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읽는 동시대 미술의 트렌드Ⅲ
이설희(2024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공동 예술감독)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
정현(인하대 교수)
조상인(백상미술정책연구소 소장)
최상호(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홍경한(미술비평)
Special Feature
이설희(2024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공동 예술감독)
#공간에 간섭과 개입: 설치 재해석
매체는 예술가의 정체를 작품으로써 처음 알리는 상징적 물체이자 작가와 관객을 잇는 사회적 매개체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예술 언어와 내용에 맞는 적합한 몸체를 찾고자 여러 유형의 미디엄으로 시각적 실험을 한다. 특히, 주제/표현의 기법 측면에서 전통적 매체인 회화/조각의 공통된 질문 “재현과 형상을 위한 탐구”는 여타의 선로를 빈번히 벗어나 예술의 독자적 스타일과 의미를 계속 양산하고 있다. 과거의 시각적 유산을 반추해 새로운 양식적 탐사를 하는 이 같은 실천은 시대를 뛰어넘어 모든 작가에게 현재진행형인 공통 과제인 셈이다. 최근 몇 년간 화가/조각가로서 정체를 드러낸 젊은 작가들의 약진이 돋보였다면, 이제 재현의 프레임과 형태 너머 건축적 공간까지 간섭하는 실천들이 방향을 잡아갈 것으로 보인다. 전시공간의 물리적 속성이 설치로 대변될 수 있으며, 이 설치 요소인 작품은 이미 공간에 개입해 한 몸을 만든 현상이 관찰된다. 현장 특유의 환경 속에서 구상되는 이 작업은 전시장을 아티스트의 자아와 예술세계가 응집된 소우주와도 같은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이는 장소와 사람 사이를 연결해 우연에 의존한 만남의 경험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김동섭: 물이 고인 땅》 팩션 전시 전경 2024
#사물 동맹: 하이브리드의 창조적 변주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활주하는 디지털 환경은 4차 산업혁명이 낳은 최신 기술을 가상 세계로 옮겨 놓는다. 포스트디지털 세대의 작가들은 현실과 가상의 시공을 영유해 물질성을 사유하고, 가상의 인터페이스를 조형 언어로 탐구하며,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여러 양상 가운데 비인간의 주체성을 근저로 파생한 융복합 예술의 양태를 자주 목도한다. 주지하다시피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인류에게 비인간과의 대칭적 관계를 요청했다. 사물, 기계, 동식물과 같은 비인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내다보면 비인간도 이제 능동적 행위자로 인정되므로, 서로 동맹을 맺는 것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는 주체와 객체, 자연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근대의 이분법적 사유를 지양하고 모든 존재가 객체로서 동등하게 행위자가 되는 비근대성의 사유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많은 전시에 등장하는 하이브리드 인류 혹은 신화의 모습은 인간과 비인간이 공생하는 연결망에서 보일 법한 광경 같다. 이는 주로 낯설지만 익숙한 기괴함 혹은 기시감의 분위기를 특징으로 한다. 2022년 세실리아 알레마니(Cecillia Alemani) 기획의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에서 본 작업들과 고대 중국 신화집 『산해경(山海經)』에 소개된 온갖 혼성적 형태가 오늘의 한국 전시에서 지속적으로 출몰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강승: 올해의 작가상 202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3
#역사화하기: 아카이브와 서사, 그리고 인류학
어제는 오늘의 역사이고, 오늘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 이는 공통적이고 예외 없는 매일의 현상이다. ‘살아감’이 ‘역사’인 것이다. 역사는 인류 행위의 다면적 관련에 의해 형성/전개되는 것일텐데, 작가들은 복합적으로 짜인 인간사를 전시에서 넓은 문화적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존재들을 불러 예술의 언어로 실증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시대와 국경, 인종과 젠더를 넘어 자료와 사물들을 발굴하고, 이들을 연결하여 새롭게 역사를 써 내려가는 행위인 것이다. 이 실천의 첫 작업인 수집, 즉 아카이빙은 노동과 시간을 들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밀도의 결과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를 조직/맥락/조형화하는 작가들의 내공과 감각을 엿보게 하는 플랫폼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작은 인류학 박물관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선사하며, 아카이브가 미술작품으로 편입된 경로를 추적해 우리는 역사 배후에 자리한 공동체의 서사를 읽는다. 어느 시기에나 ‘역사’와 ‘서사’를 화두로 한 전시는 있었지만 아카이브가 작품화되는 형식/미학적 고민이 이어질 것이다. 오늘날은 과거와 상이하게 세계와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태도,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이 정체/인권의 측면에서 미시적, 다원화하고 있다. 작품 스스로가 그 시대의 인간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보고서라 할 수 있듯이 이는 오늘날 작가들의 렌즈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했는지 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트렌트라 하겠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
#지속가능성 ft. 생태, 지역, 협업
코로나19의 팬데믹 종식 선언 후 2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일상은 빠르게 회복돼 이전 상황으로 복귀한 듯 보인다. 팬데믹 이전만큼이나 활발해진 대형 전시와 비엔날레 그리고 최근 두드러진 현상인 아트페어의 급성장으로 미술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콘텐츠로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미술계의 가장 큰 변화는 팬데믹을 계기로 대두된 기후변화 문제와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연관 주제가 큐레토리얼 어젠다로 본격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를 인류가 초래한 재앙으로 바라보고, 소멸의 위기에 놓인 지구와 행성인의 미래를 위한 사고의 전환과 대안적 실천은 비단 전시 기획뿐 아니라 행정, 펀딩, 협업, 홍보, 기술 등 전시 제작의 전 과정에서 이뤄지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는 생태·지역·공생에 관한 주제로 확장되며 이를 포괄하는 미래 비전과 연결된 개념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과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인간과 비인간, 정상과 비정상, 주류와 비주류,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체하고 다양한 예술 주체가 공생하는 미술 생태계를 향한 ‘지속가능한 미래 비전’으로 잡아나갈 것이다.
《정영선: 이 땅에 숨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4
나현 〈빅풋을 찾아서〉 가변 크기 2021
《무등: 고요한 긴장》 광주비엔날레 광주파빌리온 전시 전경 2024
지난해 생태적 전환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전시로 “미생물부터 우주까지 생동하는 모든 것을 재료 삼는 종합과학예술”로서의 조경 작업을 재조명한 국립현대미술관의《정영선: 이 땅에 숨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와 “미래의 공동체가 기억하게 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새롭게 도래할 생태계의 가능성에 대해 상상”을 담은 아트선재센터의 《언두 플래닛》 등이 있었다. 또한, 해외 노동자 유입으로 인한 인구 변화의 현실을 직시하고 문화혼성의 개념을 다각도로 담은 전북도립미술관의《몽상블라주》와 ‘무등’이라는 고유 지명을 ‘차별이 사라진 상태’이자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사고의 출발점으로 상정하여 광주 지역의 다양한 미술 운동을 조명한 《무등: 고요한 긴장》은 글로벌화와 국가주의의 충돌과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 ‘공존’의 가치와 ‘공생’의 방법론을 지역의 과거와 현재에서 찾은 사례에 해당한다. 한편, 필자가 몸담고 있는 아르코미술관은 2021년 이후 ‘지속가능한 미술관’이라는 목표하에 생태, 지역, 협업을 기획 전시 주제로 개발할 뿐 아니라 미술관 운영 실천의 중심 방법론으로 상정하여 필환경 실천 매뉴얼 및 접근성지도 제작, 다양한 예술 주체와의 공동 프로젝트 개발 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2024년 서울·부산·광주의 지역문화재단과 손잡고 장애인 창작센터 출신 작가들과 비장애인 작가들이 함께 만든《여기 닿은 노래》는 다양한 신체 조건을 가진 창작자와 관람자가 차별 없이 전시를 함께 만들고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한 전시로서, 단순히 접근성 제고의 의도뿐 아니라 장애 담론이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급진적 큐레토리얼 어젠다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지난해 12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LA에서 개최된 CIMAM 연례 콘퍼런스의 주제 또한 ‘지속가능한 미래’였다. 이는 팬데믹 이후 많은 변화와 위기에 직면한 전 세계 미술관들이 기존의 관습과 위계를 벗어나 새로운 제도적 모델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에서 출발했다. 기후변화를 필두로 사회적 불평등, 경제적 불안정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 이전의 대형 미술관이 추구했던 경쟁과 양적 성장을 지양하고 전시 기획과 컬렉션 구축, 건축과 환경, 커뮤니티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 등 다각도의 관점에서 생태적 전환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대안적 모델이 제시되고 논의되었다. 이처럼 지역 미술관의 전시 기획에서부터 글로벌 리더십의 토론장까지 ‘지속가능성’에 대한 다층적·다각적 연구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콘텐츠가 아니라, ‘행성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전제로 미술계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윤리적 사회적 책임이자 의무이고 제도적 변화의 시작이며 불확실성의 시대에 예술적 사유와 통찰이 한 줄기 빛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의 단초이기도 하다.
정현(인하대 교수)
#탈영토화된 전시
오늘날 미술은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된다. 굵직한 사회적인 사건은 물론이고 매우 희귀하고 소수적인 흔적을 길어 여기에 살을 붙여 보이지 않던 누군가의 인생, 들리지 않던 어떤 이의 회고, 심지어 비인간 존재의 생과 죽음을 애써 더듬어볼 정도이니 말이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 세계미술의 지형도는 이전과는 다른 큰 폭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작가 중심이던 기성의 미술계는 철학가, 활동가, 컬렉터를 현장을 견인하는 주요한 요소로 포괄하고 있으며 콜렉티브, 큐레이터는 기능적 역할에서 탈중심적인 자기-조직화를 실천하는 행위자로 진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양상에는 다원화된 정체성, 인류, 국가가 아닌 지구적 관점의 시각을 비롯하여 극단적인 양극화, 심화된 세계화, 신냉전의 부상, 지구세와 민주주의의 퇴행과 같은 불안정한 세계 질서가 자리 잡고 있다. 나아가 이와 같은 작금의 양태는 국가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지점일 것이다. 초국가주의에 대한 기대는 21세기를 기점으로 노마디즘 열풍을 일으켰다. 그렇게 2000년대 초는 국가를 넘어서 인류가 서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담은 전시가 기획되곤 했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시각예술은 미술의 굴레에서 벗어나 점차 다원화되어 의식주, 언어, 신체, 젠더, 역사를 가로질러 새로운 정체성의 맹아를 질문하는 변곡점을 지나는 중이다.
요한한 〈공명동작-대화편〉 5채널 모니터 설치 15분 《젊은모색 202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시 전경 2021
듀오 작가 그레이코드, 지인은 제주도 서귀포 바다에서 추적한 다양한 층위의
진동수, 주기, 변화량 등을 활용하여 무작위의 자연을 소리로 모델링하고, 송은을
공명하고 연주하는 공간 삼아 자연을 실체적 대상으로 드러냈다. 송은에서의
개인전 《∆w》(2023)의 출품작 〈vestiges〉(2022)
#지속가능성을 향한 소수적 실천 (생태/전통/장애인예술)
한국의 현대미술은 이른바 세계화라는 화두를 좇아 빠르게 변신해 왔다. 정치, 경제, 기술, 자본, 인권 등에 관한 의제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한국사회는 압축적인 성장만큼 이와 비례하여 그간 가려져 있던 다양한 사회현상의 징후가 연속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탈북자, 청년세대, 비물질, 가상공간, 포스트휴먼, 동물권, 기후 위기, 국가폭력, 젠더 등 수많은 쟁점들이 빠르게 다뤄지다 소리 없이 사라지기를 무한반복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작품과 전시를 알고리듬에 의해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로 전환시키면서 미술의 정체성은 소비주의와 경제 논리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의하여 소모된다.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미술제도의 방향성에 의해 생성된 창작 생태계로 인해 제도와 창작 사이의 풀어내기 어려운 먹이사슬이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질문하게 된다. 2022년 1회 프리즈 서울 이후 서울의 미술지형도는 적극적으로 미술시장의 붐을 일으켰고,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대중의 큰 관심과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다소 숨이 죽은 비엔날레 대신 새로운 역동을 보여준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성한 소문 사이에서 한국미술이 고민해야 할 지점은 무엇이며 부풀어진 미술시장의 붐을 통해 얻는 득과 실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도 필요한 시기일 것이다. 2025년의 전시 경향을 예측해 본다면, 여전히 기후 위기와 관련된 전시를 빼놓을 수 없겠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계몽주의적 방식에서 벗어나 작가가 어떻게 생태와 함께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획의 전시가 눈에 띌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생태주의적 접근(그레이코드, 지인, 소보람), 또한 한국성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요한한, 오제성). 한국미술의 뿌리와 컬렉션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은 다수의 미술 향유를 위한 제도적 관점이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미술이 하나의 고원이 되어 예술을 통해 차이를 넘어 서로가 연결되는 공유지로 작동되기를 기대해본다. 장애인미술에 관한 관심과 지원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현 정권에서 다소 급작스레 규모를 키워 성과주의처럼 보이는 전시도 적지 않게 제작된 측면이 있다. 장애인미술의 규모와 지원이 커진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일회적 행사로서의 전시가 아닌 장애인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러므로 장애인미술 전시야말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관계의 미학’이 이뤄지는 공론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억지스러운 기록사진 대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서로에게 관심 혹은 무언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희미한 계기가 만들어지는 기회와 시간과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조상인(백상미술정책연구소 소장)
#줄 잇는 거장 전시
‘세계 속의 한국 OO’을 외쳤던가. 올해는 ‘한국 속의 세계 미술’을 제대로 경험할 것 같다. 루이즈 부르주아, 쿠사마 야요이, 론 뮤익, 마크 브래드포드, 피에르 위그, 장 미셸 바스키아까지. 이름의 중량감부터 작품값의 막대함까지 관람 포만감이 상당할 빅샷 전시가 연중 이어진다. 예정대로라면 10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퐁피두센터 서울 분관이 들어선다. 아직 개관전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층 풍성한 미술을 접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화제의 전시로 손꼽힌 피노 컬렉션 푼타 델라 도가나의 피에르 위그 개인전을 2월 리움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생태학부터 AI까지 아우르며 동시대 최고 영향력을 자랑하는 위그의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이며, 따끈한 최신작을 만난다는 점에서 한국 미술계의 위상이 한층 상승했음을 체감할 수 있다. 8월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루이즈 부르주아 회고전이나 하반기 세화미술관이 선보일 쿠사마 야요이 개인전 모두 다채로운 대표작들을 어렵사리 모은다는 점에서 향후 수년간 다시 보기 어려울 전시들로 예상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이 4~7월 서울관 개인전을 계획한 작가 론 뮤익은 자잘한 주름부터 땀구멍에 박힌 솜털까지 묘사하는 극사실주의 조각으로 화제를 몰고 다닌다. 한동안 국현 서울이 ‘SNS 인증 성지’가 될 듯한데, 이는 바스키아의 전시를 준비 중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도 마찬가지.
‘별들의 전쟁’에 한국의 거장이 빠질 리 없다. 호암미술관이 4월 개막하는 《겸재 정선》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예술가 겸재의 전모를 보여줄 전무후무한 전시가 될 게 분명하다. 국내 사립미술관의 양대산맥이자 겸재의 대표작을 가장 많이 소장한 삼성문화재단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손을 맞잡았기 때문이다. 한편, 뉴욕 메트로폴리탄 외벽 프로젝트로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불은 9월 리움미술관 개인전으로 돌아온다. 국현은 이대원, 김창열, 신상호를, 아트선재센터는 하종현 개인전을 마련했다.
여기에다 3년 만에 현대미술 소장품전을 재개한 리움미술관이 오귀스트 로댕, 알베르토 자코메티부터 로버트 라우셴버그, 게르하르트 리히터, 솔 르윗, 신디 셔먼을 비롯해 백남준, 김종영, 이우환, 김수자, 양혜규 등의 대표작을 펼쳐 보인다. 국현도 소장품 상설전시를 강화해 미술 애호가들은 미술관 컬렉션을 이루는 수준 높은 거장들의 작품을 연중 만날 수 있게 된다.
장 미셸 바스키아 〈갈색 달걀〉(1960~1988)
제공: 크리스티
#심판의 해
8월에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9월에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개막한다. 비슷한 시기에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도 열린다. 20주년을 맞는 제10회 대구사진비엔날레, 3회째인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도 예정돼 있다. 지난해 열린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한국의 대표선수급 비엔날레라면, 홀수 해에 열리는 올 비엔날레들은 미디어아트·디자인·공예·사진·수묵 등 장르 특화를 강조해 틈새를 공략했다. 다양성 추구는 바람직하겠으나, 수억 원대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비엔날레가 전국적으로 20개 이상인 현황은 문제다. 비엔날레의 발생지인 이탈리아도 이렇게 많지는 않은데,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축제의 대안처럼 ‘비엔날레’를 출범시키는 바람에 수준 낮은 행사가 예술의 탈을 쓰고 범람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비엔날레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요구하는 전문가들의 지적뿐만 아니라, 이제는 미술 향유 기회의 확대로 경험이 늘고 안목이 높아진 관객들의 지적 또한 무시할 수 없다. SNS를 통한 소통이 더욱 활발해진 올해가 어쩌면 냉철한 비엔날레 평가의 원년이 되지 않을까?
많은 걸로 치자면 아트페어는 포화를 넘어선 과포화 상태다. 한국 미술시장이 연간 82개(2023년 기준)나 되는 아트페어를 개최하기는 좀 버겁다. 더욱이 글로벌 경기 불황이 지속되고, 환율상승으로 해외미술품 거래도 어려워질 올해는 난립했던 아트페어의 자연도태가 예상된다. 차별화된 정체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아트페어가 살아남기 힘들 듯 하다. 괴롭더라도 곪은 상처 같은 군더더기 행사들을 덜어내고 나면, 훨씬 더 건강한 한국미술계로 ‘재생’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시오타 치하루 〈State of Being
( Book)〉 메탈 프레임, 책, 실
120×80×45cm 2023
#여전한 여풍
전 세계적으로 수년째 이어진 미술계 여풍(女風)이 올해도 여전할 전망이다. 가장 유명하고 동시에 가장 비싼 작품가로 알려진 루이즈 부르주아, 쿠사마 야요이의 개인전도 있거니와 이불, 시오타 치하루(가나아트센터) 등 주목받는 인기 작가들의 최신작도 만날 수 있다. 새로운 여성작가군의 발굴 및 재발견 또한 기대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야심만만하게 개인전을 준비한 강명희는 적잖은 사람들에게 낯선 이름일지 모른다. 1970년대 초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했기에 국내에 덜 알려져 있다. 어쩌면 ‘회화계의 김윤신’으로, 마치 40년간 아르헨티나에서 작업하다 뒤늦게 빛을 본 ‘80대의 신데렐라’ 김윤신처럼 강명희의 원숙한 참신함이 관심을 모을 듯하다. 이와 함께 최재은(국제갤러리), 김민정(갤러리현대)의 전시가 예정돼 있다. 섬세한 긴장감의 한국화가 이진주(아라리오), 역사적 유물과 현대의 조우를 모색하는 갈라 포라스-김, ‘여성적 그로테스크’의 장파(이상 국제갤러리) 개인전도 열린다. 아시아의 여성 예술가를 찾으려는 글로벌 수요가 계속되는 까닭에 여성작가 그룹전 및 기획전도 상당수 준비 중이다.
최상호(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피로한 미술
2024년 12월 초, 국가의 문화와 체육과 관광을 관장하는 이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거의) 아무도 몰랐다. 사실 ( 거의)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이 점은 중요하다. 중요한 순간에 예술은 종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상황) 해결을 위해 관료들이 실질적인 대응에 몰두하는 동안, 예술은 자신의 중요성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고 공백 상태로 남겨지곤 했다. 이러한 공백 속에서 예술은 제 목소리를 잃었고 언제나 그랬듯 문제 제기의 장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지만, 해결의 과정에서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더욱 두드러졌다. 예술은 시대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탁월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다른 영역에 전가해 왔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예술의 본질적 한계를 부각한다. 2025년에도 동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이 전시장 벽을 빼곡히 채울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선언, 더 화려한 형식, 더 정교한 표현을 보겠지만, 그것은 우리를 피로하게 만들 것이다. 피로는 예술을 대하는 새로운 정서로 굳어진다. 피로는 반복된 문제 제기와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남긴 감각이다. 예술을 통해 무언가가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의 소멸, 그것이 피로의 본질이다. 그 피로의 끝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질문조차 하지 않을 예술의 침묵을 마주할 것이다. 침묵은 가장 무거운 형태의 피로이기에.
#무뎌진 비평
함초롬바탕, 글자 크기 10pt, 줄 간격 160%라는 글의 익숙한 기본 설정과 프로그램의 왼쪽 아래에 표시되는 문서 통계의 원고지(200자 기준)는 비평가의 비평이 고도의 창작 활동이 아닌 제도라는 구조에 의해 형식과 내용이 규격화된 통제의 대상으로 나타남을 은유한다. 이러한 통제는 비평의 정량적 평가를 가능케 하고 계약서상 갑의 예산 지출 근거를 명확하게 하지만 비평의 본질을 단순한 규격과 분량으로 환원한다.
정해진 예산에서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지는 갑이 내릴 평가의 두 번째 조건이자 을의 첫 번째 능력이다. 제도의 요구는 글의 내용보다는 계약 조건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우선한다. 글의 문서 통계가 제공하는 수치는 을에게도 안전하다. 그것은 그의 작업이 계약 조건에 부합함을 보증하는 객관적 지표다. 을이 꾹꾹 눌러쓴 문장의 무게는 몇 킬로바이트의 데이터로 대체된다. 하지만 이 몇 킬로바이트의 데이터가 예술의 질문을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잠시 비평에 기대를 걸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비평은 그 기대를 감당하기엔 점점 더 제도의 틀 안에서 소모되어 간다. 오늘날의 비평은 읽기 쉬운 보고서처럼 다듬어져 있다. 난해하고 날 선 비평이 그리운 이유는 그것이 피로를 해소하고 침묵을 깨트리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뭉툭하게 잘 다듬어진 비평에 익숙해진 우리가 예전 비평의 날카로움을 견딜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한글 프로그램의 문서 정보 창
#암울한 풍경
피로는 반복된 질문과 정체된 답변 속에서, 침묵은 그 피로가 극에 달했을 때 찾아오는 가장 무거운 형태의 정서다. 질문하지 않는 예술, 응답하지 않는 비평, 그리고 무관심으로 가득 찬 관객. 이것이 내가 예측하는 2025년의 암울한 풍경이다. 이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준비하는 잠시의 멈춤일지, 아니면 영원한 침묵으로 가는 길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 우리는 너무, 너무 피곤하다.
#회화와 조각
피로의 시대에, 2025년의 전시는 매력적인 회화와 거대한 조각들로 채워질 것 같다. 감상하기 쉽고, 즉각적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품이 주목받을 것이다. 먼 나라의 이야기, 디아스포라의 복잡한 서사는 피곤한 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2025년 예술은 가장 소박한 방식으로 다시금 공명할 기회를 찾을지도 모른다. 감각을 일깨우고 피로를 잠시 잊게 하는 직관적인 이미지는 분명 위안이 될 것이다. 그 잠깐의 위안이 지나간 자리에는, 묻혀 있던 질문들과 외면했던 문제들이 다시금 고개를 들겠지만, 그때의 우리는 활력을 되찾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홍경한(미술비평)
#옴니보어
‘옴니보어(Omnivore)’는 라틴어 ‘모든 것(Omni)’과 ‘먹다(Vorare)’를 합친 단어로, ‘모든 것을 먹는 (잡식성)동물’을 뜻한다. 그러나 동시대에 이르러 옴니보어의 개념은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 다양성(Diversity)과 연결된다. 미술의 경우 장르 간 학제 간 경계가 와해된 동시대미술 흐름을 반영함과 동시에 서로 다른 매체, 주제, 관점, 문화적 배경을 폭넓게 수용함으로써 예술의 정의를 새롭게 확장하는 포용적 상태를 가리킨다.
올해의 전시 키워드는 옴니보어로 귀결된다. 국내 주요 미술관을 비롯한 많은 전시에서 융·복합 콘텐츠의 창·제작을 중심으로 기술과 예술의 창조적 가능성에 주목한 채 예술의 미래를 점쳐보거나 다양성을 축으로 개인과 공동체를 살피고 있으며, 국제교류를 통한 미시적·사회적·문화적 현상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문화적 다양성을 포박하는 국제전은 여럿 된다. 일상의 모습이나 특별한 순간을 포착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작가 론 뮤익의 개인전(4월, 국립현대미술관)을 포함해, 유럽 중심의 ‘주권적 역사’에 대한 의문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사화해온 작가 와엘 샤키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집단적 허위 현상에 저항해온 예술가 아크람 자타리(Akram Zaatari)가 함께하는 《아더랜드 Ⅱ: 와엘 샤키, 아크람 자타리》 전(5월,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의 리움미술관 개인전, 호암미술관의 루이즈 부르주아 회고전, 인간과 기술의 관계와 유토피아적 모더니티에 대해 연구해온 작가 이불의 전시도 다양성을 텃밭으로 국가나 지역의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비교하면서 인류 공통의 문제에 접근한다.
이 중 피에르 위그전은 자연의 정화력과 치유력, 자연성을 통해 회복, 공존하는 생태계에서부터 기술과학에 이르는 다학제적 관점으로 현대사회 이슈를 폭넓게 다뤄 온 작가의 국내 최초 미술관 개인전이다. 피노 컬렉션의 베니스 소재 미술관 푼타 델라 도가나와 리움미술관이 공동으로 제작 지원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이 밖에도 아트선재센터의 아르헨티나 조각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Adrian Villar Rohas) 개인전이나, 장애, 비장애 등 신체 다양성을 다룬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제기획전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도 준비가 한창이다. 인류세 및 세계의 종말을 거대한 모뉴먼트로 묘사해온 작품과 서로 다른 몸이 가진 다양한 조건과 관계에 주목한 작업들을 만날 수 있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 〈엄마〉(1999)
《알고 보면 반할 세계》 경기도미술관 전시 전경 2024
#고유성
다양성과 짝을 이루는 건 고유성이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고유성이 없다면 다양성은 단지 이것저것 늘어놓은 ‘모둠’의 연장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지난해처럼 올해도 한국미술만의 고유성을 엿보게 하는 전시들이 마련되어 있다.
눈에 띄는 건 역대 최초로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이 손잡고 펼치는 호암미술관 특별기획전 《겸재 정선》(4월)이다. 국보 제217호인 〈금강전도〉가 지난 2015년 이후 10년 만에 공개된다. 이외에도 경기도미술관의 민화와 K팝아트 특별전 《알고 보면 반할 세계》(2024.11.15~2.23),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민화대전》,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전기미술》전 등은 근대미술을 통해 한국미술의 고유성을 살피는 중량급 전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은 전통미술의 변화와 서양화의 도입, 해방과 전후 시기의 미술을 살펴볼 수 있는 《한국미술 1900~1960》과, 1960년대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여러 양상으로 분화했던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피는 《한국미술 1960~1990》 등 세 개의 상설전을 연이어 진행한다. 덕수궁관에서 펼쳐지는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2: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전》 역시 매혹적인 작품을 남긴 한국 근대화가들을 재조명하는 자리다.
향후 펼쳐질 주요 기관별 전시들을 보면 전통적 예술 형식에 더해 매체, 국가를 넘나드는 작품전이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다. 예술가 개인의 사적 경험과 역사적 의미를 결합해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전시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당대성은 약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윤석열의 12·3 내란으로 촉발된 혼란스러운 현 시국에 대한 발언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물론 광복 80주년을 맞아 고향을 주제로 한 작품을 모은 국립현대미술관의 《향수, 고향을 그리다》 전 등이 시의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의무전과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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