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

The Prism of Korea Biennale 2024
2024.9.27~11.10
Special Feature

성산아트홀, 성산패총, 창원복합문화센터 동남운동장,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확장된 매체로서 조각을 탐구하는 국내 유일의 조각 비엔날레인 창원조각비엔날레는 2010년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을 모태로 설립돼 2012년부터 비엔날레 형식을 취해 왔으며, 창원시와 (재)창원문화재단에서 주최·주관한다. 올해로 7회를 맞이한 창원조각비엔날레 감독으로 임명된 현시원이 내놓은 주제는 ‘큰 사과가 소리 없이’다. 국문학도 출신의 그가 학부 시절에 마주친 김혜순 시인의 시「잘 익은 사과」에서 따왔다. 껍질이 깎이며 길을 만들어낸다는 시인의 상상력을 떠올렸고, 시구에서 조각의 수평성을 겹쳐 읽어내고 창원과 조각이라는 맥락을 함께 고려해 여성과 노동, 도시 역사와 변화, 공동체 움직임 등의 키워드를 모두 수용했다.

특히 이번 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은 ‘비엔날레를 어떻게 경험, 기억하게 할지’에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확산하고 새기는 도구로서 괄목할 만하다. 현 감독은 지난 7월 15일부터 28일까지 비엔날레의 이야기를 전파하기 위해 서울의 시청각과 창원의 무하유에서 노순천과 쥬노 JE 김 & 에바 에인호른의 전시를 연 바 있다. 개막 직후에는 창원의 지역성과 동시대 조각 발화에 대해 논하는 심포지엄인 ‘씨앗과 껍질’을, 9월 11일부터 14일까지는 시와 조각이 지니는 특성을 오가면서 시를 지어보는 ‘종이와 바다와 유리병 편지’를 열 예정이다. 이외에도 ‘제일 창원’ 등 다양한 관객 참여 워크숍과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그렇게 45일간 창원을 수놓을 비엔날레는 16개국 60팀/70명의 국내외 작가가 참여한다. 조각의 수평적 배치와 사적 240호 성산패총 등의 공간 발굴을 통해 어떤 지도를 그려낼지 주목해보자.

Director
현시원 (Seewon Hyun)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폭넓게 시각문화를 연구하여, 「전시 만들기와 기록으로서의 ‘전시 도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종로구에 ‘시청각’을 개관해 운영했고, 2020년 4월부터 오피스 형태의 ‘시청각랩’을 열었다. 가디언과 제이미《TESTS》(시청각, 2024), 《도면함》(시청각, 2017)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일민미술관, 박해천 윤원화 공동 기획 2014) 등의 전시를 기획했고, 『1 :1 다이어그램 : 큐레이터의 도면함』을 포함,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하도경 기자

이번 비엔날레를 소개하면서 “초국적 행위자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탄생한 도시와 그 위에 생겨난 조각의 관계를 은유”하겠다고 밝혔다. 도시와 조각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도시와 조각의 관계를 새롭게 구축하고 동시에 해체하는 것이 이번 비엔날레의 도전이다. 조각은 주로 도시에 한번 자리 잡고 나서는 부동의 자세로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러한 조각이 아닌 시간성을 담은 조각, 이동이 가능한 가변성의 조각에 관해 이야기하며, 사람 못지않게 움직임이 가능한 조각과의 관계 속에서 도시를 바라볼 계획이다.

눈에 들어오는 시도 중 하나는 ‘조각의 수평성’이다. 이러한 시도에 관해 설명해준다면.
조각을 세우는 것 못지않게 조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록하고, 눕혀보는 것이 필요하다. 조각의 수평성은 우리 학예 팀이 창원이라는 도시에서 ‘길 만들기’ 시점에서 비엔날레를 역동적으로 만들기 위해 시도한 것이다.

비엔날레 주제에 김혜순 시인의 시 「잘 익은 사과」를 어떻게 꺼내올 생각을 했는가?
김혜순 시인의 「잘 익은 사과」는 네 곳의 베뉴(장소) 중 두 곳인 동남아트센터 동남운동장과 성산패총을 줄곧 생각하던 시기에 떠올렸다. 계획도시의 다성적 특성을 보여주는 두 공간이 이번 비엔날레를 ‘무어라 부를까’ 고민하며 이름을 짓던 시기에 큰 영향을 미쳤고, 제목으로 ‘시구(詩句)’를 택하게 되었다. 김혜순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이 지면을 통해서도 말씀드리고 싶다.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를 빌려올 수 있도록 해주신 거니까.

비엔날레를 구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눈에 띈다. 이번에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이번 비엔날레는 전시 못지않게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조각을 만들고 보는 데 있어 시간을 점유하는 프로그램이 잠깐 있다가 사라지지만 오랜 조각을 새기는 경험이 의미 있다고 본다. 감동환 작가가 김소연 시인을 모시고 창원시립마산문학관에서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진행하는 〈종이와 바다와 유리병 편지〉만 봐도 우리의 몸과 시, 도시의 곳곳을 움직여 다니는 다른 층위의 조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콘노 유키 비평가, 노경애 안무가, 밀물과 썰물(서재웅, 김아름), 우아름 등이 참여하는 프로그램들이 이번 창원조각비엔날레 안에 있다. 작업과 프로그램의 관계 자체를 질문하고 있기도 하다.

연구자, 큐레이터이자 발행인으로서 지닌 강점들이 이번 비엔날레를 기획하고 펼쳐내면서 어떻게 작용했는지 듣고 싶다.
한국 미술사와 영상예술학을 연구한 것이 비엔날레 만들기와 기록, 공간과 전시 의 관계에 관한 질문 수립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들과 1 :1로 밀도 있게 전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큐레이터로서 비엔날레의 시간 감각에 단기간 적응하기는 불가능하더라. 비엔날레를 만들고 난 이후에, 미술을 보고 세계를 보는 나의 관점이 큰 강점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이번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이 시대 비엔날레의 존재와 지역 비엔날레의 당위성에 대해 고민했다고.
비엔날레가 거대한 몸집을 가진 제도이자 동시대 국가, 도시와 교류하는 장치로서 동시대 미술의 첨예한 모습을 어떻게 담아내는지 고민하게 됐다. 비엔날레라는 프로그램이자 도시 기반 행사 안에서 미술과 예술이 등장하는 ‘특정한 자리’가 더욱 섬세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비엔날레가 어떤 점에서 동시대 예술가와 관객을 유의미하게 만나게 하는지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협력자들과 치열하게 고심하는 시간이었다.

비엔날레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엔날레와 기록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오랜 시간 여러 그래픽 디자이너, 필자들과 일하는 것을 즐기고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비엔날레는 그 어떤 미술관, 제도보다 기록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역설적으로 말할 수 있다.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한계에 부딪혔던 지점이 있었나?
시간과 여건, 인식의 문제로 크게 부딪혔다. 2010년에 출발한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조각공원을 만들거나 영구 조각 설치로 진행되는 등 ‘국제 + 미술 비엔날레’라고 하는 전제하에 진행되는 여타 비엔날레들과 다른 특성도 있다. 그러나 반문의 힘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2024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를 통해 그야말로, 오늘날 비엔날레의 백지상태는 무엇인지, 기본 전제가 무엇인지 규정하기 힘들지만 투명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거다. 무척 무모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지방의 비엔날레는 지역민들의 축제라고 인식되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지역 비엔날레는 여전히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한 축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거주와 이동의 문제, 도시와 도시가 모여 국가, 그리고 아시아, 세계의 다양한 층위가 만들어진다는 점을 잊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지역민의 축제를 성 안에 가두고 할 수는 없다. 가장 급진적으로 전시를 만들고, 조각을 바라보는 시간과 역사를 가진 창원이라는 시공간에서 한국을 기반으로 한 지역/미술의 방향성을 새롭게 조율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동시대에 열리고 있는 전시들이 점점 사기업화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개인의 목소리’를 드러내 보이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개인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방식이 무엇인지 소개해준다면.
하나의 작업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일이 개인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공간을 처음 가볼 때,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아무런 전제 감각과 편견 없던 미지의 상태에서 오는, 쭈뼛쭈뼛한 순간들이 있다. 동시대 비엔날레에서 자본주의화, 일률적으로 동질화하는 이 세계의 예술가 정신을 통해 무언가 잠깐 멈추거나 숙고하게 할 수 있는 순간이 생긴다면 그게 ‘개인’의 힘이 아닐까?

앞으로 포부와 계획이 궁금하다.
전시가 열리는 시점에서부터 마치는 순간까지 여러 번 자세히 보기를 권하고 싶다. 창원, 마산, 진해에 대해 이제 막 연구를 시작했는데 작업들과 함께 왔다가 떠나는 느낌이 벌써 든다. 이 도시와 조각에 관한 연구가 어떤 식으로든 관객들에 의해서, 이 도시 자체에 의해서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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