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칭의 기술 ⑤
예술은 어떻게 읽히는가: 기업과 기관의 시선
정소영 기자
3월 특집기사 ⑤
3월 특집기사 ④ 읽기
아티스트의 펀딩, 아트프레너의 피칭
예술에서 피칭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기 위해 거쳐야 하는 번역과 설계의 과정에 가깝다. 예술가와 기획자가 작업의 의미와 비전을 말하는 동안 기업과 공공기관은 지속 가능성, 실행 구조, 조직의 목표와의 접점을 묻는다. 이번 인터뷰는 그 검토의 자리에 앉아 있는 ‘피칭’의 시선을 직접 듣기 위해 마련되었다. 색을 매개로 문화·예술 현장과 협업해 온 삼화페인트 컬러디자인센터와, 예술기업의 성장 구조를 설계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 예술경제지원본부는 각각 기업과 공공기관을 대표하는 위치에서 수많은 제안서를 검토해 온 주체들이다. 예술의 언어가 사회와 제도 속으로 들어갈 때 어떤 번역의 과정을 거치는지 실무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이상희 삼화페인트
컬러디자인센터 센터장
Q 삼화페인트가 다양한 ESG 활동 가운데 특히 문화·예술 후원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A 삼화페인트는 색을 만드는 기업이지만 동시에 색이 놓이는 맥락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경험까지 함께 고민하는 기업이다. 색은 단순히 표면에 머무는 요소가 아니라 공간과 사람, 기억과 감정 사이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매개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 현장은 색이 가장 밀도 있게 사용되고 관람자의 감각과 사고, 공감을 직접적으로 이끌어내는 공간으로 삼화페인트에는 매우 중요한 실험장이다. 특히 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와 같은 프로젝트에서는 단순히 도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 전시의 주제와 공간 구성, 관람 경험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색이 전시의 서사와 기억을 어떻게 보완하고 확장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했다. 이러한 협업은 기업의 일방적인 후원이라기보다 색을 매개로한 공동의 기획이자 연구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올해로 창사 80주년을 맞은 삼화페인트는 오랜 시간 산업과 생활을 잇는 환경 속에서 색을 다뤄오며 축적된 색채 데이터와 공간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문화·예술 후원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색이라는 비가시적 가치를 가장 정교하게 다루는 영역이 예술이며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감각과 언어, 그리고 공감의 경험이 다시 산업과 사회로 환원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양평군립미술관에서 진행한 민정기 개인전 《놓치지 못하는 풍경》 전시 전경 2024
제공: 양평군립미술관
Q 지금까지 삼화페인트에서 진행한 예술 후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 한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여러 프로젝트가 있지만 2024년도 양평군립미술관에서 진행한 민정기 개인전《놓치지 못하는 풍경》을 인상 깊은 사례로 꼽고 싶다. 이 전시에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단순히 대표작 위주로 나열하기보다 작업 시기를 기준으로 작품들을 구분하고 각 시기별 색채적 특징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 과정에서 각 시기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색의 성향과 밀도를 정리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시 공간을 구역별로 나누어 해당 시기의 색을 전시 공간에 적용했다. 색이 배경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흐름과 시간성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와 함께 삼화페인트가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컬러 뉘앙스’를 실제 전시 공간에 적용한 프로젝트 역시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2025 ACF와 경기도자미술관 전시 등에서 컬러 뉘앙스를 그대로 전시장에 옮기기보다 각 전시의 성격과 공간 조건을 고려해 색을 선별하고 조정하는 방식으로 적용했다. 전시의 주제와 작품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공간 전체의 분위기와 관람 리듬을 조율하는 색의 역할을 고민한 사례였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색이 연출 요소를 넘어 작가의 작업 세계나 전시의 성격을 해석하고 관람 경험을 조율하는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를 관람하는 방식 자체가 색을 통해 조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삼화페인트가 지향하는 문화·예술 협업 방향을 잘 보여준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2025 ACF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플라자 아트페어 전경 2025
제공: 아트조선
Q 기업 내부에서 예술 후원은 여전히 비핵심 활동으로 인식되는 영역이다. 외부로부터 받은 전시나 프로젝트 제안서를 내부의 예술 후원 안건으로 상정할 때,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하는 대상은 누구이며, 이 과정에서 기업 내부에서는 어떤 질문이나 우려가 제기되나?
A 가장 먼저 설득의 대상이 되는 것은 특정 개인이라기보다 조직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들이다. “이 프로젝트가 우리 기업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일회성 후원에 그치지는 않는가”, “삼화페인트가 왜 이 전시와 함께 해야 하는가”, “지속 가능한 구조로 이어질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이 가장 먼저 쏟아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제안된 전시나 프로젝트를 삼화페인트의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해 설명할 수 있는가이다.
색을 다루는 기업으로서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색채 기술과 데이터, 산업과 생활 환경 전반에서 쌓아온 경험 그리고 색을 통해 형성된 브랜드 자산의 관점에서 이 프로젝트가 어떤 연장선에 있는지를 내부에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술을 예술의 언어로만 설명하기보다는 삼화페인트가 해온 일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속에서 이 전시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차분하게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연결고리가 분명해질 때 예술 후원은 비핵심 활동이 아니라 기업의 시간과 정체성을 확장하는 하나의 전략적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Q 정량화하기 어려운 예술의 가치를 내부에 어떻게 설명하나?
A 예술을 ‘성과 지표’로 환산하기보다 번역의 문제로 접근했다. 예를 들어 전시 협업을 통해 축적된 색채 데이터나 공간 적용 경험은 이후 공공 프로젝트, 산업 색채 가이드, 컬러 트렌드 연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곧 기업의 기술 자산이 된다. 또 하나는 실제 사례를 통해 설득하는 방식이다. 특정 전시 이후 내부 디자이너나 담당자가 얻은 인사이트, 외부 전문가와의 네트워크 확장, 브랜드 인식 변화 등을 구체적인 경험담으로 풀어 내부에 공유한다. 숫자보다 맥락과 누적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전시나 프로젝트 제안서를 검토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무엇인가?
A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이 프로젝트에서 색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이다. 색이 단순한 마감재나 의미 없는 장식 요소로만 등장한다면 협업의 가능성은 낮아진다. 반대로 색이 전시의 개념, 공간 구성, 관람 경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 또 하나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제안서 안에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가 담겨 있는가이다. 삼화페인트는 색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에 닿아온 기업이기에 프로젝트 역시 색이 왜 이 전시에 필요한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지가 분명할수록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제안서에서 느껴지는 현실성이다. 예술적 비전과 함께 제작 환경, 일정, 협업 구조에 대한 고민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을수록 신뢰가 생긴다. 결국 “함께 해보고 싶다”고 느끼는 결정적인 요소는 이 프로젝트가 아이디어를 넘어 대화 가능한 상태로 준비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분청》 경기도자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제공: 경기도자미술관
Q 기업 후원이나 협업을 고민하는 예술계 종사자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A 기업을 하나의 ‘자원 제공자’로만 보지 않고 어떤 언어로 소통해야 하는 파트너인지를 먼저 고민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기업은 결과뿐 아니라 과정, 지속성, 내부 공유 가능성을 중요하게 본다. 제안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관점을 함께 고려한다면 협업의 문턱은 훨씬 낮아질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계하기보다 함께 조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도 중요하다. 협업은 정해진 답을 제출하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함께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 문화·예술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A 올해로 80주년을 맞은 삼화페인트는 지난 시간 동안 산업과 생활 환경 전반에서 색을 다뤄오며 수많은 공간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색을 축적해 왔다. 이러한 시간의 결과로 쌓인 방대한 색채 데이터와 현장 경험은 색을 단순한 선택의 결과가 아닌 기억과 맥락이 담긴 기록물로 바라보게 한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삼화페인트는 색이 개인의 경험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공감을 만들어내는지에 주목하며, 전시 공간을 넘어 교육, 연구, 공공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의 문화·예술 협업 역시 ‘후원’이라는 표현보다는 색을 매개로 한 공동의 연구이자 감각적 실험에 가까운 형태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유정 예술경영지원센터
예술경제지원본부 본부장
Q 예경은 ‘예술분야 창업도약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 창업 지원 사업의 시대적 필요성과 기관에서 지원사업을 통해 가장 집중하고 있는 전략적 목표는 무엇인가?
A 예경은 예술분야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인 아트비즈니스 챌린지, 초기 창업자를 위한 초기창업기업 지원, 성장기 기업을 위한 창업도약 지원, 중견·대기업과 예술기업 간 협력을 촉진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사업 등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춘 지원체계를 단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예비 창업 단계의 역량 강화부터 초기 시장 진입, 민간 협력을 통한 확장 단계까지, 예술기업이 성장 과정 전반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예술분야 창업지원사업이 시작된 배경에는 예술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그에 따른 역할 분화의 요구가 있다. 최근 예술 활동은 전시나 공연 중심의 단일 구조를 넘어 기획, 제작, 유통, 교육, 기술 협업, 콘텐츠 개발 등 다양한 기능이 결합되는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며 다양한 파트너를 연결하는 조직 단위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이에 따라 예술 분야에서도 창업과 기업 형태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었다.
정책을 수행하는 기관의 입장에서 예술창업 지원사업의 핵심 목표는 예술시장의 전문화, 조직화, 분업화를 통해 시장의 양적·질적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다. 창작자 개인 중심의 구조에서 나아가 기획, 제작, 유통, 협업을 담당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형성되면, 예술 프로젝트의 완성도와 확장성이 높아지고 시장 전체의 역량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예술기업은 이러한 과정에서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자원을 연결하며,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어내는 중간 조직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중간 구조가 형성되면 창작자 역시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기획, 제작, 유통을 담당하는 조직이 다양할수록 작가의 작업은 다양한 플랫폼과 협력 구조를 통해 확장될 수 있고, 이는 순수예술의 표현 방식과 활동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된다. 또한 예술기업은 민간 기업, 지역사회, 기술 분야 등과의 협업을 통해 예술 프로젝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주체가 된다. 이러한 협력 구조는 예술시장의 외연을 확대하고, 새로운 유통 방식과 관객층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된다. 결과적으로 예술창업 지원정책은 창작자 개인을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기획·제작·유통·협업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시장 구조를 형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생태계 기반을 조성함으로써 예술시장의 전문성과 자생력을 높이고, 그 토대 위에서 순수예술 역시 더욱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Q 지원사업 신청자들 중 선정 가능성이 높은 팀들은 예술 아이디어를 ‘비즈니스 언어’로 어떻게 치환하고 있는가? 특히 창업도약 단계에서 예경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평가지표는 무엇인가?
A 예술 아이디어를 ‘비즈니스 언어’로 치환한다는 것은 예술을 상업적인 논리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 것인지 명확하게 설명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팀들이 아이디어의 독창성에 주목하지만 실제 사업 단계에서는 자신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그 필요성을 분명히 제시하고 그에 맞는 실행 구조를 설계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특히 자신들이 주목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지금 중요한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때의 문제의식은 특정한 사회적 이슈일 수도 있고,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나 관객의 변화된 수요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신의 콘텐츠나 서비스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 솔루션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고객의 경험과 삶, 예술시장, 혹은 사회적 환경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이러한 가치 제안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매출과 비용 구조, 가격 정책, 유통 방식 등 기본적인 사업 구조를 함께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업도약 지원사업에서 기관이 중요하게 보는 평가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해당 기업의 성장이 예술 생태계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기업의 비전과 사업 모델이 예술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장기적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다른 하나는 기업이 실제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다. 창업지원사업의 성격상, 기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확장될 수 있어야만 그 성장이 예술 생태계에도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업 아이템의 경쟁력, 사업 고도화 역량, 시장 대응 전략, 실행 계획의 현실성과 적절성 등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관련된 지표들도 함께 검토된다. 결국 평가는 예술적 아이디어의 독창성뿐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만들어낼 가치와 실행 구조, 그리고 기업의 지속 성장 가능성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Q 예술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 모델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예술가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지점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서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실현 가능성’의 근거를 예시한다면?
A 예술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 모델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어려움을 겪는 지점은 자신의 작업이나 프로젝트를 고객 또는 제안을 받는 입장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부분에 있다. 예술가 입장에서는 작업의 의미나 과정, 미학적 가치가 중심이 되기 쉽지만, 사업 단계에서는 상대방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에 맞춰 구조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즉, “왜 필요한가”와 더불어 “실제로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제안서에는 아이디어의 참신성뿐 아니라,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의 근거가 함께 제시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고객·시장·경쟁에 대한 이해다. 여기서 고객은 반드시 전통적인 ‘소비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 참여자, 컬렉터, 기관, 지역 커뮤니티, 기업 파트너 등 해당 프로젝트와 관계를 맺게 되는 다양한 주체를 포함한다. 이들이 실제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어떤 수요가 있는지, 그리고 유사한 프로젝트나 플랫폼이 시장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실행 계획과 프로토타입의 성과다. 예술 분야에서는 시제품 대신 파일럿 전시, 쇼케이스, 워크숍, 테스트 프로그램, 초기 협업 프로젝트 등도 프로토타입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시도에서 어떤 성과나 반응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단계별 실행 계획과 재무 구조를 구상하고 있는지를 제시하면 사업의 현실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는 핵심 역량, 즉 이를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팀의 구성과 자원이다. 팀 구성원의 예술적 이력과 전문성, 기획 및 제작 경험, 기술 역량, 협력 기관이나 네트워크, 공간·장비 등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자원이 얼만큼 확보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아이디어가 단순한 구상에 그치지 않고 실제 프로젝트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결국 실현 가능성은 하나의 요소로 판단되기보다 고객과 시장의 반응, 실행 경험, 팀의 역량이 서로 맞물려 있는 구조를 통해 종합적으로 설명될 때 설득력을 갖게 된다. 제안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상대방의 관점에서 차근차근 답해 나가는 문서라고 볼 수 있다.
Q 예술 후원 및 투자 유치를 위한 제안서 작성 시, 예술인들이 자주 범하는 전형적인 실수는 무엇인가? 특히 ‘포트폴리오(과거의 성취)’와 ‘비즈니스(미래의 비전)’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A 예술 후원이나 투자 유치를 위한 제안서는 제안을 받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구성과 강조점을 달리해야 한다. 공공기관, 재단, 기업 파트너, 투자자 등 각 대상이 궁금해하는 지점과 기대하는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전시나 프로젝트 후원의 경우에는 유사 프로젝트 수행 경험과 함께 작업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실행 계획과 협력 구조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반면 기업 투자나 장기 파트너십을 전제로 한 제안에서는 제안자의 작업 경험과 기획 역량이 어떻게 사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지속 가능한 활동 구조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따라서 제안서는 하나의 고정된 문서라기보다 대상자에 맞춰 핵심 메시지를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포트폴리오는 이러한 제안서의 기반이 되는 자료다. 이는 이력의 나열이 아니라 작가나 기획팀이 어떤 작업을 축적해 왔고 어떤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왔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사례의 정리라고 볼 수 있다. 대표 작품이나 전시, 주요 협업 프로젝트, 프로그램 운영 경험 등은 모두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현재 보유한 예술적 방향성과 실행 역량을 설명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포트폴리오(과거의 작업과 성취)’가 ‘비즈니스(앞으로의 활동과 비전)’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작업을 나열하기보다 그 경험이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나 협업, 활동 구조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줄 때 포트폴리오가 실제로 기능하게 된다. 따라서 제안서에서는 제안의 목적과 대상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선택하고 재구성하는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작업을 담기보 다, 이번 제안의 방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례를 중심으로 구성할 때, 과거의 경험과 앞으로의 계획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설득력 있는 제안이 될 수 있다.
Q 기업이나 재단 등 제안을 받는 대상에 따라 제안서의 ‘언어와 설득 구조’는 달라져야 한다. 파트너십을 성공으로 이끄는 ‘예술 피칭’만의 결정적인 차이(tip)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A 예술 분야의 피칭에서 중요한 점은 제안의 언어가 상대 기관의 목표와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읽히는지를 고려하는 것이다. 기업, 재단, 공공기관 등 제안을 받는 주체마다 기대하는 역할과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프로젝트라도 그에 맞는 설득 구조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은 제안서의 가치 제안이 지나치게 넓고 추상적으로 제시되는 경우다. 이는 예술 분야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예술 프로젝트는 개념과 의미 중심의 설명이 많기 때문에 제안자만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 무엇을 하는 팀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피칭에서는 한 문장으로 우리 기업이 가진 가치와 제공할 수 있는 것을 명료하게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문장이 바로 ‘가치 제안’으로, 기업의 솔루션을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고객이나 파트너에게 어떤 가치를 제시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가치 제안이 분명해지면 제안서 전체의 구조도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상대 기관의 철학이나 목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떤 협업이 가능한지,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도 이 한 문장을 중심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파트너십을 성공으로 이끄는 예술 피칭의 핵심은 프로젝트의 개념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제안자만의 가치와 역할을 한 문장으로 명료하게 전달하고 그것이 상대기관의 목표와 어떻게 만나는지를 설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Q 예술은 정량적 평가가 어려운 장르이지만 피칭에서는 ‘숫자와 지표’가 필수적이다. 예술 성과를 데이터화할 때 유의할 점은 무엇이며, 수치화가 어려운 가치를 설득하기 위해 예경에서 제안하는 대안적 지표나 비주얼 표준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A 데이터를 제시할 때는 프로젝트의 성격과 목적에 맞는 지표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프로젝트를 동일한 수치로 비교하기보다는 해당 작업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지에 따라 적절한 지표를 선택해야 한다. 또한 모든 사업에 적용되는 정답 같은 성과지표 조합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표 간의 일관성과 구체성을 유지하고 각각의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부 데이터를 인용할 때에는 출처가 명확한 객관적 자료를 사용하고 해당 데이터의 한계와 해석 범위를 충분히 이해한 뒤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치로 표현하기 어려운 가치는 정성적 성과를 일정한 형식으로 구조화해 제시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관객이나 참여자의 반응, 협업 기관의 평가, 프로젝트 이후 이어진 추가 전시나 협업 사례, 언론 보도나 평론 등은 중요한 성과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자료를 핵심 지표와 함께 정리하면,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예술적 가치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
비주얼 자료의 경우에는 복잡한 수치를 나열하기보다 프로젝트의 변화와 흐름을 보여주는 방식을 권한다. 전·후 비교 그래프, 성장 과정 타임라인, 협업 구조를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사례 중심의 인포그래픽 등은 성과를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숫자의 양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는 지표를 선택하고 그 의미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보여주는 것이다.
Q 최근 예술계와 기업의 매칭이 활발하다. 예술가 개인 또는 단체가 이러한 대기업 및 공공기관과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을 맺기 위해 피칭 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할 ‘상호 호혜적 가치(Give & Take)’는 무엇인가?
A 대기업이나 공공기관과의 협력에서 중요한 점은 후원이나 지원을 요청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어떤 가치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칭 단계에서부터 ‘무엇을 받을 수 있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를 동시에 보여줄 때 협력의 방향이 보다 분명해진다.
우선 기본적으로는 협력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실행 역량이 중요하다. 일정 관리나 예산 운영, 커뮤니케이션 방식, 결과물의 완성도 등은 파트너 입장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요소다. 이러한 기본기가 갖춰져 있어야 협력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다. 동시에 예술과의 협업을 고민하는 기업이나 기관들은 단순한 홍보 효과를 넘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이나 경험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은 조직이 스스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감각이나 메시지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칭에서는 기관의 철학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도 기존 방식과는 다른 인상이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점을 함께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은 신뢰할 수 있는 기본기 위에 예술만이 줄 수 있는 새로운 차별점이 더해질 때 만들어진다고 본다. 협력은 예측 가능한 실행력과 그 위에 얹히는 예상 밖의 예술적 가치가 만날 때 가장 오래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