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해외진출 —최근의 모습들
김혜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예술정책연구실 연구위원
Special Feature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신문읽기〉 퍼포먼스를 진행중인 성능경
제공 : 백아트
‘K-’의 일상화, 시작하는 K-Arts?
벌써 2024년을 되돌아볼 시기가 왔다. 사회 전반적으로 높은 물가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걱정,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와 사회적 불균형 문제를 1년 내내 뉴스에서 들어온 한 해였다. 미국 대선 결과가 나왔고, 파리올림픽이 열렸고, 한류는 글로벌 시장에서 그 입지를 더 강력하게 다지고 넷플릭스, 애플TV, 디즈니+ 등에서의 한국 콘텐츠의 인기와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한류’는 일상어가 된 듯하다. 미국에서 한국의 냉동 김밥이 유행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물회면과 돼지국밥 같은 음식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의 음식 리스트에 등장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전역에서 한국 식당이 급증하며 특히 K-콘텐츠와 연계된 한식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이런 문화적 흐름 속에서 정부는 ‘K’를 온갖 곳에 수식어로 붙이던 행보에 박차를 가하면서 콘텐츠, 한식,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세계화와 국제화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예술 분야까지 확산하자며 ‘K-Arts’를 외쳐온 정부의 움직임은 최근 그 어느 때보다도 ‘국제화’로 쏠리고 있다.
미술계에도 ‘한국미술의 세계화’란 레토릭은 익숙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간계획서 등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이고, 미술분야의 국제교류 관련 자료들에서 빈번히 눈에 띈다. 사실 피부에 크게 와닿지 않던 그 문구는 키아프-프리즈 서울이시작된 2022년부터, 국제적 갤러리들이 서울에 오픈했다는 소식들이 속속 들려오면서부터,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가깝게 느껴지고 있다.
한국미술의 2024년이 어떠했나 떠올려 보면, 먼저 2023년부터 집중된 한국작가, 한국미술에 대한 해외 유명 미술관들의 전시 소식이 생각난다.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의 《Hallyu! The Korean Wave》는 2022년 시작해 현재까지 순회 중이고, 다양한 한국미술 관련 전시들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키아프-프리즈 서울이 3회를 맞이하면서 다른 행사 및 프로그램들과의 연계가 다양해지면서 축제 분위기가 강해졌다. 2022년에 키아프와 프리즈에 각각 약 7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고, 2023년과 2024년에는 키아프 8만 명, 프리즈 7만 명 정도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올해 키아프-프리즈 서울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갤러리가 참여했고, 특히 다양한 국가의 갤러리 참여가 눈에 띄었다. 2026년까지 공동개최가 확정된 키아프-프리즈 서울의 후반기에 돌입하게 되는 2025년부터의 행보를 미술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미술시장에서 국제화에 대한 소식들이 2023년과 2024년 들어 부쩍 여러 방면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국미술이 해외에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간략히 살펴보자.
양혜규 개인전 《윤년》 사우스뱅크센터 헤이워드갤러리 전시 전경 2024
사진 : Mark Blower, Courtesy the artist and the Hayward Gallery
제공 : 한국국제교류재단
2023~2024년 해외미술관들의 한국미술 전시 집중 개최
2023년부터 유독 미국에서 한국미술 전시가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유명 미술관들에서 속속 한국미술 관련 기획전을 개최했다. 2023년 9월 개막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Only the Young :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 전시에서 성능경 작가는 부채에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10월 말에는 필라델피아미술관에서 동시대 미술을 보여주는 《The Shape of Time : Korea Art after 1989》가 열렸다. 비슷한 시기에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Korea in Color: A Legacy of Auspicious Images》를 개막했다. 11월 초에는 메트로폴리탄에서 한국의 유물과 현대미술품이 한자리에 모인 《Lineages : Korean Art at the Met》가, 12월 초에는 덴버미술관에서 《Perfectly Imperfect: Korean Buncheong Ceramics》가 열렸다.
이뿐인가?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인스티튜트의 미국 국립아시아박물관은 2023년 개관 100주년을 맞아 박찬경 개인전 《Gathering》을 개최했고, 페이스갤러리 뉴욕 본사는 전속작가로 유영국를 영입하고, 2023년 유영국 개인전《Mountain Within》을 개최했다. 특히 유영국의 해외 개인전은 처음인 만큼 국내 미술계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작품 경매에서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2024년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인스티튜트 국립아시아미술관 앞 프리어 광장에 서도호의 조형작품 〈공인들〉이 설치되었고, 2024년 9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이불의 파사드 커미션 신작을 공개했다. 런던 테이트 모던은 이미래의 현대자동차 커미션 전시 《Open Wound》를 10월에 공개했고, 양혜규는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10월부터 대형 개인전인 《윤년》을 개최하고 있다. 미술작가의 전시는 아니지만 2022년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Hallyu! The Korean Wave》는 현지에서 좋은 평가와 함께 흥행 성적을 보여주었고, 202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물론 이 모든 전시에 한국 정부나 기업의 후원 등이 있었지만, 유명 미술관이 자신들의 정체성 및 브랜딩을 고려할 때 한국미술에 주목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면 이런 전시들은 개최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미술 수집에 대한 관심 증가
필자는 올해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뢰로 미국 미술관들이 소장한 한국 현대미술품에 대한 조사연구1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일정 정도 이상의 한국미술 컬렉션을 소장한 미술관들의 컬렉션 리스트, 수집 경로 및 방법, 최근 관심사항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뉴뮤지엄, 뉴욕현대미술관(MoMA), 브루클린미술관,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Peabody Essex Museum ), 스미소니언국립아시아미술관, 클리블랜드미술관, 시카고미술관, 휴스턴미술관, 게티미술관, LA 카운티미술관(LACMA),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의 미국 동서부 및 중부 미술관들이 그 대상이다.
많은 미술관에서 2010년대부터 한국미술품을 집중 수집한 흐름이 드러나는데, 그 이전에는 간헐적으로 한국으로부터의 기증이나 선물, 개인 컬렉터의 기증을 통해 한국미술품이 소장되었다. 작가들은 꽤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지만, 백남준, 서도호, 양혜규, 김수자, 니키 리, 크리스틴 선 킴, 이우환, 바이런 킴 등 국제미술계에서 잘 알려진 한국 현대 작가들이 자주 눈에 띄고, 한국 미술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국계이지만 국적이 미국이거나 기타 국가인 작가의 경우가 꽤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워싱턴 D.C 국립미술관은 이가경의 작품을, LACMA는 김인태, 민병헌 등의 작품을 올해 신규 소장했다. 뉴욕 MoMA는 성능경 등의 작품을 최근 수집했고, 휴스턴미술관도 2021년 신관 ‘The Nancy & Rich Kinder Building’을 개관할 때, 최병훈의 〈선비의 길〉이란 커미션 작품을 수집하며 이사무 노구치 조각공원에 영구 설치했다. 그리고 2009년에 구입한 서도호의 〈카르마〉와〈낙하산병〉 외에도 2024년 〈Portal〉을 영구 전시하고 있다. 특히〈Portal〉은 휴스턴미술관이 서도호에게 2007년 한국관 개관을 위해 제작을 의뢰한 것으로, 2015년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2톤에 달하는 작품의 무게를 견딜 수 있고, 작품의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 마련을 위해 신관 개관까지 기다렸다가 2024년 ‘The Nancy & Rich Kinder Building’에 설치했다. 올해 만난 해외미술관 큐레이터들, 특히 한국실 등이 설치되어있거나 기존 한국미술품 컬렉션이 일부 있던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아시아 미술로서의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에서 현대미술로서의 한국 작가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높아지고 있음을 체감한다고 밝혔다.
서도호 〈Public Figures〉 설치 전경
© Do Ho Suh, 2024.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 National Museum of Asi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Photo by Colleen Dugan
제공 : 한국국제교류재단
다음 단계를 위해
현재까지 한국미술이 해외미술관에 소장되거나 다뤄지는 방식은 일종의 개론서에 가깝다. 특정 사조나 한국미술의 특정 계보를 잇는 작가들을 다루고 설명해주는 전시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고, 소장한 작품의 작가들 또한 아직 제한적이다. 그리고 한국미술 관련 전시는 한국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이 그 출발점이 된 경우가 많다는 것은 전략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 한국미술계, 한국기업, 한국 정부의 지원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트뉴스페이퍼』는 11월 8일 기사에서 한국의 미술시장 규제가 완화되면서 한국 예술가들의 해외 진출이 더 활발해질 것이라 전망하며, 조만간 한국 작가의 새로운 경매기록이 나올 것이라 내다봤다. 이는 지난 7월 개정된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서 ‘제작된 후 50년 이상 지난 작품’에 대한 국외 반출이 금지되었던 조항의 인정 범위가 20년가량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기존 조항으로 인해 작년 프리즈 런던의 마스터스 섹션에서 공개된 곽인식의 1962년 작품 출품이 무산되었던 것과 같은 사례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다. 이 기대가 현실화되고, 한국미술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확장되려면, 우리는 ‘K’를 너무 드러내는 집단 나르시시즘적 모습을 좀 덜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간 정부와 민간의 지원이 한국미술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이제부터는 보다 유연한 자세와 깊이있는 담론의 형성을 통해 한국미술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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