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도예전
2018. 3. 1 – 4. 21
GALERIE KARSTEN GREVE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영재는 수도여자 사범대학교 생활미술학과에서 공부한 뒤, 1972년 독일에 정착해 비스바덴 미술대학에서 도예와 조각을 전공했다. 이후 하이델베르크 부근의 샌드하우젠에서 개인 공방을 운영하던 그는 1987년 에센의 유서 깊은 마가레텐회에(Margarethenhöhe) 공방에서 대표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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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교류와 조형적 고찰에 의거한 이영재의 작품은 유수의 미술관에 설치되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이영재는 잔, 사발, 단지 등의 단순한 형태에서 착상을 얻은 다수의 변형 작품들을 전시장 바닥에 널따랗게 진열하는 설치를 선보인다. 예컨대, 2006 년 뮌헨 현대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의 원형 전시장에 1,111 개의 크고 작은 사발을 설치해 보이기도 했다. 2008년에는 같은 미술관에서 방추항아리 전시를 개최하여 ‘연속성 내의 유일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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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sten Greve 갤러리의 이번 전시 역시 이영재의 방추항아리에 중점을 둔다. 방추항아리의 형태는 한국의 저장 용기인 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내용물의 풍부한 양감을 드러낸다. 이영재의 방추항아리는 매끄러운 구형을 띠는 전통적 항아리와는 달리, 마치 두 사발이 거울을 보듯 마주 보며 그 입구가 서로 맞닿도록 포개져 있는 형태이다. 이는 생활 속의 쓰임을 위해 고안된 것으로, 입구의 지름을 받침의 지름보다 훨씬 넓게 하여 쌓아 올릴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두 사발의 연결부위는 꼭 두 손바닥을 서로 맞대고 있는 듯하다. 그 형태는 얕은 받침으로부터 풍부한 몸체를 따라 시선을 집중시키고, 만곡 바깥벽은 모난 마루를 형성하면서 이영재의 방추항아리의 형식적 특징을 이룬다. 단수와 중복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이번 전시에도 잘 드러나는데, 이는 괴테의 유명한 시 < 은행나무 잎 > (Ginkgo Biloba) 을 떠올리게 한다. ‘둘로 나뉘는 / 하나의 생명체일까 / 아니면 둘은 하나가 되기로 / 서로를 선택한 것일까?’ 이 미묘한 차이를 따라, 작품의 순백은 색채의 폭을 향해 열리고, 조형의 역학은 우주의 파노라마와 기원과 창조에 대한 시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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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를 도예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전통 사발의 순백과 그 한국사적 기원이었다. 이영재는 이렇게 말한다. “흰색 삼베, 흰색 창호지, 흰색의 얇고 두꺼운 마, 흰색 비단, 그 어떤 표백도 이들을 더 하얗게 만들 수는 없을 거예요.” 독일에 정착한 이래, 작가의 순백에 대한 애착은 샤르댕(Chardin)이 그린 함과 단지와 같은 도기, 르누아르(Renoir)의 회화 « 흰 옷 입은 소녀 », 그리고 특히 피에로 만조니(Piero Manzoni)의 작품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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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자기 고유의 흰색을 활용하면서도, 이영재는 그 처음의 형태, 즉 완전히 새것인 듯 깨끗한 모양새로부터는 거리를 둔다. 형태에 대해 미니멀리즘적 입장을 추구하는 작가는 전통과 현대의 조형원리를 사발의 결합 안에 조화시킨다. 그녀는 전통적 형태를 다루는 자신의 방식을 ‘전통의 재정의’와 같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전혀 새로운 형태를 창조한다거나 독창적인 결과물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 이영재의 관심은 그릇 각각의 개성과 조형이 나타내는 유일성에 있다. 가마에서 도자가 구워지는 동안, 재는 투명한 유약 위 이곳 저곳에 떨어져 작품 표면에 흠과 점의 불규칙성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녀에게 있어, 이렇게 생겨난 얼룩은 우연과 예측불가능성의 징후이자, 궁극적으로는 오브제의 유일성을 증명한다. 나아가, 도예가의 성격과 순간의 심신상태 또한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도예는 의식적 결단과 무의식적 자극의 결과물인 것이다.
기초적 요소의 변형이 수많은 디자인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반복성 내의 유일성, 이것이 이영재의 작업지침이자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비스바덴에서의 예술교육에 크게 영향을 받은 그녀는 삶으로부터 분리된 명상보다는, 재료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주의 깊은 실천방식, 즉 ‘손의 작업’을 한다. 작가는 점토에서 출발하여 단순한 기하학적 조형을 만들어낸다. 이는 인체로부터 영감을 얻은 비례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동반하는 과정이다. 하나의 도자가 인체의 추상이 되는 이 과정을 이영재는 원심력을 이용하여 탄력적이고도 유연한 덩어리를 길들이는 것과 같다고 정의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처럼 “용도”, “재료” 그리고 “구조“에 바탕을 둔 디자인은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과 바우하우스(Bauhaus)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처럼 미술과 공예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이영재의 총체적인 접근은 마가레텐회에 공방(Keramische Werkstatt Margaretenhöhe) 창설의 기원이자 폴크방 미술관(Museum Folkwang)의 설립자인 칼 에른스트 오스트하우스(Karl Ernst Osthaus)의 사유와 맥을 같이 한다. 그녀의 작품은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시간을 초월하며 유행과 기교를 뛰어넘는 유일하고도 독창적인 아우라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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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GALERIE KARSTEN GR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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