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리뷰 : 향의 곡예, 영토의 저편

전민지 미술사, 미술비평

Special Feature

〈KANGSE SpSt〉에서는 주기적으로 향수를 뿜어낸다.
사진 : Mark Blower 제공 : 필라 코리아스 런던, PKM 갤러리 서울

역사의 이름으로
“당신은 도시나 고향의 냄새를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구정아는 한국의 향기 메모리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앞서, 대표 작가로 선정된 구정아와 공동 예술감독 이설희, 야콥 파브리시우스(Jacob Fabricius)는 누구나 향에 얽힌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오픈 콜을 진행했다. 누군가는 분단 이전 함경남도에서 맡았던 석탄과 산양유 냄새를 기록했으며, 어떤 이는 천 이불보와 나프탈렌이 미묘하게 섞여 있던 전통 자개장 속 냄새를 되짚었다. 참여자의 출신지 역시 한국을 넘어 북한, 일본, 싱가포르, 크로아티아 등으로 다양했다. 이처럼 실제 국적, 거주지, 세대와 같은 특별한 조건 없이 몇 달의 공모 기간을 거쳐 수집된 총 600여 개의 이질적 ‘향기 메모리’는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라는 제목 아래 전시장 곳곳에 흩뿌려졌다. 일상의 이미지로부터 갖가지 감각을 섬세하게 엮어온 구정아는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지각의 범주를 확장하며 공백의 시공간에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작가의 공감각적 실험은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여러 시도를 거친 후 영국 런던 채링 크로스(Charing Cross) 역에서 선보인 〈Odorama〉(2016)는 이번 전시의 프리퀄(속편) 격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제목인 ‘오도라마’는 향기를 뜻하는 영단어 ‘odor’에 드라마의 일부 철자인 ‘rama’를 결합한 조어로, 이번 한국관 전시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한다. 버려진 지하철 플랫폼에서 향기와 빛이 투명하게 피어오르던 해당 작업은 2024년 숱한 이들의 사적 경험과 교차하며 전에 없던 모습을 띠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이는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구축된 사회적 공간이 물리적 공간에서 실현된 예시다. 더 나아가, 타인의 기억으로 축적된 텍스트는 작가에게 단순한 응답의 재료라기보다 편집과 번역의 대상이 되었다. 국내 브랜드 논픽션 의 협업으로 선별된 향기 키워드는 도시, 밤, 사람, 서울, 짠내, 함박꽃, 햇빛, 안개, 나무, 장독대, 밥, 장작, 조부모님 댁, 수산시장, 공중목욕탕, 오래된 전자제품이었다. 이처럼 오래된 땅을 탐방한 개개인의 목소리는 도시, 연도, 키워드 기준의 분류 과정을 거쳐 새벽의 해무 향기, 오래된 한옥의 밥 짓는 냄새, 매연과 아스팔트 냄새 등 한국 근현대사를 시대별로 압축하는 16종의 향으로서 전시를 지탱하고 있다.

무한으로 분화하는 향기
한편, 〈OCV DIFFERENTIAL PEFS〉(2024) 등 뫼비우스 띠의 형상으로 전시장 안팎에 놓인 나무 조각과 공간 바닥을 수놓은 패턴〈OCV COLLECTIVE SFEP〉(2024)은 시대적 초상을 그리는데 복선의 기능을 다 한다. 전시장에서 연속하여 발견되는 무한대 모티프는 공간을 하나로 연결하는 테마가 되어 구정아가 창안한 개념 ‘우스(Ousss)’를 상기시키기에 이른다. 1998년부터 작가의 작업에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변형체로서 등장한 우스는 생명체인 동시에 세계 그 자체다. 분명한 가시적 형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의 존재는 명백하다. 이번 전시에서 구현하는 우스는 중성적인 포스트 휴먼 동상이자 디퓨저 조각인〈KANGSE SpSt〉(2024)이다. 어딘가로부터 날아와 한국관에 방금 도착한 듯 보이는 그의 모습은 만화 캐릭터를 상기시키며 모종의 익살스러움을 자아낸다. 그가 코로 내뿜는 연기는 샌달우드와 유칼립투스 등 나무 진액 추출물을 기초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조향 결과물로, 창문 너머로 보이는 수풀과 중첩되며 독특한 후각적 경험을 가능케 한다.

또한, 전시의 주축이 되는 16종의 향기〈[OCV RC 1-16] REMOTELY CONNECTED〉(2024)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곡예를 펼친다. 구정아는 오브제를 열거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전시장 기둥 뒤나 천장 근처에 향을 ‘숨기듯이’ 설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공교롭게도 군도를 이루며 동서남북으로 흩어지게 된 향기는 봉인되지 않은 공간에서 코를 가볍게 적신다. 전시장 내부 QR 코드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 한국관 홈페이지에는 해제(解題) 역할을 하는 향기 색인이 수록되어 있다. 다만 특정한 향기를 식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을 그려나가는 상상에 한계를 두지 않겠다는 의도적인 설계로 보이나, 각 향을 이루는 정보의 부재는 관객 하나하나가 향하는 사유의 경로가 분화하는 원인이 된다. 특히 비엔날레 국가관이라는 장소 특정성을 고려하면, 근현대 한국의 역사적 맥락 이해 등 전시가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조건이 비한국인 관람객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공간의 ‘측정 불가능성’을 두고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경악시킨다”고 말한 바 있다.2 유사한 이유로, 향기 분자가 부유함과 동시에 끝없이 팽창하게 된 공간은 점차 누군가의 경험 바깥으로 향한다는 점에서 파악 불가능한 대상에 머무를 여지가 있다.

한국관 외경

기체(氣體)라는 기체(基體 )에서
그렇다면 이렇게 형성된 향기 풍경은 한국의 온전한 거울상이 될 수 있는가? 특정한 지역에 기대지 않은 채 “모든 곳에 기반을 두고 작업을 진행한다(lives and works everywhere)”는 구정아의 작가 소개는 일종의 “매니페스토”로 작용하는 동시에3, 위 질문에 대해 간결한 답을 던진다. 국경과 세대, 정체성의 경계가 소리 없이 가라앉은 이곳에는 한반도의 비물질적 초상화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는 미완의 추상화이기도 하다. 오히려 작가의 시도는 한반도의 유구한 역사를 경유하더라도, 국가를 온전히 재현하는 작업은 영원히 완성될 수 없음을 모순적으로 강조한다. 추측하건대, 한반도라는 지리적 범주를 감각으로써 와해하려는 작가의 탈국가적 태도는 베니스비엔날레의 ‘국가관’이라는 배타적이고도 근대적인 시스템을 무력화하겠다는 의지와도 맞물린다. 물론 국민국가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견고하던 지역성은 이곳에서 매일 새롭게 협상되고 있다. 어쩌면 페터 한트케(Peter Handke)가「관객모독」(1966)에서 썼듯이 경계란 붕괴될 수도, 통과될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올해 비엔날레의 전체 주제와도 적확하게 공명한다.

한국관 바깥으로 나가는 길, 관객은 다시금 수풀을 마주한다. 열린 문 너머로 넘실대는 햇빛과 이탈리아 북동부 바다를 거쳐온 바람은 향의 흔적을 천천히 지워낸다. 그러나 출구 근처에서 마주했던 울창한 숲의 향기는 전시장이 자리 잡고 있는 자르디니 공원에서도 묘하게 이어진다. 확정적이라고 믿었던 안과 밖의 경계 역시 사실은 명확하지 않은 셈이다. 이처럼 안과 밖의 냄새와 향기가 뒤섞인 기체(氣體)는 전시를 전반적으로 뒷받침하는 기체(基體)가 되어 한국관이라고 명명된 장소를 다시 써 내려간다. 관객이 하나하나 오갈 때마다 전시장은 이들을 멈춰 세우고 고정된 개념을 타파할 시간을 불어넣는다. 그러므로 올해 구정아가 선보이는 공간은 일시적 정거장과 다름없다. 작가가 논하는 영토의 저편, 그 보이지 않는 실체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오래도록 닿지 못했던 곳을 바라보며, 우리는 또 다른 대화를 위해 시적 세계와 현실 세계의 출발선에 각각 발을 내려둘 따름이다


1 논픽션이 전시와 동명의 향수 ‘오도라마 시티 오 드 퍼퓸’을 258,000원에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은 브랜드와의 파트너십을 통한 현대미술의 상업화를 예증하기도 한다. 정준모가 짚은 바와 같이, 비엔날레는 “쩐의 전쟁”이자 “사치재 브랜드의 잔치”인가? 정준모 「비엔날레, 사치재 산업의 각축장」아주경제 2024 https ://www.ajunews.com/view/20240506172350690
2 마르쿠스 슈뢰르 지음 정인모, 배정희 옮김 『공간, 장소, 경계』 에코리브르 2010 pp. 10~11
3 Stephanie Bailey “At the Venice Biennale, immerse yourself in the evocative scents of Korea” Art Basel 2024 https ://www.artbasel.com/stories/koo-jeong-a-venice-biennale-korean-pavilion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관 바닥을 새로 제작했다

곳곳에 다른 향이 입혀진 오브제가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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