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닉 도시탐험대’ 참관기
도시에 서린 기억의 힘
강재영 기자
Exhibition Focus
‘피크닉 도시탐험대’를 진행하는 지정우 건축가(왼쪽)와 아이들이 만든 ‘놀이풍경’(오른쪽)
제공: 피크닉(piknic)
아이들에게 ‘도시’는 어떻게 보일까? 아이들에게 도시의 공간 중 가장 친근한 장소는 아마도 놀이터일 것이다. 고무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인 미끄럼틀, 몇 번 타면 시시해지는 시소, 정해진 길로만 올라가야 하는 플라스틱 구조물. 어쩌면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편리하거나 안전한 곳이지만 자신들을 위한 공간은 아닐지도 모른다. 매일 보는 이런 풍경을 다르게 볼 방법은 없을까?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진행된 ‘2025 꿈의 스튜디오-피크닉 도시탐험대’는 ‘기억’을 도구로 하나의 접근법을 제안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1983년 지어져 2022년 운영 종료 및 철거까지, 40년간 대한민국 성장사의 상징이었던 ‘밀레니엄 힐튼서울’의 건축적-문화적 유산을 기념하는 전시 《힐튼서울 자서전》과 연계하여, 도시에 담긴 기억의 흔적들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도시를 감각하고 재구성하고 기억과 보존의 가치를 되새기게 했다. ‘2025 꿈의 스튜디오’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새롭게 선보이는 아동·청소년 시각문화예술교육 사업으로, 중심 키워드는 ‘창작’이다.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은 공간 거점으로 협력하여 ‘피크닉 도시탐험대’을 기획했다. 2025년 11월 한 달간 매주 토요일 총 5회차의 교육 프로그램과 전시회로 구성되었다. 놀이풍경과 다음 세대의 공간을 함께 짓는 건축가 지정우, 함께 만들어가는 건축과 도시에 관심을 가지고 공공의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을 만들어 온 건축가 임동우, 주민들이 도시 공간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디렉터 조영하가 강사진으로 참여했다.

‘피크닉 도시탐험대’에 참가한 아이들은 지정우 건축가의 지도 아래 피크닉 공간의 이곳 저곳을 탐험하며
오래된 풍경을 관찰하고 프레임에 옮겨그리는 활동을 진행했다
기억의 풍경 피크닉
11월 8일 토요일 오전 9시, 아직 열리지 않은 피크닉 전시장 옆 교육실의 찬 공기를 밀어내고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어찼다. ‘피크닉 도시탐험대’에 지원한 초등학교 4~6학년 18명의 ‘탐험가’들이 막 탐험을 시작하려는 소리였다. 일주일 만에 만난 아이들은 어색한 기운도 잠시,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을 맡은 지정우 건축가의 안내에 따라 왁자지껄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2회차 수업 제목은 ‘기억의 풍경 피크닉’. 아이들은 모둠별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자신이 만든 ‘놀이풍경’을 다른 친구와 도우미 선생님께 소개하며 긴장을 풀어나갔다.
지난 1회차 수업에서 만든 ‘놀이풍경’은 2025년 철거된 힐튼서울의 로비 이미지를 배경으로 아이들이 직접 고안한 ‘놀이장치’다. 기억이 담긴 피규어나 수수깡, 털실 등 일상적인 재료를 활용하여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마음에 품었던 상상의 놀이터를 3차원 공간에 꾸몄다. 아이들은 서로의 공간에 대해 듣고, 감정을 나누고, 장점을 이야기해주는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만든 공간을 설명하고, 친구들의 서로 다른 공간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기억과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이라는 존재의 영역에 대해 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를 위한 미끄럼틀 어휴 힘들어, 도마뱀이 놀 수 있는 공간, 눈사람 놀이터, 의도를 알 수 없는 장치 등, 아이들은 기억과 상상이 결합된 이 구조를 매개로 자유로이 질문하고 자신의 시각을 덧붙이며 힐튼 서울 로비의 풍경을 전유하고 확장하는 놀이를 이어갔다.
이어지는 활동은 드로잉이었다. 피크닉 앞마당부터 옥상까지 여러 공간을 누비며 오래된 풍경을 탐색하고, 자신이 직접 만든 8개의 프레임 안에 그려나갔다. 아이들은 사뭇 진지하게 공간을 관찰하고 무엇이 오래된 것인지 선생님에게 질문하며 시간의 흔적을 옮겨 그렸다. 피크닉 한쪽에 자리한 축대를 표면의 거친 질감까지 표현하거나, 전시 중인 자동차 등으로 관찰 대상을 옮기며 풍경의 정의를 새롭게 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피크닉 도시탐험대’를 진행하는 지정우 건축가
마지막 활동은 2차원으로 옮겨온 흔적을 활용하여 3차원의 ‘놀이풍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놀이기구 없이! 더 다양하고 재밌게 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설명처럼, 만드는 모양에 제한은 없었다. 아이들은 드로잉을 하드보드에 붙여 아크릴 상자에 세우고, 지점토와 각자 가져온 나뭇가지, 과자 부스러기 등으로 자신만의 3차원 놀이공간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땅을 다지는 재료로 제안된 지점토는 아이들 손에서 무지개가 됐고, 남산타워가 됐다. 작은 아크릴 바구니 위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담은 상상의 놀이풍경을 자기 손으로 창조해냈다.
프로그램을 이끈 지정우 건축가는 우리가 흔히 쓰는 ‘놀이터(Playground)’라는 단어 대신 ‘놀이풍경(Play-scape)’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미묘한 차이에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대하는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이 담겨 있다. ‘놀이터’가 미끄럼틀, 시소처럼 기능이 정해진 ‘기구’ 중심의 공간이라면, ‘놀이풍경’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 그 자체가 중심이 되는 경관적 개념이다. 아이들이 공간과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야기와 움직임이 곧 놀이의 본질이라고 그는 말했다. 놀이의 주도권을 정해진 ‘기구’에서 ‘아이’에게로 옮겨옴으로써, 아이들이 자율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고,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써 내려가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 이는 도시를 관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아이들이 도시를 관찰하고 기록할 때 사진 촬영 같은 편리한 디지털 방식 대신, 직접 손으로 그리고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손끝에 남는 감각이 결국 머리와 가슴에도 남는다는 것이다. 기억과 보존의 가치를 몸으로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이러한 과정에서 구현되었다.
아이들에게 ‘도시’라는 단어는 너무나 거대하고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임동우 건축가는 도시를 ‘방’으로 전유하고, 방을 꾸미는 것처럼 도시를 바라보게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이 접근법은 아이들에게 도시가 그저 주어지는 거대한 시스템이 아니라, 내가 직접 가꾸고 변화시킬 수 있는 친근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는다. 이 철학은 프로그램 3회차에서 아이들이 ‘남기고 싶은 것과 새로 생겼으면 하는 것’을 중심으로 ‘나만의 동네 지도’를 만들며 구체화되었다. 4회차에서는 팀원들과 각자의 지도를 합쳐 ‘하나의 도시를 함께 만드는’ 협업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깊은 애착과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된다.

교육이 끝나고 아이들과 잠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놀이풍경’이 실제로 지어져 거기서 놀 수는 없는 걸 알지만,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 볼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좋았다고 말했다. “오래된 도시 풍경을 꼼꼼히 보는게 재밌었다”고도 했다. 나의 도시였던 서울이 사실 너의 도시이기도 했음을, 이들이 묘사하는 놀이풍경과 드로잉 속에서 새삼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피크닉 전시기획팀 관계자는 현장에서 유대감과 즐거움의 균형이 중요함을 다시금 느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소그룹으로 나누고 보조 강사를 배치했는데, 강사가 교육의 보조자로서 역할뿐 아니라, 소그룹 이름을 함께 짓고, 만들기를 함께 해나가는 과정에서 생긴 신뢰와 유대관계가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을 표현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을 다시 들여다보는 경험을 그리기와 만들기, 그리고 전시를 통해 다차원적으로 접근하는 데에 첫 단추는 바로 ‘관계’였다.
피크닉 도시탐험대는 기억의 흔적으로서 도시를 새롭게 인식하고 직접 자신의 손으로 창조하는 과정에서 《힐튼서울 자서전》 전시를 보다 다차원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계기였다. 3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관찰하고, 만들고,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도시에 서린 기억의 힘을 다층적으로 체험하도록 했다. 아울러 미래 세대가 예술을 통해 자신의 감각과 사고를 확장하는 장으로서 ‘꿈의 스튜디오’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