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전시 리뷰 : 병행 & 위성 전시 I

노재민 기자

Special Feature

《모든 섬은 산이다 Every Island is a Mountain》

4.19~9.8 몰타기사단 수도원
Palazzo Malta–Ordine di Malta

강익중, 최정화, 곽훈 등의 작품이 전시된 야외 정원 2024
사진 : 박지민 제공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모든 섬은 산이다》의 개막 행사에 방문한 유명 미술계 인사들을 열거한 기사가 연이어 보도되었다. 기사의 요지는 그들의 방문이 한국미술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나게 한다는 것. 방문 인사, 행사의 순서, 정계 인사의 소감, 행사의 후원 주체 등에 관한 온갖 얘기를 제쳐두고 전시로 돌아가보자. 이 전시는 1995년에 설립된 자르디니 공원 내 한국관 30주년을 앞두고 이를 기념하며 한국관의 지난 여정을 되돌아보기 위해 기획됐다.

역대 한국관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 36명(팀 )의 82점을 전시한다.1 그들은 각기 다른 주제로 한국관 전시에 참여했을 터. 사실은 공통된 기획 아래 있지 않았던 작가들을 한국관에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았을 때 어떠한 기획이 가능할까? 이들을 일관된 주제로 엮을 수 있을까? 기획팀은 한국이 자르디니의 마지막 국가관으로 입성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른바 ‘산파’ 백남준에 주목한다. 그가 1993년 한스 하케(Hans Haacke)와 함께 독일관 대표 작가로 참여해 독일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을 때 내세웠던 메시지는 “서구 중심적인 사고가 갈라놓은 유라시아 연속체에 대한 상상과 초연결의 미디어 기술을 통해 분열된 세상을 다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개별적인 섬들이 실제로는 해저 지형과 해양 생태계로 연결되어 산맥처럼 이뤄져 있듯이, 이번 전시는 분절된 역사를 소환해서 수평적으로 재구성한다.

한국관 개관 당시 선보였던 작품부터 신작을 아우르는 출품작은 몰타기사단 수도원의 복도, 작은방, 중정과 회랑, 중세의 공간, 야외 등에 펼쳐졌다. 30년의 스펙트럼을 가진 작품은 12세기에 건축된 중세 시대의 건물을 여행하며 한국의 동시대와 베니스의 중세가 포개진다. 전시는 예술을 통해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을 연결하며 “고립된 개인의 삶과 예술이 결국 역사와 사회적 맥락에 연결되어 있음”을 역설한다. 황인기는 〈이보게〉(2023)를 통해 50년 뒤 우리의 일상 풍경을 5000년 더 먼 미래에서 바라보는 상상적 관점을 교차한다. 작품은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유일하게 프레스코가 남아있는 공간에 설치됐다. 이형우의〈무제〉(2023)는 각각의 섬이 몸을 기대어 서로를 지탱하면서 또 하나의 형태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전시 주제와 공명한다. 전시를 기획한 심소미 큐레이터는 “각 섬을 어떻게 엮을지 고민했다”고 말하고 임근혜 아르코미술관장은 “섬이 산이 되는 풍경을 그려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특성상 아카이브에 힘을 쏟았다. 도입부에 위치한 이완의 〈커넥서스 : 섬 속의 산〉(2024 )은 한국관의 모든 전시 정보 데이터를 인공지능을 활용해 조합하고 풀어낸 열린 아카이브 작업으로,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소환한다. 아카이브 섹션에서는 작고 작가 김인겸, 박이소, 윤형근, 전수천의 드로잉과 소품을 전시했다. 아카이브 팀은 지난 30년간 한국관의 자료를 모으고 이를 개괄하는 연보를 작성해서 아카이브 북 『마지막 국가관』을 출간했다. 자료집에는 회차별 전시 정보와 텍스트 및 이미지 자료뿐만 아니라 한국관 공동설계자인 김석철과 프랑코 만쿠조의 건립 당시에 대한 회고, 백남준의 역할과 그의 비전에 대한 이영철의 글, 한국관 전시의 큐레이터십을 본전시와의 관계 속에서 분석한 김홍희의 글, 한국관 운영의 변화 과정을 정리하는 것에서 나아가 한국관의 향후 과제를 제시하며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호경윤의 글 등이 수록되었다. 자료는 웹사이트(www.venicebiennale.kr)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아카이브 섹션

황인기 〈이보게〉 (사진 오른쪽) 혼합재료 160 × 270cm 2023
《모든 섬은 산이다》몰타수도원 전시 전경 2024
사진 : 박지민 제공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영국: 무한세계로의 여정 A Journey to the Infinite: Yoo Youngkuk》

4.20~11.24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
Fondazione Querini Stampalia

지상층 전경
제공 : 유영국문화재단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혹은 ‘故 이병철 회장과 방탄소년단 RM이 소장한’의 수식어가 붙는 유영국의 “유럽 첫 개인전”이 “유명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 및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리모델링한 건축 공간”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에서 개최된다. 이와 같은 화려한 수식어들은 흥미를 자아내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겠으나 프리즈와 아트뉴스를 비롯한 권위 있는 외신들이 일제히 유영국을 주목하며 베니스에서 봐야 하는 전시로 손꼽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20세기는 서양의 역사가 “전통”이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것은 아류로 간주하는 시선이 팽배했으나 지금의 우리는 “오소독스”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여러 문화가 마주치고 융합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미술이 탄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인혜 전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은 유영국이 20대에 몬드리안을 좋아하며 유화가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 한국에서 추상화를 시작했으나, 몬드리안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을 짚는다. 몬드리안이 도회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반면, 유영국은 고향 울진의 장엄함에 몰두했다. 전시 기획자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가 글로벌 사우스의 모더니즘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유영국 : 무한세계로의 여정》과도 맞닿는다는 점을 언급한다. 해외에서 단색화가 알려졌지만, 단색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선 세대부터 이해해야 한다는 점 역시 전시의 당위성을 호소하는 수사학이다.

전시의 구성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공간을 고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시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지상층은 외부와 내부가 조응하는 공간으로 온습도가 맞지 않는 공간이다. 벽에 작품을 걸기에는 방해하는 요소가 많아 기단을 만들어서 그 위에 판화를 설치했는데, 이는 바다에 떠있는 섬처럼 보이는 효과를 냈다. 이 판화들은 한국에서 발표된 바 없었던 작품이다. 1층의 공간은 유서 깊은 스탐팔리아 재단의 방대한 역사가 담긴 라이브러리로 아카이브 자료, 다큐멘터리, 7점의 회화가 전시됐다. 공간의 나무와 바닥과 어울리는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진열재를 베니스에서 조립해서 책가도를 연상시키는 진열 방식을 선보였다. 책장에는 소품, 도자기, 화집 등이 놓였는데, 거실이나 서재처럼 꾸민 도서관은 3층으로 가기 위한 준비 단계로 기능한다.

“병행전시로 선정되기 위해 강조한 것이 무엇이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큐레이터는 여러 가지 요소를 꼽은 뒤 마지막으로 “당연히 유영국 선생님은 (병행전시로 선정) 된다”고 답변을 마무리했다. 결국 전시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유영국의 작품 그 자체이리라. 유영국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은 3층으로,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의 작품들이 배치됐다. 작품에서 사용한 색의 그라데이션은 캔버스 너머로 확장되는 공간을 암시하게 하는데, 이를 두고 『프리즈』의 바네사 페터슨(Vanessa Peterson)은 “깊은 파랑, 대담한 오렌지, 풍부한 빨강의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을 조합해내는 능력은 마크 로스코를 떠올리게 한다”고 극찬했다. 유영국의 평면 회화가 자아내는 풍부한 공간감을 느껴보자.

3층 전경
제공 : 유영국문화재단

1층 전경
사진 : 월간미술

《이배: 달집태우기 Lee Bae: La Maison de la Lune Brûlée》

4.20~11.24 빌모트 재단
Wilmotte Foundation

〈버닝〉2024《이배 : 달집태우기》
빌모트 재단 전시 전경 2024
사진 : Alessandra Chemollo

이배는 1990년 도불 후 파리에서 우연히 숯을 보게 되면서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게 되었다며, 숯을 재료로 계속사용하게 된 계기는 고향 경상북도 청도시에 내려온 민속 의례인 ‘달집태우기’에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청도의 주민들은 해마다 음력 1월 15일 정월 대보름날 달이 떠오를 때 다같이 모여 청솔가지를 베어다 세운다. 그 다음 각 집에서 모아온 짚단을 그 주위에 새끼줄로 붙들어 매고 소원이 적힌 한지 조각을 묶어 불을 지핀다. 주민들은 액운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행사를 지내고 여기서 나온 숯을 청결하다고 여겨 이를 보존하며 가정에 좋은 기운을 모신다.

이배는 새해의 소망을 담은 세계 각지의 메시지를 수집하여 한지에 옮겨 적은 다음 2월 24일 정월 대보름날 청도 달집태우기 행사에서 달집에 묶어 함께 태웠다. 달집태우기 전 과정을 영상으로 담은 작품 〈버닝 Burning〉(2024)은 빌모트 재단에 방문한 관람객이 먼저 마주하게 될 작품이다. 달집에 불이 붙는 순간부터 다음 날 아침 숯만 남는 순간까지의 과정은 길고 좁은 복도에서 21m의 화면을 통해 상영된다. 이때, 토드 마코버(Tod Machover)의 음향 작품 〈불의 항해 Sailing Through Fire〉(2024)가 공명한다.

복도를 지나면 나오는 공간 입구에는 대형 평면작〈불로부터 Issu du Feu〉가 관객을 맞이하는데, 절단된 숯이 타일처럼 배열되었다. 이배는 이탈리아의 오래된 제지회사 파브리아노의 친환경 종이를 전통 배첩(marouflage) 기법으로 공간의 바닥과 벽에 도배했다. 바닥은 한지를 두 겹으로 붙인 후 아크릴로 코팅했고, 벽은 이탈리아의 전통 종이 한 겹으로 도배했다. 이 공간에서는 달집태우기에서 나온 소나무, 포도나무, 버드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숯을 도료로 삼아 바닥과 벽면에 굽이치는 〈붓질 Brushstroke〉(2024) 설치작 3점과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검은 화강암을 깎아서 만든 4.6m의 〈먹 Meok〉(2024)을 마주할 수 있다.〈먹〉의 세 면은 화염 처리되었고 한 면은 붓질의 입체적 표현이 새겨있는데, 대리석 채석장과 전문 기술로 유명한 카라라산 대리석을 재료로 대리석 장인들과 협업한 작품이다. 작가는 예부터 동북아시아에서 세대 간 학문과 예술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체로 사용되던 먹을 조각처럼 상징적으로 세웠다. 베니스 섬이 가라앉을까봐 3톤 이상은 건물 내부에 들이지 못하는 도시의 규정에 따라 원래 23톤에 육박하던〈먹〉은 무게를 줄여야만 했다. 현지 석공과 수개월에 걸쳐 돌 내부를 파낸 다음 이탈리아 카라라 공방에서 운송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전시장 외부 베니스 운하로 이어지는 빌모트 재단의 뜰에는 이번 전시를 위해 〈달 Moon〉(2024)을 임시 구조물로 제작했다. 구조물 내벽은 파브리아노사 종이로 표구되었고, 천장의 노란색 유리 패널에서 나오는 빛은 베니스의 라구나 혹은 모닥불이 피어올랐던 청도를 비추는 보름달의 빛을 상징한다. 즉, 불에서 시작해서 물로 나아간다.

한솔문화재단과 빌모트 재단이 전시를 공동으로 주관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한솔은 제지회사가 모기업인 회사다. 다시 말해, 종이를 다루는 회사다. 나무로 만들어지는 종이는 이배에 의해 나뭇가지에 엮여 태워지고, 숯이 되어 그림이 된다. 이배는《달집태우기》를 통해 자연과 문화가 섞이고 순환과 재생이 반복되는 여정을 그려낸다.

전시를 기획한 발렌티나 부찌(Valentina Buzzi)는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소원해진 이웃과 마을, 도시와 국가. 심지어 하나뿐인 행성마저 무심함으로, 정체성과 정축(正軸) 모두 흐트러진 우리는 서로의 경계역(liminal space)에 존재하는 서로의 이방인이 되었다”며 “그렇게 낯설어진 이웃과 이방인들 사이 접점을 마련하는 시도는 자연 순환을 반향한다”고 의미를 전했다. 다시 말하면 이번 전시는 “낯설어진 이웃과 이방인들 사이 접점을 마련하는 시도”다.

달집 앞 이배
사진 : 김상태 제공 : 작가, 조현화랑

〈불로부터〉(사진 왼쪽)
《이배 : 달집태우기》빌모트 재단 전시 전경 2024
사진 : Alessandra Chemollo 제공 : 작가, 조현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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