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했지만 덜컹거렸고,
화려했지만 삐그덕거렸던
2024년 전시
기혜경 홍익대 교수
Special Feature
2024년의 미술계는 그 어느 때 보다 뜨거웠고, 열의에 찼으며, 풍성했다. 광주-부산비엔날레 개최와 더불어 3년 차에 접어든 프리즈 서울은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K-Pop, K-Drama에 이어 해외 미술 현장에서 활동하는 한국작가들은 K-Art의 저력을 드러내며 환호 받았다. 하지만, 미술계의 기상도는 맑지만은 않았다. 2024년의 아침은 인천아트플랫폼의 레지던시 기능 폐지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울하게 시작했고, 국립현대미술관과의 갈등으로 “한국을 떠나겠다”는 원로 작가의 기자간담회로 덜컹거렸으며, 미술관의 공공성을 도외시한 일부 사립미술관들의 행보는 눈살을 찌뿌리게 하였다. 또한, 외견상의 화려함을 먹고 자란 폰지 사기의 거품이 터진 자리에서 피어오른 암울한 연기는 가뜩이나 시야확보가 어려웠던 미술시장에 먹구름을 드리웠고, 내재화되지 못한 채 강박으로 남은 ESG 경영과 환경이슈로 제도기관들은 체면을 구긴 채 삐그덕거렸다. 이처럼 다사다난했던 2024년의 미술계 흐름을 전시에 초점을 맞추어 개괄해보고자 한다.
ACC 미래상 2024 : 김아영《딜리버리 댄서의 선 : 인버스》
ACC 전시 전경 2024 사진 : 박홍순
서베이 형식의 개인전 및 해외 작가 중심의 개인전
모든 전시(展示 )가 나름의 전시(戰時 )체제를 겪어야 개막을 하기에, 쉬운 전시가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큐레이터의 관점과 역량이라는 측면에서 주제를 설정해 꾸리는 기획전이 작가의 개별 역량에 좌우되는 개인전보다는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인식된다. 올 한해 우리 미술계에는 기억에 남을 만한 기획전보다는 인구에 회자된 개인전이 월등히 많았다. 그중에서도 전통적인 방식의 개인전 보다 서베이 형식의 개인전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아 가는 추세이다. 리움이 개최한 아니카 이의 개인전《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강소 개인전《이강소 : 풍래수면시》, 호암미술관의 《니콜라스 파티 : 더스트》 등이 그것이다. 서베이형 전시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연구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전시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바라보는 큐레이터의 태도와 관점을 확실히 한다는 점에서 개인전 중에서도 기획력이 중시된다. 많은 전시들이 서베이 형식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아직 그 특징을 제대로 살리고 있지는 못하는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강소전은 실험미술시기의 작품과 오리로 대변되는 회화작업이 분절적으로 인식되어온 작가의 작품세계를 ‘소멸, 있음과 없음’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놓고 ‘작가 스스로에 대한 회의’와 ‘대상에 대한 회의’로 구분한 두 영역을 연결함으로써, 작가의 실험미술시기의 작품과 회화 작품을 개념적으로 연결하며 큐레이터의 기획력을 보여준 전시였다.
한편, 3회를 맞이한 프리즈 기간을 전후하여 광주와 부산비엔날레가 함께 열린 올해는 유독 해외 미술계 인사들의 방한이 많았다. 이 시기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시공간에서는 개인전을 통해 작가를 프로모션하며 기관의 역량을 드러내려 함으로써, 이전엔 경험하지 못한 열기로 미술계가 들끓었다. 하지만, ‘프리즈 기간 동안 살아남기 위해 1년을 쏟아 부었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로 과열된 양상 또한 드러냈다. 한편, 이러한 열기에도 불구하고 전시라는 측면에서 살필 때, 개인전 편중 현상이 두드러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시기 개최된 일민미술관의 《IMA Picks 2024》, 금호미술관의 《지금의 화면》, 아트선재센터의 《서도호 : 스페큘레이션스》,광주아시아문화전당이 ‘ACC 미래상’으로 선정한 김아영의《딜리버리 댄서의 선 : 인버스》 등이 그것이다. 특히, 김아영의 전시는 작가의 세계관이 반영된 근대화와 제국주의, 전통과 토착, 역사와 미래로 연결되는 시간성과 근대성을 다룬 장대한 거대서사로 게임엔진 기반의 컴퓨터 그래픽, AI를 활용한 다채널 영상과 설치 작업을 통해 ACC 복합1관을 가득 채운 거대 규모와 스펙터클이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국내작가들을 프로모션하기 위해 꾸려진 앞선 전시들과는 달리 몇몇 사립미술관은 해외작가의 개인전을 선도해 나갔다. 리움이 개최한 《필립 파레노 : 보이스》와 아니카 이 개인전, 호암미술관의 니콜라스 파티 개인전,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의 《Steven Harrington : Stay Mello》와 《Elmgreen & Dragset: Spaces》, 뮤지엄 산의 《우고 론디노네 : Burn to Shine》, 스페이스 K의 카일리 매닝의 개인전 《황해》가 그것이다. 세계 유수 작가들의 개인전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 전시가 현장 벽화 작업이나 대형 설치작업을 포함시켰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국내에 지점을 내고 있는 해외 유명 갤러리의 전속작가 개인전을 프리즈가 개최되는 기간에 맞추어 대대적으로 오픈한 것은 전시를 주관한 미술관을 해당 갤러리의 뷰잉 룸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사립미술관들의 공공성 인식에 씁씁한 여운을 남겼다.
한편, 연초에 진행된 국립현대미술관의 《김구림》, 조경예술가 정영선을 조명한 《정영선 : 이 땅에 숨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서울시립미술관의 《구본창의 항해》 등은 실험미술, 조경, 사진 등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들의 작품세계를 살필 수 있게 한 전시였다. 회고전 형식을 띤 이들 전시 중, 정영선 전시는 과천관의 드넓은 정원을 활용하는 대신 조경전문가의 전시를 사진으로 대체함으로써, 관객들이 실제 조경작품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한했다는 점에서 전시장소 선정에 아쉬움을 남겼다. 이와 더불어 《김구림》은 국립현대미술관의 관료적 체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 전시였다. 2023년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한 불협화음은 급기야 원로작가가 “한국을 떠나겠다”는 기자회견으로 불거지며 전시 과정에서 쌓인 불편함을 전면화하였다. 결국 법의 힘을 빌려 해결되긴 하였지만, 제도 기관과 작가와의 관계, 미술관의 역할과 한계, 그 안에서 매개자로서의 큐레이터 및 미술계 종사자들의 태도에 대해 고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강소 :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4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주제의 유사성과 트렌드화 된 환경 이슈
2024년의 기획전 주제는 2023년의 뒤를 이어 실험미술과 여성, 생태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었다. 실험미술에 대한 조명은 미술관 차원에서는 ‘동시대미술의 애비찾기 작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는데, 이 흐름이 단색화 이후의 대안을 찾는 미술시장의 필요와 맞물리며 2~3년 전부터 실험미술과 그 작가들이 집중 조명되어 왔다. 이와 더불어 “여성” 관련 주제 역시 2023년에 이어 지속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접속하는 몸 :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과 서울시립미술관이 천경자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여성작가 22명의 작품을 묶어 공모전처럼 전시한 《격변의 시대, 여성 삶 예술》, 호암미술관이 젠더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조망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덕수궁미술관의 《근현대 자수전 :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등이 개최되었다. 이들 전시는 미술의 영역 안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것들에 눈 돌린 특징을 갖는다. 여성의 소일거리로 치부되었던 자수라는 장르를 미술의 영역 안에서 읽어내고자 하였는가 하면, 여성에 초점을 맞추어 불교미술을 다시 읽고자 하는 등 통상적인 읽기 방식에서 벗어나 미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해석방식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주제 선정의 신박함에도 자수전의 경우는 일제강점기 동안 근대자수와 전통자수의 구분을 무화해 버린 채 일본식 근대자수위주로 기술해나간 점이나, 작품 대여에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불교와 여성을 접맥한 주제를 기존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등, 각기 다른 지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팬데믹 이후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환경과 생태 관련 주제는 인류세 및 기후위기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 주제는 작품 제작은 물론 문화기관들의 실질적인 실천의 문제로 이어져 ESG경영의 문제를 촉발시켰다. 실제로 리움미술관의 경우, ESG 경영을 통해 미술관이 탄소발자국을 얼마나 감소시켰는지를 수치화하여 제시하며 향후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지속가능한 미술관의 입지를 다지고자 하였다. 하지만, 최근 리움이 개최한 두 개의 전시는 ESG 경영과 환경 이슈의 체화는 아직은 요원한 것임을 드러냈다. 리움이 기후위기와 환경파괴에 대한 고민을 담아 준비한 〈에어로센 서울〉은 기획 및 실현 단계에서 용산구 일대에서 폐비닐을 수집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비슷한 시기 개별 작가들의 전시공간을 방의 형태로 과도하게 칸칸이 구획해 낸 《드림 스크린》과 만나면서 미술관의 진정한 지향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물론 미술계의 환경이슈가 행동으로 전환되기도 전에 트렌드화되어 소비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를 자아내었다.
이처럼 2024년은 한국 미술계에 대한 미래 비전으로 열기에 가득 차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문화를 주도하는 자본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었고, 체계화 되지 못한 문화 시스템에 뒤뚱거렸던 한해였다. 2025년은 조금은 나은 시스템 속에서 모두가 함께 작동하는 미술계이기를 기대해 본다.
《니콜라스 파티 : 더스트》 호암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사진 : 김상태 제공 : 호암미술관
《한국 근현대 자수 :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시 전경
2024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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