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희
Myung-hi Cha

차명희 : 회화의 줄기

오정은 미술비평

Artist

차명희 / 1947년생. 서울대 회화과 학사, 동 대학원 동양화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운영위원(2000~2014)를 역임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동양의 재료와 정신을 바탕으로 서양화의 재료인 목탄과 아크릴을 융합하여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198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25년 뮤지엄 호두에서의 개인전까지 25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전북도립미술관, 양평군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국제인천여성비엔날레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 공간에서 개최하는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영국박물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금호미술관, 뮤지엄호두,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사진: 박홍순 이미지 제공: 작가


차명희 : 회화의 줄기
오정은 미술비평

1. 채워진 한편 비어있는 화면. 여백 속에 드러나는 파편적 선들. 어둠으로 희석된 듯, 미명이 녹아든 듯 침전한 잿빛 음영. 차명희의 회화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원리가 관입한 사유의 장이다. 추상으로 그려진 흔적들이 특정한 장면을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나무의 흔들림이나 호수의 파장 같은 자연의 감각을 은근히 떠올리게 한다. 그 감각은 재현된 풍경이라기보다 젖은 수지와 마른 숯이 만나며 남긴 잔여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희석된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에 부어 펴 바르고, 물감이 마르기 전 그 위에 목탄의 획을 빠르게 긋는다. 손의 방향성과 압력을 그대로 받은 재료는 속도와 농담을 담아 검은 궤적을 남긴다. 부러져 튀어나온 조각으로 그림 안에 박히기도, 미세한 가루로 배경의 기척처럼 배어들기도 한다. 스밈과 스침, 습윤과 건조의 과정 뒤 목탄 입자는 아크릴층에 봉인된다. 이후 그 표면은 지나간 기류의 흔적을 품은 채, 응고된 자기 존재를 고요하게 드러낸다.

차명희의 작업실 창가에서 오래 자리를 지켜온 화분을 본 적이 있다. 연필선인장이라 불리는 그것은 줄기가 사방으로 자라는 유포르비아 계열의 식물이다. 광량에 따라 굵기가 달라지고, 반복된 분기를 거치며 산호초 같은 비정형의 실루엣으로 자란다. 자유롭게 솟거나 아래로 늘어지는 형태, 무심한 듯 형성된 마디의 간격이 미묘한 기색을 풍긴다. 내부에 수분을 머금고 건조한 환경에 적응해 잎사귀 없이 살아가며, 표피의 왁스층은 매끈하게 빛난다. 이 생태적 특징은 우연하게도 작가의 조형 언어와 겹쳐 보인다. 화면의 목탄 선은 그 식물의 줄기처럼 사방으로 확장되며, 서로 다른 필압으로 공간을 탐구하고, 사이 리듬 속에서 전체의 생동을 조직한다. 물기를 조절한 재료의 조합으로 내부가 차 있고, 아크릴 피막이 둘러진 외부는 은은하게 빛난다.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은 채 질서를 유지하며, 놓여 있는 공간과 조용히 조응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호흡으로 생존하며, 작은 차이로 자신을 성립시키는 점 또한 서로 닮아있다.

〈바람에 실려온 편지〉캔버스에 아크릴릭, 목탄 117×91cm 2025

전통적으로 선은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는 외곽이 아니라, 사유를 여는 길로 다루어졌다. 동양화를 전공한 차명희는 이러한 선의 기운을 체득하며 작업의 지층을 쌓아왔다. 그의 주변에는 캔버스에 선을 올리기 전, 종이 위에 수차례 반복한 드로잉들이 놓여 있다. 그 드로잉들은작가에게 어디까지나 한 획을 고르기 위한 초심자의 준비일 뿐, 완결된 작업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연필과 펜, 목탄과 콩테 같은 다양한 재료가 닿아 그어진 바들이 그 내밀한 과정에 어우러진다. 각기 다른 밀도와 질감으로 조절된 선들은 길게 뻗는 장선, 스타카토처럼 끊기는 단선, 면처럼 퍼지는 두꺼운 선과 예리하며 선명한 가는 선, 방향성을 암시하는 획, 혹은 어지럽게 얽힌 난선으로 매번 다르게 조율된다. 이따금 작가는 붓을 쥐고 사군자의 기본기도 복기한다. 이는 필선의 시작과 끝, 강조와 여운의 호흡을 다시 몸에 새기기 위한 수련이다. 거듭된 훈련의 강도가 벤 손은 운필의 민감도를 축적하고, 그것으로 화면과 재료를 매개한다. 그러나 이 반복은 최종 작품에 과잉된 밀도나 고양된 태도로 드러나지 않으며, 오히려 절제된 흐름으로 응축되어 나타난다. 이는 오래 들여다본 이의 정제된 의식이며, 긴 시간을 견디며 길러낸 획의 마무리일 것이다.

2. 차명희는 1966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 당시 회화과 입시는 연필 소묘를 기본으로 치른 뒤 목탄소묘와 수묵화 중 하나를 선택해 시험을 보는 방식이었으며, 재학 중 동양화와 서양화 가운데 전공을 고르게 되어 있었다.1 동양화를 선택한 작가는 1975년까지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며, 전통 수묵기법을 규범으로 삼는 아카데미즘의 기본기를 배웠다. 그러나 동양화가 지닌 깊은 매력과는 별개로, 동·서양의 분리된 구조는 표현의 확장을 제약하는 불필요한 벽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즈음 국전 비구상 부문에 입선한〈가변〉은 장르의 경계를 시험하고 재료의 가능성을 탐구한 작가의 초기 시도로 남는다. 이는 장지를 구겨 바닥에 두고 먹을 부어 말린 작업으로, 종이 전체에 스며든 먹빛이 구김의 깊이만큼 서로 다른 음영을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구겨진결은 재료가 스스로 윤곽을 밀어 올리며 일종의 육화된 선을 형성하고, 약간의 입체감을 띤 표면은 그래도 평면성을 지키며 굴곡을 따랐다. 이러한 시도는 이후 습윤한 바탕 위에 목탄 등의 재료로 구축해 온 차명희식 조형 감각에 연속성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작가는 1971년부터 1991년까지 ‘한국화회’에 참여했다. 이 동인은 서세옥 등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이 만든 ‘묵림회’의 정신을 잇는 흐름으로, 동양화의 현대적 호흡을 향한 열망을 내비쳤다.

〈순간〉캔버스에 아크릴릭, 목탄 91×72.7cm 2025

주지하듯, 우리 미술사는 196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를 ‘실험미술’의 시기로 기술해 왔다. 일각에서는 이를 이전 시대 화단을 지배했던 앵포르멜의 정서와 물질성을 넘어서려는 전위적 시도로 평가한다. AG와 ST 등 소규모 그룹 활동으로 대변되던 이들 양상은 회화의 표면을 해체하거나 새로운 매체를 도입하며, 제도 바깥에서 현대적 조형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캔버스라는 회화의 지지대를 고수한 채 행위의 반복적 수행으로 개념에 이른 단색화 계열도 있다. 이들은국외 전시를 포함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주류 위치를 점하며 명맥을 이어갔다. 강태희는 당시 미술에서 몇몇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집단적이면서도 꾸준한 실험정신의 축적은 보기 어렵고, 단색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도 연속보다는 단절, 교류보다는 배타적 영역 구축으로 귀결되었다고 평가한다.2 이러한 비연속적 구조 속에서 동양화 내부에서 재료와 표현을 확장하려는 시도들은 중심 서사에 쉽게 포착되지 못하였다. 이인범 또한 급변하는 사회 정세 속에 삶의 정체성 확보에 민감했던 당대 분위기와 달리, 전통미술 장르에서는 자의식 갱신의 흔적이 크지 않았음을 아이러니로 짚는다.3 각종 ‘실험’들이 미술계를 뒤덮었음에도 수묵화 진영의 실제 변화는 산수화 경향으로의 복귀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나, ‘동양화’ 대신 ‘한국화’의 기표를 사용하면서도 정작 그 내용을 자각하지 못했음도 아울러 지적한다.4 유신체제가 강조한 민족 주체성 담론과 상업화랑의급격한 성장 속에서 동양화 붐이 일었음에도 내부 갱신은 미약했다는 평가가 많다. 차명희의 초기 실험은 이러한 복합적 지층과 한계 속에 있었고, 그 결과 동시대의 거대 담론보다는 작가의 개별 자취 안에 한동안 자리 잡게 되었다.

졸업 후 결혼과 출산으로 잠시 작업에서 비켜나 있던 차명희는 1980년대 이후부터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그중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연례전으로 이어진 《비상전》이 특기할 만하다. 이는 서울대 동양화 전공 여성 작가들이 만든 소규모 모임으로, 남성 중심의 미술계 지형에 반하여 서로의 작업을 확인하고 지속하려는 연대였다. 《비상전》 3회 도록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남아있다.

차명희 개인전 《점·선 – 감각》 뮤지엄호두 전시 전경 2025

“그동안 우리의 주된 관심은 동양화가 지닌 아카데미즘(학원적 전통)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오늘의 한국화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의 연속선상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현대 회화로서 새로운 방법을 창출해야 한다는 당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조건 속에서 비형상(추상)의 문제와 시각적 다양성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따라서 전통적 정신원리와 현대적 조형성이 서로 단절 없이 만나고 조화를 이루는 문제, 그리고 서구적이론이나 형식에 과도하게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우리 고유의 발상과 감성의 뿌리를 어떻게 확고히 내릴 것인가가 우리의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 우리는 외형적 양식과 재료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현대 회화로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기 위해 고민하며 실험하고 있습니다. 제한된 재료와 기법 속에서 집단적 유사성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당당한 현대 회화의 한 장(場)을 열어가기 위해 서투르지만 오늘도 함께 모여 토론하며 모색하고 있습니다.”5

《비상전》은 시간이 흐르며 각자의 방향과 의견이 달라지며 자연스럽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지속 여부와는별개로, 단색화와 민중미술의 진영 구도가 강하게 작동하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그 대립의 바깥에서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결집해 의견을 나누었다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동양화 내부의 변화 가능성을 소규모 모임 안에서 확인하고 지탱하려 했던 시도이자, 제도적 흐름에서 비껴있었던 여성 작가들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낸 보기 드문 장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상전》의 맥락은 곧 차명희가 걸어온 작업적 기풍, 재료와 선의 감각을 집요하게 탐구하며 동양적 사유의 틀을 현대 회화 속에서 갱신하려는 태도와도 밀접하게 공명한다.

〈숲〉캔버스에 아크릴릭, 목탄 130×162cm 2025

1980년대 차명희의 작업은 한지 위에 혼합채색을 사용하여 구상·비구상 요소를 혼재시키는 방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1990년대로 접어들며 작가는 색의 사용을 점차 절제해갔다. 정도에 도달하지 못한 색을 무리하여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변화였다.이에 색의 과잉과 재연의 강박을 비워내고 선과 면, 그리고 재료가 만들어내는 회화적 반응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이끌었다. 이때는 동·서양의 구분 없이 출품해 현대회화의 공통분모를 찾자는 《현대한국회화전》이 여러차례 개최되었으며, 차명희도 1991년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등에 참가하였다. 지금 작가의 작업을 특징짓는 작풍의 등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두드러진다. 두께감 있는 장지 위에 희석한 아크릴 물감을 고르게 펴 바르고 그 위에 목탄 선을 긋고 말리는 일이 오랜 기간 이어졌다. 이러한 방식은 2010년 전후, 종이에서 캔버스로 옮겨오며 또 한 번의 변주를 맞는다. 재료의 선택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조형을 통해 사유의 지평을 확장하는 미학적 일관됨은 줄곧 중심을 지켜왔다. 전통과 현대를 매개하려는 시대 과제를 지나오며 차명희의 작업은 내적 밀도를 차분하게 축적해 왔고, 오늘 한층 분명한 자리로 드러나고 있다.

3. 차명희는 뮤지엄호두가 기획한 개인전 《점·선-감각》에서 2022년부터 이어온 근작을 소개하고 있다. 잿빛 수지를 머금은 종이 위에 스며든 숯 그림자, 캔버스의 아크릴 층위를 가르며 종횡한 콩테의 선율, 스퀴지로 넓게 펴 발라바탕과 면을 공유하는 안료의 흔적 조금씩 다른 기법으로 표현된 그들을 이렇게 불러보아도 좋을 것이다. 작품은 작가가 이름 붙인 〈바람에 실려 온 편지〉, 〈비 개인 후〉,〈겨울〉, 〈바라보다〉, 〈숲〉과 같은 서정적 단서와 조우하며 자연을 연상케 하는 특유의 정동 속에서 시선의 여로를 끈다. 스스로 생장하는 단계에 이른 듯한 선들이 작가의 의식과자율을 양분 삼아 화면 위에 경과를 남겼다. 화이트큐브의 흰 벽에도, 산의 능선을 들이는 전시장의 창가에서도, 이들은 고유의 담담함을 지키며 자리한다.

회화란 결국, 물질과 물질을 이어 붙이는 행위다. 물이나 기름 같은 가교 성분을 섞어 안료를 바탕질에 머물게 하고, 젖었다가 건조되는 시간 뒤에 비로소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이미지로 고정되는 예술이다. 이것은 동양화든 서양화든 다르지 않은 회화의 원리로 재료가 달라질 뿐 작동 방식은같다. 차명희의 작업은 이 기본을 오래도록 응시해 온 숙고의 여정이다. 먹의 번짐을 다루든, 아크릴의 농담을 조절하든, 건식재료를 결합하든, 작가는 줄곧 ‘회화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탐색해 왔다. 선이 화면을 가로지르는 방식, 층위가 쌓이고 마르며 다시 드러나는 과정,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나는 긴장. 그 모든 과정에 임하는 작가 신체의 운동성 이야말로 동서양의 구분보다 먼저 도달한 회화의 본성이다.

〈소리〉캔버스에 아크릴릭, 목탄 166×130cm 2012

차명희의 회화는 표면적으로는 색이 빠진 형태로 보이며 언뜻 단색화와 닮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단색화가 반복적 수행을 물질에 각인시키며 축적된 흔적을 강조하던 것과는 분명 다르다. 차명희는 수행을 과시하거나 ‘근면의 증거’를 화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한 획의흐름을 정확히 찾기 위해 수백 장의 드로잉을 버리면서도 최종 화면에는 절제된 리듬만을 남겨왔다. 결국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노동의 양이 아니라 줄이고 비워낼수록오히려 깊어지는 작가의 명상 반경이다. 이는 남성 중심으로 구축된 단색화의 집단적 맥락과는 다른 결로 읽혀야 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빠르게 교체되는 이미지의 표면을 건너뛰는 시대에, 차명희의 회화는 켜켜이 퇴적된 지층처럼 표면을 느리게 다듬어왔다. 한때의 실험보다 지속된 살핌의 의미를 믿고, 드러냄보다 비움을 택해 도달한 작가의 선은 오늘의 눈길을 저 깊숙한 여운의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말없이 남아 온 바들이 쌓여 이루어진 화면은 회화가 여전히 회화로서 생장할 수 있는 자리를 보여준다. 그곳에는 드러나지 않은 숨은 노력이 줄기처럼 이어져 있다. 차명희의 작업은 그궤적을 다시 바라보게 하며 지금도 조용한 결로 존재를 살핀다.

2025년 12월호 (VOL.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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