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칭의 기술 ③

이대형·이완·조현서

3월 특집기사 ③

10년을 상상하는 법-큐레이터는 시간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이대형
Hzone 대표

나는 한동안 1~2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일했다. 전시는 정해진 날짜에 맞춰 개막해야 했고, 관객 수와 언론의 반응은 즉각적인 지표로 치환되었으며, 모든 과정은 효율적인 보고서로 정리되어야 했다. 무엇보다 다음 프로젝트가 늘 대기하고 있었다. 동시대 예술의 현장은 언제나 현재형의 속도로 움직였고, 나는 그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스스로를 재촉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나는 예술을 다루면서도 정작 예술이 필요로 하는 축적의 시간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했다. 질문을 본질까지 밀어붙여 깊이를 만들기보다, 그 질문이 얼마나 빨리 유효한 결과로 변환될 수 있는지를 먼저 계산했다. 사유는 층을 이루기 전에 결론을 요구받았고, 작품은 충분히 해석되기 전에 소비되었다. 나는 그 구조에 익숙해졌고, 어느 순간 그것을 당연한 업무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2013년 현대자동차에 합류했을 때 나는 전혀 다른 시간의 감각을 마주했다.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은 시간을 다루는 호흡이 달랐다. 하나의 모델이 도로 위로 나오기까지는 수년의 세월이 걸린다. 그 과정에는화려한 연출 대신 수많은 실험과 실패, 반복적인 수정과 가혹한 테스트 과정이 존재한다. 그 과정은 겉보기에 지루하고 집요하다. 하지만 바로 그 지루함과 집요함의 반복이 결국 제품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예술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술은 단지 전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이 가능해지는 구조적 조건을 오래도록 축적하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이 단기적 유행을 넘어 하나의 역사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지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대자동차가 국립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 LACMA 등과 10년 장기 파트너십을 선언했을 때, 주변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왜 10년인가?” 혹은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 속에서 우리 시대가 가진 조급함을 보았다. 우리는 너무 빨리 의미를 확정 짓고 싶어 한다. 예술조차 그 효율의 속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때 나는 한 문장을 반복해서 꺼냈다.

이 문장은 선언적인 수사처럼 들리지만, 실은 매우 실무적인 지침이다. 10년을 상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예술을 단발성 이벤트로 소모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며, 질문의 가치를 단기적인 홍보 지표로 환산하지 않겠다는 태도의 정립이다. 10년은 예술이 사회의 표면을 넘어 기억, 제도, 감각, 윤리라는 더 깊은 층위에 스며들 수 있도록 허락하는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문장을 가장 많이 들려주어야 했던 대상은 나 자신이었다. 1~2년 단위의 성과에 익숙해진 내가 과연 10년을 견딜 수 있을지, 그 긴 호흡을 담아낼 만큼 단단한 질문을 만들 수 있을지 스스로를 설득해야 했다. 결정적으로 나를 지탱해 준 것은 경영진의 흔들리지 않는 관점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빨리 결과를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대신, 우리가 그리는 그림이 본질에 얼마나 닿아 있는가를 물었다. 단기적인 노출이나 일시적인 홍보 효과보다 문화적 신뢰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철학이 확고했다.

나는 그때 장기 파트너십은 서류상의 계약이 아니라 철학의 문제라는 것을 배웠다. 이 경험은 내 큐레이팅의 기준과 피칭 전략을 바꾸어 놓았다. 이전의 나는 프로젝트를 설명할 때 예상 관객 수나 파급력을 먼저 앞세웠다. 하지만 10년의 호흡을 배운 이후에는 다른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마주할 미래 풍경의 무엇을 바꾸는가? 그리고 그 변화는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 피칭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설득의 기술이 아니다. 내게 피칭은 번역에 가깝다. 예술가의 언어를 기업의 언어로 옮기고, 그것을 다시 공공의 언어로, 최종적으로는 관객의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다. 모든 번역에는 의미의 손실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손실을 최소화하고 본질을 보존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직업적 윤리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피칭의 출발점은 언제나 정답이 아닌 옳은 질문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이어지던 시기, 《CONNECT, BTS》는 큐레이팅이라는 행위가 ‘윤리’라는 단어와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하게 한 프로젝트였다. 당시 세계는 곳곳에서 분열의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배제와 혐오의 언어는 빠르게 확산되었고,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기보다 쉽게 지워버리는 방식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그즈음 마음속에서 예술은 이 분열의 현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질문했다. 예술이 물리적으로 당장 세계를 구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며 우리가 세계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한다. 《CONNECT, BTS》는 대중문화와 동시대 미술의 이례적인 협업이라는 외형을 띠었지만, 그 이면에는 공감의 구조를 재설계하려는 조심스럽고도 절박한 시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공감은 단순히 감정적인 위로에 머물지 않는다. 타자의 존재를 나의 사유 영역 안으로 온전히 포함시키는 능력이며, 이 능력은 지난하고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훈련될 수 있다.

이 막연한 구상을 현실로 빚어내기 위해 런던의 서펜타인갤러리, 베를린의 그로피우스바우 등 세계적인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디렉터들을 찾아갔다. 내 손에 쥔 완벽한 기획서나 정해진 해답은 없었다. 대신 본질을 향한 질문들을 그들 앞에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큐레이팅이라는 고유한 영역에서도 집단지성이 가능할까요?” “현대미술이 가진 철학적 가치, 그리고 공감 능력 회복이라는 이 감성적 가치를 소수에게 머물지 않게 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대미술이 음악에 철학적 맥락을 제공하고, 반대로 음악이 현대미술을 대중에게 확산시키는 열린 통로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 다른 도시의 예술가들은 이 동일한 질문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응답해 주었다. 특히 베를린에서의 논의는 각별했다. 20세기를 억압했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은 사람들이 물리력을 동원하여 부술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인류를 양극단으로 갈라놓고 있는 혐오의 장벽은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과거의 콘크리트 벽보다 훨씬 더 높고 두껍다. 우리는 예술을 통한 공감 능력의 회복만이 이 견고한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데 깊이 공감했다.

공감의 대상은 인간을 넘어 행성적 차원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살리나스 그란데스 소금사막에서 펼쳐진 토마스 사라세노의 〈Fly with Aerocene Pacha〉(2020)가 그 예다. 화석연료 없이 태양열과 공기만으로 하늘을 나는 이 프로젝트는 종의 다양성과 자연의 숭고함을 일깨웠다. 나아가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물질문명의 풍요 이면에 어떤 희생이 잇따르는지를 뼈저리게 체감하게 했다.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과 전기차를 위한 리튬 1톤을 얻기 위해, 그 척박한 땅에서 200만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무거운 현실을 환기시키는 프로젝트였다.

런던, 베를린, 뉴욕, 부에노스아이레스, 서울에 분산된 프로젝트 구조는 동시대성을 서구 중심의 단일한 시각으로 환원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동시대성은 균질한 상태가 아니라, 다층적인 응답들이 얽힌 네트워크 안에서 형성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다섯 나라는 저마다 완전히 다른 건설시공법, 노동법, 안전관리법을 가지고 있었다. 각 미술관 이사회의 성향과 비전도 제각각이었다. 큐레이터와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각 국가의 엄격한 현실 규칙 안에서 어디까지 구현 가능한지 매 순간 가려내야 했다. 이를 조율하기 위해 수많은 관계자들과 하루 밤낮없는 협상과 설득의 시간을 거쳐야만 했다.

그 험난한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기도 했다. ‘예술이 정말로 혐오의 장벽을 낮출 수 있을까?’ 그러나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느꼈던 그 의구심은 오히려 프로젝트의 내실을 다지는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 하나의 마법 같은 솔루션은 없었다. 오직 각기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 있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옳은 질문을 던지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치열한 과정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제 나는 예술이 세상을 단숨에 구원할 수 있다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그 궤적을 돌아보며 예술이 혐오의 장벽을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할지라도, 우리가 함께 던진 올바른 질문들은 분명 그 견고한 장벽에 지울 수 없는 작은 균열을 낼 수 있다고 덧붙이고 싶다.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기 성과를 위한 마케팅 기법이 아니라, 시간을 다루는 태도다. 큐레이터의 본질은 단순히 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구조가 10년을 견디고 그 후에도 다시 읽힐 수 있다면, 우리의 작업은 비로소 역사에 가까워진다. 예술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믿는 태도야말로 가장 실질적인 전략이다. 당신의 제안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길 원한다면, 먼저 당신의 질문이 10년의 시간을 견딜 만큼 단단한지 자문해 보길 권한다.


협업의 조건
이완 작가

이완은 거대한 세계질서가 개인과 집단의 감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해 다양한 형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2014년 리움미술관이 수여하는 제1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제10회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다. 2015년 김세중 청년조각상 수상, 2017년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었다. 2023년 SBS D Forum 개막식 감독, 2025년 월드푸드테크포럼 개막식 감독, 2025년 아시아프 총감독을 맡았다 협업은 서로 다른 두 주체가 같은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나는 그 만남을 설득의 장이라기보다 서로의 필요가 맞닿는 지점을 함께 탐색하는 과정으로 이해해 왔다.

2016년 유니온아트페어 공동 창립(최두수, 이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기업과의 인연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유니온아트페어는 2016년 제1회부터 2022년 7회까지 삼성전자 가전사업부와 마케팅사업부의 지속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2016년 제1회 유니온아트페어는 하나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했다. 우리는 삼성전자에 TV 협찬을 제안했고, 운이 좋게도 약 10대의 TV를 지원받았다. 제안 단계에서 특별한 피칭의 기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만든 제안서는 A4 한 장 분량의 포스터 형태였다. 간단한 소개, 참여 작가 수, 작품 수, 예상 관객 수, 레퍼런스 이미지, 그리고 “우리의 예술 축제에 삼성 TV만 오면 된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 전부였다. 우리는 즐거운 파티에 친구를 초대하듯 초대장을 만들었다.

지원받은 TV에 청년 작가들의 미디어 작품을 선보였고, 삼성전자는 TV가 예술 작품의 액자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유니온아트페어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The Frame TV’라는 제품을 실제로 개발해 출시했다. 이후 유니온아트페어는 매년 수십 대의 TV를 지속적으로 지원받았고, 회차가 거듭되면서 TV뿐 아니라 아트페어에 필요한 벽체 시공까지 지원 범위가 확대되었다. 나는 이후 개인적인 전시에서도 지속적으로 삼성전자의 TV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2018년 성수동S팩토리에서 열렸던 유니온아트페어 제공: 작가, 삼성전자뉴스룸

프로젝트가 성사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프로젝트 이후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 사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이때부터 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생각으로 기획 단계에서 설치에 관련된 세부 사항까지 지원 담당자와 친구처럼 함께 상의하고 아이디어를 고민했다.

삼성전자는 유니온아트페어와 협업 아이디어를 꾸준히 공유하며 매년 새로운 기획을 함께 만들어 나갔다. 2019년에는 삼성전자 TV에 유니온아트페어 애플리케이션이 기본 탑재되어 판매되는 부가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삼성전자 ‘The Frame TV’에 아트페어 참가 작가들의 작품을 서비스하는 플랫폼을 개발해 탑재하고, 소비자가 앱을 통해 작가들의 이미지를 선택해 구독 형태로 TV 화면에 연출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TV는 실제로 예술 작품의 액자처럼 활용되기 시작했고, 켜놓지 않는 시간에는 TV가 그림처럼 기능하게 되었다. 작가들의 작품 이미지가 가정의 TV로 전송되는 서비스가 실제로 펼쳐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를 구매했다. 예술의 새로운 전시 방식이 만들어졌고 작가들의 작품 유통 채널이 새롭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와 기업 담당자의 지속적인 대화 속에서 서로의 상상과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해 나가는, 서로 돕는 과정을 통해 가능했다.

기업은 각자의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판단한다. 방문객 수, 파급력, 브랜드 이미지와의 접점 같은 지표는 협업을 설명하는 중요한 언어가 된다. 나는 그것을 예술과 대립하는 기준이라기보다 또 하나의 체계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사이에 놓일 수 있는 구조를 찾는 일. 그것이 내가 피칭을 준비하며 가장 오래 머무는 지점이다. 그러한 지점이 마련되면 프로젝트는 지속성을 지닐 수 있는 기초를 다지게 된다.

감독을 맡았던 2025년 아시아프에서 나는 AI를 활용해 전시 기획과 인공지능 도슨트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10대 이상의 TV가 필요한 상황에 놓였다. 주최사의 스폰서 기업인 LG전자에 협찬을 요청했고 큰 어려움 없이 필요한 장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때는 아시아프의 상징 자본 규모가 큰 역할을 했다. 거기에 인공지능이라는 소재는 경쟁력을 높였을 것이다.

이완이〈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2012)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노동의 문제가 럭셔리 산업의 시스템 내부로 들어갈 때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고 번역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모이나의 바니티 백

보통의 경우 전시나 이벤트의 개념과 주제 자체는 기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가 아니다. 실제로는 방문객 수와 같은 외부 효과의 객관적 예측 데이터가 핵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실험적인 전시나 전위적인 이벤트에도 관심을 갖는 추세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혁신과 파급력을 제안서 안에서 입증하지 못할 경우에는 지원이 성사되기 어렵다. 그러나 한번 제안이 성공하고 그 효과가 검증되면 이후의 협찬은 비교적 수월하게 이어질 수 있다

기업의 협찬을 이끌어내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는 제안서의 첫 페이지를 보는 순간 협찬 여부를 판단할 정도라고 말한다. 기획자에게는 전시의 내용과 주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협업이나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한 발 떨어져 객관적인 시선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서글픈 이야기지만 기업의 지원 담당 부서에서는 기획안의 내용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아무리 뛰어난 기획이나유명 작가의 전시라도 마찬가지다. 숫자와 회계로 운영되는 시스템에서 주관적 가치나 추상적 성과는 의미를 갖기 어렵다.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권위나 깊이는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객관적인 근거로 어필해야 한다. 가장 좋지 않은 제안서는 주관적 평가와 예측으로 가득 찬 제안서다.

지금까지 나에게 제안이 왔던 프로젝트를 떠올려보면, 나를 대체할 수 없는 프로젝트라고 판단되는 협업만 진행해 왔는데 한 번 관계가 형성되면 대부분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 가며 지속적인 협업으로 발전했다. 2019년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모이나(MOYNAT)와의 협업은 브랜드 디렉터와 개인적인 관계로 이어져 지금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으며, 2018년 현대차 제로원 공간 디자인을 맡은 이후 몇 년 동안 현대차 4개 도시의 글로벌 오피스 공간 콘셉트를 지휘하는 역할로 확장되기도 했다. SBS ‘D Forum’에서는 2020년과 2023년 두 차례 개막식 예술작품을 맡아 미디어 공연을 기획했고, 월드 푸드테크포럼에서는 2024년과 2025년 개막식 예술 작품을 기획해 선보였으며 다음 프로젝트를 이야기 중이다.

돌이켜보면 피칭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번 맺은 관계를 지속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에서 친구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태계의 새싹 심기
조현서 작가

조현서는 미디어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다. 디지털 시스템을 공간과 물질로 전환해 개인이 그 구조를 보다 주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작업한다. 최근에는 디지털 플랫폼의 구조를 해체하고 이를 새로운 인터페이스와 3차원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센터나비, 서울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Akademie Schloss Solitude, SK D&D, IBK 기업은행 등의 지원을 받았으며, 부산현대미술관과 워킹위드프렌드갤러리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 나는 피칭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당시 나는 친구들과 함께 아티스트 협업 플랫폼 앱서비스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의 개발 비용을 얻고자 강남과 종로 일대의 스타트업 피칭 대회들을 전전했다.

그 세계에서는 공식적인 무대뿐 아니라, 무대 밖에서도 수없이 많은 피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24시간 살아 있는 열기에 빠르게 매료되었다. 커피챗1, 엘리베이터 피치2, 콜드 이메일3 같은 낯선 실리콘밸리식 용어들이 일상처럼 오갔고, 괜히 나도 그런 말을 쓰면 마치 세상을 혁신적으로 바꿀 대단한 전투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 으쓱거리게 되었다. 그저 대화로 끝나더라도 커피챗이라 하면 갑자기 전략적 네트워킹 같고, 엘리베이터 피치라고 하면 뭔가 전사적 행위 같아서, 그 남발하는 용어 위에 신나게 미숙한 나를 태워 보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우리의 제품이 얼마나 새롭고 필요한 것인지 전달하려 했다. 결과는 늘 광속적인 탈락이었다. 하지만 피칭은 계속 이어지며 점차 내게 꽤 익숙한 일이 되었다.

에피소드 신촌에서 선보인 〈언리얼 에스테이트〉 종이 상자, 나무 향, 허브차, 영상, VR, 모빌, 대화, 상담용 소파, 지도 2022

그 와중 어느 날, 마치 영화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연설을 펼치는 주인공처럼 유독 빛나는 사람을 봤다. 그는 주어진 15분이라는 시간 동안 철저히 계산된 호흡과 액팅, 그리고 감동적인 비전과 함께 실질적인 지표들을 제시해 모든 투자자가 지갑을 기꺼이 열게 만들었고, 그날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이후 열린 파티에서 나는 그에게 피칭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는 늘 발표자가 아닌 평가자의 입장으로 피칭을 바라보라고 했다. 나는 그런 과정들 속에서 피칭의 기술을 배웠고, 그 뒤로 대회에서 수상도 할 수 있었다.

피칭은 내가 원하는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시뮬레이션이다. 이 시뮬레이션은 구체적일수록 해상도가 올라간다. 글보다는 말이, 말보다는 이미지가, 이미지보다는 영상이, 영상보다는 실제 물질이 해상도가 더 높겠다. 하지만 여기서 실물보다 더 해상도가 높은 것이 있다. 바로 숫자다. 연도, 지표, 개수, 금액, 인원수, 기간과 같은 것들이 물음표보다 마침표를 찍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이 모든 정보가 하나의 명확한 목적으로 모일때, 그림은 비로소 힘을 받아 선명해진다.

하지만 피칭의 성공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의미하진 않았다. 내 몇 년을 바친 앱서비스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낭비가 아니었음을 나는 그 후 더 오랜 계획이었던 예술가의 삶에 뛰어들며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당시에는 작가가 어떻게 되고, 작품을 어디서 어떻게 발표해야 하는지, 어떠한 기준도 없이 긴 여정을 시작했기에 막막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때 주어진 무대 밖에서 매일같이 스스로의 피칭을 만들어내던 강남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는 세상에 피칭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대가 누구였으면 좋겠는지 백지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그말리온 프로젝트〉를 전시했던 워킹위드프렌드갤러리 2023

어느 특히나 뜨거웠던 여름, 나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작업과 밤새 정리한 피피티가 들어 있는 노트북을 두 팔로 감싸 안은 채 모 대기업의 건물에 도착했다. 그날은 국내외 부동산 기업에 “집을 주시면 그곳에 살며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하겠다”라는 제안 이메일을 다짜고짜 보낸 지 2주째 되는 날이었다. 그 뜬금없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기획에 답장을 해준 곳은 단 세 곳이었고, 미팅의 기회를 준 곳은 한 곳이었다. 나는 작업 기획으로 시작하여 프로그램의 비용, 사례, 마케팅 계획, 그리고 이것이 이어졌을 때의 아티스트 후보자까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것들까지 집요하게 준비하여 아주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하였다. 피칭이 무르익을수록 분위기는 따뜻해졌지만, 나는 마치 300층의 엘리베이터를 탄 듯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다. 기쁘게도 그날 우리의 필요와 진심이 통했고, 나는 스스로 제안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첫 번째 아티스트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이 기억은 현재까지도 스스로 만드는 피칭의 기회와 외부에서 주어지는 피칭 기회의 균형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피칭은 제안이다. 내가 선택을 받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를 내가 그리는 그림에 초대하는 행위이다. 피칭이 끝나는 순간, 나의 시뮬레이션은 우리의 현실이 된다. 또한 그 현실이 그 시뮬레이션과 얼마나 닮아있는가는 무대 밖 끝없는 피칭의 연속에서 결정된다.

〈피그말리온 프로젝트〉제안서 속 스케치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과기술융합지원에 선정되어 진행한 ‘피그말리온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인공지능 모델 연구를 시작으로 사전책, 웹, 영상, 페인팅, 조각, 다큐멘터리, 디자인, 전시까지 10개가 넘는 분야가 동시에 작동해야 했다.

나는 사업이 선정된 이후 각 분야의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한 명 한 명 설득하여 팀을 꾸렸다. 가장 큰 과제는 공간이었다. 10m가 넘는 층고에 구조물을 설치하고, 그 사이로 자연광이 통과해야 했다. 구글 로드뷰를 켜고 도시를 돌아다니며 후보지를 찾았고, 기적적으로 한강진의 워킹위드프렌드갤러리에서 3층과 4층 전시 공간을 잇는 야외 공간과 원형 계단 구조를 발견했다. 공간을 발견한 순간부터 다시 시뮬레이션이 시작됐다. 작품 기획과 공간 배치 이미지, 구조물 규격, 예산, 재료, 인원, 기간까지 필수적인 모든 요소를 수치와 이미지로 정리하여 제안했다. 그렇게 워킹위드프렌드갤러리와 함께하게 되었고, 갤러리 측은 든든한 파트너로서 전시가 더 좋은 형태로 완성되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

나는 생태계라는 말이 재밌다. 자연뿐만 아니라 어떤 스타트업, 예술, 그 어떤 산업에도 통용될 수 있는 생태계라는 단어는그 주체 한 명 한 명이 이 자연계의 순환에 얼마나 중요하고도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 상기시킨다. 모든 일이 혼자 탄생하고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피칭이란 이름으로 서로에게 가장 성의 있는 손을 내민다. 나는 더 많은 새로운 손을 내밀어 이 생태계에서 계속 다양한 피칭의 무대를 만들고 싶다.

1 커피를 마시는 시간 동안 현직자, 협업자, 혹은 관계 형성이 필요한 상대와 정보 교류, 협상, 협업, 경험 공유, 네트워킹 등을 목적으로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비공식적인 만남
2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아이디어, 프로젝트, 제품, 회사, 또는 자기 자신을 핵심만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압축형 스피치
3 사전에 관계나 접점이 없는 상대에게 협업 제안, 정보 요청, 네트워킹, 피칭 등을 목적으로 보내는 이메일

2026년 3월호 (VOL.494)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