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민과 재환

5월 18일부터 8월 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주호민과 주재환의 2인 전 《호민과 재환》이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미술관 전시의 ‘트랜스미디어’ 현상을 탐색하며 두 작가가 어떻게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하고 관객에게 전달하는지 알아보고 오늘날 미디어에서 ‘이야기’ 갖는 힘에 주목한다. 총 네 섹션 로 구성된 전시는 첫 번째 섹션 <이미지에 이야기를 담다>에서는 주재환 작가의 시적 상상력에 주목해 그의 작품에서 텍스트가 함축하고 있는 메타포와 역할을 보여주고, 두 번째 <지금 여기, 그리고 너머의 세계>는 두 작가의 작품을 교차시키며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태도와 관점을 알아본다. <이미지로 이야기를 풀다>, <만능 이야기꾼, 주호민>에서는 만화가 주호민의 독자적 서사 방식을 살펴보며 그의 콘텐츠가 미디어 간 경계를 넘어 확장되며 관객과 연결되는 현상을 새로운 형식으로 보여준다. 미술과 웹툰이라는 같고도 다른 범주에서 활동 중인 두 부자父子 작가가 세대를 거치며 어떻게 변화하고 매체에 따라 어떤 전략을 취하는지, 그들의 차이는 어떠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지 알아본다.

주재환 그는 누구인가

홍익대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했으나 어려운 사정으로 한 학기 만에 중퇴했던 그는 월간지 기자,  피아노 외판원, 아이스크림 판매원, 파출소 방범대원 등 갖은 생업에 종사했다. 생존의 치열함에 밀려 미술은 생각할 여력도 없던 그는 돌연 불혹의 나이에 호기롭게 그림을 시작해 예순에 첫 개인전《이 유쾌한 씨를 보라》를 연다. 군사정권을 비판하며 각종 사회 부조리를 풍자했던 그는 당시 전두환 정부의 검열과 예술인 탄압에 저항하며 민족미술협의회 창립회원이 되어 “힘을 다 합쳐 정의 구현 사회에 미술이 기여하자”라는 뜻을 주창했으며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망사건을 추모하며 《반고문전》을 열었다. 덕분에 정부의 견제 속 형사들에게 끌려가거나 구속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주재환의 새로움은 문화경제적 전략의 결과다. ‘1세대 민중미술가’로 불리며 투쟁의지를 내비쳤던 그의 작품은 세속적 도구로 포장되어 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사회 풍자적 메시지를 가치 없는 사물로 치환하고 조악한 방법으로 감춘다. 작품 안 기표와 기의의 관계에서 발생한 긴장감은 미술관 공간으로 옮겨져 문화적 위계 내부의 가치들이 교환하고 거래하게 만든다. 시각적으로 세련되고 화려한 미감은 부족할지언정 그의 낯선 작품은 흥미로운 새로움을 선사한다. “무거운 걸 가볍게 한다든가 쓴 맛을 단 맛으로 바꾼다든가 그런 성향이 내게 많은데, 유화 같은 건 무거운 것도 많이 있어. 그러니까 한 가지로 규정하기 좀 힘든 거 같애.”① 라는 그의 말처럼 주재환의 작품은 가벼우면서도 무겁고 진지하면서도 우습다. 가치의 경계 사이 술래잡기를 하듯 미술을 하는 주재환은, 관객이 그에게 닿기 전 새로운 새로움을 내놓는다. 

주재환, <그 자는 몇 번 출구로 튀었을까?>, 1998, 화이트보드에 아크릴릭, 60×90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주호민 그는 누구인가

대표 작품  『신과 함께』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주호민은 2000년대 중반 커뮤니티 ExCF에 자신의 군대 생활을 소재로 한 『짬』과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룬 『무한동력』을 연재하며 이름을 알렸다. 한국의 전통 신화를 바탕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와 운명을 다룬 『신과 함께』는 2010년부터 네이버 웹툰에서 공개되어 큰 인기를 얻고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 또한 흥행에 성공하여 주호민은 ‘쌍 천만 작가’라는 수식어를 얻게된다. 『신과 함께』는 권선징악을 소재로 평범한 인간 김자홍이 저승에서 겪게 되는 49일간의 재판 이야기를 다룬다. 일곱 번의 재판을 받는 동안 등장하는 저승의 신들은 만화로 새롭게 그려지는 동안 그 권위가 희석된다.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문화적  기억 속에 보존된 것을 소환하며 당대의 현실과 엮여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한국 전통 신화는 대중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웹툰으로, 영화로 그 영향력을 확대했는데 신화의 가치 절하와 미디어 매체의 가치 절상이 소용돌이치며 신선한 새로움을 만들고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주호민은  트위치,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동시대 플랫폼을 가장 잘 활용하는 작가 중 하나로, 자신을 소재 삼아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파괴왕’, ‘주펄’, ‘양말 아저씨’ 등 팬들이 지어준 다양한 별명은 그 인기를 증명한다.

주호민, 『신과 함께-저승편』(2010) 중 <저승삼차사>, 라이트박스 디지털 출력, 200×140cm

호민과 재환

호민과 재환은 이렇게도 읽을 수 있다. 아들과 아버지, 웹툰과 민중미술, 만화가와 기성 예술작가, 세속적 영역과 문화 아카이브. 둘 사이 벌어진 40여 년의 간극만큼 호민과 재환 사이를 드러내는 다양 한 경계가 존재한다. 1941년생 주재환으로부터 1981년생 주호민까지 40년의 시간 동안 전 지구적 대립의 종식과 세계화 흐름 속 한국 사회도 변화를 모색하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며 이전의 가치와 개념은 허물어졌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한 지식 체계가 수립되는 양상을 보였다. 가치화된 문화와 세속적 공간 사이 평준화를 이루려는 평등주의적 시도가 계속됨에 따라 둘 사이 경계 짓기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매번 새로움이 탄생했다. 단적인 예로 2010년부터 연재되던 『신과 함께』가 2019년 재연재 되었는데, 권선징악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던 저승 신의 처벌이 수년 뒤 가혹성이 부각되며 부정적으로 비판받는 등 변화된 댓글 분위기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관계맺기

두 작가가 엮은 공간에서 자아내는 긴장감은 전시장 2, 3층을 통과해 수직적으로 설치된 주호민의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에서 극대화된다. 소재인 ‘계단’은 주호민 이전의 주재환, 그리고 앞선 시대의 마르셀 뒤샹까지 여러 단계의 가치 이동을 반복하며 경계의 변화를 드러내는데 사용되었다. 마르셸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패러디한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사람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뒤샹의 작업을 계단을 흐르는 오줌 줄기로 대체해 사회의 권력관계와 위계질서를 풍자했다. 그는 “오줌발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생각에서 그린 것으로, 우상화된 서구 미술에 종속되는 데 대한 저항”②이라 말한다. 캔버스라는 가치화된 형태는 소변 누는 행위를 아카이브 하고 가치 절상 했다. 마치 뒤샹의 다른 작품, <샘 Fountain>이 배출 단계에서 만나는 무가치한 오브제임에도 미술관에 놓임으로써 경계를 이동해 가치 절상한 것처럼 말이다. 한편 전시장 2, 3층의 뚫린 공간 사이로 솟은 주호민의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를 재해석해 세속적인 만화적 방식으로 표현했다. 주재환의 작품에서 하강하던 오줌은 거꾸로 뒤집어져 서로를 견인해 상승하는 인물들로 대체되었다. 마르셀 뒤샹에서 주재환으로, 주재환에서 다시 주호민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치와 의미의 교환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Duchamp Marcel, 1912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 Retrieved from ARTSTOR
주재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1987 리프로덕션, 61×45.5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주호민,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 중 부분, 2021 후렉스에 디지털 출력, 740×220cm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주재환 작가가, 또는 권력 있는 미술관이 ‘새로움을 보여주기 위해 주호민 작가를 아카이브 현장으로 초대하였고, 대중적 인기와 문화적 권력을 얻은 두 작가는 새로움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협업했을 뿐’이라고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호민의 웹툰은 사회적 기억 속에 보존되어 있는 가치 있는 주재환의 옛것과 관계하며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새로움은 문화 경제적 현상으로 기존의 아카이브와 비교해 새로운 것일 때, 그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미술에 크게 흥미 없던 사람들, 주재환을 모르던 주호민 작가의 팬들이 미술관으로 유입되었다.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의 전시 소개란에도 그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그들만의 용어를 사용해 주호민 작가를 응원한다. 작품을 넘어, 작가를 넘어,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양 공간을 유영하며 관계를 맺고 이는 곧 함께 즐기는 즐거움으로 돌아오게 된다.

①  현시원, 릴레이 인터뷰 : 현시원 묻고 주재환 답하다, 더아트로, 2012.11.16.
https://www.theartro.kr:440/kor/features/features_view.asp?idx=1025&b_code=31e

② 김형순, 문화 쓰레기 혹은 천 원으로 예술품 만드는 남자, 2016.3.2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92102

글: 문혜인
자료제공: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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