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람(U Ram Choe) Interview

정소영 기자

Special Feature

최우람은 1970년 출생으로 중앙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2006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과 제 1회 포스코스틸아트 대상, 2009년 제20회 김세중청년조각상, 문화관광부가 수여하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MMCA 현대차 시리즈 2022:최우람–작은 방주》를 통해 대중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사진:박홍순 이미지 제공:작가

월간미술대상 수상소감에서 “작업 방식에 의구심이 들 때쯤 응원을 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최우람은 한국에서 기술을 통한 예술을 창작하는 작가들에게 지표 같은 존재다. 그래서 그런 수상소감이 의외였다. 
작품을 완성해서 전시하고 나면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자문과 함께 항상 부족한 부분이 먼저 보인다. 그런 아쉬움이 긍정적으로 보면 새로운 작품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성격상 먼 미래를 계획하기보다는 지금 눈앞에 있는 작업에만 몰두하다 보니 내가 예술계에서 어떻게 평가될지 돌아볼 기회가 적었다. 때로는 나의 전반적인 작업 방향에 대하여 의심할 때도 있는데, 월간미술대상은 미술전문가들의 심사로 주어진 상이니까 그동안의 고민과 노력이 잘못된 방향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다음 작품을 구상할 때 이전 작품과 다르게 하기 위해 갖는 고민은 무엇인가?
일부러 작품에 변화를 주려고 한 적은 없다. 다만 전시를 할 때 되도록 신작을 전시하려고 노력한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소요되는 6개월에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콘셉트를 강화하고 가장 적절한 형태와 설계를 찾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작품이 완성되고 나면 그 기간 동안 초기 콘셉트와 추진력이 소진되어 더 이상 이전 작품의 콘셉트를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나의 작업 방식의 단점과 장점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려운 점인 것 같다.

최우람 작가 하면 기계 생명체 작품이 대표적이다. 기술을 이용한 작품은 지속되지만 형태에 변주가 있었다. 계기는 무엇인가?
기계 생명체 시리즈는 인간의 욕망이 기술을 통해 스스로 독립한 새로운 생명체가 되어가는 이야기였다. 이런 존재들을 통해서 인간의 단면을 은유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목표였다. 인간 욕망의 무한함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사회, 종교, 정치의 다양한 현상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조각에 담기지 않는 부분은 텍스트로 보완하면 평생 탐구할 수 있는 방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내가 받았던 1990년대식 전통적인 조각 교육의 연장에서 작품을 대하면서 이러한 기계 생명체의 외형과 생물학적인 움직임에 큰 비중을 두며 작품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0년간 이 작업을 지속하며 콘셉트에 갇혀가는 느낌을 받고 있을 시기인 2012년도에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2년간 교직을 맡게 되었다. 그곳에서 다른 교수들과 학생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예종의 교육은 제작보다는 작가의 생각에 중점을 두었고, 이는 나의 콘셉트를 더 자유롭게 확장할 수 있는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과거의 시리즈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표현하며, 예술적 확장과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했다. 지금도 그 시절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 변화를 시도한 대표적인 작품이〈파빌리온〉(2012)이다.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집단과 개인의 욕망에 의해 무가치로, 또 무가치가 가치로 변하는 문제를 24K 금박으로 포장된 체임버에 버려진 비닐봉지가 부유할 수 있도록 표현했다.

국현에서의 개인전《작은 방주》 컨셉 회의

〈Urbanus Female Larva(2006)
작업 초기 유기적 생명체 표현을 위해 장식적 디테일이 반영된 작품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국현)에서 개인전《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방주》(이하《작은 방주》)을 마치고 밝힌 소회가 인상적이었다.“이제 하고 싶었던 것을 했으니 다른 시도를 해 봐야겠다”는 말이었는데, 해 보고 싶었던 것 중 해결된 점은 무엇인가?
이 전시를 구상하기 전에 나의 지난 작품들의 맥락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전쟁의 공포가 상존하던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가족과 나의 세계를 구원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내 물리적 방법으로는 진정한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욕망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주제로 이어졌다.

국현 5전시실 전체를 방주가 정박해 있는 격납고로 구성하려고 했다. 방주에 타고 있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두 선장〉 은 서로 다른 욕망의 방향에 대한 은유이고〈제임스 웹〉은 오직 인간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소비되는 자원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작품의 조각적 완성도와 유기적인 형태에 집착하며 끊임없이 수정과 보완을 반복했지만, 국현에서는 담으려는 이야기와 퍼포먼스에 집중했다. 형태를 최소화했고, 재료도 버려진 박스를 많이 사용했다.

장소적인 의미도 컸다. 국현에서 개인전을 한다는 것이 작가로서도 꿈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현대차 후원으로 대형 작품을 시도할 수 있었던 점도 이전에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스케일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제작 측면에서는 기존에는 혼자서 모든 설계를 진행하고, 함께하는 팀과 작품 제작을 진행했다면, 〈원탁〉의 경우엔 기술의 부족한 부분을 로봇 공학자와 협업하고, 방주의 경우엔 음악가와 함께 작품의 동작 연출과 사운드 작업을 했다. 또한 전시 중에도 음악가와 안무가들이 이번 전시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작품을 전시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국현에서의 개인전은 과거보다 간결하고 본질적인 표현 방식에 자신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

국현에서의 개인전《작은 방주》에 출품된 〈작은 방주〉테스트 현장

〈작은 방주〉 날개 설계 도면

국현의 전시 작품 중 〈원탁〉(2022)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머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과 욕심을 담은 작품이었는데, 2024년에도 대한민국에 너무도 적절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사회적 사건이 작품이 된 사례가 있는지, 사례가 작품에는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하다.
〈원탁〉은 정치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던 2014년에 구상한 작품이었다. 나라를 대표하는 리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리더의 의지나 자질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할 수 있는 존재를 내세우는 정치 집단의 문제를 생각하며 구상했다. 당시엔 작품을 구현할 기술과 인프라도 부족해서 스케치로만 존재했던 것을 2022년 국현 전시를 위해 실현한 작품이다.

처음 구상은 3개의 머리 없는 인형으로 되어있었지만, 전시공간을 구성하면서 원탁을 크게 만들고 인형의 숫자가 18개로 늘어났다. 그러면서 리더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변화됐다. 간혹 〈원탁〉이 움직일 때 짚으로 만든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의도치 않은 상황이 생기는데, 이 또한 관객이 스스로 머리를 원탁에 다시 올리기 시작하면서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로 자리잡았다. 처음 이 오류를 알았을 땐 프로그램을 수정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작품이 전시되고 나면 작가로부터 독립해 관객에 의해 온전히 완성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믿음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국현에서의 개인전 《작은 방주》에 출품된〈원탁〉2014년 스케치

작가를 희망하거나 작업은 하지만 전업작가를 하기 어려운 사정에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본인을 지속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세상엔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많지만 다행히 작업에서만큼은 노력의 결실이 따라준 것 같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고 있다. 잘하는 게 많은 사람이 아니여서 다른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도전정신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호기심이 많다. 무언가 만들고 싶은 게 생기거나 새로운 과제가 생기면 도파민이 샘솟는 성격이다. 그리고 작품이 끝나면 그간 힘들었던 일들은 잘 잊어버리는 것도 도움이 된 것 같다.

20년 전 회사를 다니면서 작업을 병행할 때 당시 사장님께서 작품의 부품도 지원해 주시고, 별도의 공간과 시간도 양해해 주셨다. 직원이 작업을 병행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신 거다. 배려해 주신 만큼 맡은 일을 최대한 끝내고 나면 다시 작업을 병행했다. 통장에 100만원이 있으면 그걸 다 재료비에 썼다. 지금보면 무모했지만 지금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2006년 일본 모리미술관에서의 개인전 때도 미술관에서 지원하는 작품 제작비는 적었다. 큰 해외 미술관이기 때문에 정부지원금이 될 줄 알았지만 그마저도 받지 못했다. 돈이 없다고 작품을 대충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아는 모든 사람에게 돈을 빌렸다. 그리고 작품을 팔지 못하면 남은 생은 그 빚을 갚는 데 쓰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30대 중반을 넘기던 때였다. 다행히 그때 메인 작품이 국현에 소장되면서 빚을 갚을 수 있었고, 그 작업을 계기로 일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국현에서의 개인전《작은 방주》에 출품된〈하나〉설계 도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방식을 고수한다. 재료나 방식의 변화에 대한 고민은 없었는가?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에 따라 재료와 방식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고수하고 있다고 보인다면, 그것은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작품이 그런 재료와 방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작품들을 자세히 보면 작품마다 새로운 재료가 등장한다. 그렇게 매 작품마다 필요한 새로운 재료와 움직임을 연구하다 보니 많은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항상 같은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여 직관적이며 속도감 있는 표현을 한 좋은 작품을 만나면 질투나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생각 속에서 여러가지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어느덧 50 중반의 나이다. 작업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방식이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어떤 미래를 만들어낼까?란 질문의 연장선에서 AI라는 주제가 흥미로운 영역이다. 얼마 전만 해도 먼 미래의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한 기술이 이미 많은 사람의 일상을 뒷받침하는 현실이 되었다. AI에 의해 인간만의 특별함이라고 여겼던 부분들이 해체되고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해온 일을 AI가 모두 대신해주면,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지? 인간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과 삶은 무엇이 될지? 이 기술이 지금보다 더 큰 차별과 빈부 격차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기술에 길든 영혼 없는 육체만 남겨지는 것은 아닐지? 혹시 진정한 인간 본질에 다다르는 지름길이 열린 것인지? 우리가 이 기술에 사회적, 정치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은 명백하다.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스핀오프 《너희가 곧 신임을 모르느냐》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둘〉(2024 )을 전시하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모르는 게 많아, 과학자나 공학자들과 협업을 해야 했다. 다행히 이런 분야의 전문가들과 인연이 닿아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여건이 되는 한 기술과 예술, 그리고 철학이 만나는 새로운 접점에서 작품을 통해 흥미로운 질문을 계속하고 싶다. 그 과정 자체가 즐거운 도전으로 느껴진다.

월간미술대상 시상식 때 하지 못한 말을 지면을 빌려 이야기 한다면?
‘예술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날’까지 재미있게 작업하고 싶다.

〈둘〉금속재료, 타이벡, 기계장치, 전자 장치(커스텀 CPU 보드, 모터, LED), 낚싯줄 208×80cm 2024
사진 : 팔사진관 제공 : 대전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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