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윤 Taeyoon CHOI
기술을 도구로 함께 배우고 연대하는 예술
The Interview

시각예술가, 교육자, 기획자. 시카고예술대에서 퍼포먼스를 전공하고, 카이스트에서 문화기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개인전 《기술이 실패할 때, 현실이 드러난다》(2007)를 시작으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I.S.E.A 등 다양한 페스티벌과 가옥 레지던시,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미디어시티서울 비엔날레(2016)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시각예술, 문학, 기술과 엑티비즘의 교차성을 탐구하고 있다. 휘트니미술관, LA카운티미술관, 스미스소니언 아시아 태평양 미국센터, 상하이비엔날레 등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사진: 한민우 이미지 제공: 최태윤
기술을 도구로 함께 배우고 연대하는 예술
심지언 편집장
최태윤은 과학기술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바탕으로 그림, 글, 코딩과 전자 회로 등을 사용하는 미술 작업과 교육 활동을 펼친다. 그는 미디어시티서울 비엔날레의 ‘불확실한 학교’, 농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코딩 교육 ‘사이닝 코더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장애인 예술가, 커뮤니티와 함께 연대하는 사회 참여적 예술과 접근성 담론을 제시해 왔다. 코딩과 예술 융합을 연구하는 ‘시적연산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를 통해 대안 교육을 실험했고, 포에버 갤러리를 운영하며 접근성과 실험성에 대한 실천을 펼쳐내고 있다. 디트로이트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최태윤에게 ‘예술과 기술’, ‘협업’, ‘연대’, ‘배움’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예술 철학과 미술관의 포용성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았다.
접근성이라는 사회적 연대
미술대학에서 퍼포먼스를 전공한 후 공대에 진학했는데, 예술에서 기술로 시선을 확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대학생 때 《백남준의 세계》(2000) 전시 설치 보조 및 통역 아르바이트를 통해 작품의 운송 및 설치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퍼포먼스와 아날로그 필름부터 대형 프로젝션까지 다양한 매체가 보존, 전시되는 방법을 학습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편 백남준의 플럭서스 시기 급진적인 내용(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이 희미해지고 하이테크 글로벌리즘 형태로 변한 작품을 보며, 작가의 궤적이 뉴미디어와 인터넷의 발전 과정과 흡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에서 퍼포먼스와 영상을 공부했는데, 당시 사용하던 카메라, 영상편집,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툴의 한계를 느껴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대에 진학했는데 답답하고 관료적인 기관이었죠. 기술개발은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그 가치가 평가되고 예술과 문화를 기술 시연을 위한 도구로 다루어 실망스러웠습니다. 본격적으로 기술을 다루게 된 것은 2008년 뉴욕 아이빔 아트 앤 테크놀로지센터 레지던시에 참가하며 다른 작가, 오픈소스 개발자, 해커들과 어울리면서였습니다.
2015년 크리스틴 선 킴과의 협업을 시작으로 장애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의 협업은 본인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오래전부터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관심이 있었지만, 예술-교육 활동과 접점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한 레지던시에서 크리스틴 선 킴과 만나 친구가 되었고, 그를 통해 농인문화와 커뮤니티를 소개받았어요. 주목할 점은 크리스틴을 비롯한 농인들은 고유의 언어(크리스틴의 경우에 미국 수어)와 문화가 있기에, 그들(수어를 쓰는 사람들)을 ‘장애인’과는 별개의 정체성으로도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장애인 커뮤니티 내에도 다양한 정체성이 있고, 그 고유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크리스틴은 유쾌하고 마음이 넓은 친구로, 그와 몇 번 퍼포먼스 협업을 하면서 고유의 소통 방법(소리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 이외의 여러 매체와 신체의 활용을 통해서)을 경험했고, 그동안 제가 생각해온 시각·청각·텍스트 소통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다양한 장애예술가와 협업과 협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태윤, 크리스틴 선 킴 〈Incomplete Text〉 2016 휘트니미술관 사진: Filip Wolak
장애예술가가 직접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코딩 교육을 진행해왔는데, 장애인 기술 교육의 방향성과 지향점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요?
기술은 장애인의 소통과 삶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장애인이 기술개발과 선택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술 주권의 보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10년간, 특정 장애 유형에 대한 기술 및 예술 교육의 접근성 제고는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그다음 단계로, 저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 장애인의 삶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특히 제가 몸담고 있는 대학 내 장애 학생들의 교육 환경에 집중하여, 각 장애 유형과 개인의 욕구 및 목표에 따라 커리큘럼과 교수법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교육 시스템 내에서는 이러한 개별화된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종, 계급, 지역적 맥락이 어떻게 장애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함께 탐구하면서, 예술이 단지 표현의 수단을 넘어 장애인의 경제적·사회적 독립과 존엄성을 실현하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자 합니다. 장애예술이 ‘예외적인 재능’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지속 가능한 노동이자 사회적 참여의 방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 연결점을 찾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과 교육을 통해 사회 참여적 예술과 접근성 등에 대한 담론을 유도해 왔는데, ‘예술에서의 기술의 쓸모(역할)’, ‘기술의 윤리’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이공계 학문을 존중합니다. 물리학 법칙이나, 코딩의 기초가 되는 논리는 순수하고 철학적인 면이 있습니다. 한편 기술만능주의와 같은 서사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기술은 한 사회의 가치를 적나라하게 반영하기에 예술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모든 혁신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현시대에 존재하는 많은 기술은 애초부터 불필요했고, 지금이라도 개발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의 미술관에서 물리적인 접근성은 적극적으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물리적 시설의 개선 이후에 우리가 넘어야 할 실질적인 경계는 무엇일까요?
최근 장애인 예술가 사이에서는 ‘접근성’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지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예술계 내부에서는 물리적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사회 전반의 인권, 교통, 복지 환경을 보면 장애인과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인식과 제도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입니다. 한 사례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한 장애인 예술가가 본인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에 가고자 했지만, 장애인 콜택시도, 대중교통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 미술관의 ‘접근성 램프’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장애예술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창의적인’, ‘천재적인’ 사회 약자의 전형처럼 소비되는 방식은 불편하고 기만적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것을 넘어, 도시 전체, 나아가 생활공간 전반의 접근성이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관 바깥의 접근성이 확보된다면, 이제 우리는 ‘특정 장애 유형’에 대한 논의를 넘어, 다양한 공동체와 정체성의 교차성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교차성에 대한 담론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참여적 예술의 가치가 단지 사회 문제 해결의 ‘성과’로만 소비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술가 개인의 정체성, 예컨대 장애인의 당사자성이나 난민의 경험이 예술적 정당성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버리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방식은 결국 예술을 계몽적인 틀 안에 가두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게 됩니다. 제가 ‘당사자성의 굴레’라고 부르는 이 문제는, 본인의 직접적 경험이 아닌 주제에 대해 작업하는 예술을 무조건 ‘비윤리적’이라 판단하는 정체성 검열로 이어집니다. 그 결과,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는 늘 그 정체성만을 다뤄야 할 것처럼 기대·해석되며, 표현의 스펙트럼은 좁아지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사회적 약자가 함께할 수 있는 예술공간을 상상하려면, ‘근대적 미술관’의 형태를 과감히 벗어나야 합니다. 식민지적 수집과 보존의 역사, 서구 중심의 미학적 가치관과 미술사,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온 배타적인 권력 구조를 넘어서야 합니다. 제가 꿈꾸는 미술관, 미술교육, 예술공간은 다음과 같은 실천을 지향합니다. 탈식민지적 관점에서 재구성된 미술사를 바탕으로, 비물질적 퍼포먼스와 개념예술을 적극 포용하고, 커뮤니티가 참여하고 기획하는 프로그램,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비평적 창작과 전시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에서 예술 고유의 의미와 역할인 미적인 추구가 손실되어서는 안 됩니다. 미술관이 사회 지배층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살아있는 실천이 되려면, 미술에 대한 이해와 학습 구조를 새로 짜야 합니다.
액티비즘과 커뮤니티 참여에 관심이 높은데, 예술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본인의 예술관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제가 생각하는 예술관은 사회와 예술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창작과 실천은 하나의 행위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전지구적 폭력의 일부이며, 예술 또한 그 시스템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군수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기업들이 미술관을 운영하거나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하는데, 군수산업의 자본이 예술을 통해 이미지 세탁, 아트워싱(artwashing)되는 현상은 비판해야 합니다. 예술이 단지 중립적인 아름다움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속한 구조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말로 하는 것보다 실천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예술은 그 불가능함 속에서도 실천을 향한 태도와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모순되고, 나약하며,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순은 불편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는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자, 취약한 자, 모순된 자들까지 함께 사회적 책임과 감각을 동반할 때, 창작은 저항이 되고, 예술은 연대가 됩니다.
시적연산학교와 포에버 갤러리의 실천
2013년 뉴욕에 ‘시적연산학교’라는 독특한 이름의 학교를 공동 설립하여 운영했습니다. 학교의 출발 배경과 운영 철학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시적연산학교는 ‘More Poetry, Less Demo’ 즉 기술 데모가 아닌 시를 쓰자! 라는 모토로 시작했습니다. 네 명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해, 7년 정도 학교의 운영과 커리큘럼 개발에 참여했고, 하드웨어, 비평이론 수업도 진행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 엔지니어, 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후배 디렉터들에 의해 운영되며, 방향도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중요하게 생각했던 손으로 직접 만지는 기술과 예술 교육, 비평적 탐구와 스토리텔링 등의 핵심적 철학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적연산학교는 교수진과 학생의 협업을 바탕으로 한 교육모델을 추구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다루는 내용과 범위, 각 구성원의 역할과 서로 주고받는 영향 등, 다른 교육 기관과의 차이를 만드는 지점이 궁금합니다.
제가 운영했던 시기에 한해서 답변을 드리면, 코딩, 전자회로, 기술철학/미디어 이론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10주간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심화 과정과 더 짧은 워크숍 등 여러 가지 형태를 실험했고, 예술가를 꿈꾸는 엔지니어, 엔지니어를 동경하는 디자이너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학생 혹은 교수로 참여했습니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특수성과 맨해튼에 있는 공간을 활용해 학생 전시와 퍼포먼스 등을 진행한 것도 중요했습니다. 일반 대학원이나 교육 기관과는 무척 다른 형태와 목적을 갖고 운영되었기에 그곳을 찾는 구성원의 성향도 무척 달랐습니다. 어찌 보면 미술대학과 공대, 양쪽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아 모였던 것 같아요.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와 같은 실험적인 학제 간 교류가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시적연산학교의 경험이 현재 본인의 작업과 포에버 갤러리 운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뉴욕에서 학교를 운영할 때부터 다음 단계는 갤러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제가 흥미롭게 느낀 것 중 하나가 학생들과 교수들이 참여하는 연말 전시였어요. 처음으로 작품을 완성하고 전시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무척 소중하고 의미있는 경험입니다. 포에버 갤러리를 구상 하면서도 작가뿐 아니라 디자이너, 기획자에게도 첫 전시의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처음이기에 시행착오가 따르기도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면 작은 실수로도 위축될 수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일하면 같은 실수도 성장의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결로, 포에버 갤러리도 ‘시작’의 마음으로 큰 자본이나 비즈니스 플랜도 없이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최태윤과 협업자들 〈분산된 돌봄의 웹〉2019 휘트니미술관 사진: Filip Wolak
종로구 행촌동에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포에버 갤러리’를 운영하며 접근성과 실험성을 함께 실천하고 있습니다. 포에버 갤러리는 어떤 공간인가요?
2022년 잠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신생공간과 교류하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김환 작가가 서울에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갤러리가 거의 없다고 이야기해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에 드는 1층 공간을 발견해 갤러리를 시작하게 되었죠. 포에버(forever)는 관용, 환대, 공동 번영을 핵심 가치로 삼고 포용적인 기획을 통해 전시와 레지던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로 구현됩니다. 미술계의 승자 독식 구조를 극복하고, 대안으로서 상호 지속가능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기성 작가와 신진 작가, 순수예술과 실험예술, 디자인과 공예, 공연예술과 교육,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이를 구분하지 않고 이 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합니다.
“포에버 갤러리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두’를 초대하지 않는다. ‘모두’가 아닌 여러 정체성, 사회 이슈의 교차성을 바라보고자 한다”고 하셨는데, 갤러리의 방향성을 대상으로서의 ‘모두’가 아닌 서로 다른 것들의 ‘교차성’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모두’라는 단어와 개념 뒤에는 비현실적인 포용성이 있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전체주의적 획일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공간도 모두를 위할 수 없고, 모두를 위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대신에 교차성을 주목하는 이유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이고, 현대미술을 통한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이 지속될 수 있도록 지금, 여기, 우리의 관계에 집중합니다.
아티스트 최태윤
작업과 활동을 오가는 ‘기술’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작가로서의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발터 벤야민은 1920년대 영화 산업의 발전을 지켜보며,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이 파시즘의 도구로 악용될 수도 있고, 반대로 대중의 목소리를 널리 퍼뜨리는 민주적인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이 통찰이 오늘날의 기술 환경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로서, 특히 시각예술의 맥락에서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기술을 협업과 연대, 그리고 배움의 강력한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개인과 공동체의 자율성을 침범할 수 있는 감시와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의식합니다. 기술이 주는 가능성과 위협은 언제나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새로운 기술과 오래된 기술 사이에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고전적인 공예나 전통예술 역시 인공지능 못지않게 복잡하고 어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분산된 돌봄의 웹〉 2019 휘트니미술관 사진: 한민우
최근 작가로서 몰두하고 있는 작업 주제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내년 매스모카(Mass MoCA)에서 열리는 전시를 준비 중입니다. 대형 벽화와 비디오 설치 작업을 통해 ‘연산할 수 있음’과 ‘연산할 수 없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질 예정입니다. 이 작업은 코딩과 기술에 대한 저의 양가적인 감정과 지난 경험을 집약해보는 시도입니다. 이 전시가 저에게 의미있는 이유는, 기술을 활용한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5년부터 20년을 되돌아보며, 하나의 챕터를 마무리하고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쉼표와 같기 때문입니다. ‘연산할 수 없음’은 오랫동안 제 멘토이자 협업자로 함께해온 미디어 철학자 알렉산더 갤러웨이(Alexander R. Galloway)의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개념이 기술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저항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셜 네트워크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인식 깊숙이 침투한 지금, 우리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저항은 어쩌면 연산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연산되지 않음’은 감시와 통제를 회피하거나 비가시화되는 전략일 수도 있고, 혹은 투명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인터페이스의 논리에 저항하는 ‘불투명함’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저는 제 안의 기술에 대한 욕망, 기술만능주의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그 사이의 모순과 긴장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새로운 언어와 시각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교육자, 그리고 포에버 갤러리 디렉터로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작년부터 디트로이트의 웨인주립대 미술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트럼프 정부가 억압하는 다양성, 포용성, 비평이론의 직접적인 타깃이 되어 학교 안팎이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이 대학의 학생들에게 예술과 코딩을 가르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포용성, 접근성의 가장 현실적인 발현이라고 생각하고, 상위 1%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99%를 위한 미래의 미술과 기술 교육의 커리큘럼을 실험해보고 있습니다. 매해 집중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새로운 태양들〉은 예술과 사회의 접점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되어 공개 모집을 통해 선발한 작가, 디자이너, 기획자들과 함께 합니다. 박가희 큐레이터와 협력하여 향후 3년간 진행할 예정으로 올해는 ‘이동’을 다루고, 10명의 작가와 세미나, 교류, 전시 등의 형태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예술실천과 연구의 생태계를 만들고자 합니다. 저는 작업할 때 긴밀하게 교류하는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실험적인 학교의 형태를 띤 적도 있고, 대안공간의 형태를 띤 적도 있습니다. 이제는 서로를 응원해줄 수 있는 네트워크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학계나 상업예술계에서는 하기 어려운 작업과 교류를 함께 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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