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적 작가는 DNA에 빚을 졌을까?
『솜씨 – DNA』
김소정 기자
Art Book

솜씨 – DNA
이종선 지음 ·홀리데이북스
464쪽·2025 35,000원
창작을 업으로 삼고 세상에 없었던 것을 만들어 내는 이를 우리는 작가(作家)라 부른다. 미술사에서 예술가를 창조적 개인으로 보고 이들의 개별성을 먼저 인지한 쪽은 의외로 서양보다 동양이었다. 중국 송·원의 문인화 전통에서는 ‘기운생동’의 관념이 자리 잡으며 각 그림의 개성이 강조되었고, 이를 구현한 문인화가는 대체로 당대 지식인으로서 작가성을 지닌 인물로 인식됐다. 서양에서는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서며 천부적 재능을 지닌 예술가들에 대한 조명이 본격화되었는데, 조르조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1550)은 작가의 전 생애를 서술하며 ‘작가 개념’을 확립한 기점으로 평가된다. 이후 창작의 영역은 특출한 창의력을 지닌 개인이 지배하는 무대로 전환됐다.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이 저술한 『솜씨–DNA』는 ‘작가 이전의 시대’에 만들어진 예술품들, 즉 한국의 청동기 유물에서 삼국시대,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보와 보물, 미술품들을 살피며 현대에 주목되는 손재주의 기원을 DNA로 추적한다. 물론 당시의 제작자들은 마을 공동체에서 청동과 철을 다루는 기술자에 불과했고 역사 시대 이후에는 국가나 관청에 소속된 기능인으로 활동했을 뿐, 현대적 의미의 작가로 인식되거나 기록되지 않았다. 저자는 뛰어난 창의력과 재능을 겸비한 ‘최초의 조상’으로부터 계보를 따라 이어진 특별한 유전적 속성이 한국 문화유산의 근간을 이루었음을 강조하며, 이는 예술의 영역에서뿐 아니라 손을 통해 구현되는 모든 신체적 활동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청동정문경〉은 한국인의 독보적인 손재주와 정밀한 기술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소개된다. 1960년대 충남 논산에서 출토되어 현재 숭실대 박물관에 소장된 이 청동거울은 손잡이가 여러 개 달려있어 ‘다뉴세문경’이라고도 불린다. 거울 뒷면에 새겨진 세밀한 기하학 문양이 초미세 기술로 주조된 것으로 밝혀지며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복원 제작을 시도했으나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2009년 숭실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선 간격이 최소 0.2mm에 불과해, 당시 제작에는 오늘날의 나노기술에 버금가는 정교한 손기술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금속공예의 이와 같은 기술적 성취는 〈백제금동대향로〉,〈성덕대왕신종〉, 〈금동반가사유상〉, 고려의 〈은제 금도금 주전자〉 등으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제조에 이른다. 특히『직지』(1377) 발간 전후 독일과 한국의 금속 활자 시대 개막을 비교하며 고려 금속활자의 특성을 분석한 장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전문적이고도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어, 고대로부터 계승된 금속공예 기술의 정점을 독자들이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한다.
이후 고려에서 꽃피운 불화, 표지화, 자수, 도자 문화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각 분야를 둘러싼 당대의 정치·외교적 흐름과 사회 제도, 기교적 발전사를 함께 짚는 동시에 작품별 세밀한 묘사를 이어간다. 결국 이 뛰어난 예술의 현현(顯現)은 그것을 이루는 세부적이고도 집요한 손의 흔적, 곧 실제로 붓을 들어 선을 긋고 바늘을 잡아 자수를 놓고 도구를 들어 장식을 새긴 이름 없는 제작자들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전제되어야 가능한 귀결이 아니던가. 이어지는 1장의 마지막 절은 19세기 천재 화가로 불린 장승업 한 명에게 온전히 바쳐진다. 사료를 통해 재구성한 장승업의 성장 과정과 그림을 업으로 삼게 된 여정이 충실히 서술된 이 장은, 앞서 언급한 바사리의 르네상스 평전을 연상케 하는 흐름으로 전개된다.
박물관에 전시된 국가유산을 보며 이를 그리거나 만든 이가 누구일지를 궁금해하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하는 ‘DNA의 관점’이 관람에 개입되면 우리는 작가성을 지닌 익명의 개인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보편적 규율과 정해진 표현 방식, 한정된 제작 기법을 고수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DNA를 창작물에 새겨넣었다. 세 번째 천 년에 접어든 인류사 속에서,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한국 문화예술의 역사 속에서, 손으로 구현된 유전자의 흔적은 작가라는 특별한 개인을 통해 지금도 미래의 풍부한 기억을 빚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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