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을 말하는 제도와 실천의 틈에서,
현장의 목소리

정소영 김소정 기자
Voices

‘모두를 위한’, ‘차별 없는’ 미술관·기관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와 실천의 간극에서 드러나는 부작용과 쟁점들을 짚어본다.

첫 번째 쟁점은 ‘당사자성’이다. 당사자의 구조적 참여는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당사자만이 말할 수 있다는 인식은 연대와 표현의 범위를 좁힌다는 현장의 고민도 함께 제기된다.

두 번째 쟁점은 장애예술인을 위한 법제도, 그중 ‘창작물 우선구매 제도’와 ‘전시 의무화’ 같은 정책이 실효성을 갖고 필요한 이들에게 실질적인 기회로 이어지고 있는지, 명목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핀다.

쟁점 1 당사자성

‘모두를 위한 미술관’을 만들려는 시도에서 ‘당사자성(Authenticity of Representation)’은 중요한 논점 중 하나다. 이는 단순히 누구를 전시하고, 누구를 관람객으로 고려하는지를 넘어, 어떤 관점에서 미술관이 구성되고 운영되는지와 관련된 문제다. 본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당사자성을 보장하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편, 비(非)당사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거나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경향도 함께 나타난다.

정소영 기자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당사자성은 비단 미술계만의 화두는 아니다. 한편으로는 문화예술정책이 논의되고 결정, 실행되는 과정에서 문화예술인의 입장, 관점, 목소리가 얼마나 개입 또는 반영되고 있는가에 관한 질문과 그에 따른 실천이 ‘당사자성’에 대한 요청으로 발현되어 왔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에서 문화예술인의 과소대표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물론, 문화예술인 내부의 다양성과 평등에 대한 기대가 함께 작용했다.

미술관 차원에서는 ‘모두를 위한 박물관’이나 ‘모두를 위한 미술관’을 표방해 왔고, 이는 거칠게 말하면 두 가지 차원으로 나뉜다. 하나는 관람자의 비동질성(평균적 관람자로의 환원불가능성)을 인정하고 접근성에서의 차별을 최소화하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으로, 주로 국내에서는 장애인 접근성을 물리적으로 향상시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온 듯하다. 다른 하나는 미술관의 전시와 같은 내용적 측면, 즉 재현(representation) 차원에서 비주류화 또는 주변화된 예술가들이나 작품들을 가시화하여 존재증명, 나아가 재현 차원의 차별 없는 대표성(representation)을 실현하는 것이며, 대표적인 사례가 여성 미술가나 페미니즘 미술을 조명하는 전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당사자성은 ‘차별 없음’ 내지 ‘평등’을 지향하는 최근의 실천들 속에서 그 방법론적 모색을 집약한 언어로 부상했다고 생각한다.

당사자성을 염두에 둔 전시임을 떠올릴 때 그 전시는 미술의 주류 내지 캐논(규범)에 대한 질문이 명확했음을 생각해 본다. 즉 그 주류나 캐논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역사적 사회적 구성물임을 드러내고, 왜 그것이 주류 내지 캐논이 되었는지, 그로 인해 누가 혹은 무엇이 비주류로 취급되거나 저평가되거나 가시화되지 못했는지를 공론화할 수 있는 전시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구상 속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위계를 재인식하고 해체하는 힘을 가진 전시가 당사자성에 부합하는 전시가 아닐까. ‘재현/대표성(representation)’의 양의성, 즉 재현과 (정치적) 대표성의 불가분성과 직결되는 미술 전시(재현)가 사회적 평등(대표성)의 실천으로 간주된다고 보겠다.

‘모두의 미술관’은 미술관 안에 갇힌 실천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미술관이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더라도, 장애인이 미술관 앞까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한다면 크게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의 미술관’은 ‘모두의 도시’, ‘모두의 공동체’, ‘모두의 세계’와 불가분함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사회적 실천임을 강조하고 싶다.

서지은
코리아나미술관 학예팀장

코리아나미술관은 2018년 ‘여성의 숨겨진 일’을 조명한 전시《히든 워커스》의 기획 단계부터 ‘당사자성’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했다. 다양한 세대와 문화에 내재된 여성의 경험과 시선을 진정성 있게 반영하기 위해 고민하며 접근했다. 여성이라는 비교적 넓은 범주였기 때문에 많은 여성 관객이 스스로를 당사자로 인식하며 쉽게 공감했고, 개인의 경험이 전시를 통해 시각화되는 것을 보면서 연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사자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기에는 전시라는 한계가 있었기에, 이를 보완할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여성의 가사 노동을 폄하하거나 여성의 경험을 왜곡하는 편견과 문구를 적어두고, 관객들이 직접 지우며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함으로써 당사자의 목소리가 공간 안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날 수 있게 했다. 이 프로그램은 관람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었고, 당사자의 목소리가 단순한 전시 대상으로 머물지 않고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전시 외의 형식을 통해 더욱 깊이 탐구될 수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은 연간 프로젝트인 *c-lab을 통해 더욱 능동적이고 확장된 큐레토리얼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코러스(Chorus)’를 주제로 진행된 *c-lab 8.0 프로젝트 중 안무가 송주원의 ‘비극과 코러스: 움직임 합창’을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카이스트 자신들의 질문을 신체적 움직임으로 번역하고 표현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재난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가 잠재적인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게 주요 핵심이었다. 형식도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지만, 기관과 기획자, 아티스트, 그리고 참여자 모두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이러한 공동의 경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의 위계를 해체하고 구조를 전환하여, 보다 열린 사회적 플랫폼으로 기능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성성(polyphony)’이란 결국,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목소리를 포함한 여러 독립적이고 동등한 목소리들이 동시에 공존하며 상호작용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동시대 미술관이 이러한 다성성을 지향하고, 예술을 매개로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적 대화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때 비로소 ‘모두를 위한 미술관’의 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그것이 가능한 큐레토리얼 실천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everyone)’라는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모든 이를 포용하는 완벽한 중립성이나 보편성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미술관이 ‘모두’라는 표현 뒤에 숨지 않고, 끊임없이 누가 이 ‘모두’에서 배제되어 있는지, 어떤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는지를 진정성 있게 질문하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라 생각한다.

김환
작가

모두를 위한 미술관은 소수자의 당사자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자기 정체성에서 확장하여 정체성이 다른 타인과 공감할 수 있고 연대할 이유를 찾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장애인으로서)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일련의 목표는 배제되는 무엇을 인지하고 다양한 다른 정체성과 교차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당사자성이 없더라도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통해 깊이 스스로 그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고 함께 나아가고자 한다면 그것이 좋은 미래로 함께 나아가는 일이라 생각한다.

현재 한국의 장애예술은 복지 담론과 혼동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레지던시, 미술관은 복지 시스템과는 또 다른 본질적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른 차별적인 사회적 역할을 탐색하고 모색하는 일이 예술기관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웅
미술비평

당사자성은 서로의 관계 위에 개입당하고 연루되며 휘말리는 유동성을 갖는다. 비당사자라고 할지라도 항상 위계의 상위에 있다고 할 수 없고, 당사자성과 무관하다고 구분 지을 수도 없다. 당사자성의 과도한 의미를 문제 삼기 전에 당사자로 명명되는 이들은 누구인지, 그들의 고유한 경험과 감각이 어째서 ‘당사자’로 재차 프레이밍 되는지, 미술의 어떤 고질적 제도와 정상성의 규범이 작동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미술관 설계와 운영, 전시의 기획, 작품 제작과 감상 전반을 구성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런 물음과 응답의 과정과 수정의 노력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아니, 누군가 자신을 ‘비당사자’라고 정의한다면, 당사자의 복잡한 삶과 언어를 일방적으로 이해할 것을 요구받는 일(이라는 게 있다면)에 대한 부당함(을 느끼고 있다면)과 어려움은 누구에게 어떻게 토로하는가. 거꾸로 당사자를 소위 ‘문제 제기자’로만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인식은 어떤 위계로부터 구성되는가. 이러한 이야기를 나눠본 적 있는가. ‘차별 없는 미술관’을 실천하면서 어떤 공론의 절차와 자원의 분배를 논의하는가. 설령 문제 해결이 불완전하거나 해결 기미가 없다면, 무엇으로 완충하거나 이후를 예비하는가.

이 질문들은 다음의 방향을 제안한다. 당사자성을 하나의 민원 처리 대상으로, 혹은 향후 주제와 예산을 추가 편성할 수 있는 하위 항목으로 소급하기에 앞서 미술 환경에 작동하는 제도의 위계성을 질문해야 한다. 더불어 그것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던 공론의 결핍을, 감각의 체제를, 재현의 규준과 윤리를, 사회의 성원권을 살펴야 한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적어도 당장은 합의할 수 없고, 이에 대한 논의가 미진했음을 인정하고 공표하는 용기부터 지녀야 할 것이다. 서로의 불완전한 의견과 상황을 적대하지 않으면서도 불편함을 배움으로, 타인과 함께 하고 있다는 감각으로 이어낼 수 있는 미술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쟁점 2 장애예술인 지원제도, 실효성 VS. 할당제

‘2023년 3월, ‘장애예술인 생산 창작물 우선구매 제도’가 시행됐다. 이 제도는 국가기관, 지자체, 공공기관의 창작물 구매 예산에서 총액의 3%를 장애예술인 생산 창작물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은 정부등록 문화시설에서 연 1회 이상 장애예술인의 공연·전시를 개최할 것을 의무화한다. 이는 정부가 장애예술인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법제화한 것으로, 예술 현장의 높은 진입벽에 맞닥뜨린 장애예술인에게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할당된 몫을 채워야 하는 정부 지침 특성상 작품성이나 예술성을 심의하는 기준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장애예술인의 작품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김소정 기자

강지연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전략기획부 주임

2023년 3월 장애예술인지원법 시행령이 개정되고 그해 6월에 고시 제정에 따라 장애예술인 창작물 우선구매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우선구매 제도는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이 장애예술인이 생산한 창작물을 우선 구매하도록 하여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과 시장 진출 활성화를 지원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장애예술인의 작품이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에 소개되고 예술시장의 판로로 연결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에서는 창작물의 유통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이음아트플랫폼’을 구축, 2024년 12월에 오픈했다. 덕분에 기존에 없던 장애예술인만의 창작물 유통 플랫폼이 생겨서 작가가 자신의 프로필과 작품을 등록하고 소개할 수 있으며, 작품이 거래될 경우 판매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신설 제도에 대한 낮은 인지도 등으로 유통률이 높지 않아 플랫폼의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 제도의 경우, 대상 정부기관이 구매 계획을 수립하고 그 실적을 제출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반면 장애예술인 생산 창작물 우선구매 제도의 경우, 창작물 구매 예산이 처음부터 확보되지 못한 것이 저조한 참여율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본 제도에 대해 기관 담당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참여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타 우선구매 제도와 같이 교육을 의무화하고 실적 우수기관에 포상이나 가산점 등의 법적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술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이 열려있다고 해서 누구나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지제도와 예술지원의 균형은 단순히 문을 더 많이 여는 문제가 아니라 문지방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의 고민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

아르코미술관은 관련 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유용, 포용, 협업, 공유’의 미술관 운영 방향에 기반하여 장애예술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이는 정책과제의 수행이 아닌 ‘예술 실천’으로서, 정상적 신체 개념에 대한 비판적 재고를 통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우리는 워크숍과 포럼을 통해 장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해하면서 장애예술인이 겪는 어려움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라는 차별적 관점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장애 비장애 예술인과 관람자가 함께 전시를 만들거나 즐기는 환경을 제공하고자 노력 중이다.

장애예술인이 참여한 전시를 의무 개최하는 등 법적 제도에 경도되기보다 창작 및 향유 측면의 지원을 통해 기초적인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 장애예술인이 불편 없이 활동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스튜디오 활성화나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도슨트 등 다양한 접근성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확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현재는 장애예술인들이 제도권 미술교육에서 소외되어 있으므로 비장애 예술인과 출발선이 극명하게 다르다. 따라서 초창기에는 복지적 측면이 강하겠지만, 교육-창작-전시 기회 확대 등 다양한 측면의 지원을 통해 그 간극이 좁혀지기 바란다.

정부미술은행 관계자

2023년도에 장애 예술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제정되면서 정부미술은행이 전체 미술품을 구매하는 총예산의 3%에 해당하는 금액을 장애예술인 창작물로 구매하게 되었다. 첫해인 2023년에는 장문원에서 지원받은 장애예술인 아트페어 중 두 군데에서 작품을 구매했다. 절차는 일반 미술은행 공모와 동일하다. 즉, 아트페어 출품작을 대상으로 외부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고 추천받은 작품에 대한 가치 평가를 진행한다. 그 이후 가격 평가와 최종 구입심의를 거친다.

장애예술인 아트페어 자체가 많지 않다는 점, 참여 장애예술인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 해당 미술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아 가격 기준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이듬해부터 공모사업으로 전환했다. 공모는 일반 작가 공모 외 별도 트랙으로 진행되었으며 정부미술은행 작품 구입 예산의 약 5%에 해당하는 7000만 원 정도가 할당됐다.

본 공모는 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이라기보다 작품 구입을 위한 사업이고 주어진 예산 안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혜택을 받는 작가 수는 한정되어있다. 그럼에도 장애예술인 개인이 작품을 판매하여 예술 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그 창구를 형성하는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장애예술인 창작물의 기준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이를 의무적으로 우선구매 해야 한다는 제도가 적절하다고 보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예술 작품이라는 큰 틀에서 봤을 때는 작품의 예술성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장애예술 작품에는 장애를 수용하고 편견을 극복하며 예술을 매개로 소통을 시도하려는 메시지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장애를 가진 사람이 창작하는 작품을 장애예술인 작품으로 규정하는 현 기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를 우선구매 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가 생기면서, 물의를 무릅쓰고 작품을 구입하는게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장애예술에 대한 논의나 평론이 왕성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를 개별적으로 평가하고 심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따른다. 지원 성격이 강한 정부사업을 지원기관이 일임하게 된다면 기관별 정체성 및 사업취지에 맞는 지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재필
미디어필링 대표

미디어필링은 콘텐츠 제작사로, 발달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담다티〉, 자폐스펙트럼 작가 김동현의 작업세계를 풀어낸 〈인사이트 스펙트럼〉 등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올해 포용성 콘텐츠 매거진『하이-파이브(High-Five)』를 발간하여 장애예술인을 비롯해 포용성과 다양성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물들과 주요 프로젝트를 소개할 계획이다.

장애예술인 지원을 위한 법제도가 2022년 ‘제1차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 기본계획’으로 구체화 되고 여러 사업이 신설되면서 지원 규모가 크게 늘었다. 현장에서도 체감되는 수준이다. 공공분야에서의 지원 확대를 통해 장애예술인에 대한 관심이 일부 장애인 단체에서 문화예술 전반으로 확산된 점은 의미가 크다. 이는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도 좋은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법제도 확립은 시민운동 단위에서 단기간에 만들어내기 어려운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그러나 국가 정책은 사업 성과를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일정 이상의 결과물을 내는 소수에게 혜택이 집중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또한, 성과에 집중할 때 장애예술인의 예술성과 전문성은 무엇인지, 이에 필요한 지원인력은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며 장애예술 활동을 통해 관계성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 등의 중요한 과제를 놓칠 수 있다. 이에 장애예술인이 전문성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 외에도, 예술 활동을 통해 장애 당사자의 소속감을 증진하고 결과물을 통해 사회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관계중심 예술 활동’에도 제도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장애예술인 지원 제도를 두고 일각에서 역차별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전체 장애-비장애 예술인의 수와 전시 횟수를 비교해볼 때 유효한 논점이 아니다. 역차별을 논할 만큼 장애예술인들이 과도한 혜택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다만, 비장애 예술인들이 이러한 지원정책에 대해 박탈감을 느끼는 현상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이는 현행 지원정책이 전시 횟수나 고용 수치 같은 표면적 성과, 할당량에 집중하는 접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이를 넘어 예술계와 사회 안에 장애 당사자가 어떻게 진정한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와, 그리고 지원사업을 통해 어떻게 다양성을 확장할 수 있을지를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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