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시된 풍경, 포착된 자연
·《겸재 정선》
·《오지호와 인상주의: 빛의 약동에서 색채로》
2025 월간미술대상 우수 전시 10
12월 특집기사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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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 돌아보기와 깨뜨리기
자연을 그린다는 일은 언제나 그 시대가 포착한 감각을 화폭 위에 창시하는 일에 가깝다. 겸재 정선과 오지호는 외래 화풍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산수와 빛을 포착하고 그려내며 고유한 세계를 세웠다. 작가가 생애에 걸쳐 쌓아 올린 공력과, 그 회화를 직접 마주하는 경험은 오래된 풍경이 오늘의 시선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이유를 보여준다.
《겸재 정선》
호암미술관 4.2~6.29
전시기획 | 조지윤 소장품연구실장

정선〈금강전도〉종이에 수묵담채 130.8×94.5cm 18세기 중엽 개인 소장 국보
제공: 호암미술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에 대한 전시를 여는 것은 전통미술 전시기획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바일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 회화사를 전공한 본인에게 이 주제가 더욱 크게 다가왔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정선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가 이루어 낸 회화적 성취가 워낙 크고 넓기 때문에 자칫 어느 한 분야에만 집중한다면 오히려 정선이라는 큰 산을 보지 못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다.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정선의 작품들을 찾아보고 관련한 여러 논문과 글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은 화가 그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왜 그는 진경산수화를 그렸을까? 왜 남들은 한 번 가기도 힘든 금강산을 여러 번이나 여행하면서 많은 풍경을 화폭에 담았을까? 어째서 정선은 평생을 바쳐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그려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되었다.
“정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작가를 조망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시작되어야 하는 일은 그 인물에 대한 파악일 것이다. 정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에는 각각의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스토리들의 얼개를 맞춰가다 보면 결국 정선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전시를 기획하면서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기획자의 생각을 관람객들에게 명확하면서도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을까였다. 평소 전시는 학계와 대중이 만나는 최전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학계에서는 미술사의 여러 주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획자의 역할은 그중 흥미로운 지점을 찾아내어 새롭게 재구성하고,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과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주제를 쉽고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전시에서도 보다 쉬우면서도 명징하게 겸재 정선이라는 인물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였다. 산수, 인물, 화조화 등 작가의 작품을 분야별로 나누어 회화세계의 전부를 보여주고자 하였으며, 많은 작품들 가운데 스토리가 담겨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그 이야기를 펼쳐 보고자 하였다.

《겸재 정선》 호암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제공: 호암미술관
정선은 쉽게 기획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또한, 남아 있는 작품들도 다양한 기관과 개인 소장가들이 가지고 있어 섭외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선 연구의 메카이자 가장 많은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간송미술관과의 협력은 매우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겸재 정선》 전시를 계획하고 간송미술관과 공동기획하기로 결정되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겸재 정선이라는 큰 산맥을 등반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는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전시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순간들이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인왕제색도〉 대여가 최종 확정되어서 〈금강전도〉와 함께 걸 수 있었던 순간도 있었고, 정선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들의 출품이 확정되어 처음으로 소개할 수 있었던 것도 전시 준비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겸재 정선》은 정선 회화세계의 전모를 살펴보고자 기획한 전시였다. 잘 알려진 진경산수화뿐만 아니라 문인화, 인물화, 화조영모화 등 모든 회화 분야에서 이룩한 성취를 조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수많은 작품에서 드러난 ‘인간으로서의 겸재 정선’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정선과 우정을 나눴던 문인들과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하였고, 이를 통해 정선 회화의 근원이자 목표였던 문인으로서의 자부심까지 전달하고자 하였다. 사실 작가가 남긴 회화를 가지고 그 저변에 숨겨진 의식까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기획자에게도 쉽지 않은 시도였다. 전시장 한 공간에 겸재 정선의 교유관계와 문인의식을 조명하는 코너를 마련했으나, 기획자의 의도를 관람객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관람객들이 정선과 사천 이병연이 시와 그림을 나누며 우정을 나눈 『경교명승첩』(간송미술관 소장) 작품들의 시와 그림을 보고 읽으며 관심을 가졌고, 『퇴우 이선생 진적첩』(리움미술관 소장)을 보며 퇴계 이황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정선의 태도를 이해하는 등 기획자의 의도를 따르는 모습을 보였던 것에 크게 고무되었던 기억이 있다.
20년 이상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여러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했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전시 주제가 많이 남아있다. 특히 조선시대 회화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나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회화세계를 소개하는 전시를 기획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그중 가장 하고 싶은 전시는 겸재 정선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인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에 대한 전시이다. 단원 김홍도 역시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이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풍속화라든지 궁중화원과 같은 단편적인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단원 김홍도는 남겨진 작품도 매우 뛰어나지만 삶의 궤적 또한 흥미로운 인물이다. 사실 단원 김홍도는 1995년 삼성문화재단과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이 함께한 대규모 전시가 있었다. 그러나 그 전시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새로운 자료들과 작품들이 발굴되어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외에도 동아시아, 혹은 세계적인 관점에서 한국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전시를 연구 중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전통 문화유산은 많은 수가 가까이는 중국과 일본, 멀리는 페르시아와 중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교류를 통해 진행되어 온 결과물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고, 그 결과물들을 전시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나 언젠가는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관람객들과 만나고 싶은 것이 전시기획자로서의 목표이다.

조지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한국 미술사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를 수료했다.《조선말기회화전》, 《조선화원대전》, 《세밀가귀:한국미술의 품격》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 및 진행하였다
《오지호와 인상주의: 빛의 약동에서 색채로》
전남도립미술관 2024.11.15~3.2
전시기획 |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 관장

《오지호와 인상주의 : 빛의 약동에서 색채로》 전남도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제공: 전남도립미술관
이 전시의 출발점은 “왜 우리는 지금, 오지호를 이야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오지호는 단순히 전남의 작가가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자로서 ‘한국적 인상주의’라는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미술사는 서울 중심의 시각에 치우쳐, 그의 예술적 업적을 충분히 조명하지 못했다. 이 전시는 그동안 저평가되어 온 오지호의 예술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지닌 예술적·역사적 의미를 재정립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도 빛과 생명의 언어로 조국의 풍경을 그려낸 그의 예술은, 예술이 민족의 혼을 지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지호가 “아름다운 것을 그렸더니 그게 조국이었다”라고 말했듯, 이번 전시는 그 ‘아름다움’ 속에 깃든 정신의 근원을 되짚고자 했다.
전남도립미술관의 전시는 미술관의 전시 정책에 따라 기획의 방향이 설정된다. 지역 공립미술관으로서 전시는 단순히 작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미술사를 큰 틀 안에서 재조명하며, 나아가 한국 미술사와 동시대 세계미술의 맥락 속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전시를 개최하기 전 전시학술 연구 사업을 통해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고, 기획 초기 단계부터 다방면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하여 전시의 객관성과 전문성, 그리고 깊이를 확보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반영되었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아간 한 지식인 화가 오지호의 삶과 철학, 그리고 그의 미학적 유산이 세대를 거쳐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조망했다. 특히 그의 동경예대 졸업작품과 전남 출신 동경예대 작가들의 졸업작품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개인의 예술적 궤적을 넘어 세대 간 예술적 연속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유족과 소장자들을 설득하고 협력을 구해 대표작뿐 아니라 이젤, 팔레트, 서신, 서적 등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함께 전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예술가의 생애를 증언하는 오브제이자 전남 예술이 한 세기를 건너온 물질적 흔적으로서 전시에 깊이를 더해주었다. 이 전시는 학술연구와 전문가 협업을 통해 객관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예술과 지역, 세대를 잇는 깊이 있는 전시를 구현하고자 한 결과물이다.

오지호〈복사꽃 있는 풍경〉캔버스에 유채 48.5×60cm 전남도립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소장 1980
제공: 전남도립미술관
전시 준비 과정에서 기억에 남은 순간은 오지호 화백의 막내딸 오순영 씨와 동경예대미술관 히로시 관장과의 만남이다. 특히 오순영 씨가 직접 제안한 오지호 화백의 데드마스크(오상욱 조각가 작품)와 화가 생전의 유품들을 기꺼이 전시에 내어주었을 때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순간 전시는 과거를 복원하는 행위가 아니라 예술의 생명을 현재로 옮겨오는 일임을 실감했다.

오지호〈무등산록이 보이는 구월풍경〉패널에 유채
24.5×32.5cm 194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제공: 전남도립미술관
전시를 통해 중점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서울 중심으로 편중된 한국 미술사의 시각을 바로잡고, 각 시대와 지역의 예술가들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균형 잡힌 한국 미술사를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평생 민족적 감성과 자연의 생명력을 화폭에 담아낸 오지호의 예술정신이, 전시를 통해 지역과 세대를 넘어 오늘의 관객에게도 살아 있는 가치로 이어지길 바랐다. 특히 오지호가 ‘빛’을 생명의 근원으로 보았듯, 관람객들은 그의 작품 속 빛의 흐름을 따라가며 예술이 한 지역의 역사와 인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품고 드러내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 지역과 세대를 넘어선 예술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미술사 속에서 지역 예술이 차지하는 의미를 관객과 함께 성찰하고 소통하고자 한 시도였다.

오지호 〈피카딜리 풍경〉 캔버스에 유채 50×40cm 197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제공: 전남도립미술관
필자는 전남도립미술관의 관장이자 전시기획자로서, 조선시대 한양에서 남도로 유배된 선비들의 삶과 사유에서 비롯된 남종화의 역사적 가치를 탐구하며 그 안에 깃든 공동체적 정신과 미학을 오늘의 예술로 보여주고자 한다. 전시는 이러한 전통문화의 뿌리를 현대미술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공동체 삶에 기반한 예술이 지닌 보편적 가치를 전남을 통해 세계와 나누는 시도이기도 하다. 즉, 전남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한국 전통미술의 인프라를 동시대적으로 계승·발전시켜 한국미술의 세계적 위상을 높이고, 나아가 예술이 21세기 인류공동체를 잇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지호
파리1대에서 현대미술이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전시립미술관장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이응노미술관장을 거치며 21년간 국공립미술관에서 기관 운영, 예술행정, 전시기획 등을 수행했다. 프랑스 문화훈장 슈발리에 수훈 및 이경성미술상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