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가 돌아보는 2024년
미술계 이슈와 장면들
심지언 편집장, 강재영, 노재민, 정소영, 황수진 기자
Special Feature
왼쪽부터 노재민, 강재영, 심지언, 황수진, 정소영 사진 : 박홍순
2024 키워드: 여성, 비인간 객체, 신유물론, 인공지능
심지언 월간미술 편집부가 한 해 미술계의 이슈들과 취재 후기, 지면을 통해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2024년 미술계를 결산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올해 비엔날레, 아트위크 등 이벤트가 많아 편집부도 취재로 분주했다. 화제의 키워드부터 살펴보자. 무엇보다 다방면에서 여성 미술가들의 활약이 돋보인 한 해였다.
황수진 올해 주목할 만한 전시 사례로 송은에서 열린 조영주 개인전과 호암미술관에서 불교미술과 여성을 주제로 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의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한국 근현대 자수 :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은 특히 조경과 자수를 통해 여성을 조망하는 시각이 인상 깊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전과 김인순 컬렉션 전시가 개최되었고, 현재 진행 중인 전시로는 국현의 《접속하는 몸 :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리움미술관에서 아니카 이의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 전시가 이에 해당한다. 출판 분야에서는 김홍희 선생과 윤난지 선생의 책 출간이 주목을 받았다. 한국미술의 국제화와 관련해 양혜규, 이미래, 정금형, 정희민 작가가 현재 영국 런던에서 전시 중이며, 이 소식은 월간미술 11월호 뉴스에서도 다뤘다.
심지언 묶어서 본다면 올해 여성 미술사 정리가 이루어진 해였다. 국현과 호암의 전시, 그리고 연구 출판으로 페미니즘 미술가를 정리한 두 권의 책이 출판되었고, 김인순 컬렉션을 중심으로 1980년대 여성해방운동 속의 여성주의 미술에 관련된 콜로키움도 있었다. 해외 미술관의 여성 작가 초대전과 더불어 베니스비엔날레에서의 여성 기획자들의 활동도 중요한 부분이다.
제 경험에 이렇게 미술계에서 여성 기획자, 작가의 활동이 두드러진 시점은 2019년으로 당시 공립미술관 관장 교체와 함께 화제가 되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백지숙, 경기도미술관에 안미희, 대구미술관의 최은주, 부산시립미술관에 김선희 등 당시 공립미술관의 절반 이상에 여성 관장이 임명되었다. 또한 2019년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른 김아영, 박혜수, 이주요, 홍영인이 최초로 모두 여성 작가였고,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도 여성 감독과 여성 작가로 구성되면서 미술계 내 여성의 활동과 그들의 자리가 주목받았다. 올해의 현상은 그렇게 이어져 온 흐름이 수면으로 올라와 다양한 방식으로 제도 내로 편입되고 정리된 것이라 본다.
구기정〈유명한 풍경〉다채널 영상, 혼합 매체 가변 설치 2021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아르코미술관 전시 전경 2021 제공 : 아르코미술관
황수진 전시 측면에서 팬데믹 이후 비인간 객체와의 공생 및 신유물론에 대한 논의는 기후 위기, 인류세, 자본세 등 전 지구적 문제와 맞물려 꾸준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 중심적 사고와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상호 의존성을 탐구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전시로 2021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와 최근 국현에서 막을 내린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가 있다.
올해 제38회 김세중조각상 수상자인 문경원, 전준호는 심사위원회로부터 “철, 유리, 돌덩어리, 로봇 같은 조각적 오브제와 연동하며, 이들이 다루는 주제는 탈인간주의나 신유물론 같은 컨템포러리 아트 최전선의 담론과도 잇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광주비엔날레에서 맥스 후퍼 슈나이더(Max Hooper Schneider)의 〈용해의 들판(Lysis Field )〉은 유기물과의 공생 관계를 탐구하며 논의를 확장했다.
신유물론의 핵심은 물질의 능동성이지만, 이는 단순히 인간 외의 객체에 주목하는 것을 넘어 소외된 존재들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생태주의와도 교차한다. 국현의 《접속하는 몸 :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에 대해 “최근 페미니즘에서 신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신유물론이나 포스트휴머니즘 담론을 통해 더 새롭고 논쟁적인 화두를 생산하는 것 같다”고 이진실 미술비평가가 말했다. 인류학자
애나 칭(Anna L. Tsing )의 『세계 끝의 버섯』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재영 바라보는 관점은 황 기자와 비슷하다. 객체지향 존재론이나 신유물론이라고 하는, 전통 철학에서 주체라고 인식하지 않았던 대상을 주체로 설정하고, 다시 보려는 시도 자체는 인간이 실패하는 상황, 즉 기존의 합리성에 의지해서 발전시켜온 사회가 무너지는 걸 목도하는 상황에서 떠오르고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생태주의라든지 페미니즘의 부상과 마찬가지로 가려져 왔던 주체들이 복권되는 흐름으로 이해했다. 예술가들이 마치 재난을 미리 감지한 동물의 이상행동처럼 경고 신호를 작업으로 발신해왔고, 철학적 사유와 예술가의 감각이 서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월간미술 ‘주제비평’에서 유원준 교수는 GPT나 생성형 인공지능이 창작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객체지향 존재론 맥락에서 논했고, 안진국 비평가는 예술이 객체지향 존재론-신유물론과 어떻게 조응하는지 문화-사회사적 맥락에서 탐구했다. 신유물론이 지닌 사고 전환의 힘이 이런 것이겠다는 걸 황 기자가 언급한 전시를 통해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전시는 우리 사회가 존재를 어떤 태도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지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황수진 객체지향 존재론, 포스트 휴먼까지 논의를 확장하면 내용이 너무 방대해지는데, 이와 관련해서 안진국 비평가의 주제 비평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으니 월간미술 477권 10월호를 참고하시길 권한다.
심지언 창작 환경과 기술의 변화를 고려하여 생성형 인공지능(AI )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AI가 미술계의 노동, 창작 등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다양한 직군의 활용기와 더불어 고려 사항에 대한 내용을 정소영, 강재영 기자가 제시했는데 그 이후 업데이트할 만한 내용과 새로운 이슈가 있는가?
정소영 올해 11월이 챗GPT 출시 2주년이다. 특집을 준비하던 상반기만 해도 챗GPT 기준 4.0 상태였는데 지금은 4.5까지 발전했다. 변화를 간단히 보면 4.0은 유료와 무료 사용자 간 데이터 접근에 따른 정보 출력에 차이가 있는 정도였다면 4.5는 한 단계 더 발전해 사용자의 말을 기억하고 학습을 통한 호응이 이뤄지는 단계다. 6개월이 안 되는 시간에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특집을 준비하던 때만 해도 인공지능 사용에 이용자 간 격차가 미술계 내에도 있음에 주목했다. 이에 미술계 종사자 중 그래픽 디자이너, 작가, 미술 홍보 마케터, 인공지능과 미디어 전시를 중점적으로 기획하는 학예연구원, 번역가, 미술시장 연구자와 미술 기자에게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묻고 답변을 들었다. 그때의 사용 형태와 주의점에 대한 답변을 정리해보면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에 대한 우려보다 기술 발전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사용의 기준과 제도가 준비되어야 할 것이라는 규율의 정비에 대한 제안이 있었다.
8월 6일 ‘국가인공지능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대한 규정’이 대통령령으로 발령되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주요 정책을 세우는 위원회 위원을 위촉하고, 위원회가 인공지능 산업 발전과 경쟁력을 저해하는 규제의 발굴과 개선에 관한 사항 등을 연구하겠다는 내용이다. 위원회의 활동과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국가 정책 보완사항이 개선되는 시작점이라는 사실이 고무적이었다.
노재민 작가들도 생각났다. 올해 업앤커밍으로 만난 조현서도 AI를 활발하게 쓰는 작가로 인공지능 공부를 했던 2021년부터 지금까지 바뀐 게 많다고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여러 데이터를 종합하는 능력이 있고 그것을 분석할 수 있는 툴이라 마치 ‘엑셀’ 같았다고 회상했는데, 이제 인공지능은 복합적으로 학습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작가가 추구하려는 것까지도 학습해서 체계를 만들 수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최근 ACC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김아영도 AI를 활용하고 있다. AI가 보편화되고 있는 건 분명한 현상이다.
강재영 덧붙여 설명하자면 2022년 11월 발표된 챗GPT 3.5는 오직 언어만 처리할 수 있는 모델이었고, 이미지, 사운드를 처리하는 멀티 모달 모델 개발에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았다. 하지만 지난 5월 오픈AI사는 이미지, 사운드를 동시에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는 챗GPT-4o 서비스를 공개했다. 카메라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이 사진에 대해 묘사해줘’라고 명령하면 이미지에 등장하는 사람, 상황을 줄줄이 텍스트와 소리로 출력한다. 지난 11월 반재하의 〈이매진 홈 스위트 홈(IMAGINE HOME SWEET HOME )〉 공연에 그 기술을 사용했는데, 작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변화 속도는 더 빨라질 거다. 올해까진 작가들이 AI와 익숙해지는 시기였다면, AI가 작품에 인입되는 방식이 레픽 아나돌처럼 인공지능 모델 자체를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의도를 구현해내는 물감이나 붓처럼 사용하게 될 것이다. 내년 이맘때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인공지능 주도의 미래가 다가올 것 같다. 앞으로 인공지능 문맹에 대한 문제가 대두하고, 그 편차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새로 문을 연 공간들
심지언 올해 새로 생긴 공간 중에서 기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고, 독자께 권하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노재민 푸투라, 솔올미술관, 오디움, 대구 간송미술관을 꼽고 싶다. 푸투라는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해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라는 점과 높은 층고를 지녔다는 점이 큰 특징인 것 같다. 개관전으로는 레픽 아나돌의 전시를 개최했다.
정소영 푸투라의 위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청동 일대는 청와대가 있어 그간 고도와 개발에 제한이 많았다. 푸투라의 경우 건축물 규제 제한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다변화 공간 건축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개관전으로 미디어아트를 선보였지만 공간에서 복합 문화 활동을 하겠다는 포부로 뮤지엄 나이트 등 대중 친화적 행사도 주최했다. 최근 개관한 공간인 만큼 변화하는 예술문화 지점들을 적극 반영하려는 양상이 보인다.
2024년 개관한 세계 최초의 오디오 뮤지엄 오디움 내부 전경 사진 : 노재민
노재민 대구 간송미술관은 예매 경쟁이 치열할 정도의 모객으로 화제를 모았다. 9월에 개관해서 두 달 만에 10만 명, 하루에 2,500명이 방문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통해 복원 과정을 공적인 차원에서 개방한 것이다. 간송미술관이 많은 지류 작품을 다루면서 쌓은 복원 기술과 교육에 대한 의지가 그 기반이다. 그리고 ‘간송의 방’이라는 상설 공간을 마련해 컬렉터뿐만 아니라 연구자 및 작가로서의 간송 선생의 면모를 함께 부각한 점이 기억에 남는다.
심지언 대구시가 예산을 마련해 미술관을 건립하고, 간송 컬렉션이라는 콘텐츠가 만나 하나의 미술관이 만들어져 민과 관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1년에 두 번씩 서울 간송미술관의 담벼락에 긴 대기 줄을 서서 간송 컬렉션을 감상하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 상시적인 공간이 특히 지역에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노재민 오디움도 얘기하고 싶다. ‘정음’을 주제로 한 개관전을 선보였는데, 전시에 출품한 소장자의 악기들은 시각적으로도 충만한 즐거움을 줬을 뿐 아니라,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의 건축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요소였다. 다만 소장품으로 구성된 전시다 보니 그 이후의 행보가 미지수이다.
정소영 오디움 쪽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세계 최초 오디오박물관의 개관이다. 오디오박물관이 생기면서 말 그대로 소리 미학, 좋은 소리에 대한 미학적 평가를 예술에서 어떻게 다뤄야 할까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시각 예술을 넘어서 다양한 감각의 체험으로 예술이 확장되는 만큼 음악과 차이를 갖는 소리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환기했다. 공간에서 소리의 복원 기술, 관객에게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과 같은 다양한 지점에서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노재민 강릉의 솔올미술관은 개관전으로 루치오 폰타나와 곽인식의 개인전을 함께 개최하고, 이어서 아그네스 마틴과 정상화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미술관이 개관부터 강조한 점이 해외와 한국의 두 작가 동시 개인전을 통해 작가들이 어떻게 조응하는지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해외 작가가 워낙 유명한 작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국 작가에게 조명이 가지 못했고, 사실 교류가 많지 않은 시대에 살았던 두 작가다 보니 조응이 이뤄졌는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그리고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소유권 이전에 관련된 문제다. 시행사 교동파크홀딩스가 아파트를 개발하면서 강릉시에 기부채납 형태로 지은 미술관으로 일정 기간 한국 근현대미술 연구재단이 위탁 운영을 했는데, 11월쯤 강릉시로 소유권이 이전되어 내년에는 강릉시립미술관으로 재개관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과정의 원활치 않음이 공개적으로 표출된 바 있다. 비단 솔올미술관만의 문제는 아니고 미술관 건물을 짓고 난 후 거기에 전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강재영 관련해서, 인천시립미술관 간담회에서 기혜경 홍익대 교수의 발제가 흥미로웠다. 기혜경은 지역 미술관 건립 붐을 1차, 2차로 구분했다. 1차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국정과제로서 문화 융성, 여기에 지방자치제 직후에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한 하드웨어로서 미술관이 건립되었다면, 2차는 마치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처럼 지역 재생을 통한 시민 문화 향유 증진을 꾀하는 지자체들이 미술관 건립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전남도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이 최근 생겼고 준비 중인 미술관으로 김해김영원조각미술관, 경북도립미술관, 인천시립미술관, 여수시립미술관, 양산시립미술관, 춘천시립미술관, 충남도립미술관, 화성시립미술관 등 다수다. 그런데 이 중에 과연 콘텐츠가 먼저 준비돼서 진행될 만한 곳이 있을지 의문이다. 인천시립미술관 사전 간담회는 그런 의미에서 돋보였지만, 역시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건축이 먼저 진행되고, 콘텐츠 연구가 이후에 진행되고 있다. 그릇을 먼저 만들기보단, 어떤 요리를 담을 것인지 각 지역에서 충분히 논의된 이후 형태에 맞는 그릇을 생각할 수 있도록 행정 차원의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전시의 소스와 방법론: 소장품과 아카이빙
심지언 미술관의 전시와 프로그램을 돌아보려고 하는데 소장품 전시, 아카이빙 전시가 다수 눈에 띄었고, 모두를 위한 미술관과 같은 미술관의 포용 정책도 진일보한 변화를 보였다.
노재민 국공립미술관 위주로 소장품 전시가 많이 늘어난 것이 올해 추세인 것 같다. 소장품 전시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예산 문제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서 소장품 전시가 다채로워진 것은 관람자 입장에서 긍정적인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일례로 국현의 전시 《가변하는 소장품》이 좋았다. 가변하는 크기, 가변하는 장소, 가변하는 관계 3개의 주제로 나눠 가변적인 특징을 담은 현대미술을 탐구했다.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의 여러 분관이 합동해서 선보인 소장품 전시도 인상적이었다.
정소영 서울시립미술관의 본관과 분관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소장품 전시를 진행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분관이 많은 서울시립미술관의 특징을 잘 살린 소장품 전시로 소장품에 대한 재해석이 아닌 현대 시점에서의 소장과 해당 작품 제작 시기와의 ‘연결’을 주요 주제로 구성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정기적으로 시행하던 기존의 소장품 전시에서 발전한 기획과 변주가 들어간 전시로 소장품 전시의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4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심지언 소장품 전시가 많아졌다기보다 소장품 전시의 중요도가 커졌다고 생각한다. 소장품은 미술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동안의 소장품 전시가 신소장품을 정기적으로 소개하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소장품을 연구하고 책자를 발간하는 등 연구와 전시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 국현과 작년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인터뷰에서 두 미술관 모두 소장품 연구와 전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현은 소장품 연구가 중요한 이유를 기증 문화를 활성화하는 방편으로 보고, 기증된 작품을 연구하고 더 자주 볼 수 있게 전시로 내보이는 것이 기증자에 대한 예우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이 9월에 개최한 SeMA 옴니버스 전시는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가을 전시를 소장품으로 구성했다. 미술관의 정체성을 소장품으로 말하겠다는 측면에서 소장품에 대한 중요도, 인지가 기존과 달라진 측면을 보여주었다 생각한다.
강재영 보통 미술관을 평가할 때 소장품으로 미술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중요한 척도로 본다. 그랬을 때 현재 대한민국 미술관 중 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 소장품 구성, 소장선 문제에 심각성을 다들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소장품 예산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결정권자들이 이 문제가 우리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구축할 건지, 역사인식 정립과 직결된다는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SeMA 옴니버스는 그런 면에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노재민 한편, 옛날에 한창 아카이브 전시가 유행이었을 때 아카이브를 선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어 다소 피로감을 느낀 경우가 많았다. 최근 관람한 아카이브 전시들은 대체로 아카이빙 전시여야만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열렸던 《서울 : 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이 인상 깊었다. 사진이라는 장르 특성상 작품은 장소나 도시에 대한 아카이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엮어서 보여준 전시였다.
심지언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전시는 대부분 좋았다. 아카이브 전시에 대한 시각을 전환해 기존의 아카이브를 작품의 보충 자료로 제시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료와 작품이 조응하는데, 이것이 전시 보기의 방법과 재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이 기관이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재영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해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방법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국제적으로도 뒤지지 않는 수준의 전시가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현의《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도 아카이브를 전시한다는 측면에서 전위적인 디스플레이, 바닥에 자료들을 깔아놓고 앉아서 관람하는 형식을 만들어낸 점이 기억에 남는다.
노재민 모두를 위한 미술관, 장애인의 관람 편의성과 관련된 정책이 미술관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한 해였던 것 같다. 디아스포라, 글로벌 사우스, 성소수자, 여성 등 타자에 주목하는 건 거의 미술의 역사랑 같이하는 본질적인 궤라고 생각하는데, 그중에서도 올해 두드러졌던 건 장애인 접근성인 것 같다. 이전부터 논의가 이어져 왔지만, 올해는 실천적인 전략을 구사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정책의 기조이기도 했고, ICOM(국제박물관협의회 )이 미술관을 재정의하면서부터 이런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 같다. 1월호에 소개했던 국현의 심포지엄 ‘미지의 전망들 : 동시대 미술과 제도’에서 현장 문자 통역과 수어 해설을 처음으로 제공했던 것이 기억에 남고 리움미술관의 접근성 프로그램 ‘감각 너머’도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예술을 매개로 소통하는 방식을 조명해서 고무적이었다.
황수진 얼마 전 국현 심포지엄에서 통합 교육에 대한 논의를 들었다. 논의의 핵심은 학교 선생님과 특수교육 전문가들이 이미 실천 중인 통합 교육을 미술관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를 위해 미술관이 어떤 포용적 공간을 마련해야 할지에 관한 것이었다. 한 발표자는 미술관의 통합 교육 추진 의지를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발표된 설문 결과에 따르면 미술관들이 이미 어느 정도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발표자가 지적한 “특수교육은 어렵지 않은데 미술이 어렵다”는 말이 인상 깊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에듀케이터가 교육과 미술관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실천적 제언들이 오갔다.
정소영 초기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 신체장애인의 관람 권리 확보와 시설 확충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지체장애인의 미술 관람에 대한 방법과 실천적 측면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설비 투자로 끝나는 구색 맞추기가 아닌, 미술관이 이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미술을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로 진전된 것은 공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미술관의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비엔날레 30년, 양적 팽창과 유효성에 대한 질문
미술신에 한국미술을 소개하고자 발행했던 영문 특별호를 위해 비엔날레 오픈 전부터 각 비엔날레 운영위원회와 소통을 진행했다. 소회부터 말하자면 매 회차 비엔날레의 주제와 감독이 바뀌기는 하지만 운영위원회의 운영방식에 수십 년의 노하우가 있을 텐데 매해 내외부적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는 점이 안타까웠다.
국내 비엔날레들의 양적 팽창 역시 함께 고민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올해처럼 비슷한 시기에 전국 각지에서 비엔날레가 개막했을 때 장점도 있지만, 관람자를 위한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막상 비엔날레 현장을 방문해도 전시 장소가 과도하게 분산돼 있고 장소 간 교통편도 마련되지 않아 누구를 위한 비엔날레인지 생각하게 된다. 시대가 변하고 미술의 형태도 변하는 시점에서 비엔날레의 방식과 방향도 고민해 봐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9월 아트위크를 앞두고 발간된 『월간미술』 비엔날레 영문 특별호 ©박도현
노재민 양적인 팽창에 대해서 논할 때, 파빌리온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다.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올해는 다 보기도 힘들 만큼 많았다. 그중 본전시랑 크게 호응하지 않는 파빌리온도 더러 있었다. 심지어 관리가 되지 않다 보니까 지도랑 실제 위치가 다른 곳도 있고, 문이 닫혀있는 경우도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은 파빌리온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베니스비엔날레가 가지고 있는 파빌리온 중심의 국가주의적 관점을 광주 파빌리온에서 흉내를 내고 있는데, 굉장히 다르게 재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소영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진행한 아시아 파빌리온은 그래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정적인 측면에서 아시아 단일국가로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시아 7개국의 전시는 접근이 어려웠던 국가의 미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중에서도 베트남 파빌리온의 팸민휴(Pham Minh Hieu )의 작업이 인상적이었다. 전시장의 관객과 호응해 베트남의 100년의 변화를 보여주는 비디오 아트 작품은 베트남 예술로 흔히 떠올리는 태피스트리나 전쟁이 아닌 동시대 베트남 젊은 작가들의 현대미술을 보여주었다. 이런 점이 비엔날레 파빌리온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언 비엔날레가 지자체의 정치적 맥락에서 문화 사업, 관광 사업과 맞닿아 있고 2000년대 초중반부터 과도한 양적 팽창과 그 유효성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아트페어는 마켓이니까 경쟁력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도태되지만 비엔날레는 공적 예산으로 운영되어 자연적으로 소멸하는 구조는 아니다.
강재영 제 바람인데 이를테면 존중 같은 거다. 당연히 행정가들이 전문적으로 임해야 하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학예연구 영역마저도 행정에서 자유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행정가와 미술인이 각자의 분야를 존중하며 소통해야 하는데,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렇게 일할 수 있는 국내 지자체는 많지 않다. 많은 예산과 자원이 투입되는 문제다. 간극이 좁혀지지 않은 상태로 소통한다면 이러한 예산이 엉뚱하게 쓰일 소지가 크고 제대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평가 체계와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의 문제 제기에도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지만, 이제 방법을 찾을 때라 본다. 이는 또 다른 차원의 미술 교육, 혹은 캠페인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비엔날레의 규모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 본다. 규모가 크다면 그 안에서 관람자가 만족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는 게 맞다. 2017년 카셀도큐멘타 14에 비해 2022년 카셀도큐멘타 15는 베뉴 간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각 베뉴의 성격이 명확하고 콘텐츠가 차별화되어 만족스레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콘텐츠 자체의 질이나 비엔날레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심지언 베니스를 오랜만에 갔는데 다양한 앱이 지도와 정보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어서 유용하게 썼다. 그러나 무엇보다 올해 유용한 정보 채널은 SNS와 미술 관계자들의 후기였다. 워낙 전시가 많아 선택적 취재가 불가피했는데, 이때 SNS가 유용했다. 직업상 SNS에서도 미술계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니 그들의 게시물이 1차 거름 장치가 되었고, 또 미술계 지인들과의 채팅과 대화로 인기 파빌리온, 필수적으로 보아야 하는 전시, 관람 포인트 등등의 실시간 정보를 얻었다. 앱은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지만 그 안에서 중요도, 우선순위는 제공하지 않는다. 결국은 많은 콘텐츠를 봐야 할 때는 이너서클에서 오는 정보의 힘을 빌리게 되었다.
정소영 해외도 베니스를 시작으로 휘트니, 시드니, 방콕, 상하이, 자카르타비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등이 개최되었다. 우리가 동시대를 살고 있다고 느꼈던 건 이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결국 ‘공생’이어서다. 그러니까 소외된 존재에 대한 관심이 인종으로 확장되고 성별로 확장되고 국가로 확장돼서 제3국 문제와 그 안에 인간이 아닌 생명체에 주목하면서 생태와 비생물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말 그대로 포스트 팬데믹의 영향으로 국내외 할 것 없이 나타나는 전반적인 흐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화예술 정책의 바로미터, 예산
강재영 이번엔 2024년 문화예술 정책과 예산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코로나19 직후인 2021년 문체부 예산은 큰 폭으로 증가됐지만 이는 코로나19 직접 지원 예산의 증가가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2023년 문체부 예산 규모는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중요한 건 총예산 대비 비율이다. 코로나 이전이었던 2020년부터 2022년까지 1.2%대를 유지했던 총예산 대비 문체부 예산 비율은 2024년 1.06%로 감소했다.
심지언 2025년 예술 분야 정책과 사업에 대한 세미나를 9월 9일에 진행했다. 문학, 공연, 미술 등의 순수예술 분야의 문체부 예산이 6851억 원이 편성되어 전년 대비 9.1%가 늘었다. 같은 기간 문체부 예산이 2.4% 증액된 것에 비해 큰 폭의 증가로, 유인촌 장관은 순수예술 분야에 집중한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에서는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예산을 살펴보니 마켓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다. 미술분야는 작가 육성 체계화에 주안점을 두었는데, 비전속 신진작가의 미술시장 진입을 위한 홍보 · 마케팅 지원에 7.5억, 전속작가제 지원에 41.5억, 우수전속작가제 지원에 5억 등으로 작가의 미술시장 진입을 육성이라 해석한 것이다.
강재영 그렇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서 K콘텐츠라 불리는, 문화산업 측면에서 지원은 강화되는 반면 순수 예술 창작과 유통을 육성하는 예산은 결과적으로는 취약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보조금을 직접 지원하는 것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면서 직접 지원 규모가 줄어들고 또 미술 교육이나 행정 관련해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예산이 많이 줄어들었다. 특히 올해 이슈가 되고 있는 게, 학교에서 보육교사, 문화교사 급여로 배정되는 예산이 2024년에 절반이 줄었고 내년에 없어지는 상황이다. 현장에서 문제 제기가 있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예술 강사, 정책 기조에 따라서는 복지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던 분야 예산이 굉장히 많이 줄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에서는 나름대로 간담회를 통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책정된 예산이 현장에서 공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심지언 문화연대 등에서 제기하고 있는 예산과 관련한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강재영 최근 국회에서 문화예산 관련하여 토론회가 열렸다. 하나는 문화연대 주최로 2025년 문화예산을 분석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이원재 교수는 문화예산이 정책 기조에 따라 장기 의제 설정 없이 중구난방으로 배분되고 있으며, 이에 현장에서 큰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한 지속성을 지닌 사업보다 전시성, 일회성 사업에 배정된 예산 비율이 높아진 점을 지적했다.
다른 하나는 문화예술진흥기금 고갈의 해법을 논하는 간담회였다. 2023년에 3000~4000억 규모였던 문화예술진흥기금이 600억대로 줄어든 상태여서, 재원 증진을 위한 공감대를 만드는 자리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주 재원으로 운영되는데, 사실 10년 전에도 비슷한 취지로 계속 문제 제기가 있어 왔는데 아직까지 해결책이 없다는 것에 놀랐다. 해결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더 뉴 월간미술
심지언 작년부터 준비했던 월간미술의 리뉴얼 작업을 마치고 4월호를 리뉴얼 첫 호로 선보였다. 오래된 전통이 있는 잡지인 만큼 과제가 많았고 변화에 대한 내외부의 니즈가 있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월간미술의 변화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의 반영이 이번 리뉴얼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제호부터 판형, 콘텐츠 구성과 디자인적 요소까지 미래지향적인 선택을 했고, 디자인팀과 지금 시대에 종이 매체의 콘텐츠가 읽히는 방식에 대해 많은 논의를 거쳐 레이아웃을 잡았다. 리뉴얼로 인한 정체성을 계속 잡아가는 시기인데, 기자들이 현장에서 접한 반응이 궁금하다.
황수진 제가 월간미술 입사 전이었는데,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트 라이브러리에서 늘 보던 세 미술 잡지를 꺼내 보다가, 월간미술 표지를 보고 “어!”하고 놀랐다. “월간미술이 어디로 간 거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낯설었다. 지금 이야기를 들으니 리뉴얼에 담긴 의도가 잘 전달된 것 같다. 표지에서부터 변화와 새로운 시도가 느껴졌고, 내부를 살펴보니 디자인뿐만 아니라 구성이나 배치가 전반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잡지는 가독성도 좋아야 하고 디자인 미감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리뉴얼한 월간미술 표지 ©박도현
정소영 기자인 동시에 잡지 구매자의 입장에서 디자인 리뉴얼 시점에 잡지의 역할 중 하나는 소장 욕구에 대한 충족이라 생각했다. 지금 시대에 잡지는 그 자체로 소장품이자 디스플레이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때문에 디자인과 판형에서 그 점을 고려했다. 글을 쓰는 기자 입장에서는 미술 전문지로서 깊이와 빠르게 소식을 접하고 싶은 독자의 요구를 다 충족시켜야 하기에 압축적이고 읽기 쉬운 글의 형태를 고민하고 시도하고 있다.
노재민 리뉴얼을 하면서 잡지에 실리는 사람과 잡지를 읽는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함께 했다. 예를 들자면 월간미술은 전반적으로 글이 빽빽한 잡지였는데 이미지의 면적을 넓히고, 글자 크기도 키웠다.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겠지만 잡지를 읽는 사람은 논문을 보듯이 잡지를 붙잡고 있지 않는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길 원했고, 또 잡지에 실린 작가의 입장도 고려해서 한정된 지면에서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들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강재영 그동안 월간미술은 콘텐츠는 깊이 있고, 접근성은 떨어진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리뉴얼 소식이 정말 반가웠다. 월간미술의 변화를 바랐던 사람들이 많았다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추구한 변화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게 느껴졌다. 특히 또래 미술인들이 변화를 반가워하고 기뻐하고 놀라워해 큰 힘이 됐다. 반면 오랫동안 구독하고 접해왔던 독자 중에서는 기존의 월간미술이 하던, 지면으로 논쟁을 품어내는 역동성과 과감함도 분명 월간미술이 갖고 있었던 색깔이고 그런 역할을 계속하길 바라는 것 같다.
네이버 데이터랩의 통합 검색빈도 그래프를 살펴보면 본지가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미술 전문지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리뉴얼은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계기라 생각한다. 리뉴얼 효과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온라인 도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서는 도서별로 구독자 분석 데이터를 간략히 제공한다. 성별과 연령별 독자 비율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리뉴얼 전 본지 주 구독자가 30~40대 여성이었으나, 리뉴얼 후 20대 여성이 유입되어 주 구독자 비율이 변화한 것을 볼 수 있다. 미술 전문지만 할 수 있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미술에 관심 없던 사람들이 미술로 들어올 수 있는 입문서, 개론서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언 리뉴얼이 외형의 변화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리뉴얼에 반영된 편집부의 의지가 독자 여러분께 잘 전달되길 바란다. 새로 꾸린 편집부의 첫 번째 과제가 리뉴얼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올 한 해 동안 해왔고 내년에는 디지털을 통한 콘텐츠 제작과 커뮤니케이션 부분에 집중할 계획이다. 종이 매체로서 월간미술이 가진 헤리티지는 계속 가져가야겠지만 변화하는 현장과 속도감 있게 커뮤니케이션할 방안을 디지털 채널에서 찾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면서 차별화를 시도하고, 또 잡지를 보는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내년은 이런 것을 반영해가면서 새로운 실험을 이어가는 한 해가 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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