표한 세 편의 주요 작품 〈보초 서는 사람〉(2018 ),〈1보다 크거나 작거나〉(2018 ), 〈사운드가든〉(2019 )에서 작가의 시선은 사회로부터 한 사람의 내면으로 점차 하강하며 구체화한다. 가령 〈보초 서는 사람〉에서는 경호 업무를 수행하고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누군가를 지키고 돌보는 일을 번갈아 수행하며 일상을 보내는 인물 K가 등장하는데, K의 이동을 나란히 비추는 수평의 카메라 무빙은 불길하게 추락하는 사물들의 수직 하강 운동과 교차하면서 등장인물이 지키고자 애쓰는 일상의 안위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세계를 제시한다. 이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이다. 〈1보다 크거나 작거나〉에서는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감정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아역배우의 몸에서 드러나는 거절의 제스처를 포착한다. 이 작품이 연기 수업이라는 작위의 상황 속에서 행해진다는 점, 그러나 아이들의 거절하는 뉘앙스는 연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마음 자체를 포착하는 데 도달한다. 〈사운드 가든〉은 훈련목이 처음 심어진 땅을 떠나 제 몫을 다할 도심을 향해 가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을 심리 상담사들의 실제 인터뷰 음성과 병치한 작업이다. 이 병치는 심리 상담의 목적이 개인의 행복한 삶뿐만이 아니라 개인을 자본주의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있기도 하다는 복잡성을 노출한다.
차재민의 세 번째 탐구 주제는 여성(타자 )과 질병이다. 그는 이 주제를 언어와 기술 체계 안팎에서 다룬다. 이 시기 발표한 두 편의 작업 〈엘리의 눈〉(2020 )과 〈네임리스 신드롬〉(2022 )에서 병을 앓는 이의 언어화되지 않는 고통을 세상에 존재하는 텍스트와 접붙인다. 이를 위해 새로운 편집의 방식이 등장한다. 〈엘리의 눈〉에서는 인간의 신체를 스캔하는 의료 기술을 탐구한 리서치 과정에서 발견한 파운드푸티지를 일부 활용했고, 〈네임리스 신드롬〉은 여성과 질병을 다룬 책들의 탐독 과정에서 발견한 문장으로 스크립트를 구성했다. 차재민은 열병에 걸린 것처럼 존재하는 세계를 학습하고 발췌한 이미지와 문장들로 영상을 구성하면서, 이미지와 음성의 이격에 언어화되지 않은 고통의 자리를 남겨놓는다. 윤아랑은 〈네임리스 신드롬〉 첫 장면의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사이의 시차”에 주목한다. 차재민이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으로 대표되는 감각 내용이 아닌, 간격 자체에 대한 향유를 관객에게 요구”함으로써 “기계에 아웃 소싱된 시각 경험을 영유하는 현대의 시(청 )각 주체의 능력을 재고”한다고 말한다.2
두 작업은 질병이라는 동일한 문제에 관한 서로 다른 관점의 답변이기도 하다. 〈엘리의 눈〉이 환자의 고통을 추적하고 질병의 이름을 붙이려는 의료 기술을 바라본다면,〈네임리스 신드롬〉은 의료의 대상이 되는 고통을 육체로 경험하고 있는 환자를 바라본다. 그도 그럴 것이, 고통은 환자의 언어를 파기하고 어눌하게 하며, 이는 고통의 원인을 찾으려는 의사에게는 의심스러운 것이 되기 때문이다. 김애령은 “고통스러워하기는 확신하기의 가장 생생한 예인 반면, 고통에 관해 듣기는 의심하기의 가장 좋은 사례가 된다”면서, 네임리스 신드롬이 “검사 공간 안에서 환자의 몸, 검사 도구들, 그리고 의료 인력은 고통의 이름을 찾기 위해 협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3
차재민의 마지막 탐구 주제는 언어 바깥의 감각이다. 작가는 최근 언어세계의 논리와 명쾌한 답을 찾아가던 기존 작업세계에서 벗어나, 부유하는 상태와 감각에 집중하는 퍼포먼스 작업을 연이어 선보였다. 그간 작가의 창작 방식이 진료나 수사, 탐사, 정신분석과 같은 명료한 행위를 닮았다면, 최근의 작업은 명상을 닮았다. 〈제자리 비행〉(2022 )은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영상 작업이다. 어두운 헌책방에 한 아이가 등장해 책을 쌓아 만든 탑을 무너트리고 허밍 소리를 내며 책장 사이를 누빈다.〈제자리 비행〉이 발췌한 문장들로 정교하게 스크립트를 구성한〈네임리스 신드롬〉과 함께 발표되었다는 점은 작가가 언제나 화해하지 않고 대립하는 질문들의 길항 속에서 작업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최장현은 〈제자리 비행〉에 등장하는 인물에게서 “세계에 예상치 못한 균열을 만들어 내며, 복수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현재의 질서에 개입하는 군중의 가능성”4을 보며, 이것을 동시대 한국의 후기 자본주의적 하부구조를 드러내어 온 차재민이 모색한 해방의 실마리로 읽어낸다.
〈사운드 가든〉(스틸) 단채널 비디오 설치, FHD 비디오, 컬러, 3채널 사운드 30분 2019
제공 : 우아름
〈네 가지 변주: 낭독, 별자리, 침묵, 그림자〉(2023)는〈제자리 비행〉의 연작이자 영상으로 매개되지 않은 퍼포먼스로 선보인 작업으로, 제자리 비행과 같은 문제를 반대편에서 바라본 듯 짝을 이룬다.〈제자리 비행〉이 헌책방이라는 언어의 세계를 무대 삼아 그것을 휘젓는다면, 〈네 가지 변주〉는 언어의 틈새를 무대 삼아 배회하며 빛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무대는 병원을 연상시키는 침대와 카메라 옵스큐라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이 놓인 어두운 공간이다. 네 명의 퍼포머가 등장해 단어를 낭독하고 빛을 비추어 그림자를 발생시킨다. 퍼포머들은 망각으로 침잠하는 언어를 건져 올리듯, 짧은 단어들을 낭독하고 빛을 무대 공간에 비추면서 사물의 그림자극을 펼친다. 작가는 이제 카메라의 눈으로부터도, 감각하는 몸으로부터도 약간의 거리를 확보한 듯하다. 망각과 낭독, 어둠과 빛이 어우러지는 장면들의 연쇄 가운데 에너지의 생성과 소멸이 언뜻 눈앞에나타난다.
<네 가지 변주: 낭독, 별자리, 침묵, 그림자〉현장 기록, 퍼포먼스 40분 2023
사진 : 안초롱
《히스테릭스》 두산갤러리 서울 전시 전경 2014
사진 : 이승희
작가는 최근 개인전《빛 이야기》(일민미술관,2024)에서 오랜 시간 천착해 온 죽음의 주제를 갈무리해〈광합성하는 죽음〉(2024)을 선보였다. 30분의 비교적 긴 러닝타임 동안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혼자의 연구 끝에 도달한 결론이나 내레이션이 아니라, 작가가 가상의 동료와 천천히 주고받은 서신이다. 두 사람은 시체가 썩는 과정을 그린 불교 회화 ‘구상도’를 보러 가려고 계획하지만, 박물관 학예사는 그들에게 고해상 이미지 자료로 관람하기를 권한다. 인간의 신체를 바라보는 기술의 세계, 그것은 차재민이 과거에 연구했던 세계다. 신작에서 이러한 해프닝이 서신을 통해 전달되는 동안 화면을 채우는 것은 가정집 거실에서 죽은 과일이 천천히 형질을 변화해 가는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 장면들의 병치에서 죽음은 어디에 있는가? 카메라의 눈과 감각하는 몸을 떠나 심안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지금 차재민이 내어놓는 감각의 자리다.
『1보다 크거나 작거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2022-2023 작가 조사-연구-비평 사업’의 일환으로 차재민 작가의 연구서『1보다 크거나 작거나(almost–one.com)가 웹으로 출간됐다. 17편의 대표 작품 해제, 5편의 비평, 6편의 서신, 창작의 기반이 되는 자료(리서치 자료, 스토리보드, 현장 사진, 작가 노트)를 수록했다. 본서는 사회와 개인의 문제가 한 작가의 미술 실천을 통해 어떻게 복합적으로 드러나는지에 주목하는 한편, 무빙이미지의 지면화 형식을 시도한다.
책은 작가가 탐구해 온 주제에 따라 장별 구분하고, 전체 작품 목록과 작가 자료를 작가 노트 및 아키비스트의 에세이와 함께 볼 수 있는 부록으로 구성했다. 4개의 장 ‘씬1: 안개와 연기’, ‘씬 2: 심리와 돌봄’, ‘씬 3:언어(이름)의 세계’, ‘씬 4:(목)소리들’에서는 해당 시기의 대표 작품을 작품 해제와 스틸컷 시퀀스를 통해 소개하고 필진 김애령, 박유진, 윤아랑, 이상희, 최장현의 글을 게재해 작가가 던지는 질문을 심화했다. 본서 출간을 위해 동료 작가 제시카 바즐리와 차재민이 교환한 서신에는 두 여성 작가의 작업 생활 뒷면의 생활과 사적인 고민을 아우르는 정동의 언어가 담겼다.
부록 ‘커튼콜’에는 리서치의 과정과 프로덕션 및 촬영 기록물, 현장 사진을 정리해 작가 노트와 함께 장면화해 공개했다. 그간 영상 작업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던 퍼포먼스와 드로잉, 설치 작업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웹 뷰어에서는 자료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차재민 연구 출판물은 우아름이 총괄 기획과 편집을, 이상희가 아카이브를, 박유진과 최장현이 연구를 맡았다. 김애령, 윤아랑, 제시카 바즐리, 차재민이 본서를 위해 글을 집필했고 고아침과 김효정, 박유진이 번역을, 권효정이 디자인을, 최진훈이 웹 뷰어 개발을 담당했다.
본 기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2-2023작가 조사-연구-비평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1보다 크거나 작거나』 자료집의 일부를 재가공하여 수록한 것으로, 월간미술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가 연구팀의 협력으로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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