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작별한, 특별한

2020. 2. 18 – 5. 24

제주현대미술관

jejumuseum.go.kr


박정근, < 4.3지금여기 >, 3채널 비디오, 8분 50초, 2018.

제주현대미술관은 내달 24일까지 지역 네트워크 교류전 < 각별한, 작별한, 특별한 >을 개최한다. 지역 네트워크 교류전은 제주현대미술관의 연례 기획전으로 올해로 5회를 맞이했다. 창작 배경과 활동 영역이 다른 여러 작가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함으로써 작가 간 교류와 지역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에 의미를 둔다. 올해는 역사 속 소외된 존재들에 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해 온 이지유, 해녀와 4·3을 주제로 작업을 펼쳐 온 박정근, 소외된 삶에서 사회 중심 문제를 이야기해 온 이경희가 참여한다. 작가 세 명은 1901년 이재수의 난, 1948년 제주 4·3, 1950년 한국전쟁이 낳은 미군기지 마을로서, 아픔이 있는 한국 근현대사 속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주시한다.

이지유, < 산방조망 >, 종이에 콘테, 71X71cm, 2019

타자에 대한 적대와 배제, 그것이 파생하는 소외와 낙인과 같이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하는 폭력 현상은 어디서 야기되는 것일까? 마치 거울을 보듯 타인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처럼 ‘현재와 너무 멀지 않은 과거에서 우리의 현재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이 전시의 출발점이다. 이지유가 마주한 이재수에 대한 전설, 박정근의 4·3 유족 인터뷰, 이경희의 미군 마을 주민 인터뷰와 같이 역사 속에서 떠돌았고 떠도는 말이 전시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인간적인 삶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지만 기록에서조차 누락된 사람들, 평범한 일상을 일시에 빼앗긴 채 사회적 배제와 낙인의 시간을 감내한 사람들, 국가 정책의 주변부에서 극심한 의존성과 불일치가 혼재된 불안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경희, < www.nousarmythere.com >, 디지털 이미지 명함, 공간설치, 2016.

 < 각별한, 작별한, 특별한 >전은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흩뿌려질 뻔한 이야기를 통합적으로 살펴보는 데 주목한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속한 집단, 사회, 국가의 영향을 받으며 그 누구도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다. 그렇기에 현재도 역사 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누락된 역사를 다면적으로 보고자 하는 이지유, 소중하고 의미 있는 장소를 되찾아 준 박정근, 새로운 뿌리를 만들어가는 주민들의 일상에 컬러를 입히는 이경희 작품과의 만남을 통해 오늘날 우리 기억에서 잊혀진 이들의 자리를 마련하는 유의미한 환대의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이지유는 1901년 제주에서 있었던 이재수의 난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재수의 누이 순옥은 제주 민중 항쟁에서 장두(狀頭)로 나섰던 이재수의 삶을 기록한 「이재수 실기 : 야월의 한라산」을 남겼는데 순옥이 남긴 기록을 좇아 구술과 기억에 의해 전설처럼 전해져 오던 이재수라는 인물을 기억하고 표면화한 작업이다. 상실된 기록과 기억 사이에서 망각된 존재와 시간을 다시 끄집어낸다.

박정근은 국가와 사회가 하나의 이름으로 규정한 4·3 유족이라는 집단적 관점이 아닌 다른 마음으로 그들을 만났다. 깊은 주름살과 다양한 표정을 담은 제주 4.3 희생자 유족의 초상 연작을 통해 이념을 걷어내 한 사람 한 사람의 복원된 일상과 새로운 삶을 이야기한다. 또한, 새로운 건물과 도로가 생기며 관광과 경제적 가치로 변모한 장소에서의 인물 연작을 통해 그곳을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경희는 지역민과 미군이 맺는 관계와 그 의존 형태로 또 다른 개인적, 집단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미군 마을의 독특한 삶의 형태를 주목한다. 의존, 이념, 콤플렉스가 혼재한 집단적 대상으로 미군을 보아온 주민들과 달리 작가는 개별적 방식으로 미군을 만나 그 고유한 이미지와 기억을 남긴다. 관객 참여형 작품을 통해 주민들의 생활에 새로운 색을 입힌다.

자료제공 : 제주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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