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신풍과 함께 전해진
반가운 전시 소식

《조선민화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3.27 6.29
《겸재 정선》 호암미술관 4.2 6.29

김현지 미술사,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

Exhibition Theme

이택균 〈책가도10폭〉(사진 오른쪽) 비단에 채색 19세기
《조선민화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박홍순

《겸재 정선》 호암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제공: 호암미술관

화신풍(花信風)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풀어보자면 ‘꽃이 곧 핀다는 소식을 알려주는 바람’이다. 옛사람들은 때가 되면 절로 알아서 피고 지는 꽃들을 자연의 섭리를 보여주는 지표로 여겼다. 오늘날 현대인은 사계절의 변화를 당연한 기상 ‘현상’으로 인식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매서운 봄바람에도 생명이 있다고 여기고, 햇살과 봄비가 봄꽃을 키운다면, 바람은 소한(小寒)에서 곡우(穀雨)까지 5일마다 새로운 꽃이 필 것임을 인간에게 미리 알려주는 고마운 전령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옛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런 자연의 꽃과 새의 화려함을 화폭에 옮긴 ‘화조화’,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과 공기 중의 습도까지 화폭에 담고자 한 ‘산수화’에 대한 그 이해의 폭은 자연히 커질 것이다. 산수유와 목련,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3월을 시작으로 붓꽃과 산수국의 5월을 지나 이제 작약과 모란이 한껏 꽃망울을 부풀리며 새로운 꽃소식을 준비 중이다. 새봄 화신풍을 타고, 양대 사립미술관의 특별한 고미술 전시 소식으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바로 서울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조선민화전》과 용인 호암미술관의《겸재 정선》이다. 그동안 해외 미술관의 유명 화가 순회 전시들로 분주하던 미술계에 반갑고도 귀한 고미술 전시이기 때문이다.

《조선민화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박홍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조선민화전》
《조선민화전》은 아모레퍼시픽 창립 8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이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세 번째 고미술 기획전이다. 우선 전시 구성을 대략 살펴보면, 기본 화목과 유사한 주제의 작품군으로 분류하여 공간을 구성했다. 제1전시실에는 〈책가도10폭〉, 〈제주문자도8폭병풍〉,〈백선도8폭병풍〉, 〈수련도10폭병풍〉, 〈어해도10폭병풍〉 등이 있고, 제2전시실에는 〈일월부상도〉, 〈소상팔경도8폭병풍〉, 〈금강산도10폭병풍〉, 제3전시실에는 〈화조도10폭병풍〉, 〈모란도10폭병풍〉, 〈백납도10폭병풍〉, 제4전시실에는 〈호작도〉, 〈운룡도〉, 제5전시실에는 〈봉황도〉, 〈서수도〉와〈수렵도10폭병풍〉, 〈삼국지연의도10폭병풍〉, 〈구운몽도6폭병풍〉,〈하락도12폭병풍〉 등 민화풍 도안의 도자공예품이 있다. 제6전시실에는〈곽분양행락도10폭병풍〉, 〈백동자도8폭병풍〉, 〈평생도8폭병풍〉,〈신선도8폭병풍〉, 〈독성도〉, 제7전시실에는 도자공예, 목공예, 금속공예, 자수공예품이 전시됐다. 작품의 대부분이 병풍 형식이며 다양한 주제를 선보이고 있다.

궁중의 책가도 병풍에서 민화 책거리 그림으로
이 중에 대표작으로는 전시실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책가도를 꼽는다. 책가도는 18세기 후반에 궁중에서 제작되기 시작하여, 책가(책을 배열하는 선반)에 책과 길상적인 의미를 지닌 이국 취향의 기물들이 정연하게 놓여있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에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성행한 민화 책거리도에는 책가 없이 안경과 바둑판 등 다양한 소재가 추가된다. 오색의 솔이 달린 빗자루는 벽사 기복의 의미를 지닌 소재로, 섣달그믐(음력 12월 30일)에 가시나무 등을 묶어 만든 빗자루로 묵은 먼지를 닦아내어 액운을 쫓아내는 세시풍속과 연관된다. 국립전주박물관 소장의 〈책가도10폭병풍〉 속의 잉어 장식이 달린 오색 빗솔의 소재는 벽사 기복의 의미를 지니는 빗자루와 출세를 상징하는 뛰어오르는 ‘등용문’의 잉어 이미지가 결합한 것을 보여준다.

이택균의 〈책가도10폭〉(19세기)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최근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구입한 소장품으로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이 그림은 유명한 디자이너이자 사회공헌으로 칭송받는 미술품 컬렉터인 미카 에르테군(Mica Ertegun)의 소장품이었다. 그는 이 책가도를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의 고미술상으로부터 구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병풍이 아닌 각 폭이 분리된 형태로 해외로 나간 것으로 보이고, 한동안 소장가의 뉴욕 저택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는 20세기 초 유럽의 고풍스럽고 모던한 장식적 취향의 가구와 공예품을 주로 수집하였는데, 그래서인지 바다 건너 동방의 나라에서 온, 중후한 화려함을 뽐내는 책가도가 그의 세련된 집안 분위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한 듯하다. 조선 후기 정조대에 궁중에서 사용되던 책가도의 이미지가 민간으로 전파되어 유행하고, 20세기 전반에 고국을 떠나 유럽 어느 도시의 고미술상점을 거쳐 미국 뉴욕의 저택 벽면을 장식하던 책가도가 긴 여정을 마치고, 다시 고국인 서울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으로 돌아왔다. 이런 서사를 지닌 책가도는 여타의 작품과 차별화되는 독보적인 존재가 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의 1907년 제작 〈백납도10폭병풍〉, 19세기 윤오진의 〈어해도12폭병풍〉, 20세기 초 이경승의 〈호접도 10폭병풍〉은 섬세한 필치와 세련된 채색법으로 수준 높은 기량을 보여주며, 당시의 박물학적 관심과 회화 제작의 성행을 잘 보여준다. 앞서 살펴본 이택균의 〈책가도10폭〉과 함께 무명화가의 그림도 아니고, 고급의 재료로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진 세밀한 필치의 병풍을 ‘민화’라고 지칭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백납도’는 여러 종류의 작은 그림이나 글씨들을 모아서 완성한 것으로 원형, 사각형 등 다양한 틀을 그려서 그 안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별도의 종이에 그려서 붙이기도 한다. 주제도 한가지로 통일된 것이 아니라 산수, 화조영모, 고사인물, 기명절지, 어해 등 다종다양하게 구성되었다. 여러 부채 그림을 모아 그린 ‘백선도’도 백납도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그림 속의 그림으로,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종류의 그림들은 19세기에 동식물이나 사물 자체에 대한 지적 관심의 고양으로 수집, 분류하고 종합적으로 정리, 배열하는 백과전서식 학문의 영향으로 성행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8세기 이후로 서화골동 취미와 수장이 유행하고, 19세기 이후로 책거리 그림과 같은 문방 청완의 장식용 회화의 유행과 함께, 다양한 그림을 실제로 소유하고 싶은 당대인들의 욕망을 시각적으로 충족시켜주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책가도8폭병풍〉(사진 오른쪽) 비단에 채색 가나문화재단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조선민화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박홍순

문자도의 무한 변주
문자도는 원래 유교적 덕목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굵은 체의 한자 안에 관련된 고사의 내용을 그려 넣는 형식인데, 19세기 후반에는 점차 문자의 형태보다는 ‘장식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다양하게 변모하였다. 국립해양박물관 소장의 〈제주문자도8폭병풍〉은 20세기 중반의 작품으로 “효제충신 예의염치(孝悌忠信 禮儀廉恥)”라는 여덟 글자를 8폭에 각각 쓰고 상단과 하단에는 물고기, 새, 나무, 꽃, 누각, 기물 등이 그려졌는데, 이러한 양식의 문자도는 제주도 지방에서 많이 그려졌다. 간략하고 평면적인 형태 묘사와 활달한 필치는 현대적인 미감과 맞닿아 있다. 이렇게 유교적인 교훈을 전하는 문자도 외에 ‘백수백복 만수무강(百壽百福 萬壽無疆)’, ‘길상(吉祥)’, ‘희(囍)’ 등의 기복적인 관념을 강조한 문자도도 제작되었다. 계명대 행소박물관 소장의 〈백수백복도4폭병풍〉은 장수와 만복을 중시하는 면모를 잘 보여준다. 전서체 ‘수(壽)’자와 ‘복(福)’자를 회화적으로 변용한 정교한 필치는 수준 높은 화격을 보여준다. 다종다양한 글씨의 변화상과 오색의 화려한 장식성은 보는 즐거움을 크게 만족시켜준다. 수복문자도에 특별히 ‘전서체’가 선호된 것은 그 글자체가 재액(災厄)을 막아준다는 당대인들의 기복적인 주술적 관념 때문이다. 〈백수백복도〉와 같은 기복적인 문자도는 궁중과 민간에서 모두 유행하였고, 회화뿐 아니라 복식의 도안이나 자수, 공예품 의장으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19세기 회화의 모든 주제는 궁중과 민간을 불문하고 만복을 기원하는 기복의 주제로 수렴되었다.

〈문자도8폭병풍〉(사진 오른쪽) 종이에 채색, 개인소장 19세기
《조선민화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박홍순

채색화 창작의 대중적 인기와 ‘민화’ 용어 개념의 모호함
《조선민화전》을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 또 가야 할 것 같다. 미술사적 지식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사전 지식 없이도 민화가 주는 시각적 쾌감은 꽤나 강렬해서 집에 오는 내내 도파민 가득 충전되었다. 과거 민화가 이런 이유로 크게 유행했었나 보다 공감되었다. 그러나 여러 번 전시를 보고, 전시도록에 실린 논고를 읽어도, 이 글을 준비하는 내내 풀리지 않고 증폭되는 의문 한 가지는 “민화란 과연 무엇인가?”하는 점이다.

필자는 궁중에서 직업화가인 화원에 의해서 생산되고 소용된 그림을 ‘궁중회화’라고 부르고,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민간에서 궁중회화를 비롯한 상층 문예가 저변화되면서 생산되고 소비된 그림을 ‘민화’라고 정의하고 싶다. 현존하는 ‘민화’로 지칭되는 그림들은 독창적인 화면 구성, 간략하고 활달하며 자유분방한 필치와 틀에 얽매이지 않는 형태 묘사와 개성 있는 색채감각이 공통된 특징이다. 그러나 19세기에 도화서 화원들이 공사 간의 주문에 모두 응하며 그림을 그리면서, 화풍만으로는 궁중회화와 민화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경계 지점이 있는데, 이미 이 시기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직업적 전문화가와 여기(儒妓)의 아마추어 화가의 양식과 기량 차이, 중앙화단과 지방화단의 지역 차이, 유명화가인가 무명화가인가의 문제 등 그 차이의 범위는 매우 넓고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민화’의 용어 자체가 일제강점기 이국의 타자의 시선에서 비롯되었으며, 제한된 의미로 사용된 것이 1970년대 미술비평에서 재사용되면서 소환된 용어이다. 이번 《조선민화전》의 전시도록에 실린 다양한 연구자들의 논고를 보면, 각자 저마다의 잣대로 ‘민화’라는 용어의 개념을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민화전》은 ‘민화’라는 독립된 주제를 설정하여 전시를 기획하였는데, 전시 출품작 대부분이 조선 19세기 이후의 병풍이라는 매체와 시대상의 공통점이 있다. 도록 편집의 포맷뿐 아니라 전시의 내용상으로도 앞선 두 번의 고미술 기획전시(병풍전)인 2018년의 《조선 병풍의 나라》, 2023년의 《조선 병풍의 나라 2》의 연장선임을 스스로 표방하고 있다. 《조선민화전》은 앞선 두 번의 기획전에서 다루었던 병풍 중에서 민화만을 특화시켜서 기획된 것이지만, 전시작품의 카테고리인 화제 분류와 출품작들의 많은 부분이 중첩된다. 이러한 현상은 민화가 갖고 있는 개념의 광범하고도 모호한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현재 통용되는 민화의 범주는 한국회화사에서 조선 후기에 다뤄지는 감상용 일반회화의 거의 모든 화목과 주제를 포괄하기 때문이다. 민화에 대한 관심의 증대는 고미술을 향한 관심의 기폭제가 되었고, 나아가 민화를 소장하고 있는 해외 미술관과 소장가들도 큰 관심을 갖고 주목하게 되었다. ‘민화’ 개념의 정립은 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앞선 두 번의 병풍전은 병풍이라는 매체에 집중하여 그 기능과 세부 주제를 심화시켜 다루어, 고미술 전시의 수준을 한층 높였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이번 《조선민화전》 또한 미술관의 소장품뿐 아니라 타 기관 및 개인 소장의 새로운 주제의 민화를 발굴하고 공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부사진을 포함한 질 좋은 작품의 이미지와 민화 연구의 최신 경향과 성과를 반영한 각 분야 연구자들의 심도 있는 논고를 실은 전시도록은 가장 큰 성과라고 하겠다.

《겸재 정선》 호암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홍성집 제공: 호암미술관

호암미술관의 《겸재 정선》
《겸재 정선》은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이 공동 개최하며, 각기 2025년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 2026년 정선 탄생 350주년을 기념하는 뜻을 담은 특별 전시이다. 특히 〈금강전도〉를 비롯하여, 간송미술관의〈풍악내산총람〉, 〈신묘년 풍악도첩〉, 〈장동팔경첩〉, 〈경교명승첩〉 등의 대표작과 故이건희 회장의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 된〈인왕제색도〉 등 여러 기관과 개인의 소장품 총 165점(국보 2점, 보물 57점(7건), 부산시유형문화재 1점)이 한자리에서 전시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1 전시의 구성은 1, 2부로 나누어지는데, 제1부 ‘진경에 거닐다’에서는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금강산과 관동 지역, 한양과 한강 유역, 지역 명승으로 세분하여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제2부 ‘문인화가의 이상’에서는 산수화 외에도 문인의식과 집안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문인화, 고사인물화 및 화조영모화 등 정선이 그린 다양한 주제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와유(臥遊), 누워서 금강산의 전체 경치를 즐기다
조선 후기 명산, 명승 유람과 기유문학의 성행으로 조선에 실재하는 산천을 그린 진경산수화가 성행하였는데, 그 흐름의 선두에는 겸재 정선이 큰 활약을 하였다. 조선 전기까지 산수화는 실재하는 경치의 특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이국의 이상적인 산수미를 추구하는 관념산수화가 유행하였다. 실재하는 경치를 그리는 실경산수화가 정선의 등장 이전인 17세기에도 일부 그려졌지만 대개 실용적인 목적에서 그려진 지도나 기록화의 특성이 강한 그림이었다. 정선이 36세(1711년)에 그린 『신묘년 풍악도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이전 시기의 실경산수화의 영향이 남아있는 정선의 초기 화풍을 보여주는 화첩이다. 금강산의 전체 모습을 한 장면으로 압축한 전경의 그림인〈전도〉와 그 〈부분도〉에 해당하는 명승의 각 장면은 지도첩의 전도와 각경도의 구성과 유사하며, 유명한 명승지 부근에 해당 ‘지명’을 써넣은 것도 지도의 영향이다.

금강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불교의 성지로 유명한 산이었으며, 명산을 유람하고 이를 기념하여 기행시문을 창작하는 문화는 조선 중기부터 유행하였다. 이러한 배경은 조선 후기에 더욱 성행하여 금강산과 관동지역을 유람하고 이것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여 화첩으로 남기는 ‘시서화합벽첩’ 유행으로 이어졌다. 정선은 여러 차례 금강산과 관동을 유람하며 사생의 경험을 쌓았고, 쌀알 모양의 미점으로 표현된 토산과 수직준을 활용한 암산의 대비가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독창적인 구도의 금강산도를 그려냈다. 1740년경의〈풍악내산총람〉(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을 내금강의 전경을 담은 그림이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물든 토산과 서릿발 어린 암산이 조화로운 대비를 이룬다. 18세기 중엽의 겨울 금강산(개골산)의 모습을 담은 〈금강전도〉(개인 소장)는 노년의 원숙한 예술미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금강산의 전체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린 전도 형식의 금강산도는 오랫동안 유행하였다. 금강산을 실제로 가보는 것이 어려운 당시 현실에서 와유, 즉 누워서 경치를 즐기는 목적에서 그려졌다는 것은 그림 위에 적힌 제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금강산 전체를 두 다리로 수고롭게 돌아다닐 필요 없이 그림을 머리맡에 두고 보아도 그런대로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정선 〈웅연계람〉(사진 가운데) 비단에 수묵담채 33.3×116.4cm, 신유한 〈의적벽부〉 30.2 116.4cm 조선 1742년
《겸재 정선》 호암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제공: 호암미술관

한양의 명승을 그리다
『경교명승첩』(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은 정선이 양천현령(현재 서울 가양동 일대) 시절인 1740~1745년에 서울의 명승과 다양한 고사를 그려 만든 화첩이다. 시인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바꾸어 보자는 우정 어린 약속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남한강의 〈녹운탄〉에서부터 배를 타고 내려오면서 한강 일대를 사생하여 청록산수화로 묘사한 진경산수화들이 여러 장면 담겨있다. 정선의 일상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독서여가〉, 한양의 인왕산 골짜기 정선의 거처인 인곡정사에서의 모습을 담은 〈인곡유거〉, 백악산 기슭에 올라가서 내려다본 비 내린 후의 한양의 경관을 그린 〈장안연우〉 등이 유명하다.

〈인왕제색도〉(사진 왼쪽) 종이에 수묵 79.2×138.2cm 조선 1751년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회장 기증 국보
〈금강전도〉(사진 오른쪽) 종이에 수묵담채 130.8×94.5cm 조선 18세기 중엽 개인소장 국보

정선과 문인의식
정선은 진경산수화 외에도 다양한 문인 주제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여산초당〉(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거처인 여산초당을 그린 것이다.「여산초당기(廬山草堂記)」에 묘사된 내용을 보면, 여산초당의 북쪽에는 향로봉이 있고, 동쪽에는 폭포가 있으며, 남쪽에는 백련이 핀 사각의 연못이 있다고 했다. 초당 뒤편의 대나무와 주변의 소나무와 괴석, 꽃나무가 심어진 화분, 서책과 도자기가 놓인 초당에 한가롭게 앉아서, 정원을 노니는 학을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은 당시 문인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은일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계상정거〉는 이황의 도산서당을 그린 그림으로, 천원권 지폐의 뒷면에 실린 그림으로 유명하고, 『퇴우이선생진적첩』(삼성문화재단 소장)에 실린 정선의 그림 4점 중의 하나이다. 이 서화첩에는 퇴계 이황 친필의 「회암서절요서」, 송시열의 발문, 정선의 차남 정만수의 발문, 이병연의 제시가 같이 실려 있어서 그 가치가 크다. 〈계상정거〉는 도산서원이 건립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이황이 완락재에서 정좌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정선이 이황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내고자 특별히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겸재 정선》 전시는 18세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정선이라는 한 화가의 그림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국내의 주요작들을 총망라한 대규모 전시라는 의의가 있다. 말로만 듣던 그의 명성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명품의 품격을 실물을 통해 서로 비교하며 옥석을 가려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고미술을 감상하는 이들의 연령이 다양해지면서 젊은 층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도 반가운 소식이다. 전시장에 나직하게 울리는 이들의 환호와 감탄의 소리는 좋은 것을 더불어 즐기고 있다는 공감대로 흐뭇함은 두 배가 된다. 좋은 전시는 크게 소문을 내고 봐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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