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칭의 기술

이장욱·김소정·정소영

3월 특집기사 ①

자기PR과 프로모션이 일상화된 시대, 피칭(pitching)은 더 이상 광고·영화 산업 및 스타트업의 전유물, 또는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비즈니스 스킬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날 미술계에서 피칭은 작가에게는 공모 지원서와 프로젝트 제안서로, 큐레이터에게는 전시 기획안과 펀딩 제안서로, 연구자와 비평가에게는 강의·연구·출판 제안의 형식으로 작동한다. 일반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수많은 문서와 프리젠테이션, 미팅의 과정은 전시 및 프로젝트를 구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본 특집에서는 미술계에서 피칭이 실제로 작동하는 제안의 언어와 설득의 구조가 무엇인지 탐구한다. 미술은 어떤 언어로 자신을 사회에 제안해왔는가, 앞으로 어떤 언어와 전략을 이용해야 하는가? 월간미술은 공공 기금과 예산의 한계를 넘어 프로젝트의 확장성을 확보하고, 예술적 가치와 기업·기관의 철학이 만나는 접점을 어떻게 매칭,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가이드이자 참조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기획·진행 편집부


피칭의 기술: 설득의 무대와 우아한 거리두기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 큐레이터

프롤로그: 가판대와 마운드, 그 위태로운 이중주
‘피칭(pitching)’은 태생부터 긴장감을 품고 있다. 단어의 어원을 따라가면 서로 다른 두 장면이 겹친다. 하나는 뿌리내리기다. 말뚝을 박아 텐트를 치고(pitch a tent), 가판대를 세우는(pitch a stall) 행위. 그 안에는 세상을 향해 “여기가 내 자리”라고 선언하는 점유의 몸짓이 숨어 있다. 생존을 위해 공간을 확보하고,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마운드 위 투수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피칭이다. 규칙이 지배하는 승부처에서 타자의 타이밍을 읽고, 끝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야 하는 고독한 투구다.

오늘날 예술가의 피칭은 이 두 현장이 맞닿는 지점에서 벌어진다. 한쪽에는 창작의 기반이 흔들리는 현실에 맞닥뜨려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자본과 제도의 언어 안에서 고유성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이 있다. 작업은 사적인 영역에서 완성되지만, 지속은 타인의 승인과 서류를 통과해야 가능해진다. 그래서 피칭은 ‘말을 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작업의 이유와 생존의 조건이 기획서와 미팅, 그리고 예산표 등으로 압축되어 드러나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투자자를 설득했다는 실리콘밸리의 전설(elevator pitch)은 사내 결재 기술로 가볍게 회자되고 있지만 피칭이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작가는 공모 지원서로, 큐레이터는 기획안으로, 연구자는 신청서로 각자의 공을 던진다.

한때 전국민적 인기를 얻은 예술 및 예능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이 과정을 스펙터클로 만들며 경연에서의 승리를 대단한 예술적 성취나 보석 발굴처럼 포장했다. 하지만 화려한 이벤트가 끝난 뒤 남은 것은 다시 돌아오는 고독과 생존의 문제였다. 그러므로 피칭의 본질은 심사위원을 감동시키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척박한 제도와 자본의 토양 위에서 내 예술이 버틸 수 있도록 지속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어야 한다.

번역의 수사학: 낭만적 왈츠가 아닌 치열한 통역
피칭이 ‘함께 추는 춤’으로 묘사될 때가 있다. 다만 그 춤은 낭만이 아니라 협상의 안무에 가깝다. 지원사업의 심사장소나 기업 미팅룸 등은 평평한 무대가 아니다. 자본과 권한을 쥔 쪽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쪽 사이의 비대칭이 분명한 협상 테이블이다. 이 현실을 읽지 못하면 피칭은 두 가지 방식으로 쉽게 무너진다. 하나는 당위형 독백이다. “예술은 숭고하고 내 작업은 훌륭하니 지원하라.” 이런 태도는 상대를 파트너가 아니라 심판관이나 자금줄로 만든다. 다른 하나는 읍소형 호소다. “상황이 어려우니 도와달라.” 일시적 동정은 얻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협력을 지탱할 신뢰로 이어지기 어렵다. 두 유형의 공통점은 하나다. 상대가 떠안는 책임과 리스크를 읽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관과 기업은 내부 결재, 매뉴얼에 따른 규정 준수, 외부의 시선, 사후 감사라는 부담을 동시에 견딘다. 그 부담을 계산하지 않은 제안은 대개 피칭 존을 벗어난다.

성공적인 피칭은 낭만적인 왈츠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언어 체계 사이의 정교한 통역 과정이다. 예술가는 모호함과 감각, 비평, 체험의 언어로 말한다. 반면 기관과 기업은 규정과 성과, 리스크 관리, 예산 효율의 언어로 듣고 판단한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롬(Elinor Ostrom)의 관점으로 보면, 좋은 제안은 ‘감동’보다 ‘작동’에 가깝다. 누가 무엇을 결정하고, 어떤 기준으로 성과를 확인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절차로 해결하는지 등의 운영 규칙이 보이는 제안은 담당자를 방어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피칭은 미학적 비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상대의 규칙 안에서 어떤 효용과 책임의 형태로 성립하는지를 오역 없이 번역하는 기술이다.

기업이 예술을 후원할 때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자선(philanthropy)만이 아니다. 브랜드 가치와 연결되는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질문은 여기에 수렴한다. “왜 하필 지금이고, 왜 당신이며, 왜 우리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예술의 언어를 행정과 경영의 언어로 옮겨야 한다. 이것은 타협이 아니다. 내 예술이 그들의 제도 안에서 어떤 사회적·경제적 가치로 환원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략적 제휴의 제안이다.

팔걸이 원칙: 거리를 두되 좌표를 공유한다
창작자가 피칭 앞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율성의 훼손이다. 지원을 받는 순간 간섭까지 따라올지 모른다는 불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팔길이 원칙을 방패처럼 세운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바람은 ‘투명하면 간섭이 사라진다’는 도덕적 낙관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현실의 고통은 대개 반대다. 작가들은 불투명해서가 아니라, 투명함을 증명하느라 창작의 시간을 잃는다. 증명이 목적이 되는 순간, 원칙은 실무의 무게 앞에서 쉽게 무력해진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있다. 모호한 계획은 과잉 행정을 부른다. 목표와 성과가 흐릴수록 담당자는 책임을 피하려 더 많은 증빙과 절차로 자신을 방어한다. 그래서 우리가 제시해야 할 것은 ‘증빙을 위한 디테일이 아니라, 오해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다.

이 합의는 세 가지 좌표로 정리된다. 첫째는 무엇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것인가에 관한 미학적 좌표다. 작업의 핵심이 무엇이며 어떤 원칙만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지를 분명히 한다. 둘째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무엇으로 남길 것인가에 관한 운영의 좌표다. 과정과 산출물, 관객과 만나는 접점을 구체적으로 정리한다. 셋째는 누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에 관한 책임의 좌표다. 지원 주체와 창작 주체의 역할 경계를 선명히 그어 둔다. 이 좌표가 분명할수록 행정은 감시가 아니라 조력으로 물러날 여지가 생긴다.

결국 팔길이 원칙은 선의의 특권도, 요구만으로 얻는 면책도 아니다. 서로의 책임 구조를 인정한 상태에서 개입의 범위를 미리 정하고 지키는 합의의 기술이다. 피칭을 잘한다는 건 내 예술을 행정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행정이 예술을 옭아매지 않도록 ‘여기까지는 조력, 여기부터는 창작’이라는 선을 그어 두는 일이다.

에필로그: 강을 건너는 뗏목의 지속가능성
나는 큐레이터와 지원 기관의 역할을 종종 ‘뗏목’에 비유한다. 육로가 끊긴 곳에서 예술가는 강을 건너야만 새로운 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작가는 긴 작업의 시간을 견디는 데 강하지만 험한 물살을 읽는 제도적 감각에는 서툴 수 있다. 그러나 강을 건너지 않는 작업은 자칫 자기완결의 미덕 속에 고여 버릴 위험도 있다.

피칭은 그 뗏목에 오르기 위한 신호탄이다. 사공에게 “내가 가려는 곳이 당신의 목적지와 맞닿아 있다”고 설득하는 일이다. 물론 운전대를 전적으로 맡길 필요는 없다. 다만 사공이 안심하고 노를 저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좌표를 제공해야 한다. 그 좌표는 타협의 산물이 아니라 예술이 현실의 파도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가장 현실적인 기록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피칭은 거절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공을 던졌다고 모두 스트라이크가 되진 않는다. 어떤 이는 뗏목을 타고 단숨에 건너고, 어떤 이는 뭍에서 오래 기다린다. 거절은 실패가 아니다. 그저 내 언어가 아직 그들의 언어에 닿지 않았다는 신호다. 우리는 뗏목 위에서 지도를 다시 고쳐 그릴 뿐, 강 너머의 목적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피칭이란, 제도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예술이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문장으로 그어 내는 경계선이다. 우아한 거리두기와 뜨거운 설득 사이, 그 팽팽한 줄타기 위에서 우리의 예술은 비로소 공적 언어를 획득한다.


피칭 너머의 펀딩: 미국의 미술관은 무엇을 어떻게 설득했는가?
김소정 기자

미술관의 피칭은 전시 기획 단계에서 수립되는 예산 계획의 일부로 시작된다. 규모와 무관하게 대부분의 미술관은 전시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최대한 많은 재원을 확보하고자 한다. 영국 기반의 예술 네트워크 ‘a-n’이 2016년 발표한 설문·연구 보고서 「21세기형 큐레이터(The 21st Century Curator)」에 따르면, 오늘날의 큐레이터는 기금 유치(펀드레이징)와 수익 창출을 점점 더 핵심적인 업무로 인식하고 있다.1 응답자의 90% 이상이 기관의 재정적 지원을 확보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답한 점은 미술관의 큐레이팅이 단순히 전시의 영역에서 머무르지 않고 기관의 운영·재정 영역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다수의 미술관이 제시하는 큐레이터 직무 프로필에서도 전시 기획의 역량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자금을 유치하는 기획력이 중요한 능력으로 강조된다.

이 글에서는 공공과 민간 두 부문에서 모두 모금 캠페인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어 온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관이 어떠한 포커스와 전략 아래 성공적인 피칭을 전개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모금 캠페인은 전 세계의 미술관이 채택하는 주요 재원 조성 방식이지만, 단순히 미술관의 네임벨류에 기대지 않고 피칭의 대상과 목표를 명확히 설정함으로써 기금 유치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물론 기관의 명성이나 운영 규모에 따라 피칭의 난이도와 범위에도 큰 차이가 존재할 것이나, 여기서는 각 미술관이 전시·프로젝트별로 설정한 방향성과 세부 계획, 그리고 이에 부합하는 피칭 대상을 어떻게 물색했는지에 주목함으로써 미술관이 구사하는 다양한 피칭 언어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때 그 전시: 후원사를 사로잡는 법
미술관의 전시가 대규모의 외부 자금을 끌어온 전설적인 사례로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하 메트로폴리탄)의 《Heavenly Bodies: Fashion and the Catholic Imagination》(2018, 이하 《Heavenly Bodies》)이 있다. 이 전시는 메트로폴리탄의 의상연구소(Costume Institute)가 1948년부터 시작한 연례 전시 개막 행사인 메트갈라(Met Gala)의 일환이다. 1946년에 코스튬아트뮤지엄이 미술관으로부터 운영비 및 전시 관련 비용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조건으로 메트로폴리탄과 합병된 이래, 메트갈라는 연구소의 주요 기금모금 행사가 됐다.

메트갈라는 ‘코스튬’이라는 특정 콘텐츠를 다룬다는 이유에서 하이엔드 패션하우스와 패션 디자이너, 할리우드 유명 배우를 비롯한 세계의 유명인들이 대거 등장하는 주요 행사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Heavenly Bodies》가 피칭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특기할 만한 전시로 기록되는 이유는 결론적으로 베르사체로부터 전시 비용 전액 후원을 끌어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경위에 미술관 측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2 성공적인 기금 유치를 위해 미술관은 전시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베르사체가 지닌 디자인의 미학을 전시의 주제와 연결하고자 했고, 이들이 하나의 후원사가 아니라 전시가 지닌 문화적 상징을 공유하는 파트너로 강조하는 전략을 썼다. 또한, 여러 기업으로부터 분산 후원을 받는 대신 베르사체만의 ‘독점 후원’을 상징화했다. 전시를 기획하는 영역에서도 가용한 모든 역량과 자원, 네트워크를 동원했다. 바티칸으로부터 유물을 직접 대여해 옴으로써 전시의 레퍼런스를 탄탄히 하는 동시에, 가톨릭 배경의 역사적인 의상을 ‘세속적’인 방법으로 제시한다는 등의 후원사 입장에서 민감할 논쟁을 피할 수 있도록 기획의 밀도를 높였다. 이외에도 메트로폴리탄의 피치덱에는 후원사의 잠재 고객층이 될 새로운 젊은 관객층에 대한 분석 자료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전시는 미술관 역사상 최다 방문객 기록(166만여 명)을 세우며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에도 성공했다.

이렇듯 단일 전시를 위한 기업 후원금 유치는 전시의 완성도와 함께 그 문화적 파급력을 높일 수 있다는 차원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전시가 미술계 내에서만 공명하지 않고, 그것의 미술사적 의미를 넘어 사회와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공익적 목적에 부합한다는 측면을 효과적으로 강조할 수 있다면, 이에 호응하는 기업의 후원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2025년 3월 5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이하 SFMOMA)은《Ruth Asawa: Retrospective》(2025) 개최를 발표하며, 구글의 자선·사회공헌 부문인 ‘Google.org’로부터 150만 달러(약 21억7500만 원)의 후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금액은 SFMOMA 역사상 단일 전시를 위해 유치한 기업 후원금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됐으며, 전시를 둘러싼 커뮤니티 구축과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핵심 재원으로 사용됐다. 특히 당시 샌프란시스코 내 미술관에 지원되는 공공 예산이 삭감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지원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컸다. 미술관은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지역사회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교육자, 시민운동가였던 루스 아사와가 가진 지역 내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강조하며, 전시가 지닌 공공성과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기여를 전면에 내세웠다. 사회공헌을 위해 설립된 ‘Google.org’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사회적 가치와 공동체 환원이라는 전시의 메시지는 후원사의 지향점과 긴밀하게 호응하는 피칭 전략으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SFMOMA는 여기에 더해 무료 커뮤니티데이, 무료 입장 이벤트, 스토리텔링 부스 등 전시와 연계된 공공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전시의 사회적 파급력을 구체화했다. 이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구글의 사회적 책임(CSR) 전략과 맞닿는 부분으로, 기업 후원을 설득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마련한 사례로 볼 수 있다.

《Ruth Asawa: Retrospective》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제공: SFMOMA
작품 © 2025 Ruth Asawa Lanier, Inc. 제공: David Zwirner
사진 가운데 배경 이미지 © 2025 Rondal Partridge Archives 사진: Henrik Kam

미술관의 사명: 펀딩 규모만큼의 책임
미술관의 확장 공사나 이전 개관과 같은 프로젝트가 진행될 경우 대규모 펀딩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아미술관(Asian Art Museum)은 2019년에 시작된 ‘For All’ 캠페인을 진행하여 당시 민간 기부금 1억 달러(약 1450억 원)라는 거액의 펀딩을 성공시켰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인구 구성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미술의 유산을 보존하고 새로운 디지털 세대를 교육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명분에서 시작된 이 모금 캠페인은, 캠페인 제목에서도 보듯이 아시아 커뮤니티뿐 아니라 사회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한 미술관을 내세우며 공공의 역할을 강조했다. 여기에 캠페인을 주도한 야마자키 의장과 그의 남편인 제리 양 야후 공동창업자는 베이 지역에서 거액의 개인 기부자들을 집중 공략하는 방법을 썼다. 새 공간의 개관 프로젝트에는 팀랩의 전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디지털 아트를 통해 관객 저변을 확대한다는 전략이 기술 기반 후원가들에게 유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사항은 ‘챌린지 그랜트(challenge grant)’ 구조가 도입된 점이다. 이는 한 기부자가 일정 금액을 조건부로 약정한 후, 다른 기부자들로부터 그만큼의 후원금이 조성되면 약정된 비율의 금액을 추가로 기부하는 매칭 그랜트 방식이다. 아시아미술관은 일정 기간까지는 기부금의 2:1, 그 이후는 1:1 매칭을 제공하여 모금 속도를 빠르게 올리고 다른 기부자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었다.

기부자가 단순히 미술관의 확장이나 전시 후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참여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모금 캠페인 성공사례도 있다. 2016년 개관을 앞두고 모금 캠페인을 체계적으로 진행한 국립 스미스소니언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 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 Culture, 이하 NMAAHC)이다. 미 정부는 NMAAHC의 개관을 결정하면서 전체 비용의 50%에 해당하는 약 2억7000만 달러(약 3915억 원)가 민간 기부 재원으로 충당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고, 박물관 측은 모금 전문 기관인 ‘CCS 펀드레이징’과 파트너십을 맺고 캠페인을 가동했다. 이 캠페인은 미국 내에서도 주요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성과를 거뒀다. 총 모금액이 3억2000만 달러(약 4640억 원)로, 당시 스미스소니언 기관 전체에서 진행된 민간 모금 캠페인 중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피칭 대상은 단계적으로 설계됐다. 먼저 대형 개인 기부자를 확보하고 주요 재단의 협력과 기업 후원자를 설정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캠페인이 시작된 2013년은 오바마 대통령이 2기 정부를 출범한 해로, 미국 내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위상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기에 적격인 시기이기도 했다. 박물관 측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사회 리더십의 기부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는데, 여기에는 이들의 역사적 책임과 미래 세대를 위한 후원이라는 키워드가 강조되었다.

NMAAHC가 개관을 열흘가량 남겨두고 추가로 진행한 모금 행사도 주목할 만하다. 박물관은 ‘기빙 데이(Giving Day)’로 명명된 하루 24시간 동안 온라인과 SNS를 중심으로 최소 10달러에서 최대 2만5000달러의 기부를 장려했고, 후원기업이었던 현대자동차는 모금된 기부액에 대해 최대 50만 달러의 매칭 기부를 약정하기도 했다. 기부를 하나의 이벤트로 활용한 이와 같은 방법은, 개인의 소액 기부를 촉진함과 동시에 기업의 매칭 기부를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개관 이후에도 기부 문화가 지속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기부자—개인이든 기업이든 재단이든—는 단순히 박물관의 건립 비용을 보탠 후원자이기보다, 지난 시대에 소외된 가치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시대의 역사적 과업을 함께 수행하는 주체로 호명됐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에서 보듯, 미술관의 기금 유치를 위한 피칭은 단순히 후원자의 지갑을 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기관의 현재가 아니라 미래와 가치, 잠재력을 일구는 과정에 동행한다는 믿음을 갖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설득의 핵심은 ‘얼마를 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미래에 함께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 본문에 언급된 달러 금액의 경우 1달러=1450원으로 환산하였다. (2026.2.11 기준)

1 ‘a-n’은 약 2만 명 상당의 회원을 대표하는 영국의 시각예술가 커뮤니티로, 영국 정부의 예술정책에 제안하거나 자문하며 연구를 이어가는 단체다. 2016년에 발표된 상기 보고서는 영국 내 큐레이터·뮤지엄 전문직 종사자 550명 이상의 설문 응답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으로, 전문 리서치기관 아트인사이트(Art Insight)와 영국의 대표적 비영리 예술 자선기관 아트펀드(Art Fund)와 진행하였다. 보고서는 설문 외에도 20명의 시니어 큐레이터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변화하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새롭게 정의되는 큐레이터의 업무 영역을 소개하고 있다. 보고 전문은 다음 웹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https://static.a-n.co.uk/wp-content/uploads/2017/12/The-21st-Century-Curator.pdf
2 물론 후원사로부터 기금을 지원받기 위한 미술관의 이와 같은 노력이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2024년 영국 매체 『더컷』은 메트로폴리탄의 《Heavenly Bodies》를 기획한 앤드루 볼튼 수석 큐레이터와 베르사체의 긴밀한 관계를 폭로했는데, 이에는 베르사체의 후원을 받기 위해 볼튼이 기존의 기획 방향과 내용을 전면 수정했다는 주장이 포함되었다. 미술관의 전시가 한낱 패션하우스의 유산을 대변하는 기획이 되었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됐다. 이 기사는 2018년의 전시 자체에 대한 비판이기보다 후원사가 미술관의 전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구조적 환경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기업의 후원 조건이 전시 방향 및 내용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의사 결정권이 어느 쪽에 있는지 등의 논쟁은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Chantal Fernandez “How Versace Helped the Met Gala’s Heavenly Bodies Exhibit Become the Show of the Year” The Cut 2024.5.3
https://www.thecut.com/article/met-gala-costume-institute-exhibit-anna-wintour-andrew-bolton.html


관계를 설계하는 언어: 국내 예술 피칭의 전략
정소영 기자

세계적 미술관의 피칭은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모금 캠페인, 고액 개인 기부자와 재단·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한 다층적 구조, 전문 펀드레이징 조직과 매칭 그랜트에 기반한 정교한 재정 설계를 특징으로 한다. 대형 신관 건립 모금 캠페인이나 기금 기반 운영, 네이밍 스폰서십 구조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환경에서는 장기 재정 설계 자체가 기관 운영의 핵심 전략으로 기능한다.이에 비해 한국의 미술관과 기관·기업이 직면한 현실은 재원 규모와 기부·후원 생태계의 기반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기업 중심 후원 구조와 단기 프로젝트 단위 지원이 일반적이며, 세제 혜택에 기반한 개인 기부 문화 역시 정착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피칭의 형식과 장치 역시 다른 궤도로 전개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국내 미술계에서의 피칭이 축소되거나 부차적인 기능으로 오히려 예산이 한정되고 기반이 열악할수록 피칭이 ‘재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보다 ‘어떤 관계와 서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를 중심으로 특수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때 피칭은 지원서 작성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의 언어를 사회적 언어로 번역하고 이를 기업·기관의 목표와 어떤 구조와 방식으로 접속시킬 것인가지를 설계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어지는 사례들은 이러한 전제 아래 예술의 언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업과 사회의 언어로 번역·매개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공통의 키워드를 통한 단일 서사로 피어난 전시

현대제철이 후원한 정현 개인전《덩어리》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사진: 임장활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정현 ×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 현대제철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정현 개인전 《덩어리》는 침목·폐자재·고철을 다루는 작가의 작업과 철스크랩(고철) 재활용을 기반으로 철의 순환 가치와 친환경·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투명성) 이미지를 강조해 온 현대제철의 기업 정체성, 공공미술관이라는 제도적 신뢰가 한 전시 안에서 어우러진 사례다. 정현은 수명을 다한 재료를 최소한의 가공으로 작업해 온 조각가로, 이 재료들은 산업 현장과 노동, 시간이 응축된 덩어리로 작품 안에 옮겨진다. 전시 제목 《덩어리》는 더 이상 쓰이지 않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물질의 무게와 시간을 응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기획 과정에서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순환’의 개념이 전면에 부각되었고, 이는 현대제철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자원순환과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투명성) 언어와 접속하는 공통 축으로 정리되었다. 한편 현대제철은 철을 여러 차례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보고 철스크랩을 다시 녹여 쓰는 공정과 자원순환 캠페인을 통해 ‘버려진 철을 다시 쓰는 순환 경제의 주체’라는 이미지를 꾸준히 쌓아 왔다. 이런 기업이 창립 70주년을 맞은 시점에 후원자로 참여하면서 전시는 산업과 환경, 순환 윤리를 한데 묶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기업은 ‘순환의 가치’라는 키워드로 자사의 역사를 다시 말할 기회를 얻고, 미술관과 작가는 전시를 둘러싼 영상·기사·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이 이야기를 관객과 공유한다. 이 사례에서 피칭은 ‘환경’과 ‘순환’이라는 공통 키워드를 중심축으로 삼아 작가의 재료, 미술관의 공공성, 기업의 지속가능성 서사를 한 문단 안에 담아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를 매개로 한 중장기 파트너십

피에르 위그 × 리움미술관 × 보테가 베네타
리움미술관과 피에르 위그, 보테가 베네타의 협업은 ‘전시를 매개로 한 장기 서사’라는 측면에서 읽을 수 있다. 피에르 위그 개인전에서부터 《리미널》은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진행된 전시에서 이어지는 프로젝트다. 한 번의 캠페인성 이벤트가 아니라 베니스에서 한국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업세계를 둘러싼 긴 호흡의 파트너십으로 설계된 것이다. 이때 브랜드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단일 전시의 노출 효과가 아니라, 국제 전시 맥락 속에서 축적되는 문화적 이미지의 연속성이었다. 보테가 베네타는 장인정신과 실험정신, 재료와 이미지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핵심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브랜드로서 이 전시는 이런 정체성이 공간·조명·퍼포먼스·의상·영상 설치로 구현되는 무대로 탄생했다. 전시를 통해 작가와 브랜드가 함께 제작한 옷과 집기, 설치 요소들은 마케팅 장치가 아니라 작품의 일부로 편입되며, 양쪽의 언어가 작품 내부에서 뒤섞인다. 여기에 패션 브랜드 앰배서더를 초대한 프리뷰와 화보 촬영, 다양한 채널을 통한 확산 전략이 더해지면서 미술관이 가진 상징성과 브랜드의 대중 도달력이 서로 교환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특히 아시아 문화 장면과의 접점을 확장하려는 브랜드 전략 속에서 서울 전시는 중요한 거점으로 기능했다. 이때 피칭의 초점은 ‘세계적인 작가의 대형 전시’라는 타이틀 자체가 아니라 베니스와 서울을 잇는 국제적 맥락, 브랜드가 장기적으로 쌓고자 하는 문화 이미지, 전시가 실험하는 형식이 어떻게 하나의 서사로 이어지는지를 구체적인 장면과 프로그램으로 보여주는 데 있다.

의도와 니즈가 맞았을 때 탄생하는 새로운 사업

캔 파운데이션 × UCB
2008년 예술 창작 지원을 위한 비영리 단체로 출발한 캔 파운데이션(이하 캔)은 젊은 작가 발굴과 국내외 레지던시, 현대미술 전시로 작가들의 창작 기반을 다지고 동시에 아트버스와 아트키트 같은 미술교육 프로그램으로 지역 사회의 문화 접근성을 넓혀왔다. 하지만 비영리기관으로 기금과 일시적 후원에만 의존하는 불안을 탈피하고 영속성을 더하기 위해 2011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이후 예술 기획으로 기업의 CSR(사회적 책임)을 함께 설계하고 그 대가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전환을 시도한다. 이 사회적기업 인증은 법적 지위 변화가 아니라 ‘후원을 받는 기관’에서 ‘기업과 프로그램을 공동 설계하는 파트너’로 위치를 재정립하는 계기였다. 비영리기관이자 사회적기업이라는 이중 정체성 덕분에 캔은 기업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대신 기획·운영하며 수익을 얻고, 그 수익을 다시 기관 운영과 예술가의 일자리에 투입하는 순환 구조를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기업과의 매칭에서의 중심은 ‘처음 기관을 세운 설립 목적을 얼마나 지키고 확장할 수 있는가’를 함께 시험하는 관계 설정이었다.

팬데믹 시기에 시작된 캔버스 아트키트(이하 아트키트)는 이 전략이 구체적인 피칭 아이템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대면 수업이 막힌 상황에서 캔은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주제와 가치, 테크닉을 가정에서도 따라 할 수 있는 창작 경험으로 재구성해 교육용 패키지 영상과 매뉴얼이 결합된 아트키트 상자로 구현했다. 여기서 피칭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예술가가 직접 설계한 창작 경험이 들어 있는 제품이라는 점. 둘째,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도 많은 대상에 도달할 수 있는 CSR 도구라는 점이다.

제약회사 UCB와 함께한 환아 대상 아트키트 프로그램은 이 구조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제약 기업이라는 업종 특성과 환아 지원이라는 의제는 기업의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었고, 피칭은 치료를 넘어 삶의 질 향상이라는 CSR 키워드와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아트키트는 2020년부터 지역 병원을 순회하며 무료로 전달되는 장기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캔의 피칭은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한 ‘후원 요청’이 아니라 자신들이 해결하고 싶은 예술·사회적 과제를 먼저 선명하게 정의하고 그 과제를 풀기 위한 프로그램을 설계한 이후 기업의 CSR 언어와 만나는 지점을 찾아 들어가는 방식으로 작동한 것이다.

공유 가능한 이야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캔 파운데이션 자체 제작으로 만들어진 김현우 작가의 ‘나의 픽셀 친구’ 캔버스
아트 키트 사진: 오동환 제공: 캔 파운데이션

전술한 세 가지 사례는 잘 작동하는 예술 피칭이 ‘어떤 규모의 재정적 기여가 가능한가’보다 ‘무엇을 함께 말하고, 무엇을 함께 만들 것인가’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피칭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전시나 프로젝트를 대상 기업·기관의 주요 키워드 층위에서 정리하는 일이다. 내가 하려는 작업이 어떤 문제를 건드리는지, 그 문제에 공감하며 함께 말해 줄 기업·기관은 어디인지, 그들이 이미 쓰고 있는 언어와 내 언어가 어떻게 겹쳐질 수 있는지를 역으로 설계해야 한다. 또한 피칭은 가치의 교집합을 찾는 일인 동시에 어디까지 함께할 것인지 경계선을 설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업과 예술의 만남이 항상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작가나 기관 쪽의 문제로 후원사의 이미지가 외려 손상되기도 하고, 반대로 기업의 사회적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문화 후원이 이미지 세탁으로 의심받는 상황이 반복되기도 한다. 재정적 지원의 이면에서 윤리적 기준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예술에서 피칭의 전략은 어느 한쪽만 이득을 보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아니라 각자가 감수해야 할 책임과 위험까지 포함해 서로 다른 조직과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 가능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작가의 재료와 형식, 미술관의 공적 역할, 기업의 비전과 사회공헌, 비영리기관의 공익적 목표가 하나의 이야기 구조 안에 함께 설 때 후원과 협력은 재정 거래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2026년 3월호 (VOL.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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